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10화 (510/600)

第百二章 아도니도(我刀你刀) (5)

‘어떤 칼로 어떻게 싸운다?’

아걸은 비무를 입에 담은 이후, 어떻게 싸울 것인지에 대해서 내내 고민했다.

노가주는 분명히 뇌정도법을 펼칠 것이다.

자신은 어떤 도법을 펼칠까? 도법이라는 것이 있었나?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데.

사람들은 그를 일홀문주라고 부른다. 일홀도를 쓴다고 한다. 일홀도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아걸 자신은 자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일홀도를 얻은 것인가, 아니면 도법을 잃어버린 것인가.

전대 서른여섯 명의 문주는 각기 ‘이게 내 칼이다’ 하는 도법이 있었다. 당신들 스스로 창안한 도법이며, 세상 유일의 도법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 도법을 아걸이 전수받아서 수련했다.

아걸은 서른여섯 가지 도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동영 인자들과 싸울 때는 수신도를 펼쳤다. 수신도를 제 것인 양 아주 자연스럽게 펼쳤다.

그러면 서른여섯 개의 도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면 천하제일도가 되는 것인가? 달리 말하면, 세상에서 뛰어나다는 검법 서른여섯 개를 모아서 능숙하게 구사하면 천하제일검이 되나? 허도기와 싸울 수 있나?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단지 많은 도법을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해서 천하제일도가 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뛰어난 무공은 많다.

구대문파 십오세가만 해도 뛰어난 절공이 수두룩하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가까이, 이 복건 땅에서도 당장 찾을 수 있다. 광동진가의 태극권이나 소무정가의 뇌정도법은 이미 세상 사람들로부터 증명된 절학이다.

태극권만 해도 그렇다.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태극권은 매우 느리고 유연하다. 일로(一路)에서는 그렇다. 이로(二路)에서는 빠르고 느린 부분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느리고 유연한 움직임을 빠른 공격에 대응시킬 때, 광동진가 권법이 유용해진다.

광동진가는 그런 일을 해냈다.

민초들이 수련하는 태극권은 아침 운동이지만, 권사들이 사용하는 태극권은 절정 권법이다.

분명히 뛰어난 절학이다. 평생 광동진가에만 몸을 담고 한 우물만 파도 뛰어난 무인이 될 수 있다. 자질에 따라서는 무림제일인도 가능해진다.

이렇게 이름난 문파를 찾아다니면서 뛰어난 무공을 서너 개 정도 수련하면 천하제일도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수련의 질을 반드시 말해야 한다.

하나를 수련하더라도 완벽하게 수련하면 천하제일도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맞다. 그럴 수 있다.

무인이 지녀야 하는 재질, 근골만 뛰어나다면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어떤 이는 무공을 배우지 않고도 타고난 싸움 실력만으로 고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일홀도가 추구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일홀도와는 거리가 멀다.

서른여섯 개의 도법을 능숙하게 구사해서 일홀도가 완성되는 것이라면 굳이 새로운 일홀도를 만들 이유가 없다.

왜 잔인하게 동문끼리 서로 죽여가면서 일인비전을 고집하나. 엄격하게 말하면 일홀문의 일인비전은 정상적인 일인비전이 아니다. 오히려 절차탁마에 가깝다. 여러 사람에게 전수해서 가장 강한 칼을 골라내는 것이다.

마도에서도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하물며 정도를 추구한다는 일홀문에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도대체 일홀문이 추구하는 칼은 어떤 칼인가?

아걸은 딱히 자신의 칼이라고 할 만한 칼이 생각나지 않았다.

전대 삼십육 문주처럼 자신도 제자를 거두고, 칼을 전수한다면 무엇을 전수할 것인가? 자신의 제자에게는 자신의 칼까지 모두 서른일곱 개의 칼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

내 칼은 무엇인가?

순간적으로 진동을 일으켜서 상대방의 병기를 반 치 아래로 흘려버리는 진파는 목숨을 여러 번 구해주었다. 진파에 이은 역공은 아주 훌륭한 동귀어진 수법이 되었다. 아니, 동귀어진을 가장한 필살초로 자리매김했다.

이것을 일홀도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진파는 칼이 아니다. 진파를 이용한 동귀어진 수법을 내 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초식이 될 수 있어도 도법은 되지 못한다. 필살초이기는 하지만, 일홀도는 아니다.

자연도를 얻었을 때, 사부가 전개하던 칼…… 극초단타인 일촌살타를 깨달았을 때, 칼을 무척 빠르게 휘둘러서 가상의 도를 만들어 내는 분기도강을 이뤘을 때…… 이것이 내 도법이라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 외에도 ‘이제는 정말 이게 내 칼이야’라고 생각한 도법을 여러 번 만났다.

