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五章 대해사투(大海死鬪) (2)
슈우웃!
‘좋지 않아!’
어떤 느낌이 들었다.
평화가 깨진다. 이해하지 못할 불협화음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당연한데, 억지로 평화를 깨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깨알처럼 총총히 박혀 있는 별들, 환하게 빛나는 달, 달빛에 반사된 물결……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리고 이 밤, 아걸은 죽음을 향해 걸어갔다.
시간은 죽음이다.
시간만 손대지 않으면, 아걸을 이 상태로 버려두면 그는 틀림없이 죽는다.
한데 이 평화를 깨는 느낌이 불현듯이 일어났다.
‘지독하군!’
아걸은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의 몸은 어느새 허공으로 튕겨 오르고 있었다.
두 손으로 뗏목을 힘껏 밀쳤다. 두 발을 힘껏 찍어눌렀다.
신형이 탁! 허공으로 퉁겼다. 순간,
꽝!
뗏목 밑에서 거센 일격이 터졌다.
일격은 매우 강렬했다. 단숨에 뗏목을 산산 조각냈다. 뗏목 한가운데 실어놓은 물통이 가루가 되어서 흩뿌려졌다. 바닥에 나뭇조각들이 조각조각 흩어져 날렸다.
‘저건!’
아걸은 상당히 큰 충차(衝車)를 봤다.
충차는 공성전에서 성문을 부수기 위해 사용되는 공성 병기다.
장방형의 수레 위에 당목(撞木)을 설치한 당차(撞車)가 기본 형태다.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서 당목에 철첨(鐵尖)을 붙이기도 한다. 병사를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덮는다.
공성전에 사용되는 충차는 십여 명, 최소한 대여섯 명이 함께 힘을 써야 할 정도로 크다. 성문을 부수는 용도이니 작게 만들어서는 소용이 없다.
아걸이 본 것이 바로 그 충차다.
뗏목을 부수고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는데…… 육지의 충차보다는 다소 작지만, 그래도 여전히 크다. 당목에 철첨을 붙여서 파괴력도 높였다.
지금 바닷속에는 최소한 네 명 이상이 힘을 모으고 있다.
“후웃!”
아걸은 쪼개진 나무 조각 중 조금 넓은 것을 골라서 사뿐히 내려섰다.
‘바닷속에서 충차를 써? 이게 가능해?’
평화를 깨는 느낌, 날카로운 소리…… 충차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였다.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소리였다. 코끼리가 조용히 다가와서 들이치는 듯했다.
아걸은 작은 나뭇조각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두 귀를 쫑긋 곤두세웠다.
구우우욱!
소리가 또 울린다. 고요함을 깨는 이질적인 소리다.
타악!
이번에도 즉시 나뭇조각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바닷속에서 울리는 소리가 마치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
퍼억!
아걸이 발을 딛고 섰던 나뭇조각이 정확히 가격당했다. 큼지막한 충차가 불쑥 솟구쳤다가 쑥! 들어갔다. 고래가 물을 뿜기 위해서 솟구치는 것처럼.
아걸은 허공에 떠오른 즉시 주위를 살펴봤다.
역시 짐작대로다. 저물녘에 뒤로 쭉 물러섰던 배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다.
그럴 것이다. 이들이 아무리 뛰어난 잠영술을 지녔어도 수백 장을 헤엄쳐 올 수는 없다. 큰 배로 일정 거리까지 다가오고, 다시 소선으로 갈아타서 은밀히 접근한 후에, 정작 공격할 때만 잠영술을 사용한다.
아걸은 이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큰 배가 접근하는 소리도, 소선이 다가오는 소리도, 그리고 잠영술로 바닷속으로 헤엄쳐 오는 소리도.
완벽한 움직임이다.
스읏! 척!
아걸은 다시 다른 나뭇조각을 골라서 내려앉았다.
이런 일을 언제까지 반복할 수 있을까? 벌써 부서진 뗏목이 여기저기로 떠내려가고 있다. 또다시 공격을 받으면 내려앉을 나뭇조각조차도 없다.
그러면 바다에 빠진다.
아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동영 인자는 이런 무리수를 쓴 것일까? 그저 가만히 뒤따라오기만 하면 되었는데. 왜 굳이 자신들이 손을 써서 바다에 빠트리려는 것일까?
