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五章 대해사투(大海死鬪) (3)
슈우우웃!
동영 인자가 시커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빛이 스며들지 않는 곳까지 자맥질을? 저놈은 숨도 쉬지 않나? 물고기도 아니고.’
유음류의 수형술은 상당히 뛰어나다. 동영 인자의 잔인함은 용서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찾아낸 오대신술만큼은 아낌없이 칭찬해 줄 수 있다.
아걸은 상대가 물 밑으로 내려간 사이, 즉시 위로 솟구쳤다.
상대가 물러설 때 숨을 쉰다. 이 기회를 놓치면 상대가 원하는 싸움을 하게 된다.
“하아! 하아!”
아걸은 수면 위로 오르기 무섭게 거친 숨을 쏟아냈다.
상처를 입어서인지 숨이 더욱 거칠어졌다. 급히 진기를 휘돌려서 호흡과 진기를 조율했지만, 답답한 가슴이 뚫리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촤아아앗!
상대가 또 공격해 왔다.
아걸은 반철도를 수면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왼손으로 반철도를 힘껏 쳤다.
타앙!
반철도를 들고 있던 오른손이 바닷속으로 쑥 들어갔다. 반대로 왼손은 반철도의 탄력에 힘입어 위로 솟구쳤다. 오른손은 아래로, 왼손은 위로.
파파팟!
아걸은 빙글 휘도는 양팔을 쫓아서 신형을 휘돌렸다.
잠시에 불과하지만, 신형이 수면 위로 솟구쳤다. 동영 인자의 공격은 반철도에서 퉁겨진 탄궁도가 마주쳐갔다. 아니, 싸움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단은 상대의 공격을 피해서 몸을 빼내는 데 온 신경을 기울였다.
슈웃!
몸이 떨어졌다. 바다로 다시 빠지기 직전, 반철도에 진기를 실어서 도신(刀身)으로 수면을 쳤다. 칼과 수면 사이의 거리를 느끼고, 일순간에 치고 들어갔다.
파앙!
공기가 압축되었다가 터졌다.
보통이라면 반철도는 물속으로 쭉 빨려들어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철도의 넓은 옆면이 정확하게 물을 때렸다. 칼과 물이 부딪히며 충격이 일어났다.
슈웃!
아걸은 물이 쳐내는 탄력에 힘입어서 다시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상대방이 타고 온 배, 작은 소선에 내려섰다. 아니다! 내려서자마자 다시 급히 신형을 튕겨 올렸다.
배에 내려서는 즉시 배에 가득 실린 화약을 봤다.
기다란 심지가 타들어 가고 있다.
동영 인자는 아걸이 배에 올라탈 순간을 정확히 계산해냈다. 물속에서 공격을 받으면 이런 식으로 배를 탈취하려고 할 것이라는 걸 예측했다.
아걸이 배에서 빠져나와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 순간,
꽈앙! 꽈아앙! 꽈앙!
소선이 거대한 폭음을 일으키며 터졌다.
“후웁!”
아걸은 큰 숨을 들이켜며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수면 위에 몸을 의지할 곳이 없다. 물 위로 탈출할 방법은 완전히 끊겼다.
바닷속에서는 여전히 동영 인자가 공격해 온다. 잠시도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물속 인자와 싸워서 죽이는 수밖에.
반철도를 곧추세우고 도배를 힘있게 쳤다. 진기를 왼손과 반철도에 모으고 왼손에 실린 진기로 반철도에 실린 진기를 퉁겨냈다. 물속이기에 가능한 싸움 방식이다.
퍼어엉!
물이 진동을 일으켰다.
물살이 갈라진다. 도기가 물살을 베며 적에게 다가간다.
상대는 몸을 비틀어서 도기, 물살 공격을 피해냈다. 이런 공격에는 매우 익숙한 듯 피하는 움직임이 무척 부드럽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잡지 못하겠어.’
츄우웃!
아걸은 곧장 자맥질해서 위로 솟구쳤다.
적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오수조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아걸도 수면 위로 솟구칠 생각은 없었다.
아직은 숨이 남아 있다. 작은 숨으로 큰 움직임을 일으킬 정도는 된다.
아걸도 물속 싸움이라면 양보할 생각이 없다.
물론 이자를 만나기 전의 이야기다. 유음류 수형술이 이토록 뛰어날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물고기가 따로 없지 않나. 물 위로 솟구치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이 자는 정말 상대하기 까다롭다.
