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09화 (509/600)

第百二章 아도니도(我刀你刀) (4)

복건성에서 유명한 명문 세가라면 단연 광동진가(廣東陳家)를 손꼽는다. 그리고 광동진가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소무정가(昭武鄭家)도 유명하다.

광동진가는 진가구에 위치한 권법 명문이다.

태극권(太極拳)을 독보적으로 발전시켜서 태극권이라는 명칭 대신 진가권(陳家拳)으로 부르기까지 한다. 무당파(武當派)와 쌍벽을 이루는 태극권 명가다.

소무정가는 도법 명가다.

뇌정도법(雷霆刀法)!

칼을 떨쳐낼 때마다 벼락 때리는 소리가 울린다.

소무정가는 건녕부(建寧府) 서산(西山)에 있다.

“건양(建陽)을 지나가나?”

아걸이 물었다.

“네. 건양까지만 가시면 바로 배로 바꿔타실 겁니다. 복주까지는 하루 거리입니다.”

“그럼 다 왔네.”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십쇼!”

“아니, 불편할 건 없고…… 건양으로 가는 길이라면 서산에 좀 들렀다가 가지.”

“서산요?”

“거기 소무정가가 있잖아. 잠깐 들렀다가 가.”

“안 됩니다.”

마부가 단박에 거절했다.

“안 돼? 서산에 들렀다가 가는 게 뭐가 어때서? 이레에 가나 아흐레에 가나 그게 그거 아냐?”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레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이봐, 싸우는 사람은 나야. 내가 마음 삐딱하게 먹고 져주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그리고…… 내가 포로는 아니지 않나? 지금 납치되어서 강제로 끌려가는 거야?”

아걸이 놀리듯이 말했다.

“문주님, 황명입니다.”

마부가 자신 있게 거절했다.

“황명, 아닌데? 잘못 알고 있네.”

“네?”

“황명이 아니라 황제의 부탁. 황제가 부탁해서 받아들인 거라고.”

“문주님! 아무리 문주님이라고 하셔도 무엄한 말씀은 용서하지 못합니다!”

마부가 거세게 질타했다.

‘정말 융통성 없는 사람이네. 갑은 갑이고, 을은 을. 후후! 이런 사람이 어떻게 전보영에서 일하지? 차라리 군인이 되는 게 더 나을 뻔했군.’

아걸은 속으로 웃었다.

오는 동안 마부가 어떤 사람인지는 환히 꿰뚫어 봤다. 자신이 이런 말을 하면 이런 식으로밖에 대응하지 못할 사람이다. 지금 마부의 머릿속에는 황명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전보영의 지시를 곧 황명으로 여긴다.

아걸이 심드렁하니 말했다.

“에이…… 그러면 할 수 없이 나 혼자 다녀와야겠다. 칼 쓸 줄 알지? 막아보든가.”

“문주님!”

마부가 답답한 듯 신음을 흘렸다.

답답할 것이다. 무림에서 무력으로 아걸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아걸 말이 맞는다. 아걸이 복주로 가는 것은 황제의 부탁이지 명령이 아니다. 하지만 마부는 황제의 부탁이 곧 황명이지 않냐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부탁이어도 상관없다. 아니,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만 툭 던져도 그것은 곧 황제의 명령이 된다. 그것을 굳이 황제가 부탁했다느니 어쨌다느니 따질 수 없다.

아걸이 명령을 어기면 즉시 황명을 어긴 죄인으로 압송해 가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한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까?

아걸이 순순히 말을 듣지 않고 저항한다면 무력으로 그를 잡아야 하는데, 누가 잡을 수 있다. 설혹 잡더라도 상당히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릴 것이다.

아걸은 이십사 위문 무인들을 격파했다.

천여 명이 둘러싼 싸움터에서 유유히 살아 나왔다. 그런 그를 누가 어떻게 할까?

“끄응! 하루면 되겠습니까?”

마부가 말고삐를 늦추지 않은 채 말했다.

“하루도 안 걸릴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딱 하루입니다!”

마부는 다짐을 받고 싶었다.

“그럼 서산으로 가는 김에 전보영 힘 좀 빌리지. 소무정가에 뇌정일도(雷霆一刀)라는 무인이 있어.”

“뇌정일도 정운(鄭熉) 노가주(老家主) 말씀입니까?”

마부가 놀란 듯이 말했다.

소무정가 전임 가주 뇌정일도 정운은 널리 알려진 도객이다. 중원에서 도법 고수를 꼽을 때는 늘 빠지지 않고 거론될 정도로 빠르고 강하다.

중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도법 고수다.

소무정가에는 도객이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 단연 으뜸은 이미 칼을 놓은 뇌정일도다.

