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07화 (507/600)

第百二章 아도니도(我刀你刀) (2)

두두두두! 두두두두!

마차가 빠르게 질주했다.

마차에는 관원들이 긴급을 표시할 때 사용하는 황기(黃旗)가 꽂혀 있었다.

어느 누구도 마차 앞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마차를 세우지도 못한다. 마차 앞에서 어물쩍거리다가 치여 죽으면 개죽음으로 처리된다. 신분 여하를 불문하고. 황기 앞에서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끼럇! 끼럇!”

어자석에 앉은 마부가 연신 채찍을 휘둘렀다.

“너무 심하게 달리는 거 아냐? 천천히 가도 되는데.”

마차 안에서 아걸이 말했다.

터벅터벅 걷고 있던 아걸 앞에 느닷없이 마차가 나타났다. 그것도 황기를 꽂고.

몽설이 황제를 만난 것이다. 아걸과 떨어져서 황상 곁으로 돌아왔다고 하자, 황상이 마차를 보냈다.

저간에 벌어졌던 사정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아걸은 마차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말이나 마차를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유람하듯이 천천히 걸으면서 눈앞에 그려진 풍광을 즐기고 싶다.

하지만 마부가 물러서지 않고 타기를 강권하는 데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문주님께서 거부하시면 소신 목이 날아갑니다.”

“그건 말해 줄 수 있고…….”

“목이라고 몸뚱이에 붙은 목만 목이 아닙죠. 입에 풀칠하게 해주는 마부직도 목입니다. 이 일을 못 하게 되면 소인 가족 열두 명이 힘들어집니다.”

“끄응!”

아걸은 이 앓는 소리를 내며 마차에 탔다.

“수군 도독이 계시는 복주까지 이레 안에 도착하라는 엄명이 있었습니다.”

“황상께서 그런 명령까지 내리지는 않았을 것 같고…….”

“소인이야.”

“또 그 소리. 지겹지도 않나? 모른 척하기도? 어지간한 일은 말해줘도 되잖아?”

“소인은…….”

“알았어. 알았어. 그만!”

아걸이 투덜거리면서 입을 닫아버렸다.

마부는 전보영에서 보냈다. 이레 안에 복주에 당도하라는 명령은 대장군이 내렸을 것이다.

모두 아는 사람들이니 말해줘도 무방할 텐데, 굳이 몸을 사린다.

허가받지 않은 일은 발설하지 말라는 전보영 규칙에 부합한 행동이다.

두두두두! 두두두!

말 네 필에 입에 거품을 물면서 치달렸다.

‘마차를 타는 것도 좋네. 빠르고 편해.’

아걸은 마차를 즐겼다.

이왕 마차를 타게 된 것, 철저하게 체력을 아끼기로 했다. 두주와 싸우기 전까지 최대한 휴식을 취한다.

사실 아걸은 아직 휴식이 끝나지 않았다.

아걸 자신도 휴식이 끝났는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한다. 몸이 멀쩡하다고 해서 휴식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정말로 휴식이 끝났으면 자신 스스로 절에서 나왔을 것이다.

아직은 칼을 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

누군가와 싸워야 한다면 사양하지는 않는다. 그때는 기꺼이 반철도를 뽑는다. 하지만 일홀도에 대한 열정이 피어나지 않는다. 칼을 연구하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은 두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두주를 꺾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투지가 일어나지 않았다. 두주는 결코 무시하지 못할 초절정고수인데……. 이상하게도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자신이 두주를 능가할 만큼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확실하다. 두주 같은 사람을 앞에 두고 승부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긴장이 되지 않는다. 정말로 그와 싸운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다.

휴식이 끝났다면, 일홀문주로 돌아왔다면……. 전신에 팽팽한 긴장감이 휘감겼을 텐데.

“이건 다 좋은데 너무 덜컹거려. 달리는 속도와 편안함은 반대일 수밖에 없지.”

아걸은 마차에 마련된 침상에 누웠다.