적은 밑에서 위로 올라오고, 자신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지상 싸움에서는 위에서 내려치는 칼이 받아 올리는 칼보다 월등히 유리하다. 낙하 순간을 잘 이용하면 가볍게 내리쳐도 전력으로 내리친 힘과 버금간다. 하물며 진기까지 보태면 웬만한 보검쯤은 단숨에 짓이겨 버린다.
물속 싸움에서는 그런 힘을 이용할 수가 없다. 내리치는 힘과 쳐올리는 힘이 거의 비등하다. 그런 힘보다는 차라리 오수조의 장점이 훨씬 부각된다.
아걸은 빛을 이용하고자 위로 솟구치는 척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 어둠 속에 있는 적을 본다. 적에게 집중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는 수면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쳐다보게 된다.
이런 점을 이용하고자 한다.
위에서 떨어지는 빛은 밝지 않다. 기껏해야 달빛과 별빛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물속에서 보면 마치 태양이 이글거리는 것처럼 밝게 보인다.
촤아악!
위로 솟구치던 몸이 다시 돌려서 적을 향해 마주 쏘아갔다.
상대도 피하지 않고 오수조를 쳐왔다. 오수조로 반철도를 낚아챈 적이 있어서인지 자신 있게 부딪쳐왔다.
물속에서는…… 아걸의 일홀도로 제 위력을 드러내지 못한다.
탄궁도는 지상에서처럼 빠르지 않다. 수신도는 허점을 수없이 드러낸다. 유성비도 역시 빠르지 않다.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속도, 힘, 강약 등 모든 요소가 다르다.
아걸이 제아무리 빠르게 반철도를 쳐내도 물속에서는 매우 느리게 움직인다.
물에 익숙한 상대방이 이런 움직임을 겁낼까.
차왁! 차르륵!
이번에도 오수조가 정확히 반철도를 낚아챘다. 순간,
가가각!
반철도가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비틀렸다. 도신이 옆으로 살짝 누워지는 듯했다. 하지만 반철도에는 전신 진기가 함축되어 있었다. 도신일체로 쳐낸 칼이다.
아걸이라고 오수조의 용도를 모를까. 이런 순간이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겠나. 오수조가 반철도를 칼날에 끼는 순간, 반철도는 전력으로 비틀어졌다. 오수조를 수수깡처럼 분질러 버렸다.
슉!
다른 손에 끼고 있던 오수조가 가슴을 찍어왔다.
아걸은 몸을 비틀이며 손을 뻗어서 상대방의 옷을 낚아챘다.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어서 미끄럽기 이를 데 없었지만, 소매 끝자락을 간신히 잡았다.
‘웃!’
상대방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걸이 옷을 잡을 줄은 생각을 못 했던 듯하다. 가죽으로 만든 옷은 미끄러워서 잡기가 쉽지 않다. 어지간한 눈썰미가 아니고서는 헛손질만 하고 만다. 아니, 어느 누구도 미끈미끈한 잠수복을 잡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느니 차라리 칼로 베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걸은 옷깃을 낚아채는 순간, 바로 반철도를 쑤셔 넣었다.
상대방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빗나간 오수조를 휘돌려서 쓰윽 옆구리를 찔렀다.
푹! 푸욱!
서로가 서로의 몸을 찔렀다.
쓱! 쓰읏!
아걸은 반철도를 뽑아냈다. 상대도 오수조를 뽑았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찌르려고 한다. 아걸은 옷소매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여기서 서로 끝장을 내고자 한다.
푸욱!
아걸이 먼저 반철도를 찔렀다.
물속이고, 상대가 훨씬 물에 익숙하지만, 반철도에 당한 상처가 무척 심하다.
반철도는 뭉툭한 강도다. 첫 칼이 늑골을 으스러뜨리고 들어가서 내장을 흩어놓았다. 오수조에 찔린 것보다 두 배는 강한 충격이 전해졌을 것이다.
아마도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것이다.
“끄륵!”
두 번째 타격에 상대가 입을 벌렸다.
입에서 쏟아져나온 공기가 꼬르르륵! 소리를 내며 위로 떠올랐다.
상대도 오수조를 다시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찌르지 못했다. 아걸의 두 번째 일격이 너무 강력해서 몸이 휘청 반월을 그리며 휘어졌다.
즉사다.
‘여자!’
아걸은 상대의 죽음을 확인한 순간에서야 자신의 손에 죽어간 적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남자의 체형이 아니다. 작고 아담하다. 몸의 굴곡이 뚜렷하다. 무엇보다도 가슴이 봉긋하게 튀어나와 있다.
