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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527화 (527/600)

第百六章 무념몽사(無念夢死) (2)

수군이 찾아낼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배를 끌어갈 줄은 몰랐다. 배 위에 올라와서 자신을 옮겨 태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뭘 하자는 거지?

아걸은 수군도독 진일호가 모습을 드러내고 정중히 포권을 취하자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흘렸다. 아니, 자신이 웃은 게 아니라 뱃속에서 툭 흘러나왔다.

도독의 뜻을 알겠다.

군(軍)은 이 싸움에 개입하지 않는다. 싸움의 언저리에 서서 지켜보기만 한다.

자신에게 이 싸움의 처음과 끝을 온전히 맡겼다.

수군도독의 사람됨으로 보아서 그의 독단적인 생각은 아닐 것이고, 아마도 황상이 내린 명령일 것이다.

‘나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 싸움은 나하고 두주의 싸움이라는 건가?’

이쪽이나 저쪽이나 군사들은 단지 기세만 올릴 뿐이고, 칼을 맞대어 싸우는 사람은 무인 두 명이라는 말인가? 두주만 쓰러지면 동영군은 물러가나?

최소한의 싸움만으로 전쟁을 끝낸다.

그럴 수 있다면 아마도 이것이 최고의 방법일 것이다. 또 아걸도 이의가 없다. 이 정도 일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동영의 일홀도인 두주의 검도 궁금하고.

‘이렇게 되면 내 몸을 회복하는 게 최우선이군. 두주 같은 사람을 불완전한 상태에서 맞이할 수는 없지. 무인의 예의도 아니고. 완전히 낫지는 못하겠지만…….’

아걸은 옷을 벗었다.

배에는 아무도 없다. 그러니 남의 눈을 꺼릴 필요가 없다.

전선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들은 상당히 궁금한지 이쪽을 흘깃흘깃 쳐다본다.

저들의 시선은 개의치 않는다.

아걸은 벗은 몸을 밝은 태양 앞에 환히 노출했다.

태양의 열기로 상처를 씻는다. 병균을 태운다. 빨갛게 달궈서 소독시킨다.

물론 태양의 열기만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운기요상법이 시전될 때, 태양의 열기는 열 배 이상 증폭되어서 전신을 쓰다듬는다.

‘지금부터 백팔공(百八功)이나 펼쳐볼까? 몇 년 만에 해보는 건지 모르겠네.’

아걸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밝아오는 태양을 맞이했다.

백팔공이라고 해서 거창한 운기요상법은 아니다. 그저 운기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지독한 상처를 입었을 때 할배는 운공을 하라고 했다. 녹선마황을 기르고 있으면서도 즙을 내주지 않았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금창약을 던져주고 오로지 운공만 시켰다.

- 녹선마황에 의지하면 안 된다. 싸우다 보면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중상이라도 입으면 어쩌려고. 혼자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지. 운공을 해. 일주천, 이주천, 삼주천, 백주천. 계속, 계속 운공만 해.

운기를 하다 보면 갈라지고 찢긴 곳이 느껴진다. 사실 상처 부위는 운공을 하지 않아도 안다. 운기로 알아내냐 하는 것은 손상된 경맥의 뿌리다.

그곳에 진기를 밀집시켜서 핏줄을 만들고 상처를 꿰맨다.

진기를 사용하면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할 수 있다. 뛰어난 의원이 치료하는 것보다 더 빨리 낫는다.

- 최소한 백팔공을 해라. 부처님께서도 백팔번뇌를 소멸시키라고 백팔염주를 내주시지 않았더냐. 적어도 백팔 번 정도는 운기를 해야 상처가 하나라도 낫지. 백팔 번으로 안 되면 오백 번을 하고, 오백 번으로 안 되면 천 번을 해라. 나을 때까지 운기하고 또 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낫겠지.

다섯 번 연속 백팔공을 운기한 적이 있다. 모두 오백사십 회나 진기를 휘돌렸다. 아침에 시작한 운기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끝났다. 그동안 배고픈 것도, 아픈 것도 잊었다.

그 정도 운기를 하다 보면 몸이 사라진다.

정신은 또렷한데, 몸은 보이지 않는다. 움직인다는 느낌이 없어지니 몸이 사라진 것처럼 여겨진다.

이곳이 인간 세상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전신 경맥을 지켜봤다. 상처가 보이고 진기를 밀집시켰다. 아무 잡념 없이 하루를 보냈다.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마약을 맞은 것처럼 황홀해진다.

깨어나고 싶지가 않다.