하지만 역시 일홀도는 아니었다.

모두 칼을 쓰는 방법이라거나 아니면은 기존에 있었던 도법을 더욱 발전시키는 선에서 그쳤다.

정작 자신의 후인에게 이것이 삼십칠 대 문주의 일홀도라고 말하면서 전해줄 만한 도법이 없었다.

일홀도는 독창적이어야 한다. 전대 삼십육 문주의 도법에 비해서 하등 밀리지 않아야 한다. 중원 어떤 무공과 싸워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아걸은 삼십육 문주의 도법을 비교해 본 적도 있다.

서른여섯 개의 도법 중 가장 칼은 무엇일까? 모두 강하다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칼이 있지 않겠나. 어느 산이든 정상은 하나이니까.

결론은 가장 강한 칼은 없다는 거였다.

모두가 강하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어떤 칼도 막강했다. 서른여섯 개의 칼 중 하나만 제대로 이어받아도 능히 천하제일도가 될 수 있었다.

천하제일도가 되는 길은 많다. 정상에 이르는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정상을 향해 올라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천하제일도라는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상당히 많다.

아걸은 여기에서 일홀문이 추구하는 일홀도는 천하제일도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홀문에 적을 담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천고의 기재들이다. 무공에 관해서 만큼은 하늘을 가르치면 백을 깨우치는 천재들이다. 서리가헌, 서리형개, 동박이 그렇다. 서리 성을 받지는 못했지만, 사실은 동박까지 세 사람 모두 자신만의 칼을 얻었다.

사형들이 사용했던 일탄십검이나 화염도는 능히 일홀도가 될 수 있다. 반면에 자신은 그들보다 강하면서도 이것이 내 칼이라고 내세울 만한 칼이 없다.

이것 때문에 소무정가에 비무를 청했다.

노가주와 만나기 전까지 비무에 사용할 만한 칼을 준비할 생각이다.

비무에 앞서서 자신을 소개할 때, 당당하게 나만의 칼, 일홀도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칼이 없다.

일홀도를 얻은 것 같은데, 그 일홀도가 없다.

이런 생각은 탕산 싸움이 끝날 때부터 쭉 해왔다. 그러다가 동영 인자를 벨 때, 더욱 확실히 느꼈다.

무의식중에 수신도를 펼쳤다.

수신도는 내 칼이 아니다. 자신은 칼을 잘 쓰는 칼귀신일 뿐, 일홀문주가 아니다. 일홀문주라면 자신만의 칼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 칼이 없다.

‘내 칼, 내 칼…….’

“워! 워!”

마차가 서산을 코앞에 두고 멈춰 섰다.

“비무 시간을 내일 아침 사시정(巳時正: 10시)으로 정해놨습니다. 지금 서산에 들어갈 수는 있는데, 서로 번잡할 테니 오늘은 야숙(野宿)하시죠?”

마부가 말했다.

“내 칼.”

아걸이 말했다.

“아! 칼이요. 그거 안 지워져요. 박박 씻어봤는데 화린이 도신을 녹여 버려서…… 아예 새로 만들거나 잘하는 도검사에게 갈아야 하는데, 근처에는 마땅한 도검사도 없고. 소무정가에는 도검사가 있을 텐데, 적에게 칼을 갈아달라고 할 수도 없고. 어디서 적당한 칼 하나 구해올까요?”

마부가 말했다.

아걸이 말한 ‘내 칼’을 반철도로 알아들은 듯하다.

“응? 아니, 아니야.”

아걸이 고개를 내둘렀다.

마음속으로 되뇌던 말이 무심히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오늘은 여기서 쉬지. 야숙도 익숙해져서 괜찮아. 바람도 선선하니 좋고.”

“그럼 칼은 어떻게?”

“저거면 됐어. 어차피 사람을 벨 것도 아닌데 뭘.”

“이번 비무는 그렇다 치고 두주와 싸울 때는…….”

“그러니까 진작 갈아놨어야지.”

“네에? 제가요?”

마차가 어처구니없어서 아걸을 빤히 바라봤다.

무슨 무인이 자기 칼을 이렇게 막 굴리지? 애병을 아무나 갈아도 괜찮나? 그러다가 날이라도 나가면…… 하기는 반철도를 보니 그건 칼이 아니라 쇠뭉치에 불과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인이 칼을 내팽개쳐?

마부는 도저히 아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칼은 반드시 도법이어야 하는가?

일홀문이 원하는 것이 도법인가? 아니면 칼을 최고 경지로 끌어올린 최강자인가.

사부에 생존해 계셨다면 당장 물어봤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싸울 상대…… 두주가 있는 복건에 가까워지면서 내 칼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하게 일어났다.

그렇다. 자신도 이제는 제자를 거둬야 한다.

