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03화 (503/600)

第百一章 남해혈로(南海血路) (3)

혼례는 별것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두 사람은 이미 실질적인 부부다. 한 침상을 쓰고, 같이 밥을 먹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사람끼리 한낮 의식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혼례를 치르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가 상당히 많다. 그들 중 아이 없는 부부도 상당수다. 두 사람처럼 무림에 발을 디딘 부부도 많다.

그들 모두가 혼례를 치르지 않았어도 서로를 평생 부부로 생각한다.

서로의 마음만 튼실하면 그만이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상해. 편안해.’

다른 때와는 달리 마음이 무척 편안하다.

혼례를 치르고 나니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안정되었다.

한낱 의식을 치렀을 뿐인데, 이제는 정말 이 사람이 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내요 내 부군이구나. 이제는 이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는구나.

아마도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들의 삶이라는 것이 늘 칼에 목숨을 거는 불안한 것이기에 안정에 대한 애착이 더 심했을 수도 있다.

아침 햇살이 남다르다.

늦잠 좀 자고 싶은데…… 날이 밝았으니 빨리 일어나라고 짹짹거리는 참새 소리조차 정겹다.

몽설은 슬그머니 침상에서 빠져나와 술은 일찍 일어나서 두화(豆花: 두부 푸딩)를 만들었다.

예전에는 아걸을 위해서 아침을 차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아걸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아침을 차린다. 아걸에게 무엇을 먹일까 하는 생각보다도 ‘뭘 먹을까? 아침이니까 간단한 게 좋겠지?’라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참 웃긴다.

밥을 지어서 아걸만 먹인 것이 아니라 같이 먹었는데, 꼭 아걸에게 밥을 해준다는 생각으로 아침을 차렸었다. 지금은 아걸에게 밥을 차려준다는 생각은 없다. 그저 우리 가족이 먹을 아침을 차리고 있을 뿐이다.

혼례 하나가 생각을 이렇게 많이 바꿔놨다.

“일어나야지?”

몽설이 아걸을 깨웠다.

“으음! 조금만 더 자고…….”

아걸이 잠에서 덜 깬 듯 뒤척이면서 몽설을 끌어당겼다.

“안 돼. 이젠 일어나야 해. 벌써 시간이 사시(巳時: 오전 9시)가 넘었어.”

“이제 그거밖에 안 됐잖아. 더 자자.”

아걸이 계속 몽설을 끌어당겼다.

“두화 만들어놨는데. 간을 뭐로 해? 소금? 생강? 생강은 없어서 소금만…… 읍!”

몽설을 말을 하다가 멈췄다.

아걸이 그녀를 와락 끌어당겼다. 그리고 품에 꼭 껴안았다.

“일어나야 해.”

“이대로 잠시만…… 예쁘다.”

“나 원래 예뻐. 남들도 다 예쁘다고 해.”

아걸을 몽설의 뺨을 어루만졌다.

몽설도 이번에는 거부하지 않았다. 손으로 아걸의 가슴을 쓸면서 말했다.

“우리 오늘 뭐 해?”

“뭘 할까? 밥 먹고 저잣거리로 가서 차 마시고…… 강변에 가서 바람 좀 쐬고…… 아니다. 아무래도 안 내켜. 오늘은 하루종일 그냥 여기 있자.”

“여기? 아무 데도 안 가고?”

“우리 둘만 있어 본 지 오래됐잖아. 오늘 하루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만나지 말고 우리 둘만 있어 보자.”

“좋아. 우리 둘만 있을 테니까 인제 그만 일어나.”

몽설이 활짝 웃으면서 일어섰다.

몽설에게는 하루에 한 번씩 사람이 찾아온다.

몽설은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릴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녀가 세상에서 눈길을 돌려버리면 취화원이 위태로워진다. 황제가 위험할 수도 있다. 호황위 군주와 취화원 원주라는 지위는 한시도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되는 위치다.

몽설은 세상 구석구석을 뚫어지게 쳐다보기 위해서 모든 인력을 총동원했다. 취화원은 물론이고 적랑대, 전보영까지 모두 세상을 주시하고 있다.

국경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즉각 대장군에게 연결해 준다.

