소설리스트

일홀도-501화 (501/600)

第百一章 남해혈로(南海血路) (1)

황제와 아걸은 처음 만났다. 서로 말은 많이 들었지만, 얼굴을 보기는 처음이다.

“잘생겼군. 군주가 왜 그렇게 그리워하는지 알겠어.”

황제가 농을 걸었다.

아걸은 침묵한 채 뒤만 쫓았다.

“일홀도를 얻었다고 들었는데, 보여줄 수 있나?”

황제가 물었다.

“칼이 없습니다.”

아걸이 수긍도 부인도 아닌 이상한 대답을 내놓았다.

칼이 없으니 나중에 보여주겠다는 말인가? 아니면 정중한 거절 표현인가.

실제로 아걸은 반철도를 방에 놓고 왔다.

무인이 병기를 몸에서 떼어놓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황제와 산책하면서 병기를 휴대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황제 곁에 호위군(護衛軍)이 붙어있다면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호위군? 몽설이다. 이 순간, 그녀는 아걸의 정혼녀이자 황제를 지키는 호황위 군주다.

만약 아걸이 황제를 노린다면 이치상으로는 그녀가 막아서야 한다. 물론 그런 일은 없다. 티끌만큼이라도 그런 염려를 했다면 단둘이 산책하자는 제안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몽설은 늘 검을 패용한다.

황제가 불쑥 불러냈는데도, 당장 검부터 손에 쥐었다.

아걸은 그런 모습을 보고 일부러 반철도를 풀어놓았다. 몽설을 존중해주려는 배려다.

황제가 피식 웃었다.

“칼이 없다? 무인이 칼이 없다고 도법을 펼치지 못할까. 절정 도객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는 그 순간 절정도가 된다고 들었는데. 일홀도도 그 정도는 되겠지?”

“칼은 칼, 나뭇가지는 나뭇가지입니다. 나뭇가지가 칼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경지가 있다면…… 저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단순하군.”

“네.”

“하하하하!”

황제가 웃었다.

황제는 무공을 수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공을 모르지는 않는다. 오음절맥을 고치기 위해서 각종 의서와 무서(武書), 도가(道家)의 단술(丹術)까지 가리지 않고 섭렵했다.

머리로는 황제도 초절정고수다.

“단순한 것이 가장 무서운 거지. 궁금하군. 공부의 단순함과 문주의 단순함이 어떻게 다른지.”

“…….”

아걸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땅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공부의 단순함은 이해된다. 최적의 발검술이다. 전에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빠른 발검술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빠르다’라는 말이 붙으면 따라잡을 수 있다.

많은 무인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발검술을 따라잡기 위해서 부단히 쾌속 수련을 했다.

그래도 공부의 발검술을 따라잡지 못했다.

- 아직은 느리군.

아걸도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공부의 빠름은 오직 더 빠른 칼로만 상대할 수 있다. 그러니 칼을 빠르게 펼쳐내야 한다.

정말 빠르기만 한 것일까?

공부의 검은 늘 쾌적한 상태에 있다.

검을 뽑는 손이 가볍다. 피를 대하면서도 흥분하지 않는다. 늘 얼굴에 여유가 넘친다.

그가 강하기 때문에 얻은 여유인지, 원래 여유가 있어서 검이 강해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발검술에는 늘 조금의 여유가 담겨 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상대가 하수라서 조금 여유를 주어도 무방하다는…… 그래도 너는 막지 못한다는 자신감?

아걸은 이제야 공부의 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부의 검은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최적의 상태에서 뻗어낸 검이다. 유효거리를 잡고, 유효시간을 파악하고, 적절한 힘과 속도를 배분한다.

이 모든 행동이 저절로 일어난다.

공부에게는 더는 검초가 필요 없다. 모든 검초가 녹아서 몸에 스며들었다.

무공을 전혀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검을 쥐여줬을 때 보이는 몸짓과 가까워졌다. 무공을 배운 적이 없는 싸움꾼처럼 탁월한 반사신경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면 일홀도의 단순함은 무엇인가?

공부의 단순함과 별반 다르지 않다. 틈이 보이면 공격하고, 공격할 곳이 없으면 기다린다. 상대가 몰아쳐 오면 피하고, 피할 수 없으면 피해가 가장 약한 곳을 내준다.

