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二章 아도니도(我刀你刀) (1)
[내 칼, 네 칼]
철썩! 철썩!
거센 물결이 뱃전을 두들겼다.
성난 바람, 거센 바다 물결은 커다란 범선조차도 장난감 종이배처럼 흔들어댔다.
“웨엑!”
“우웨엑!”
여기저기서 군사들이 쭈그리고 앉아서 토악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뱃멀미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동영 사람이고 해서 모두 물이나 배에 능숙한 것은 아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물과 친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번에 처음 배를 타본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파사해협의 거센 물결에 적응할 리 없다.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다.
설사, 고열, 두드러기…… 낯선 기후와 풍토 때문에 병든 자가 많다. 회복되는 자보다 쓰러지는 자가 더 많다. 멀쩡한 자도 힘이 없어서 시들거린다.
“전력을 생각하면 배를 대야 합니다. 이러다가는 싸우지도 못하고 몰살당하겠어요.”
장군이 말했다.
“배를 대고 군사를 내리면 그때부터 바로 침공입니다. 저쪽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우리 전력을 수습하도록 내버려 두겠어요? 바로 전쟁이 벌어집니다.”
다른 장군이 말했다.
“으음! 어차피 전쟁하러 온 것 아닙니까!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죠.”
“그러게 내가 처음부터 들이치자고 하지 않았소! 저딴 놈들쯤 단숨에 갈라버리고…….”
또 다른 장군이 괄괄한 음성으로 말했다.
“조용.”
그때, 팔걸이에 몸을 기대고 비스듬히 누워있던 파락호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파락호? 맞다. 파락호처럼 보인다.
그는 더운지 알몸에 한 겹 겉옷만 걸쳤다. 그것도 허리춤을 제대로 묶지 않아서 알몸이 거의 다 보인다.
가슴에 털이 수북하다.
턱수염도 거칠게 자랐다. 머리카락도 거칠다. 전혀 감거나 다듬지 않아서 야인(野人)처럼 보인다.
야인은 접시처럼 생긴 넓은 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하지만 그가 한마디 중얼거리자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장군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꿀꺽! 꿀꺽!
야인이 술을 마셨다.
장군들은 모두 입을 다문 채 야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게…… 일당백의 전사만 데려오라니까. 동네 싸움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 올 줄 알고 있었잖아. 인제 와서 멀미가 이러니저러니. 이거 우스운 말들 아냐?”
“…….”
장군들은 침묵했다.
상석에 앉아서 말을 하는 자, 유음류 수장 두주다. 이번 원정군의 총책임자가 두주인 것이다.
원래 두주와 장군들은 가는 길이 다르다. 그들은 서로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는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은 생각할 수도 없는 관계다.
어떤 면에서는 서로 연계하고 어떤 면에서는 대척하는 정도라고만 할까?
이들의 관계는 수시로 변한다.
관계를 이끄는 것은 힘이다. 어떤 때는 칼이고, 어떤 때는 세력이다. 땅에서는 분명히 세력이 우선이다. 싸워서 이기는 쪽이 우선권을 쥔다.
배에서는 칼이 우선이다.
서로 간에 세력은 비등한 편이다. 아니, 유음류가 압도적으로 강하다. 장군들은 제한된 병사만 대동했다. 이들과 유음류가 부딪치면 유음류가 이긴다.
가장 강한 자가 법!
장군 중 그 누구도 두주를 무시하지 못한다. 두주는 동영제일검이다. 그러니 두주가 건방지게 말해도 누구 한 사람 입을 열어 대꾸하지 못한다.
땅에 있을 때는 서로 불가침이었지만, 배를 탄 순간부터 상하가 확실히 정해졌다.
불만이 있으면 싸우면 된다.
동영 무인들은 명예를 칼로 지킨다. 두주의 말이 못마땅하면 칼로 겨루면 된다.
“이봐, 애들이 멀미 좀 한다고 뭔 난리들이야?”
두주는 장군들을 아랫사람 대하듯이 말했다.
“겨우 육만으로 백만 대군을 상대할 생각이라면 그건 천하에 다시 없는 바보고, 할 자신이 있으면 해보던가. 말리지 않을 테니까. 본대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은…….”
