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08화 (508/600)

第百二章 아도니도(我刀你刀) (3)

“워! 워워! 워워워!”

마부가 마차를 급히 멈춰 세웠다.

힘차게 달리던 말들이 거세게 낚아채는 고삐에 놀라 앞발을 쳐들며 울부짖었다.

관도 앞쪽에 무인 네 명이 서 있다.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일색이다. 검은 복면을 쓰고 검은 경장을 입었다. 신발도 검은색이다. 바짓단과 옷소매는 끈으로 칭칭 여며서 움직이기 편해 보였다.

동영 인자, 누가 봐도 동영 인자다.

“손님이 왔습니다.”

마부가 말했다.

그가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말들이 놀라서 울부짖을 만큼 급하게 마차를 멈춰 세울 때, 이미 어떤 사달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덜컹!

문이 열리면서 아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윽! 아으으윽!”

아걸은 눈앞에 살수들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게 기지개를 켰다. 실제로 그의 몸에서는 우두둑! 우두둑! 하고 관절 꺾이는 소리가 울렸다.

“근육이 놀랐나 보네.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더니 몸이 굳었어. 이래서 마차로 이동하는 것은 쥐약이라니까. 좋기도 하지만 우리 같은 무인에게는 안 좋을 때가 더 많아.”

아걸이 이리저리 움직여서 몸을 풀었다. 어깨도 돌리고, 허리도 빙글빙글 돌렸다.

“아!”

아걸은 문득 생각난 듯 손을 들어서 이마를 탁! 쳤다.

“반철도! 칼을 놓고 내렸네.”

아걸이 다시 마차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반철도를 들고 나왔다.

정말로 반철도를 놓고 나온 것이다.

아걸은 그제야 싸울 준비를 끝낸 듯 북면인에게 걸어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상한데? 두 명은 싸울 태세고, 두 명은 아닌데? 뭐지?”

아걸은 복면인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물론 복면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앞을 가로막은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아걸은 복면인들을 쳐다봤다.

복면인 네 명은 먼 길을 달려온 듯 땀에 흠뻑 젖어 있다. 거칠게 쏟아져 나오는 숨결을 꽉 억누르고 있는데, 그렇다고 표시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다.

코에서 더운 김이 뿜어져 나온다.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힘든 것 같은데…… 이렇게 싸우면 불공평하잖아. 우리 차 한 잔만 마시고 시작하지. 어쩌면 이승에서 마시는 마지막 차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만한 시간은 줄 수 있잖아?”

아걸은 복면인들을 향해서 걸어가다 말고 빙글 돌아섰다.

마부는 다구(茶具)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마차를 타고 달리기만 하면 끝난다. 설마 길가에서 차를 끓여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물을 끓여 먹을 수 있도록 주담자는 갖고 다닌다.

타탁! 타타탁!

작은 모닥불이 피워졌다.

마부가 마른나무를 모아서 불을 피우고 그 위에 주담자를 올려놓았다.

곧 주담자에서 하얀 김이 솟구쳤다.

복면인들은 아걸이 하는 모습을 말리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너무 급하게 만났다.

어차피 싸움은 길어진다.

오대신술을 모두 사용할 생각이니, 상당히 긴 싸움이 된다. 그러니 휴식은 싸우면서 취하면 된다. 이쪽은 쉬고, 저쪽은 긴장을 풀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숨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급하게 달려왔지만, 서슴없이 아걸을 가로막은 이유다.

하지만 아걸이 잠시 시간을 갖자고 하면 굳이 사양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숨을 돌리면 더욱 차분하게 오대신술을 펼칠 수 있다. 그동안 준비도 하고.

아걸을 만났으니 더는 서둘 이유가 없다.

복면인들은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숨을 골랐다.

“차가 없는데…….”

“따뜻한 물이나 마시지 뭐. 따뜻한 물도 좋아. 속이 편해져.”

“굳이 이렇게 하실 이유가…….”

“나는 살인자가 아니거든. 무인이지. 숨도 제대로 돌리지 못한 사람을 베면 뭐해?”

“아! 네.”

마부는 밥그릇으로 쓰는 사발에 따뜻한 물을 부어서 내밀었다.

아걸은 사발을 받아들고 뜨거운 물을 후후 불어가면서 마셨다.

곧 싸움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하다. 너무 태연한 모습이다.

아걸은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드넓게 펼쳐진 논도 보고, 논 저쪽에 있는 마을도 본다. 희뿌옇게 안개에 휘감긴 산도 본다.

길 양쪽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길을 오가는 길손들인데, 동영 인자와 마차에 가로막혀서 발길을 멈춘 것이다. 한쪽은 복면인들이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고 있고, 다른 한쪽은 마차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한눈에 봐도 싸움이 붙을 것 같다.