실제로 몸이 극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 운기에 집중한 사람들이 있다. 밥을 먹지 않아서 몸이 쇠약해지고 근육이 줄어든다. 하지만 정신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다.

기력이 소멸한 것도 아니다. 운기를 중단하면 힘이 넘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은 깡말랐는데, 오히려 더 강건해지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운기는 마약이다. 하면 할수록 빠져나오지 못한다.

쉬이잇!

아걸은 진기를 휘둘렸다.

진기를 몇 순배 돌리는지 몇 주천을 이루는지 헤아릴 필요가 없다. 백팔 번을 하든 이백 번을 하든 상관없다. 횟수 같은 것에 제한받을 이유가 없다.

아픈 곳을 찾아내고 진기로 봉합시킨다.

정신을 깊은 안락 속에 파묻힌다. 황홀경이 치밀어오르면서 아픔이 잊힌다.

이것이 무인의 회복법이다.

부장은 배를 느리게 몰라고 지시했지만, 실제로 범선은 매우 빠르게 끌려갔다.

전선은 범선보다 두 배는 빠르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쬔다 싶을 무렵, 멀리서 거뭇거뭇하게 육지가 나타났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커다란 산이 불쑥 나타난 듯하다.

‘대만도.’

땅의 크기로 보아서 부속 섬은 아닌 것 같다. 마치 커다란 대륙에 닿은 느낌이다.

이곳이 대만도인가?

아걸은 대만도에 와 본 적이 없다. 대만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넓은지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지만 실제로 땅을 밟아본 적은 없다.

기후며 풍습이며 중원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만 안다.

같은 민족이지만 언어조차도 다르다. 산동이나 하남으로만 넘어가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나마 복주 사람 정도 되면 약간 대화가 통한다.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대만도는 올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구경하네.”

아걸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대만도를 쳐다봤다.

“응?”

아걸은 의아함을 느끼고 전선을 쳐다봤다.

범선을 이끌고 가는 전선이 섬으로 가지 않는다. 넓고 큰 땅을 빙 돌아서 옆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상륙하지 않을 생각이다.

“풋! 뭐야? 상륙조차 할 필요 없다는 건가?”

두주는 대만도에 상륙하지 않았다. 파사해협에 둥둥 떠 있은 지 오래되었다. 대만도를 밟으면 바로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에 상륙은 신중히 해야 한다.

두주를 찾아가는 길이라면 굳이 대만도를 밟을 이유가 없다.

“이것도 괜찮아.”

아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대만도를 밟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는다. 아걸도 굳이 상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놀러 온 것이 아니다. 수군이 곧장 두주에게 데려다준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본다.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으면 된 것이다.

‘두주…… 동영제일검. 동영의 일홀도.’

두주는 어떤 검을 가지고 있을까? 그 검이 무엇이든 두주가 스스로 깨우친 검이다.

유음류는 일홀도와는 기본 바탕이 다르다.

일홀도는 대각(大覺)의 바탕이 될만한 기본 무공을 서너 가지 정도 전수한다. 그것을 밑거름 삼아서 자신의 일홀도를 찾거나 창안해야 한다.

유음류도 기본 공부를 전수하는데 방법이 조금 다르다.

유음류는 일정한 검을 얻은 자에게만 마지막 무공을 전수한다. 중원에서 초절정 비기를 전수할 때처럼 이미 검을 얻은 자에게 ‘이것이 마지막이다.’라며 전수한다.

그것을 배우고, 마지막 무공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만의 무공을 찾아내야 한다.

배울 것을 다 배운 후에 자신의 것을 찾는다.

일홀도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지만 검을 얻기는 더 쉬워 보인다. 이미 정상에 선 자에게 반보만 더 나아가라고 말하는 것이니, 훨씬 쉽게 얻는다.

스읏!

아걸은 오수조에 걸렸던 상처 부위를 쳐다봤다.

“많이 나았군.”

아니다. 전혀 낫지 않았다. 외상을 보면 오수조에 걸린 자국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아직도 피가 완전히 멈추지 않아서 약간만 움직여도 상처가 터진다.

아걸이 나았다고 하는 것은 내기(內氣)다.

운기 덕분인지 내기가 충실하다. 몸을 움직이면 고통이 일어나지만 참고 움직일 수 있다.

“오늘 저녁…… 늦어도 내일이면 두주와 칼을 섞겠네. 싸울 수는 있겠어.”

아걸은 다시 눈을 감았다.

운공에 들어간다. 촌각의 시간도 아껴서 상처를 쓰다듬어야 한다. 싸울 때 말썽 피우지 말라고.

끼룩! 끼룩! 끼룩!