두주는 기꺼이 허락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장군들이 침묵했다.
“후후후! 세외팔국이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 한, 이 싸움은 어림도 없잖아? 그러면 여기서 떠들고 있어봤자 뭐 해. 어차피 여기 하루 이틀 떠 있을 것도 아닌데, 적응이나 시켜. 진격 전갈이 오면 그때부터는 땅따먹기야. 많이 차지하는 쪽이 유리하다고. 장군들이 차지한 땅은 내가 지켜줄 테니까.”
스읏!
두주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싸움은 그때 해. 마음껏 들이칠 수 있는 순간에.”
“합!”
장군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지금은 복종하지만…… 육지에 발을 디디면 이 관계는 또 변한다. 병사를 얼마나 잃고, 세를 어느 정도 확장하느냐에 따라서 상하 관계가 바뀐다.
지금은 두주의 명을 받든다.
“한심한 놈들 아닙니까.”
적면(赤面)이 물러가는 장군들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두말할 여지 없이 용맹한 자들이야. 후후! 너무 들개 같은 자들이라서 문제지. 자유롭게 뛰어다니면서 분탕질을 쳐야 직성이 풀릴 텐데, 배 안에 갇혀 있으니 오죽 답답할까. 그래서 대만도를 노리는 거야. 손맛 좀 보고 싶어서.”
두주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전갈이 왔습니다.”
“허도기?”
“야천 전갈입니다.”
두주는 ‘야천 전갈’이라는 말에 흥미를 잃은 듯 술병을 들어서 술잔에 술을 따랐다.
얼굴에 오니 귀신 가면을 쓰고 있는 적면이 말했다.
“아걸이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전갈입니다. 두주님을 겨냥한 듯합니다. 제가 가서 베겠습니다.”
“나를?”
“네.”
“후후후!”
두주가 웃었다. 그리고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걸…… 공부와 싸워서 패했다는 일홀문주 말이지?”
“네.”
“네 번 싸웠다며?”
“네.”
“적면, 네가 공부가 붙으면 이길 수 있을까?”
“해봐야 압니다.”
“후후! 솔직해지자고. 지잖아? 나도 못 이기면서. 승복하지 못한다면 그냥 진다고 가정하자고. 네 번 싸워서 네 번 진다. 그런데도 아직 살아있다. 너 같으면 살아있을 수 있겠어?”
적면이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공부와 싸워서 이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싸우면 질 것이다. 그러면 지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되나? 아걸처럼 몸을 빼낼 수 있나? 빼내지 못한다. 패배는 곧 죽음이다.
아걸은 네 번을 싸웠고 네 번이나 몸을 빼냈다. 다시 말하면 공부가 아걸을 죽이지 못했다.
물론 아걸은 허도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도주했다. 죽일 수 없는 상황도 발생했다. 동굴이 무너지는 바람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어쨌든 죽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이게 단지 운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절대로 운만 깃든 것이 아니다. 무공도 뒷받침하고 있다. 공부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대 무공을 지녔다.
“아걸이 탕산에서 우리 애들을 거침없이 뱄다며?”
“네. 목형술을 단숨에 파악해냈습니다.”
“중원인에게 목형술은 생소할 텐데, 그걸 단숨에 파악했다? 후후! 놈의 칼을 봐야겠어. 어떤 칼인지.”
“알겠습니다. 곧 놈의 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가봐.”
두주가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스스스슷! 스읏!
적면 앞에 복면인 네 명이 내려섰다.
귀신처럼 은밀한 신법, 조용하고 차분한 몸놀림, 살기조차 풍기지 않는 살수들이다.
적면은 복면인 네 명을 무심히 쳐다봤다.
도흔갑자(刀痕鉀者)!
두 명은 죽는 자이다. 무인자(無人者)라고 한다.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두 명은 죽은 자를 회수하는 자이다. 망념자(忘念者)라고 한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들에게 내리는 명령은 딱 하나, 죽으라는 것이다.
“두주께서 아걸의 칼을 보고 싶어 하신다.”
“넷!”
네 명 중 두 명이 힘차게 대답했다.
