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12화 (512/600)

第百三章 남해혈도(南海血濤) (2)

“일홀도는 일홀문주가 스스로 창안한 도법이라고 들었네. 기가 막힐 노릇이지. 누구는 선대의 도법도 깨우치지 못해서 안달인데. 자네 도법은 이름이 뭔가?”

노가주가 물었다.

한데 즉시 답해줄 줄 알았던 아걸이 미간을 찡그린 채 반철도를 쳐다봤다.

“글쎄요. 저도 이 칼이 무슨 칼인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믿지 못하실 것 같은데, 사실입니다. 칼을 쓰기는 쓰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칼인지. 훗!”

아걸이 말끝에 피식 웃었다.

“그럼 자네 칼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지. 조금 전에는 너무 빨리 끝나서 보지 못했어.”

쉬이이잇!

노가주가 신형을 쏘아냈다.

노가주의 이번 칼은 처음 칼과는 상당히 달랐다. 빠르고 강맹하지 않았다. 대신 상당히 부드러웠다. 아걸은 죽이거나 이기겠다는 생각을 버린 듯하다.

카앙! 깡깡! 깡!

칼과 칼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웬 놈이!”

“쉿!”

칼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소무정가 무인들이 속속 튀어나왔다.

노가주는 원래 서산 깊은 골짜기에 작은 암자를 짓고 거처했다. 세상의 은원에서 완전히 떠나 초연히 살고자 했고, 실제로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일홀문주와 비무를 하는 것이 소무정가에 어떤 힘이 되는지 알기 때문에 은거까지 깨고 나왔다.

이번 비무가 아니었다면 소무정가에 발을 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꼭두새벽에 칼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소무정가 사람들을 모두 깨우고도 부족할 정도로 거센 격타음이 울렸다.

모두 한달음에 달려왔다.

먼저 온 사람들은 노가주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사람이 일홀문주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방해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구경만 한다.

비무 시간은 사시인데 왜 벌써 맞서는 거지?

궁금증이 치밀었지만, 비무 중인 사람에게 말을 걸 수가 없다. 또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보니 자신들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이건…… 전사들의 싸움이다.

“일홀문주야.”

“일홀문주가 왜?”

“몰라. 조용히 하고 구경이나 해. 움직임을 놓치지 말고 봐둬. 큰 공부가 될 테니.”

노가주의 뇌전도는 반철도에 부딪혀서 이가 움푹 빠졌다. 칼의 형체도 일그러졌다.

“엇! 노가주님 손이!”

“쉿!”

노가주의 손은 찢어져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핏방울이 튀었다. 그래도 싸움판에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워낙 충돌이 거세게 일어난다.

무인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싸움을 지켜보았다.

쒜에에엑!

노가주가 벼락같이 칼을 휘둘러서 아걸의 목을 잘랐다.

아걸은 굴러떨어지는 큰 바위에 짓이겨지는 사람처럼 칼을 들어서 얼굴만 가렸다.

가볍게 들어 올린 칼!

반면에 노가주는 이번 일도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자신의 모든 힘을 칼 한 자루에 담았다. 펼치는 초식도 뇌정도법도 가장 패도적이라는 벽력벽석(霹靂劈石)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벽력이 바위를 쪼개버린다!

아걸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전신 내공이 담긴 칼을 너무 쉽게 봤다. 너무 가볍게 응수했다. 아걸도 전력을 다해서 막아냈어야 한다. 그래도 반철도가 쪼개진다.

까아앙!

거센소리가 울렸다.

뇌전도와 반철도가 정면에서 부딪쳤다. 순간…… 믿지 못할 일…… 뇌전도가 번쩍 불꽃을 튕기면서 반 토막 났다. 반으로 뚝 쪼개진 도편이 멀리 날아간다.

반철도는 땅에 뿌리 박힌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노가주는 자신이 쳐낸 일격에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아걸을 지나쳐서 두 걸음이나 걸었다.

노가주 같은 고수가 몸을 휘청일 정도로 이번 일격에는 천력이 담겨 있었다. 아걸은 그런 칼을 가볍게 손을 들어서 막은 것이다. 장난처럼 쓱 올린 칼에 뇌전도가 잘렸다.

아걸의 진기가 노가주를 압도할 만큼 강한가? 그렇게 보인다.

아니다. 노가주는 확실히 알았다. 바둑 고수가 장문을 보지 못한다는 말도 알아들었다. 먼저 격돌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을 이번에는 확실히 봤다.