아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문주의 일홀도를 보고 싶지만…… 안 되겠다니 아쉽군. 하기는…… 일홀도는 구경삼아 보여주는 검무와는 다르지. 일홀도는 늘 실전에서 빛나니까. 참 좋군. 산길인데도 오르막이 있지 않아서 좋아. 이 정도면 평지지?”

황제가 기분 좋게 걸었다.

소로 옆으로 계류가 졸졸 소리를 내며 흘렀다. 산새도 맑게 지저귄다. 나무 사이로 다람쥐가 재빠르게 움직인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바람은 시원하다.

산은 평온하다. 사람 사는 세상처럼 번잡하지 않다.

“황제가 되면 좋은 점이 있어. 보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볼 수 있다는 거야.”

“네.”

“네? 대답이 너무 성의 없군. 무슨 대답이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지 못하잖아.”

“네. 주의하겠습니다.”

“그것도 잘못된 말이지. 주의할 게 뭐가 있어? 성심껏 응해달라는 말인데.”

“…….”

아걸은 차라리 침묵을 택했다.

어떤 말을 해도 지금의 황제에게는 시빗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황제는 일부러 트집을 잡아서 시비를 건다. 아걸과 농담하는 게 즐거워 보인다.

“나는 강하다는 사람을 참 많이 봤어. 정말 많이 봤지. 찾아갈 필요도 없어. 부르면 오니까. 내가 직접 찾아가서 만난 사람은 문주밖에 없을걸?”

“황송합니다.”

“또 성의 없는 대답.”

“황송…….”

“하하하하!”

황제가 크게 웃었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나 강한지 내 눈에는 보여. 종이호랑이도 있고, 숨 막히게 만드는 강자도 있고. 강하지만 너무 흉(兇)해서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자도 있고.”

“…….”

“일홀도는 사람 죽이는 살상술이지? 문주에게서 피 냄새가 풍겨. 뭐라고 할까? 이 사람이 칼을 뽑으면 내 목도 단숨에 날려버리겠구나 하는 생각?”

아걸은 침묵했다.

반면에 몽설은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황제가 하는 말은 매우 평범한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이 황제 입에서 나오면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옛날 혈해검신처럼 견제 대상이 된다.

황제가 아걸을 견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말을 들으면 저절로 소름이 돋는다.

“공부를 봤을 때도…… 이 사람이 얼마나 강하구나 하는 게 저절로 느껴졌지. 굳건하다고 할까? 땅에 깊이 뿌리 박힌 바위를 대한 느낌이었어. 팔 척 거한이 팔십 근 대도를 휘둘러도 굳건히 버텨내는 철벽같은 바위. 자잘하게 돌 부스러기는 흘려내지만, 절대 쪼개지지는 않을 사람. 후후! 대단했지.”

공부는 지금도 그런 사람이다.

일홀도를 얻었지만, 승부를 장담하지 못한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싸워봐야 안다는 정도다.

“문주를 보니까 정말 궁금해졌어. 자네가 뽑은 칼이라면 공부라는 바위도 쪼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안 될까? 여전히 굳건히 버텨낼까?”

“그때가 되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다른 일로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네.”

황제가 직접 부탁을 해왔다. 그리고 아걸은 황제의 부탁을 예상이라도 한 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남해로 가주게.”

“네.”

“이유도 묻지 않나?”

“알려주십시오.”

“하하하! 문주는 참 싱거운 사람이군. 무슨 부탁인지도 모르고 받아들인 거야? 하하하!”

“…….”

“남해에 아주 강한 적이 있는데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몰라. 가서 베어주게.”

“네.”

“네라…… 대답이 너무 쉽잖아? 문주는 쉬운 사람이었나 보네. 이럴 줄 알았으면 서신 한 장 달랑 보낼걸.”

“네.”

“하하!”

황제가 크게 웃었다.

아걸은 변방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아걸은 절에 틀어박혀서 세상으로부터 눈과 귀를 닫아걸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남해에 가면 무엇이 있나? 남해 끝자락에 파사해협이 있다. 그리고 동영에서 바다 물결을 타고 넘어온 범선이 이백여 척이나 떠 있다. 군사는 육만 명으로 추산된다.