“준비해라.”
적면이 차게 말했다.
복면인들은 곧 선실로 돌아왔다.
두 명이 발을 넓게 벌리고 섰다. 양팔은 좌우로 활짝 펼쳐서 큰 대자로 섰다.
그러자 뒤에 있던 망념자 두 명이 재빨리 그들의 옷을 벗겼다.
무인자 두 명은 순식간에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망념자가 무인자의 몸에 찰흙처럼 생긴 흙을 붙여 나갔다.
손을 벌리고 선 무인자 두 명은 작업이 끝날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그들의 몸에 찰흙이 더덕더덕 발라졌다.
그들이 바르는 것은 찰흙이 아니다. 찰흙처럼 보이는 고무다.
말랑말랑한 고무는 열을 만나면 굳어진다. 체온도 열이다. 다만 열기가 강하지 못해서 서서히 굳는다. 그래서 많이 붙이면 움직임에 제약이 생긴다. 매미 날개처럼 얇게 펴 발라야 한다.
몸에 고무를 붙인 이유는 칼을 맞기 위해서다.
잔형고(棧馨膏)라고 불리는 고무는 굳는 성질 외에도 타격이 가해지면 색이 변색한다. 강하게 맞은 부위는 진하게, 약하게 맞은 부위는 옆은 갈색으로 변한다.
이 성질을 이용하면 어느 부위부터 칼을 맞았고, 어느 깊이로 들어왔고,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일은 육안으로도 가능하다. 보통 무인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잔형고에 새겨진 도흔은 칼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남긴 섬세한 기술까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칼에 깃든 도기까지 살필 수 있다. 칼을 쓰는 자의 마음 상태까지 파악한다.
도흔갑자는 상대방과 직접 싸웠을 때나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남겨준다.
그렇다 도흔갑자는 싸우러 가는 게 아니다. 아걸의 칼을 맞으러 간다. 무인자 두 명은 죽을 것이고, 망념자 두 명은 무인자를 회수해서 돌아온다.
무인자는 죽으러 가라는 명령을 받았는데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공포심도 떠올리지 않았다. 감정이 없는 목석처럼 태연하게 잔형고를 붙이고 있다.
스슷!
망념자가 잔형고를 다 붙이고, 무인자의 몸에 옷을 입혔다.
죽으러 가는 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 허리춤 앞자락에 소검을 꽂아주었다. 그리고 무인자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두 손으로 장검을 올렸다.
철컥!
무인자가 검을 잡았다.
예식은 끝났다.
떠난다는 보고는 하지 않는다.
명이 떨어졌으면 이행한 결과만 보고하면 된다. 중간보고는 일체 생략된다.
도흔갑자 네 명이 소선으로 갈아탄 후, 육지를 향해 노를 저어갔다.
처억! 처억!
네 명은 거센 풍랑을 유유히 헤쳐나갔다.
적면은 뱃전에 서서 떠나가는 도흔갑자를 배웅했다.
살명을 내린 자는 죽으러 가는 수하들을 지켜본다. 명령을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죽는 자를 잊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 모습을 끝까지 눈 속에 담아둔다.
유음류의 전통이다.
적면은 도흔갑자 네 명이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저들은 죽어서 온다.
두주가 아걸의 칼을 보고자 하는 것은 아걸이 두렵다거나 일홀도가 궁금해서가 아니다. 당신과 칼을 맞댈 만한 자인지 그걸 알고 싶은 것이다.
내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도전을 받지 않는다. 그럴 경우, 아걸과 싸울 사람은 자신이 된다. 두주는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자에게 검을 든 적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악착같이 싸우고자 한다면 그때는 상대해 준다. 단, 영혼까지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깨끗하게 쓰러트리지 않는다. 온갖 모멸감을 안기면서 죽인다.
두주의 검은 무섭다.
도흔갑자는 어떤 무공을 가지고 올까? 두주를 술독에서 꺼내줄 무공인가, 아니면 실소를 흘리면서 웃어넘길 무공인가?
네 사람을 실은 소선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적면은 뱃전에 서서 그들이 떠나간 바다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철썩! 철썩!
거센 물결이 뱃전을 두들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