아걸과 노가주의 내공은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진기의 집중점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노가주는 도법, 벽력벽석에 전신 진기를 모두 실었다.

당연하다. 중원 무인 모두가 이렇게 공격한다. 사력을 다해서 도법을 펼쳐낸다. 이게 뭐가 잘못인가? 칼 한 자루에 전신 진기를 온전히 실었는데, 잘못될 리 있나.

잘못되지 않았다. 아니, 잘못되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뇌전도와 반철도가 부딪히는 순간, 아걸은 딱 한 점…… 반철도와 뇌전도가 격돌하는 순간에만 진기를 집중시켰다. 반철도를 들어 올릴 때는 진기를 쓰지 않고, 격돌 순간에만 집중했다.

반면에 노가주는 도법을 전개하는 내내 진기를 집중했다. 그러니 정작 격돌 순간에는 많은 진기 손실이 있었다. 십 중 칠팔 정도밖에 집중하지 못했다.

도법이 진기를 갉아먹었다.

원래 초식은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처음보다 나중이 훨씬 강해진다. 원심력과 가속력이 붙기 때문이다. 이런 힘의 집중이 격돌 순간에 터진다.

하지만 벽력벽석은…… 초식의 흐름이 아니다. 일순에 진기를 집중시켜서 폭발시키는 도법이다. 타격하는 거리가 멀수록 진기의 손실이 커진다.

아걸과 자신의 거리를 겨우 칼 길이 하나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길이만으로도 진기 차이를 만들어내기는 충분했다. 칼을 부러트릴 정도로……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허허! 이걸…… 이걸…… 이제야 알았네. 허허!”

노가주가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아걸이 허리춤에 반철도를 꽂았다. 그리고 정중히 두 손 모아 포권했다.

“가르침 잘 받았습니다.”

“도움이 됐나? 도움이 전혀 안 됐을 것 같은데.”

“아닙니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제가 비무하고자 했던 목적은 이뤘습니다.”

아걸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가? 그러면 천만다행이고. 그러면 이제는 자네 칼이 무언지 말해줄 수 있나?”

“적당한 이름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 칼의 실체는 보신 것과 같습니다.”

“무형도(無形刀)는 어떤가?”

“무형도요?”

“도법이 없는 칼. 후후! 자네 칼에는 도법이 없어. 도법이 없어서 예측할 수도 없어. 칼의 흐름이 전혀 없으니, 언제 어디서 어떤 칼이 튀어나올지 모르지.”

노가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무형도라면 모든 칼이 설명돼. 먼저만 해도…… 도법대로 움직이는 칼이었다면 뇌전도에 밀려서 튕겨 올라갔을 텐데, 오히려 찍어 내렸지. 도법이 없기에 가능한 칼이야.”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노가주가 말한 도법이 없는 칼, 무형도를 쓰기 위해서는 진기를 발출하고 거두는 일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져야 한다. 힘을 쓰고 거두는 순간이 섬전처럼 빨라야 한다.

최소한 뇌정도법의 변초보다는 빨라야 한다. 그래야 다른 변초를 잡아낼 수 있다.

아걸은 실제로 뇌정도법을 눌렀다. 진기 전환 속도가 뇌정도법보다 빨랐다.

아걸은 도법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진기를 변화시킨다. 진기를 거두고 내침에 있어서 가히 섬전같은 속도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힘이 빠져 있어야 할 칼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힘이 잔뜩 들어간 칼을 위로 쳐올리려고 하다가 오히려 당한 것이다.

“무형도…… 좋군요. 노가주님께서 제 칼에 이름을 지어주셨으니 감사히 쓰겠습니다.”

“무형도로 말인가?”

“네. 제 칼, 제 일홀도는 무형도라고 하겠습니다.”

아걸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도법이 없는 칼, 이것이 무형도다.

도법이 없다면 일홀문주란 단지 칼을 잘 쓰는 칼 귀신에 불과한데, 그래도 좋은가?

그러면 어떤가. 그것이 천하제일도다.

도법을 사용하건, 선천적인 재질을 타고났건 상관없다. 태어날 때부터 빠른 몸을 부여받았다면 그에 걸맞은 무공을 쓰면 된다. 타고난 싸움꾼도 있지 않나. 그런 자는 굳이 무공을 배우지 않아도 한 지역의 왈패 노릇은 할 수 있다. 웬만큼 무공을 배운 자까지 때려눕힐 수 있다.

싸우는 데 무공이 왜 필요한가?