“그분에게 비무 좀 넣어줘. 미리 통보하면 차분히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

“네? 비무…… 말입니까?”

마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걸의 명성은 이미 중원을 쩌렁 올리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아걸을 천하제일검 허도기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비교하기까지 한다.

아걸은 명부판관이나 혈도비자라는 무명 대신에 일홀문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 명부판관이라는 무명으로 활동한 적이 더 많은 데도 일홀문주라는 이름 앞에서는 명부판관이라는 무명도 싹 묻혀버렸다.

아걸은 일홀문을 거의 입에 담지 않았다.

자신이 일홀문주라고 소개한 적도 없었다. 일홀도를 쓴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문주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걸을 일홀문주라고 부른다.

아걸이 쓰는 칼이 일홀도라고 알려졌다. 그러자 당장 그를 일홀문주라고 불렀다. 그리고 일홀문주라는 이름은 전 중원을 쩌렁 울려버렸다.

이 세상에서 일홀도는 쓰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예전에는 일홀도를 쓰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서리가헌, 서리형개, 동박…… 이 세 명 모두 자신의 칼이 일홀도라고 세상에 천명했다. 칼이 얼마나 강한지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일홀문주라고 부르지 않았다.

일홀문주는 오직 한 명뿐이다. 서리 성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딱 한 명, 이 세상에 일홀도를 쓰는 사람이 오직 한 명뿐일 때, 일홀문주가 탄생한다.

두 명, 세 명이 동시에 일홀도를 쓴다면 아직 일홀문주가 탄생하지 않은 것이다.

아걸이 등장함과 동시에 서리가헌과 서리형개가 종적을 감췄다.

세상은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어느 땅에서 누구와 싸우다가 죽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손에 정리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안다. 가장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걸이 그들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대체로 일홀문은 그런 식으로 일인비전을 유지해 왔다.

제자를 두 명, 세 명…… 많게는 열 명 이상 거둘 때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일제히 정리된다. 단 한 명, 일홀문주만 남기고 모두 사라진다.

아걸이 그런 예다.

아걸은 자신 스스로 일홀도를 쓴다고 말한 적이 없다. 몇몇 사람한테는 자신의 칼을 말했지만, 세상에 대고 외친 적은 없다.

그가 일홀도는 쓴다는 말은 다른 사람 입에서 나왔다.

많은 사람이 일홀도를 말했다. 야천이, 전보영이, 마유 마인들이, 적랑대 간자들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일홀도의 강함을 역설했다.

무엇보다도 현재 중원에서 일홀도를 쓰는 사람은 아걸 한 사람뿐이다.

그러니 아걸이 일홀문주인 것이다.

일홀문주 아걸의 명성은 탕산 싸움 이후, 단박에 높아졌다.

성검문과 이십사 위문이 갑자기 쇠락하고, 그들을 대신해서 아걸이 우뚝 섰다.

당금 무림에서 아걸과 비무를 논할 사람이 글쎄…… 있을까?

물론 뇌정일도 노가주의 도법은 유명하다. 노가주의 뇌정도법을 칠 초 이상 받은 자가 없다. 그래서 뇌정일도라는 무명 대신에 칠초도살(七招刀殺)이라는 무명까지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뇌정일도가 송가검문주나 활검문주를 능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니, 어쩌면 이십사 위문 문주는 넘어섰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축십검이라면 어떨까? 좋게 봐도 그들을 넘지 못했거나 비등한 정도일 것이다.

아걸은 누가 봐도 천하제일도다.

그런데 거꾸로 아걸이 뇌정일도에게 비무를 청한다? 왜? 어떤 일이 황명을 어길 정도로 중요하지?

마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명부판관 일을 하시려고…… 뇌정일도가 악행이라도……?”

“아니. 비무를 내 이름으로 넣어줘. 일홀문주로. 순수하게 뇌정도법을 보고 싶다고 해.”

마부는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아걸에게는 매우 중요한 모양이다. 비무를 말하는 음성이 매우 진중하다. 진심이 느껴진다.

그가 마차를 서산으로 물지 않으면 이대로 뛰쳐나가서 혼자 갈 것 같다는 생각이 치민다. 그런 느낌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만큼 진지한 음성이다.

“지금부터 바로 서산으로 가겠습니다. 이럇!”

마부가 말고삐를 힘차게 내리쳤다.

스쳐 지나가는 길가에 건양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였다.

서산은 건양 북서쪽에 있다. 건양 남동쪽에는 동산(東山)이 있다. 건양을 중심으로 해서 서산과 동산이 바싹 붙어 있다.

마부는 빙 돌아가는 대신에 더 빨리 달려서 기어이 이레 만에 도착하겠다는 듯이 말을 매우 거칠게 다그쳤다.