할 일도 없고, 머릿속도 텅 비었다. 그러니 누워서 잠이나 청할 생각이다.

하지만 결코 편하게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다.

마차는 잘 닦아 놓은 관도를 질주하고 있지만, 그래도 매우 심하게 흔들거린다.

빗물에 땅에 움푹움푹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마차 바퀴가 구덩이를 지날 때마다 부서질 듯이 크게 덜컹거린다. 어떤 때는 몸이 침상 위로 붕 떠올랐다가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아걸은 개의치 않고 잠을 청했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잠귀신이 들린 사람처럼 잠만 잔다.

“요 앞에서 점심을 먹고 가겠습니다.”

마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벌써? 막 잠들려던 참인데. 아함!”

아걸이 크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워워! 워!”

마부가 마차를 세웠다.

덜컹!

아걸은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아함!”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불편하게 잠을 청해서인지 온몸이 찌뿌드드하다.

“벌써 해가 중천이네. 대략 한 시진쯤 달렸나?”

“네.”

“좀 천천히 가자니까.”

“소인은…….”

“아! 그놈의 소인. 몸집이 산만 한 사람이 소인, 소인하니까 우습잖아.”

“…….”

마부는 아걸이 건네는 농담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굉장히 뻑뻑한 사람이다. 일은 잘하는지 모르지만, 융통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좌우지간 이쪽이나 저쪽이나 가만히 있는 꼴을 못 본다니까. 왜 날 빨리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지? 설마 내가 두주를 이길 것으로 생각하나? 동영제일검을?”

아걸이 농담했다.

딱딱한 사람은 딱딱한 맛이 있다. 한결같은 대답도 재미있다.

아걸은 놀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먼 길을 가는데,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마부가 예상대로 딱딱하게 대답했다.

“문주님께서는 틀림없이 이기실 겁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싸워봐야 아는 거지.”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두주가 자객을 보냈습니다.”

“자객? 두주가?”

아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부를 쳐다봤다.

“복주에 주둔한 수군이 자객 네 명을 발견했는데, 일부러 내버려 두었답니다.”

“밥 먹자며?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음식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고파지네. 밥이나 먹자고.”

아걸은 숙박과 음식점을 같이 하는 객잔으로 들어섰다.

수군이 유음류 인자를 발견해냈다.

‘후후!’

아걸은 쓴웃음을 흘렸다.

동영 인자가 마음먹고 움직이면 찾아낼 사람은 흔치 않다.

수군이 발견한 게 아니다. 저들이 일부러 종적을 드러낸 것이다. 자신들의 뒤를 밟으라는 소리다. 그리고 결국은 마주칠 사람, 아걸에게 소식을 전하라는 거다.

‘자격이 공격하겠다고 신호를 보내?’

저들은 자객이 아니다. 일종의 사신이다.

사신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두주가 보낸 사신이라면 싸움에 관한 것일 것 같은데, 어떤 내용인지는 만나서 들어봐야 알 수 있다.

아니면 정말 자객일 수도 있다.

수하들이 일홀문주를 상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객을 보냈다면…….

‘수하들을 죽이겠다는 거네. 내가 어떤 칼로 어떻게 죽이는지 보고 싶다는 건가? 유음류, 참 비정한 조직이야. 내 칼을 봐서 뭐 하겠다고 사람을 죽음으로 밀어 넣어.’

아걸은 밥을 먹으면서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는 이제야 동영 인자들의 실체를 알았다.

저들은 패배했다고 해서 약해지지 않는다. 이번에 실패했으니 다음에는 성공한다는 생각만 한다. 무공의 우열도 따지지 않는다. 다 같은 사람이니 누구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패에서 교훈이나 두려움도 얻지 않는다. 실패는 실패일 뿐, 얻을 게 없다. 성공을 위해서 노력한다.

유음류는 전원이 몰살당해도 다음 세대가 또다시 같은 일을 획책한다. ‘무공이 너무 강해서 안 돼.’라거나 ‘우리 세력으로는 어림도 없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유음류가 동영제일인문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저들에게 압도적인 무공을 선보일 필요가 없다. 그런다고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눈앞에 선 자만 죽이면 된다.

