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19화 (519/600)

第百四章 시산혈해(屍山血海) (4)

펑! 펑!

야밤에 폭죽이 솟구쳤다.

처음에 솟구친 폭죽은 노란색이다. 두 번째 솟구친 폭죽은 하얀색이다.

터지는 모양은 두 개가 똑같다. 한 줄기로 쭉 솟구치다가 부챗살처럼 확 퍼진다. 그리고 작은 물방울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눈송이 날리듯이 아름답게.

두 폭죽의 모양이 같으니 한 사람, 혹은 한 무리가 터뜨린 거로 보인다. 한 사람이 아니라 한 무리일 것이다.

첫 번째 폭죽과 두 번째 폭죽 사이에 상당한 간격이 있다.

시차가 아니라 거리 차가 벌어진다. 대략 오십 장에서 육십 장 정도 떨어져 있다.

사귀는 배를 타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이게?”

그중 한 명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지를 결박당했는데, 그러고도 변수가 남았나? 아니면 제삼자?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럼 이게 도대체…….”

복면인 네 명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허공에 솟구친 폭죽은 팔탈 멸절을 말한다.

노란색은 아주 큰 위기가 닥쳤다는 뜻이고, 하얀색은 사건이 종결됐다는 뜻이다. 팔탈이 멸절되어서 더는 보고할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하얀 폭죽을 날린다.

믿어야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팔탈은 멸절당했다.

누가 그들을 멸절시켰나?

팔탈을 공격할 만한 무인이나 집단이 복주 땅에 들어섰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다.

팔탈을 죽일 만한 무인은 많다. 하지만 팔탈이 작심하고 숨으면 그들을 찾아낼 사람은 많지 않다.

보자마자 일격에 박살을 내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폭죽은 터지지 않는다. 실제로 유음류가 창건된 이래, 하얀 폭죽이 터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팔탈은 유음류에서도 손꼽는 암살자다.

두주와 적면, 염정 이 세 사람과 팔탈, 사귀 열두 명을 일컬어서 유음십오야라고 부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기 어둠이 될 만큼 살법에 능하다.

팔탈이 살법으로 응수하면 중원 무림은 정말 힘들어진다.

슷! 스으읏!

놀라움이 크게 일어났지만, 행동 또한 빨리 이뤄졌다.

배를 타려던 사귀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들은 빠르게 화물 창고로 달려갔다. 조금 전까지 팔탈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 장소로 움직였다.

뚝! 뚝!

반철도에서 핏물이 떨어졌다.

아걸은 복면인들을 죽이지 않았다.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으로 칼을 쳐내지 않았다.

아걸은 이들을 아예 멸살시킬 생각으로 칼을 쳐냈다. 이 땅에서 악종을 뿌리 뽑는다는 심정으로 반철도를 휘둘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이들은 악마다. 사람의 탈을 쓴 마귀, 짐승들이다.

아걸은 순식간에 수십 명이나 되는 동영 인자를 죽였지만,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걸의 눈에는 힘없이 쓰러져서 죽은 아이들의 모습만 비쳤다.

동영 인자와 아이들이 겹쳐서 쓰러져 있는 것조차 못마땅하다. 살인자와 피해자가 왜 같은 장소에 누워 있어야 하나. 죽어서도 동영 인자라고 하면 치가 떨릴 텐데.

‘잘 가라! 내세에서는 이렇게 죽지 말고.’

아걸은 눈을 감고 힘없이 떠나간 어린 영령들을 향해 명복을 빌었다.

아이들이 누군지, 어느 집 자식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저 아이들의 부모는 자식이 납치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자신의 살도는 밤에 펼쳐졌다. 어둠이 짙게 깔린 후부터 인자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저들이 아이를 납치한 것은 자신의 살법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아이들이 납치된 것도 밤이다. 자신이 창고로 달려오기 직전에 일제히 납치가 이루어졌다.

거의 모든 부모가 자식이 자는 줄 알 것이다.

내일 아침에 이 거리로 나와서 죽어 있는 자식을 보면 얼마나 비통할까.

아이들은 정말 죄 없이 죽었다.

무인이라는 자들이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다.

스읏!

아걸은 몸을 돌렸다.

용서하지 않는다!

앞으로 유음류와는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하지 않을 것이다! 유음류를 사용하는 자, 모두 죽는다!

저벅! 저벅!