복면인과 마차 사이에 흉흉한 살기가 피어난다. 그 사이로 걸어가면 단숨에 베일 것 같다.

그러니 멈추어 설 수밖에 없다. 숨소리도 흘리지 않고 상황을 주시할 뿐이다. 어느 한 사람 나서서 길 좀 비켜달라,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아걸은 다소 식어서 미지근해진 물을 맛있게 들이켰다.

“확실히 물이 좋아. 물맛이 최고라니까.”

아걸이 웃으면서 물사발을 건네주었다.

마부는 물사발을 받아들이고는 주섬주섬 떠날 채비를 갖췄다. 주담자에 담긴 물을 쏟아내고, 모닥불을 발로 비벼서 껐다.

아걸이 일어났다.

확실히 약간 쉰 보람이 있다. 복면인들의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어깨도 떨리지 않고, 더운 김도 뿜어지지 않는다. 검을 잡은 손에도 안정감이 깃든다.

“그런데 동영 인자들을 오대신술을 쓰는 거로 아는데, 이렇게 정면에서 부딪쳐도 되나? 승산이 없을 텐데?”

인자들은 말이 없다.

스릉! 스릉!

앞에 선 두 명이 검을 뽑았다.

“두주 전갈을 가져올지 아니면 내 칼을 몸에 새겨서 가져갈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의사표시를 하네. 내가 저 뒤에 있는 두 명까지 베면 어쩌려고 그래?”

동영 인자들은 묵묵부답,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무인자가 두 명, 망념자가 두 명이다. 도흔갑자가 각기 두 명씩 구성된 데는 이유가 있다.

아걸이 말한 것처럼 어떤 자는 망념자까지 베려고 한다. 자신의 칼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서다. 그럴 경우, 망념자 한 명이 목숨을 던져서 길을 막는다. 물론 누가 길을 막을지도 이미 정해져 있다. 그사이에 다른 한 명이 시신을 가지고 도주한다.

이들은 망념자가 베이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아무리 망념자가 목숨을 던진다고 해도, 상대는 무공이 강한데 그 앞에서 도주할 수 있을까? 상대라면 순식간에 베어버리고 다가오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그래도 도주할 수 있다. 그만한 자신과 실력은 갖추고 있다.

스스슷! 스스슷!

앞에선 두 명이 좌우로 갈라섰다.

“난 아직도 쉬는 중인데. 도무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래서 싸우기 싫은 거지. 후후!”

아걸은 웃었다.

자신이 하는 말을 저들이 알아듣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들뿐만이 아니라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잘 아는 은거 무인들도 이해하지 못한 말이니까.

무인이 칼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면 이것은 또 다른 주화입마다. 칼을 버리고 은거해야 한다. 아걸은 휴식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매우 치명적인 심리 공황 상태다.

일홀도를 얻었는데 왜 이런 상태에 빠졌을까? 오히려 더 팔팔 날뛰어야 하지 않을까?

뭐라고 할까? 동전 한 닢 없는 무일푼 거지가 천만 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천만 냥이 뚝 떨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아니다. 그럴 때는 이 돈을 어떻게 감춰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좌우지간 그것과 흡사한 느낌이다. 간절히 원하던 것을 단숨에 이뤄냈는데, 불현듯이 허탈감이 밀려왔다. 허망함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것들이 곧바로 무기력함으로 이어졌다. 칼에 대한 흥미를 일시에 사라지게 했다.

그 당시 아걸은 상당히 크게 다친 상태였다. 부상이 매우 심해서 운신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런 상태에서 탕산 싸움을 승리로 이끈 것은 기적이나 진배없다.

아걸은 자신의 무기력함이 부상에서 오는 줄 알았다. 그래서 자고, 자고 또 잤다. 한참을 자고 난 후에도 힘이 생기지 않아서 사찰로 들어갔다.

그즈음에 황상이 찾아온 것이다.

완전히 회복되고 난 후에 찾아왔으면 이토록 힘들지는 않을 텐데. 하기는 누가 아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을까. 그는 탕산 싸움을 이겨낸 칼인데.

아걸은 사실 지금 칼을 쓰는 게 힘들었다.

상대를 배워야 하는데 도무지 벨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퍼엉! 펑!

눈앞에서 흑연이 터졌다.

‘연무탄!’

일순 주위가 새까만 흑연으로 휘감겼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이 깔렸다.

스스스슷!

동영 인자들은 어둠 속에서 재빠르게 움직인다.

그들에게는 연무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초안(超眼)이라도 있는 듯 하다.

기실, 초안은 아걸에게 있다.

아걸은 연무탄 속에서 움직이는 인자 두 명의 신형을 똑똑히 감지해냈다.