모든 싸움이 죽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본인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물러서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말이 된다. 하지만 유음류는 부족함을 느껴도 꼭 생사를 결정짓는다.

그러니……. 저들이 공격해 온다면 단칼에 베는 수밖에 없다.

달리 할 것이 없다는 점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고민거리가 대폭 줄었으니까.

‘내 칼을 보려는 것이면 죽을 것이고……. 두주의 전갈을 가져온 것이라면 살아서 갈 것이고. 생각할 것이 없어서 좋네. 세상을 참 간편하게 사는 사람들이야.’

아걸은 저금을 놓았다.

이제 곧 피를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를 이레 안에 복주로 데려가야 한다고?”

아걸이 마차에 오르려다 말고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마부에게 물었다.

“네.”

마부가 무심히 대답했다.

“그러면 이레는 최소한의 기간일 거고, 최대한은 며칠이야? 불가피한 사정이 생길 수도 있잖아.”

“이레 안에 모시겠습니다.”

마부가 단호하게 말했다.

“가고 싶다고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만약 두주가 직접 와서 앞을 가로막으면 그때는 죽어도 못 가지.”

“두주가 옵니까?”

마부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해본 소리야. 그런데 나한테까지 이렇게 철저하게 비밀로 하는 이유가 뭐야? 싸우는 사람은 나인데, 나한테는 이레 안에 가야만 하는 이유 정도는 말해줘도 되지 않나?”

“소인은…….”

아걸은 ‘소인’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대답을 들을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차에 올라탔다.

이레 안에 도착해야 한다?

‘전황이 급박한가? 이레 안에 도착하면 늦어도 열흘 안에는 싸우게 되는데.’

북주에 도착하면 이미 결전을 벌일 날짜와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을 것이다. 지금은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지만, 정확히 그런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자신은 철저히 싸우는 칼 역할만 한다.

두주 같은 초강자와 싸우면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도 묵묵히 마차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이번 싸움은 황상이 직접 부탁한 일이다. 황상이 부탁한 일이 아니라면 입을 열지 않으면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참는다.

황제가 부탁했고 자신은 칼이 되기로 약조했다.

이제 쓰는 일은 쓰는 사람 마음이다. 이왕 두주와 싸우는 것, 더 효과적으로 싸우게 하면 좋지 않나. 두주가 패할 경우, 유음류 두목이 패한 것이 아니라 동영군이 패하는 것으로 만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동영에서 온 범선을 일거에 몰아낼 수 있다.

아걸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에 불과하다. 어떤 식으로 일을 꾸미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하물며 아걸은 이번 일을 주도하는 사람이 대장군인지 전보영인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이 일이 대장군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짐작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이레 안에 도착하면 일을 벌일 수 있고, 늦게 도착하면 안 되는 일이라. 그것참……. 말해 주지 않으니까 더 궁금하네.’

아걸은 전세를 읽지 못한다. 관심도 없다.

나라가 전쟁에 휘말리는 것은 원치 않지만 깊이 관여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급한 일이 있다.

두주와 열흘 안에 싸우게 된다면 이제 슬슬 일홀도 감각이 돌아와야 하는데.

아걸은 자신의 손을 들여다봤다.

도무지 칼을 잡고 싶은 생각이 없다.

반철도만 해도 그렇다. 한시도 허리춤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는데, 요즘은 자주 떼어 놓는다. 어떤 때는 소지하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고 마차 안에 놓고 내릴 때도 있었다.

운공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운공을 하면서 몸의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살폈다. 경맥과 혈맥을 살피고, 진기를 양성했다. 강한 힘을 감지했다.

지금은 그저 무심하게 운용한다.

진기를 일주천하면 일주천했구나, 이주천하면 이주천했구나 하는 느낌밖에 없다.

휴식이 언제 끝날까?

탕산 싸움이 끝난 후부터 이러고 있다. 도무지 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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