지금까지는 무심히 칼을 휘둘러 왔다. 칼을 배운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목숨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이 죽어도 일홀문을 이을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자신이 죽이면 일홀문은 막을 내린다. 일홀문의 명맥이 끊어진다. 그 전에 제자를 거둬서 일홀문의 숨통을 이어놔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칼에 대한 집착이 생겼다.

제자를 거두면 내 칼도 주어야 하는데 어떤 칼을 줄까?

사실, 아걸은 다른 일홀문도와는 태생이 완전히 다르다. 나쁘게 말하면 변종(變種)이다. 아걸이 지금 하는 고민은 사부가 남긴 숙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부는 아걸에게 삼십육 문주의 일홀도를 모두 전수해주었다.

여기서부터 태생이 갈라졌다.

사형들은 이런 식으로 칼을 받지 않았다. 삼십육 문주의 무공은 구경만 했다. 중원 무공 중 상당히 강하다는 무공 네다섯 개를 기본 토대로 전수받았다.

그 무공들만 수련해도 능히 최강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사형들은 무공 수련에 그치지 않았다. 전수받은 무공들 속에서 자신만의 칼을 만들어 냈다.

사형들의 칼은 순수한 창작이다.

사형들은 중원 무공을 전수받을 때, 수련해야 할 무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뛰어넘어야 할 무공, 이 속에서 내 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아주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뼈를 깎는 수련을 했다.

자신만의 칼을 만들어 내겠다는 집념이 무공을 배우는 초기부터 가슴 밑바닥에 심겨 있었다. 자신의 칼을 만들어 내야만 무림에 나갈 수 있으니, 절박한 심경을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반면에 아걸은 처음부터 삼십육 문주의 무공을 전수받았다.

하나같이 최강의 칼들이다.

이것들을 뭉뚱그려서 자신만의 칼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전대 문주들의 무공을 몸에 붙여야 한다. 완벽하게 수련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걸이 전수받은 무공은 뛰어넘어야 하는 무공이 아니라 어떻게든 수련해내야 하는 무공이었다.

그러니 사형들과는 태생부터가 다른 것이지.

일홀문이 원하는 칼은 사형들의 칼이다.

삼십육 문주의 칼들은 모두 사형들처럼 수련 초기부터 내 칼을 만들겠다는 집념하에서 탄생한 칼들이다.

아걸은 내 칼을 만들겠다는 집념이 약했다.

늘 내 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더 강하게, 더 날카롭게, 더 빠르고…… 완벽한 칼을 쓴다는 데 초점이 모였다.

강해지면 되는 거지. 최강의 무인이 되면 되는 거지.

그런데 정작 자신이 제자를 거두고 일홀도를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답답해졌다.

자신이 무적이 아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무너질 게 빤히 보인다.

그때를 대비해서 제자를 거두고 일홀문의 명맥을 이어놓아야 하는데…… 정작 물려줄 칼이 없지 않나. 자신의 칼도 없으면서 어떻게 일홀문주 행세를 하나.

‘후후! 역시 나는 아직은 서리 성을 쓸 수가 없어.’

아걸은 동박 사형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동박 사형은 무척 강했다. 나름대로 제대로 된 칼로 창안해냈다. 사형들에게 뒤질 뿐이지 다른 자들에게는 지옥의 칼로 통할 만큼 지독하기 짝이 없었다.

사부는 그런 칼을 봤으면서도 서리 성을 주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동박 사형은 단지 칼을 잘 쓸 뿐이었다. 자신만의 칼이라는 것은 다른 무공의 모방에 지나지 않았다. 이리저리 섞어서 칼을 잘 쓰는 칼귀신이 되었을 뿐이다.

사부가 생존해 계셨다면 자신에게도 서리 성을 주지 않았다.

사형들을 모두 제치고, 일홀문 최강의 도객이 되었는데도 아직은 일홀도를 얻지 못했다고나 할까.

‘아냐. 일홀도는 얻었어. 그러니까 이렇게 강해진 것이지. 다만…… 나도 내 칼을 알지 못할 뿐. 그동안 너무 많은 칼을 배운 탓이겠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주워 먹었느니. 후후!’

아걸은 웃었다.

노가주와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런 비무가 아니라는 것쯤은 소무정가도 안다.

아걸의 비무는 뇌정도법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걸도 일홀도를 내놓아야 한다. 습작품이 아니라 진도(眞刀)를 내놓아야 한다.

마부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을 하는 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동영 최강자 두주가 기다리고 있는데 한눈을 팔고 있지 않나.

두주가 동영제일검이기 때문에 이 비무는 더욱 필요하다.

삼십육 문주의 칼이 아니라 내 칼을 써야 하는데, 칼이 어디 있나.

아걸은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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