무공은 싸우는 도구일 뿐이다. 칼, 검, 창, 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병기와 무공이 모두 싸우는 도구다. 싸움이 없을 때는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심신 수련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싸우기 위해서 존재한다.

타고난 몸놀림만으로도 사냥할 수 있다. 하지만 활을 연습하고, 창을 수련한다. 검술도 배운다. 더 사나운 맹수를 사냥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냥감을 잡기 위해서.

사냥이 목적이다.

활쏘기, 창 던지기, 칼 쓰기는 사냥 도구다.

일홀문도라고 해서 반드시 자신만의 일홀도를 창안할 필요는 없다.

자신처럼 삼십육 문주의 도법을 구사해도 좋다. 아니, 서른여섯 가지 무공 중 하나만 집중적으로 수련해도 된다. 그래서 전대 문주와 같은 무공을 갖춘다면 훌륭한 일홀문주이지 않나.

삼십육 문주는 이미 세상이 인증했다.

그들의 무공을 그들처럼 펼쳐낼 수 있다면 이미 세상이 인정한 일홀문주이지 않나.

타 문파의 무공을 사용하면 어떤가.

소무정가의 뇌정도법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뇌정도법을 수련해서 천하제일도의 명성을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일홀도가 된다.

일홀도는 도법이 아니다. 칼도 아니다.

일홀도는 사람이다.

몸 자체, 사람이 칼이 되어야 한다.

도법이란 지엽적인 것, 일홀문의 일홀도는 최강의 격투 인간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 일홀문은 진작에 해답을 내놓았다. 일홀도가 무엇인지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걸 자신도 이미 알고 있다.

일홀사도!

일홀문도는 항상 죽음의 길을 가라고 지시한다. 강한 자를 만나면 즉시 싸우라고 말한다. 그때를 대비해서 항시 몸과 칼을 수련해 놓으라고 한다.

계속,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일홀사도가 바로 일홀도다.

노가주가 이름 지어준 무형도가 일홀사도다. 격투 이간이 사용하는 무공이면 모두가 일홀도다.

그러면 제자를 거두게 되면 어떤 칼을 전수해 줄 것인가?

전수해 줄 것이 없다. 도법을 전수해 주는 것은 최강의 격투 인간을 만드는 방법이 아니다. 제자의 자질이나 성품 그리고 신체 특징에 맞춰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무공을 찾아준다. 그리고 스스로 수련케 한다.

이것이 사부가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부는 자신에게만은 의무를 소홀히 했다.

사부는 자신에게 맞는 무공을 찾아주었어야 한다. 그러면 훨씬 빠르게 수련해 냈을 것이다. 진작에 일홀도라고 칭할 만한 무공을 찾아냈을 것이다.

가장 자신 있게 적을 쓰러트릴 수 있는 도법을.

사부는 자신에게 맞는 무공을 찾아 줄 수가 없으니 삼십육 문주의 일월도를 모두 전수한 것이다. 너 스스로 네게 맞는 무공을 골라보라는 주문이다.

반면에 사형들에게는 사형들의 신체 특징이나 자질에 맞는 도법을 골라주었다.

사형들에게는 굳이 일홀도를 창안하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주어진 무공들을 수련하고, 종합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무공을 찾아낸 것이다.

그것이 일탄십도요, 화염도다.

화염도와 일탄십도 중 어느 칼이 더 강하느냐 하는 물음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화염도는 둘째 사형에게 최적화된 무공이다. 둘째 사형이 일탄십도를 수련했다면 그만한 위력을 선보이지 못했다. 물론 대사형 서리가헌도 마찬가지다.

아걸은 자신이 사부에게 특별히 선택받았다고 느꼈는데 사실은 사형들이 선택받았던 거였다.

사부는 사형들에게는 사부의 역할을 다했다. 오히려 자신에게 하지 못했다. 물론 시간만 충분하게 주어졌다면 무공 몇 가지 골라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겠지만.

아걸은 일홀도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일홀도는 내가 수련한 무공이다. 내가 아는 무공을 수련해서 나 자신을 최강의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일홀도는 도법이 아니다. 최강 무인을 말한다.

“후후!”

아걸은 웃었다.

이제야 휴식이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비로소 허리에 찬 반철도가 마음에 든다. 반철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휴식이 끝났다.

방황도 끝났다.

어떤 칼이 일홀도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미 자신이라는 자체가 일홀도다.

저벅! 저벅!

아걸은 서산을 걸었다.

산길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비무 소식을 듣고 아침부터 산에 올라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대다수가 무인이다. 하지만 그들은 산길을 내려가는 청년이 아걸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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