중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신이 직접 처리한다. 관군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황제에게 보고하고, 무림에 관한 사항이라면 취운에게 넘긴다.

이렇게 이쪽저쪽으로 정리만 해주는 데도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물 좀 얻어먹겠습니다.”

두 사람만 있는 움막에 사람이 찾아왔다.

물을 얻어먹겠다는 사람은 몽설을 보자마자 손을 들어서 가슴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적랑대가 보내온 밀자(密者)다.

두 사람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외딴곳에 신방을 차렸는데, 정확히 찾아왔다.

몽설은 즉각 아걸을 쳐다봤다.

오늘 하루는 아무도 만나지 말고 둘만 있자던 말이 머리를 울렸다.

“후후! 우리는 정말 편히 쉴 팔자가 아닌가 보네. 이야기해. 사람이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만나야지.”

아걸이 자리를 비켜주려고 일어섰다.

“아니야. 같이 들어도 돼.”

“공사 구분. 난 취화원도 호황위도 아니니까. 이분이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괜찮아. 편하게 말해.”

아걸이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국경이 꿈툴거린다.

북방과 동영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서역, 천축, 남만까지 세외팔국이 일제히 움직이고 있다.

허도기가 연합한 결정체는 소진(蘇秦)의 합종책(合從策)을 연상시킨다. 소진은 강성한 진(秦)에 맞서서 약소국인 제(齊), 초(楚), 연(燕), 한(韓), 위(魏), 조(趙)의 연합을 이끌어냈다.

허도기도 세외팔국을 전장에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사방에서 거센 말발굽이 질주해온다. 소진의 합종책은 방어를 목적으로 한 반면, 허도기는 공격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시점에서 황제는 아걸을 남쪽으로 보냈다.

황제는 병법에 밝지가 않다. 황제는 병법을 구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거기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신하들이 고한다. 황제는 모든 방법을 듣고 장단점을 파악한 후에 시행할 방법을 결정한다.

아걸을 남해에 보낸다는 생각은 아마 대장군이 고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대장군은 이 나라 제일의 병법가다.

대장군이 함곡관에 머무르고, 아걸과 몽설을 파사해협으로 보낸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하지만 몽설이 보기에는 중원이 너무 취약해 보인다.

‘금방이라도 뚫릴 것 같아.’

몽설이 특히 신경 쓰는 곳은 서남쪽 운남(雲南)이다.

운남 상황이 좋지 않다. 그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보가 너무 없다.

남만족이 굉장히 은밀하게 움직인다.

각 마을에서 전사를 소집한 곳까지는 파악했는데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일절 파악되지 않는다.

그 많은 사람이 움직였는데도 어떠한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그들이 단지 소식이 없는 상태라면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노출된다. 실제로 이제는 직접 공격까지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적랑대 밀자가 가져온 서신에는 운남군이 계속해서 군량미를 약탈당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운남군은 이 사실을 가볍게 봤다.

처음에는 책임자를 처벌하는 수준에서 처리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는 듯하다. 약탈 빈도가 잦아지고 약탈하는 방법 또한 조직적으로 변했다.

틀림없이 남만족이 움직이고 있다.

이 상태로 계속해서 군량미를 빼앗긴다면 운남군은 올겨울까지도 버티지 못한다.

“엇!”

서신을 읽어가던 몽설이 경악성을 토해냈다.

밀자가 서신을 취합된 순서대로 두서없이 내놓아서 뒤늦게야 읽었는데…… 황제의 병세가 더욱 깊어졌다.

아마도 개향사로 밀행하면서 무리를 하신 것 같다.

환궁 도중에 후유증이 일시에 몰아쳤는지 갑자기 운신이 어려울 정도가 되어 버렸다.

황제는 가마에 실린 채 환궁하고 있다.

그것도 병세가 깊어서 빨리 움직이지도 못하고 하루에 고작 이십 리를 움직이는 선에서 그친다.

가마꾼들이 매우 느리게 이동하고 있다.

가마가 흔들리면 안 될 정도로 병세가 위중하다. 혈변에 혈뇨까지 있다니.

“음!”

몽설은 불길함을 느꼈다.

개향사에서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하기는…… 이게 오음절맥이다. 전신에 검은 곰팡이가 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어떻게 하지?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부분인데…… 그래도 옆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냐. 내가 옆에 있어도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 그래도…….’