왜 적이 여자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을까? 육지 같으면 당장 알아챘을 텐데. 그만큼 여인이 강했다. 또 이만한 적이면 당연히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살인!
여인을 죽이기는 처음이다.
칼을 들었어도 일반인과 여인은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여인을 죽였다.
여인이라는 사실을 미리 밝혔다면 죽이지 않았을까? 그래도 죽였을 것이다. 여인이 자신을 놔주지 않았을 테니까. 이 싸움은 여인에게 유리했으니까. 여인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 한, 자신은 죽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끄르륵!
여인이 완전히 숨을 거뒀다.
크게 벌어진 입에서는 공기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오수조를 낀 손도 축 늘어졌다.
아걸은 여인을 놓아주었다.
여인은 물속으로 힘없이 가라앉았다. 점점, 점점……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여인의 허리에는 무거운 납덩이가 매달려 있었다.
잠영에 능숙한 사람이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모두 이용한다.
여인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여인을 지켜보다가 위로 솟구쳤다.
“후우웁!”
아걸은 맑은 공기를 들이켰다.
산 자만 누릴 수 있는 권리다.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껴진다.
아걸은 거칠게 숨을 쉬면서, 여인이 타고 왔을 범선을 바라봤다.
범선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여인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듯하다.
아걸은 급히 혈도를 쳐서 점혈부터 했다.
옆구리, 복부, 앞가슴…… 오수조가 갈라낸 상처가 상당히 심한 편이다.
점혈을 해서 혈맥부터 막았다.
지혈하지 않으면 힘을 쓰지 못한다. 벌써 피가 많이 빠져나간 후라서 핑! 하고 어지럼증이 일어난다. 혀도 바싹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든다.
촤아악! 촤악!
아걸은 범선을 향해 헤엄쳐 갔다.
범선에는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밧줄 사다리가 내려져 있었다.
자신에게 죽은 여인을 위한 배려다. 여인이 죽고 아걸이 위로 올라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배 위에 경계를 서는 자도 없다.
아걸은 밧줄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이 범선에도 화약이 실려 있을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피하지 못한다. 범선을 날려버릴 정도로 많은 화약이 실려있다면…… 폭발력이 상당하다. 사방 백 장은 능히 초토화한다.
아걸은 그 정도로 멀리 도주하지 못한다.
도주한다고 해도 망망대해에서 무슨 수로 살아남을 수 있겠나. 뗏목조차 구하지 못할 텐데.
“후우!”
아걸은 밧줄 사다리를 올라가다 말고 잠시 멈춰서서 긴 한숨을 토해냈다.
온몸이 피투성이다. 힘도 빠졌다.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릴 힘조차도 없다.
여인에게 상당히 고전했다.
물고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사람과 바다에서 싸우는 것은 미친 짓이다. 넓고, 깊고, 어둠이 짙게 깔린 바다는 여인의 안방이다.
‘상당히 위험했어.’
아걸은 뱃전으로 올라서려다가 멈춰 섰다.
배 위에 사내가 서 있다.
그는 복면을 쓰지 않았다. 잘생겼다.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특히 굵고 진한 눈썹이 한눈에 시선을 끌어당긴다. 또 몸도 단단하다.
상대는 검을 품에 안고 있다.
“넌가? 후후! 염정이 올 줄 알았는데.”
사내가 아걸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 여자, 이름이 염정인가?”
“이름은 알 필요가 없고. 우린 염정이라고 부르지. 염정의 수형술은 동영 제일인데, 용케 빠져나왔군.”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아걸을 쳐다봤다.
“하마터면 당할 뻔했어. 위험한 수형술이야.”
아걸도 툴툴 웃으면서 말했다.
“말했잖아. 수형술로는 동영 제일이라고. 솔직히 나도 물에서는 염정을 상대하지 못해.”
“네가 두주냐? 아니, 아니군.”
아걸이 혼자 묻고 자신이 답했다.
“내 이마에 두주가 아니라고 쓰여 있기라도 하나?”
사내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무 날카로워. 너무 강해. 당신도 정상에 올라서기는 한 것 같은데, 제일(第一)은 아냐. 뭔가가 약간 달라. 정통파 유음류가 아닐 것 같단 말이지. 두주가 아니야.”
순간, 사내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정통파가 아니라는 말, 이단이라는 말…… 적면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하나만 묻자.”
아걸은 적면의 심사는 헤아릴 필요가 없다는 듯 태연히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