아걸은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아직도 부두에는 황돛을 단 배가 있을 것이다. 배를 몰 사람은 죽었지만, 배는 남아 있다. 없어도 상관없다. 작은 소선 한 척 끌어내서 대만도로 넘어간다.

사공? 사공은 필요 없다. 사공이 있으면 오히려 짐만 된다.

누가 되었던, 중원 사람이라면 이유 없이 저들의 인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신과 아는 사람이든, 알지 못하는 사람이든 철저히 배제한 채 움직인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싸워야 한다.

쒜에에엑!

아걸이 신형을 쏘아냈다.

척척! 척!

아걸과 사귀는 널찍한 부두 한복판에서 만났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끌린 듯, 그들은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 오는 길과 가는 길이 겹쳤겠지만, 깊은 밤에 한 장소에서 만난다는 게 보통 인연이 아니다.

그렇다. 적어도 삶과 죽음을 나눠줄 정도로 지독한 인연이다.

파앗!

사귀는 아걸을 보자마자 즉시 움직였다. 공격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감쪽같이 사라졌다.

스읏!

사귀가 어둠과 완전히 동화되어서 사라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떠한 기척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진기가 감지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부터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증발해 버렸다.

쿵!

아걸은 발을 들어서 땅바닥을 찍었다.

땅의 단단함을 살펴본 것인데, 어지간히 힘을 주지 않고는 흠집도 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생각한 대로다. 부두에는 수많은 사람이 오간다. 많은 화물이 배에 실리고 내려진다. 수십 명이 달라붙어야 할 정도로 무거운 짐도 있다. 당연히 땅이 단단하게 다져질 수밖에 없다.

비가 오거나 폭우가 쏟아지더라도 흙이 밀려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돌멩이처럼 단단해.’

땅이 이토록 단단하다면 토형술을 쓸 수가 없다. 주변에 건물이 없으니 금형술도 쓰지 못한다.

그러면 변형된 목형술인가? 나무와 똑같은 색의 위장포를 뒤집어쓰고 숨은 것인가? 지금은 밤이니 검은 위장포를 뒤집어썼다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

유음류의 오대신술은 모두 은신술과 연관되어 있다.

공격법이 아니고 은신술이다.

아걸은 상대방이 어떤 신술을 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즉시즉발(卽是卽發), 공격이 일어나면 즉시 반격한다.

츠츠! 츠츠츳!

진기를 일으켜서 복면인 네 명을 탐색했다. 하지만 동영 인자들은 전혀 기척을 드러내지 않았다.

팔탈처럼 완전히 숨었다.

‘팔탈과 이놈들…… 서로 말을 놓았지? 그러면 동료라는 뜻이군. 같은 위치야.’

사귀는 팔탈 정도의 무공을 지녔을 것이다. 취화원으로 치면 구곡주 정도 되는 무공이다.

무공으로 보면 능히 상대할 수 있다. 문제는 살법이다. 이들이 어떤 살법을 쓰느냐에 따라서 상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아걸은 팔탈이 쓴 수법에 굴복했다. 팔탈이 독단에 의존하지 않고 검을 썼다면, 아이들을 죽이기 전에 팔다리의 근맥부터 잘라냈다면 그 싸움은 팔탈이 이겼다.

동영 인자와의 싸움은 무공이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무공에 기반한 싸움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공외적인 요소들이 상당히 많이 작용한다.

츠으읏!

아걸은 반철도에 집중했다.

몸과 칼이 하나가 되었다. 도신일체를 이뤘다. 그리고 주변에 흐르는 기류를 탐지했다.

상대방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한 번 시도해서 파악되지 않는 자들은 두 번, 세 번 시도해도 역시 발견되지 않는다. 그럴수록 조바심만 일어난다. 왜 이놈들을 찾아내지 못할까 하고.

저들은 가만히 있는데 자신 스스로 조급함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 된다.

그래서 아예 탐지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류를 읽는다. 기류가 변하면 칼도 따라서 흐를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공격하는 법은 없어. 그러니 움직여야지. 너희가 먼저 움직이게 될 거야.’

아걸은 편안한 마음으로 칼에 모든 의식을 담았다. 몸은 물론 영혼까지도 칼과 하나가 되었다.

편안하다. 밤바람이 선선하다.

스스스!