갈매기들이 뱃전으로 날아들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비둘기처럼 작아 보였는데, 뱃전에 앉으니 거위보다도 커 보인다.

전선은 대만도를 휘돌았다.

눈앞에 보였던 섬이 점점 멀어진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향해서 나아간다.

‘곧 도착하겠어. 내일쯤 싸울 줄 알았는데, 오늘 밤인가?’

아걸은 상처에 금창약을 다시 바르고 붕대를 꽁꽁 동여맸다. 몸을 심하게 움직여도 핏물이 새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단단히 압박해서 묶었다.

그런 후,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선실에는 적면이 입었음 직한 옷들이 걸려 있었다. 그중에서 남색 무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피가 묻어도 잘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탁!

허리에 반철도를 꽂았다.

싸움 준비는 끝났다. 새삼스럽게 준비할 것도 없다. 옷을 갈아입고 병기를 차면 그만이다.

끼룩! 끼루룩! 끼룩!

갈매기들이 범선 주위를 떠나지 않고 빙빙 맴돌았다.

드디어 적선이 보였다.

“음! 이백 척이 이렇게 많았나?”

아걸은 다소 놀란 눈으로 바다를 쳐다봤다.

바다가 크고 작은 배들로 꽉 차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배밖에 보이지 않는다.

동영 전력은 이백 척이라고 들었다.

말로 들었을 때는 이백 척 규모가 짐작되지 않았다. 드넓은 바다에 이백 척 정도 떠 있어도 표시조차 나지 않을 줄 알았다. 한데 아니다. 완전히 잘못 알았다.

온 바다가 온통 적선으로 빼곡하다.

해전이 벌어진다면…… 이 많은 배와 이들보다 더 많은 배가 충돌한다면…… 파사해협은 피로 물들 것이다. 바다까지도 붉은색으로 물들일 것이다.

끼익! 끼이익!

범선에 박혀 있던 쇠갈퀴가 힘차게 당겨졌다.

범선은 전선으로 빨려 갔고, 곧 배와 배가 맞닿아졌다.

전선에는 수군도독 진일호가 나와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갑옷을 입고 있어서 용모를 살필 수 없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매우 강직한 인물이다. 네모진 턱이 물러서지 않을 강건함을 드러낸다.

“우리는 여기까지만 안내하겠네.”

도독이 말했다.

“두주는 어느 배에 있습니까?”

아걸이 물었다.

진일호가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파악하고자 했는데 아직 파악하지 못했네.”

순간, 아걸은 어안이 벙벙해서 입을 쩍 벌렸다.

“어딨는지 모른다. 제가 맞게 들었습니까?”

“맞게 들었네.”

“제가 가면 저들이 마중 나옵니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아니라면 자네가 직접 저 배들은 전부 뒤져야 할 거네. 찾아온 방문객이 자네라는 것을 아니 아마도 마중 나오지 않을까 싶기는 하네만.”

이쪽과 저쪽은 서로 소통이 없다.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주고받은 것이 없다.

아걸만 적선 한가운데로 던져진다.

“적선 이백여 척…… 알아서 찾으라. 심하네. 혹시 두주가 어디 있는지 짐작 가는 곳이라도?”

아걸이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저쪽에서 마중을 나오지 않는다면…… 정말 뒤져야 한다. 저 배들을 전부.

도독은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짐작조차 못 하고 있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죠.”

아걸이 포권했다.

“미안하네.”

도독도 마주 포권했다.

이것이 도둑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다.

어쩔 수 있나? 이 정도밖에 할 수 없다는데. 나머지는 알아서 해야지.

아걸은 전선에서 내려지는 소선을 쳐다봤다.

아걸이 타고 갈 배다.

소선은 흔히 볼 수 있는 배와는 다른 모양이다. 배가 꼭 버드나무 잎처럼 날렵하게 생겼다.

배 위에는 화살을 막을 수 있게끔 나무 천정이 만들어져 있다.

원래는 십인 용인 듯 기다란 노가 좌우로 두 개씩 열 개가 늘어져 있다.

아걸은 범선에 늘어진 밧줄을 타고 소선으로 옮겨 탔다.

끼익! 끼이익!

노를 저을 때마다 나무가 뱃전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배는 빠르게 나아갔다.

뒤에서도 노 젓는 소리가 울렸다.

그를 이끌고 왔던 전선들이 다시 대마도로 물러나고 있다. 아걸이 싸우는 모습도 지켜보지 않고 철수한다.

아걸도 이미 예상한 듯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끼이익! 끼익!

아걸은 적선을 쳐다보며 노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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