그가 감지하는 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동영 인자들이 흘리는 기운이다. 그들은 기척을 숨기고 있다. 몸에서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기도까지도 숨긴다.

물론 살기도 감춘다. 동영 인자는 살기를 철저히 숨길 수 있도록 훈련을 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걸은 살기를 감지한다.

동영 인자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정말로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미미한 살기를 감지해낸다. 탕산 싸움이 있기 전이라면 전혀 감지해내지 못했을 살기를 지금은 감지한다.

목형술을 깨는 순간 이런 능력이 생겼다.

쉬이이잇!

인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한 명은 우측으로 휘돌아서 등을 쳐온다. 또 한 명은 뱀처럼 땅을 기어온다. 칼을 입에 물고,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몸은 허공에 띄운 채 도마뱀처럼 달려온다.

아걸은 저들이 더 가까이 다가오도록 기다렸다.

여유가 넘쳐서 기다린 것은 아니다. 칼을 쓰기가 싫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지금 반격해도 충분한데, 벨 수 있는데…… 정말 움직이기 싫었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

쉬이잇!

등 뒤로 은밀한 검이 다가왔다. 아니다. 검이 다가서기 전에 검에 묻은 화린(火燐)이 번쩍 빛났다.

퍼억! 퍽!

등 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불꽃이 번쩍거렸다.

화린 공격에 이어서 곧바로 검을 쳐온다. 놀라운 정도로 빠른 쾌검이다. 은신술에 기반한 검공이 아니라 정상적인 겨룸에 대비한 검초다.

동영 인자가 정면 승부를 걸어왔다.

앞에서 다가온 자도 바로 움직였다. 개구리가 뛰어오르듯 힘차게 튕겨 올랐다. 입에 문 검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고, 곧바로 심장을 찔러 왔다.

“곤란하게 됐군.”

아걸이 무심히 말했다.

화린이 너무 가까운 곳에서 터졌다. 이들의 급공 또한 숨 막힐 정도로 빠르다. 평생 이 한 수에만 목숨을 걸었던 흔적이 역력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런 공격은 이미 익숙할 만큼 익숙해졌다.

휘리리릭! 쫘아악!

아걸은 등 뒤로 반철도를 휘둘렀다. 어떤 초식을 펼칠지 의식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심히 칼을 쳐냈다. 하지만 반철도는 이미 절정 도법을 펼쳐내고 있었다.

칼을 몸 주위를 휘돌았다. 모두 삼백육십 합…… 칼이 육신을 철옹성처럼 보호해준다.

일홀문 이십오대 문주의 수신도다.

아무런 의식도 없이 가볍게 반철도를 떨쳐냈는데, 수신도가 터지고 말았다.

화르르륵!

반철도가 아걸을 휘감아오던 화린을 깔끔하게 거둬냈다.

아걸 즉시 몸을 돌려서 앞에서 공격해 온 복면인에게 칼을 쳐냈다. 그리고 다시 빙글 돌아섰다. 화린을 던지고 쾌검을 구사한 자, 복부를 갈랐다.

아걸은 순식간에 몸을 두 바퀴 돌렸다.

차례대로 화린이 떨어져 나가고 복면인의 가슴이 썰리고, 또 다른 복면인의 복부를 갈랐다.

쉬잇! 화라락!

마지막으로 반철도에 묻은 화린을 땅에 떨어냈다.

화린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면서 땅을 태웠다. 복면인의 가슴과 복부도 태웠다. 그들을 베면서 반철도에 묻은 화린이 스며들었다. 순식간에 상처를 태웠다.;

아걸은 볼일이 끝난 듯 마차로 돌아섰다.

복면인이 두 명이나 더 남아 있지만, 관심 없다는 투였다.

“칼을 쓰기 싫다니까 기어이 쓰게 만드네.”

스륵! 쿵!

뒤에서 공격했던 무인이 아걸을 쳐다보면서 쓰러졌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설마 아걸이 이렇게 빠른 칼을 가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그렇다. 두 동영 인자는 자신이 지닌 무공을 십 분지 일도 펼쳐내지 못했다.

이제 막 공격을 시작하던 참인데, 그 순간에 제압당해 버렸다.

이들은 오대신술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했다. 이제 막 토형술을 쓰려던 참인데, 시야를 어지럽히고 그 순간에 땅속으로 잠적할 생각이었는데…… 어떤 살수도 펼쳐내지 못한 채 무너진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모두가 동시에 무너진다.

‘이렇게 빠른 칼이 있었나? 너무 빠르다. 도주, 위험하다!’

쿵! 쿵!

동영 인자 두 명이 쓰러졌다.

“이거 칼이 탔네. 가다가 개울이 있으면 좀 씻어줘.”

아걸이 어자석 옆에 반철도를 툭 던졌다. 그리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아함!”

마차 안에서 길게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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