숨었던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숨어있기만 하면 공격이 안 된다. 상대를 죽이고 싶다면 어떻게든 움직여야 한다.

암습을 가해야 하고, 아걸이 모든 길목을 차단하고 있고…… 공격할 틈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가?

아니다. 저들은 숨어있는 동안에 모종의 준비를 했다. 기척을 전혀 흘리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지금은 준비가 완벽하게 갖춰졌기 때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걸과 사귀는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다.

양쪽 모두 서로를 처단하고 싶어 한다. 뒤로 물러선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스읏!

아걸이 반철도를 들어 올렸다.

사귀는 서둘지 않았다. 천천히, 뭐 그리 급하게 서두냐는 식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우선 동서남북 사방을 점했다.

차분하게 움직여서 완벽한 방위를 선점했다. 물론 숨어있는 동안에도 사방을 완전히 점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미세한 각도까지 조정하고 있다.

아걸이 그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스슷! 스으읏! 스슷! 스으읏!

저들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섰다.

오른발을 반보 옮기고 왼발을 그만큼 끌어당긴다. 다시 오른발을 앞으로 반보 내딛고 왼발을 끌어당긴다. 검을 단단히 곧추세운 채 조금씩 다가선다.

“아!”

아걸은 탄식했다.

상대가 흑의를 읽고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눈동자는 볼 수 있다. 눈동자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불길을 담은 악마의 눈빛…… 후후! 그런가.’

이런 눈빛, 예전에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들과 가장 비슷한 눈빛은 일전통 야규가 동원한 인간 폭탄들에게서 봤다. 화약을 걸머멘 인간 폭탄 열 명을 한 줄로 꿰어서 걷게 했는데…… 그들 눈빛이 동영 인자처럼 시뻘겋게 번들거렸다. 머릿속이 완전히 세뇌되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건가? 후후!’

아걸은 눈살을 찌푸렸다.

눈동자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진기를 과도하게 끌어 올리면 혈맥이 팽창한다. 팽창된 기운이 눈에 쏠리면 눈동자의 실핏줄이 터진다.

흰자위가 물감 칠한 듯 시뻘겋게 변한다.

말 그대로 혈안이다. 그러니 혈안은 사실 별것 아니다. 눈동자의 핏줄이 터진 것뿐이다.

정작 무서운 눈빛은 분노가 담긴 눈빛이다. 검은 눈동자는 보이지 않고 하얀 흰자위만 번뜩이는 눈…… 살기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도 혈안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눈빛에는 두 가지가 모두 담겨 있다.

머리는 세뇌되어서 오직 죽음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진기는 자신들의 한계치를 넘어섰다. 육체가 평소 이상으로 단단해지고, 크게 부풀었다.

폭혈공(爆血功)이다.

전신 경맥을 가득 부풀려서 일시에 터뜨린다. 그러면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자신의 살과 뼈가 암기로 변해서 쏟아져 나간다. 동귀어진 수법이다.

예전에도 이런 수법은 여러 번 만났는데.

자신을 죽여서 상대를 죽인다. 미련한 수법이다. 상대가 빠져나가면 자신만 죽는다. 야규가 보낸 인간 폭탄들처럼.

이들은 동서남북 사방을 점했다. 자신의 몸을 터트리면 그 여파는 사방 이십여 장을 뒤덮는다. 최소한 이십여 장이 죽음의 땅으로 변한다.

유음류의 오대 신술 중 세 가지를 봤다. 목·금·토…… 아직 두 가지가 더 남아 있다.

수형술(水形術)은 물에서 쓰는 살법이다.

보지는 않았지만 짐작되는 게 있다. 적랑대에도 물에서 쓰는 살법이 있으니까. 아마도 숨을 오랫동안 참을 수 있는 잠형술(潛形術)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하나, 화형술(火形術)은 도대체 무엇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름만 들어서는 어디서 어떻게 쓸 것인지 짐작되지 않는다.

불을 쓸 수 있는 장소이거나, 불 종류에 도움을 받는 살법이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이다. 겨우 자신의 경맥을 터트려서 상대와 함께 죽는 게 오대신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차라리 목형술, 금형술, 토형술만 선보였다면 그래도 동영 인술은 인정해 주었을 텐데.

이들과 일전통 야구와 다를 게 무엇인가.

파앗!

아걸의 눈에서 살광이 번뜩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영 유음류…… 이자들은 살아서 돌려보내면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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