“이럇! 이럇!”

“일홀문주가 소무정가 노가주에게 비무하자고 했다며?”

“일홀문주가?”

“못 들었어? 벌써 소문이 파다한데.”

“나는 처음 들어. 일홀문주가 도전했다면…… 그럼 노가주의 무공이 그렇게 강했나?”

“일홀문주가 도전한 거니…… 강했다고 봐야지?”

“뇌정도법이 강한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강한 줄은 몰랐네. 세상에! 일홀문주가 직접 도전할 정도였어?”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아걸은 광둥요리인 동과탕[冬瓜盅: 동과충]을 즐겼다.

속을 파낸 동아에 돼지고기, 닭고기, 버섯, 조개, 새우 등을 넣어 만든 요리다.

“소문 빠르네.”

아걸이 동아 속에 든 죽순을 먹으며 말했다.

비무하겠다고 마부에게 말한 게 점심 무렵이다. 저녁을 먹으러 객잔에 들렀는데, 벌써 사람들 입에서 비무 이야기가 오간다.

아마도 이 소문은 소무정가에서 흘러나왔을 것이다.

소무정가로서는 이 비무를 받아들이지 않을 까닭이 없다. 완전히 꽃놀이 패다. 이겨도 좋고 져도 좋다. 이기면 일홀문주를 잡은 것이니 천하제일도가 되는 것이고, 지더라도 천하제일도 일홀문주에게 졌으니 흠이 되지 않는다. 더불어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처럼 일홀문주가 직접 도전했다는 명예도 얻는다.

사실, 소무정가는 매우 뛰어난 도법을 가지고 있지만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

뇌정도법은 수련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인지 수련도 너무 혹독해서 견뎌내는 사람이 드물다. 그리고 광동에는 소무정가에 필적하면서도 수련하기 쉬운 광동진가의 권법이 있다.

광동진가의 진가권은 매우 유연하고 부드럽다.

광동 사람들은 아침마다 운동 삼아서 진가권을 수련한다. 두세 사람만 모여도 함께 수련한다. 광동진가에서 일반인들도 수련할 수 있게끔 간단한 무공을 만들어서 보급했다. 허도기가 조명천검을 정천검법으로 만들어서 군대에 보급했듯이.

광동성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광동진가의 권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무정가는 이번에야말로 가세를 크게 떨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비무 서첩을 전하기 무섭게 당장 소문부터 흘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끄응!”

마부가 이 앓는 소리를 냈다.

“왜 또? 뭐가 못마땅해서?”

“이렇게 소문이 나면 문주님이 어디쯤 왔는지 다 알 것 아닙니까? 벌써 두주의 귀에 들어갔을 것 같은데…… 여기서 복주까지는 하루 거리, 문주님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도 남죠.”

“이레 안에 도착하면 내 소식을 모를 것 같아서?”

“알기야 알겠지만…….”

마부가 말끝을 흐렸다.

죽을힘을 다해서 치달렸는데도 동영 인자들이 정확하게 찾아왔다. 먼저 와서 길목을 차단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놓치기 직전일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찾아왔지만.

아걸 말대로 두주는 이미 자신들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어떻게 된 게 두주가 전보영보다 소식이 더 빨라. 내가 움직이자마자 바로 귀에 들어가는 모양이야. 소식이.”

“끄응!”

“그러니까 뭐 굳이 숨기려고 하지 말자고. 그런 데 애끓지 말라는 소리지.”

“알겠습니다.”

“내 칼.”

“네? 칼을 왜 제게……?”

“화린에 탄 거 씻어달라고 했는데, 안 씻었어?”

“아!”

마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차를 모는 데 정신을 집중하느라 어자석에 던져진 칼을 까마득하게 잊었다. 아니, 그때가 언제인데…… 칼의 주인이 자신의 칼을 어자석에 던져 놓고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어?

“아니, 그거 그때가 언제인데…….”

마부가 기가 막혀서 말을 잇지 못했다.

“쯧! 안 씻었다는 말이네? 그럼 뭐 할 수 없지. 그대로 써야지.”

“화린에 탄 걸 그대로 써요? 날이 매우 무뎌졌을 텐데.”

“어차피 베려고 비무 하는 건 아니니까. 그건 저쪽도 눈치챈 거 같은데 뭘. 그러니까 이 비무를 기꺼이 받아들이지. 아니면 어떻게 상대하나 고민하기 바빠야지. 후후!”

“그런데 왜 비무를 하는 겁니까? 뇌정도법이 무림일절(武林一絶)이라도 되나요?”

“글쎄…… 왜 하지? 하하!”

아걸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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