아걸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남해로 가라니까 간다고 답했다.

아걸은 황제가 몽설을 베라는 말만 아니면 무슨 말이든 들어줄 생각이었다. 황제가 직접 자신이 머무는 절까지 찾아왔다면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쉬운 일이 아냐.”

몽설이 보다 못해서 슬쩍 끼어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남해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 주었다.

아걸은 유음류의 절정고수 두주와 싸워야 한다.

남해에 떠 있는 범선 이백여 척을 동영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무인의 싸움이 아니다. 장군이 병사를 이끌고 전장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남해에는 수군도독 진일호가 움직이고 있다.

동영 범선이 파사해협을 건너 대만도로 들이치면 곧바로 반격을 취할 것이다.

그래도 아걸에게 가라는 것은 오로지 유음류의 고수 두주를 염려해서다. 두주 같은 절대 고수가 인자를 대거 움직인다면 진일호도 단박에 무너질 수 있다.

결코, 편한 길이 아니다.

절정 무인을 찾아가는 길, 오직 아걸처럼 태산에 오른 무인만이 목숨을 걸 수 있는 상대, 태산과 태산의 격돌이 예상되는 곳에 투입되는 것이다.

두주에게는 아걸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한다. 물론 두주도 승부를 말하지 못한다.

누가 이기더라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허도기에게 딱 한 번 패한 적이 있다는데, 어떤 식으로 패했는지는 몰라. 어쨌든 패한 후에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만 봐도 강자라는 것은 알 수 있으니까.”

몽설은 이미 했던 말을 또다시 부언했다. 그만큼 아걸이 염려스러웠다.

“후후후! 질부, 상당히 걱정되나 봐?”

“네? 아네요.”

몽설은 황급히 입을 닫았다.

“문주가 아니었으면 군주가 남해로 가야 하는데…… 차라리 군주에게 가달라고 할 걸 그랬나?”

황제가 놀리듯이 말했다.

“제가 갈까요?”

“하하하! 군주, 군주가 지금 무슨 말을 한 줄 알아? 일홀도가 혈검 밑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네? 그런 뜻이 아니라…….”

“아니긴. 분명히 그런 뜻인데. 문주가 가는 것은 미덥지 못하지만, 군주는 갈 수 있다는 거잖아.”

“폐하!”

몽설이 어쩔 줄 몰라서 쩔쩔맸다.

혈검이 두주를 벨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걸이라면 두주를 벨 것으로 생각한다. 아걸을 믿는다. 걱정되어서 한 말일 뿐, 다른 뜻은 없다. 절대!

“하하하! 농이야. 농. 어떻게 이 사람들은 농을 받지 못해. 이렇게 하지. 남해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도 해줘야 하고…… 질부가 이번 여행에 동행하는 건 어때?”

“네?”

몽설이 황제를 빤히 쳐다봤다.

“내 호위는 염려하지 마. 근위대장을 불러들이면 돼. 근위대장, 그 사람. 자기 할 일은 하는 사람이야. 장담하건대 그 사람이 옆에 있으면 누구도 내 목숨을 해치지 못해.”

“금군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아직 인자들이…….”

“그러니까 황궁은 마음 놔도 된다고. 백살도축인가 뭔가 하는 일은 취화원이 잘 처리하고 있으니까. 참! 문주 사람들, 그 사람들을 취화원에 빌려주지? 취화원에 큰 힘이 될 텐데.”

“네. 그러겠습니다.”

아걸이 대답했다.

황제는 은거 무인들을 말하고 있다. 그들이 취화원에 합류하면 동영 인자들을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중원에 침투한 인자도 몇 명 남지 않았고.

“문주와 군주, 정혼한 사이지?”

“네.”

아걸이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번 길이 비록 피를 보러 가는 길이지만, 정혼녀와 추억을 담아봐.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없는 시간도 쪼개서 써야 하는 거야. 여행을 같이 즐겨보라고.”

“네.”

“남해로 가는 길을 서둘 필요는 없다는 거지. 내려가면서 세상 구경도 좀 하고, 마음도 풀어놓고. 넉넉하니 이것저것 다 둘러보면서 다녀와.”

황제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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