몽설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몽설이 망설이고 있을 때, 아걸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걸은 길을 떠날 사람처럼 허리에 반철도를 찼다. 손에는 몽설의 검까지 들려 있었다.

아걸이 몽설에게 검을 내줬다.

“몽매, 가.”

“오빠, 내가 가봤자…….”

“남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꾸준히 정보가 보내주고. 몽매는 할 일 해.”

“오빠…….”

“쯧! 무슨 신혼이 반나절밖에 여유가 없냐?”

“미안.”

“몽매가 미안할 일은 아니잖아? 그리고 우리 이제는 부부고. 부부끼리는 미안하다는 말, 하지 않는 거야.”

“고마워.”

“내가 지금 한 말 다시 해 봐. 뭐라고 했지?”

“부부끼리는 미안하다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 앞으로 내가 미안한 일을 엄청 많이 할 건데,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지?”

“오빠!”

몽설이 와락 소리쳤다.

“하하하하! 하하! 일홀문주치고 가족에게 미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몽매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니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농이야.”

아걸이 웃었다.

몽설은 먼저 길을 떠났다.

아걸이 움막에 남아서 떠나가는 자신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사실, 그녀가 황제 곁으로 간다고 한들 악화한 병세를 완화할 수는 없다. 그녀는 무인이지 의원이 아니다. 그녀가 아는 의술은 찢어진 살을 꿰매고, 고름을 짜내는 정도다.

그런데도 아걸은 기꺼이 그녀를 보내주었다.

- 나도 혈검을 약간은 알잖아. 비급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상궁(上宮)은 영성(靈性)의 취합처. 니환일검은 영검(靈劍). 정 마지막이다 싶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해.

묘한 말이다. 말에 앞뒤가 없다.

몽설은 아걸이 하는 말을 단박에 알아들었다. 아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걸에게는 몰안이 있다.

아걸의 도신일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다. 흔히 병기를 자유자재로 쓰면 병기와 몸이 하나가 된 듯하다고 말한다. 아걸은 그 정도는 어린아이 장난으로 여긴다.

몸이 칼이 되고, 칼이 몸이 되고…… 말로는 깊이를 이해할 수 없는 정도까지 스며든다.

그런 무공을 지니면 타인의 무공도 엿보게 된다.

아걸은 혈검을 몽설 다음으로 깊이 이해한다.

혈검에는 황제의 오음절맥을 다소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상궁에 곧추선 니환일검으로 오음절맥을 갈라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목숨이 연장된다.

니환일검으로 오음절맥을 치료하지는 못한다.

황제의 몸은 검은 곰팡이로 가득하다. 전신이 섞었다. 니환일검을 아무리 절묘하게 휘둘러도 곰팡이를 모두 제거할 수는 없다. 다만 정도가 심한 곳을 도려낼 뿐이다.

니환일검이 영검이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수법은 매우 위험하기도 하다. 자칫하면 신경을 잘라버릴 수도 있다. 진기로 쳐낸 검기(劍氣)이지만, 신경에 가해지는 절삭력은 실제 도검에도 뒤지지 않는다.

삭도(削刀)로 털 한 오라기를 잘라내듯이 섬세하게 진기를 쳐내야 한다.

마치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헤집고 머릿속에 있는 뇌를 분해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티끌만큼이라도 도기가 빗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몽설은 이런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황제이기에 감히 시도해볼 수 없었다. 완전히 낫는 것도 아니고 단지 약간의 시간을 벌어줄 뿐인데…….

아걸은 정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면 하라고 했다.

아걸도 니환일검의 검기로 황제를 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다. 자칫하면 검기로 황제를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황제를 암살하는 것이 된다.

그런 부분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한다.

아걸의 눈길이 등 뒤로 꽂힌다.

아걸은 대문에 몸을 기대고 서서 그녀가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고마워.’

몽설은 아걸이 정말로 고마웠다.

이제 신혼인데…… 어제 혼인했는데…… 정작 자신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싸움을 하러 가면서…… 그런 부군을 버려두고 황제에게 가는 나는 뭐지?

몽설은 뚜벅뚜벅 힘없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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