뗏목으로는 바다를 헤쳐갈 수가 없다.
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배에는 노라도 있다. 힘을 써서 배를 몰고 갈 수가 있다. 돛을 단 범선이라면 확실히 바다를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배를 부수고, 뗏목을 만들게 한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러면 이제는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시간은 저들 편이다. 아걸은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그저 갈증과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굳이 뗏목까지 부수면서 바다에 빠트린다? 갈증에 시달려서 죽는 것조차 보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지금 당장 숨을 끊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것은 아걸에게도 기회였다.
눈앞에 소선이 있다. 뗏목보다 훨씬 안전하고, 노까지 저을 수 있는 배가 있다.
저들은 절망 상태에 빠진 아걸에게 최고의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슈우우웃!
다시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저들은 아걸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피고 있다. 그가 나뭇조각에 의지해서 서 있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아걸을 반드시 바다에 빠트리겠다는 의도다.
첨벙!
아걸은 허공으로 솟구치지 않고 오히려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렇게 하면…… 바닷속에 있는 인자들이 어떻게 할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물러날까? 아걸이 언제까지고 바다에 떠 있을 수가 없으니. 아니면 계속 공격해 올까?
‘왜 이런 무모한 짓을?’
아걸은 바다로 뛰어든 후에도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어가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괴롭힐 이유는 전혀 없었다.
촤아아악!
아걸은 물살을 가르면서 달려드는 큼지막한 충차를 보았다.
‘기어이 숨을 끊겠다는 의도!’
동영 인자들이 물에 빠진 자신을 공격해 온다.
몸을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바다에 빠졌으니 길어도 한두 시진만 지켜보면 시신을 건져갈 텐데…… 기어이 숨을 끊어놓겠단다.
이런 행동은 확실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짓이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늘 위험부담을 가중시킨다. 죽음이 확실할 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켜보는 것이 상책인데…… 이렇게 맞싸우면 아걸에게도 기회가 생긴다.
츄아악!
아걸은 몸을 틀어서 충차를 피했다.
충차는 무게가 상당해서 다루기가 무척 힘들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매우 가벼워 보인다. 방향 전환도 매끄럽고 몸을 치는 속도도 눈부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충차를 사용하는 자가 한 명이라는 점이다.
장정 서너 명 정도가 힘을 합쳐서 쓸 줄 알았는데 딱 한 명이 공격해 오고 있다.
츄아악! 촤악!
동영 인자가 충차를 휘돌렸다.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아걸을 정확히 겨냥해서 단번에 꿰뚫어 버리겠다는 듯 달려들었다. 창보다도 훨씬 긴 충차가 냅다 쏘아져 왔다.
아걸은 물속에서 몸을 눕히며 날아오는 충차를 피했다.
충차도 빠르지만, 아걸도 빠르다. 아걸도 웬만한 잠영 실력은 갖추고 있다.
츄아아아악!
충차가 앞가슴을 스치며 지나가는 듯했다. 순간!
꽝! 꽈앙!
충차가 거대한 폭음을 일으키며 터졌다.
그 순간, 아걸은 묵직한 돌멩이를 매단 사람처럼 단숨에 오 장이나 밑으로 떨어졌다.
충차가 철수가 날아오는 찰나에 반짝이는 불빛을 봤다.
물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유리화(琉璃火)다. 투명한 유리관 속에서 심지가 타들어 간다. 분명히 충차 안에는 물에 젖지 않도록 밀봉된 화약이 들어 있을 것이다.
충차 자체가 거대한 암기 덩어리다.
순간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위험!’이라는 느낌이 든 순간, 아걸은 바다 밑으로 뚝 떨어졌다.
꽈아아앙!
충차가 폭발하면서 빨간 불꽃을 퉁겨냈다. 검은 바다에 빨간 불꽃이 피어났다.
아걸은 충차 파편이 날아오기 전에 물결의 폭풍부터 맞았다.
훅! 밀려온 물살이 몸을 두들겼다. 철판으로 후려친 듯 강렬한 타격이 몸을 덮었다.
펑!
아걸은 물살을 얻어맞고, 바다 밑으로 쭉 가라앉았다.
물속에서는 물살로 후려치는 공격도 매우 유효한 타격이 된다. 수중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짐작도 하지 못하는 공격이라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지금처럼 거센 폭발로 밀려온 물살은 들소가 들이받는 충격만큼이나 강하다. 한순간에 혼절할 만큼 타격이 강하다. 그리고 물속에서 혼절하면…… 끝난다.
아걸은 수중전을 안다.
중원에도 물속을 전장으로 삼는 살수 집단이 있다.
수룡방이 대표적이다. 살수 집단은 아니지만 장강수로십팔채도 물싸움에 능하다. 그리고 그들은 적랑대와 앙숙이다. 적랑대라면 불문곡직 죽인다.
아걸은 반드시 물을 알아야만 했다.
‘크으!’
아걸은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꾹 눌러 참으면서 물 위로 솟구쳐 올랐다.
물속에서 잠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숨을 쉬어야만 산다. 숨이 막히면 정신을 잃는다. 두통이 치밀거나 띵한 울림이 일어나면 위험신호다.
동영 인자는 아걸이 물 위로 솟구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촤아아악!
인자가 상어처럼 빠르게 공격해 왔다.
상대는 물속에서 쓰기 편한 오수조(烏獸爪)를 양손에 끼었다.
갈고리처럼 생긴 수투(手套) 병기다. 손톱 길이가 일 척에 이르며, 물살을 가르기 쉽도록 부드럽게 휘어져 있다. 손등은 철갑으로 보호한다.
이것이 유음류의 수형술인가?
아걸은 진기를 일으켜서 반철도에 주입했다. 그리고 반철도로 상대를 겨눴다.
어떤 무공을 펼칠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몸에 익은 무공이 저절로 튕겨 나간다.
타앙!
사대문주의 탄궁도가 쏘아졌다.
아걸이 신형을 퉁겨내어서 달려든 것은 아니다. 탄궁도를 펼치기는 했지만, 반철도에 깃든 진기만 튕겨냈다. 자신이 당한 것처럼 물살로 공격한다.
펑!
반철도에서 작은 울림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즉시 물살이 빠르게 던져졌다.
물살을 가르는 한 줄기 화살!
슈우웃!
동영 인자가 몸을 돌려서 물살 공격을 피해냈다.
아걸이 전개한 탄궁도는 지상에서와 전혀 다르지 않다. 무척 빠르다. 도법을 전개했지만, 마치 활을 쏘아낸 듯하다. ‘아!’ 하는 순간 몸에 꽂힌다.
그런 칼을 상대는 매우 편하게 피했다.
확실히 물속에서는 아걸보다 상대가 한 수 위다.
아걸은 더는 숨을 참지 못하고 바다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숨이 한도까지 찬 데다가 진기까지 쓰는 바람에 더는 참을 수 없게 됐다. 숨이 너무 가빠서 입을 벌리고 아우성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다.
수중전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이런 상태에 빠지면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물 위로 솟구쳐서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위만 보이고 주위는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아걸도 상대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슈웃!
오수조가 날아왔다. 좋지 않은 느낌이 와락 일어났다.
아걸은 상대방을 보지도 않은 채 몸을 비틀었다. 솔직히 위험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오직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퍼억! 파앗!
옆구리가 터져 나갔다.
몸에서 터져 나간 피가 바닷물을 물들이는 게 느껴졌다.
푸아아앗!
아걸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거칠게 숨을 쏟아냈고, 급히 숨을 들이켰다.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아찔했던 머릿속이 한결 개운해졌다.
촤아아악!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놈은 숨도 안 쉬나? 충차를 던질 때부터 계속 물속에 있었는데. 숨 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걸은 급히 자맥질해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상대가 보인다. 다가온다.
스읏! 타앙!
반철도를 들어서 오수조를 막았다. 하지만 상대는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까각!
오수조의 갈고리가 반철도를 낚아챘다. 손톱과 손톱 사이로 반철도를 낀 후, 옆으로 비틀었다.
순간적으로 반철도가 옆으로 밀렸다.
슈웃! 퍽!
아걸은 또다시 복부를 베였다.
‘크윽!’
상처에서 심한 고통이 치밀었다.
상대는 서둘지 않는다. 단숨에 목숨을 끊을 생각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생명을 갉아 먹는다.
‘후우!’
아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