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28화 (528/600)

第百六章 무념몽사(無念夢死) (3)

삐걱! 삐걱!

버드나무 잎처럼 날렵하게 생긴 배가 적선을 향해 나아갔다.

동영 수군이 소선을 봤다. 소선을 보기 전에 수군도독의 배를 봤다. 전선에 도둑을 상징하는 오령(五領) 깃발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단박 알아봤다.

동영 수군에는 당장 비상이 걸렸다.

적군 대장이 전선 몇 척을 앞세우고 코앞까지 왔지 않은가. 당연히 전투 태세에 돌입했다.

그런데 적군 대장이 물러간다.

적선들이 물러간 자리에는 작은 배 한 척만 남았다. 그리고 태연히 자신들을 향해 노를 저어온다.

소선은 적군 대장이 떨궈놓고 간 비밀병기다.

소선에 탄 자는 동영 수군을 다시 동영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왔다. 겁 없이 단신으로 육만 대군 속으로 뛰어든 자…… 미친 비밀병기다.

동영군은 소선에 탄 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

적면은 배를 떠나기 전에 장군들 앞으로 긴 서신을 보냈다. 두주의 명령을 전한 것이지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왜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적어 놨다.

그러니 적면이 아걸을 상대하기 위해 복주로 나간 사실은 진작 알았다.

지금 상황도 익히 짐작된다.

복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았지만, 싸움의 결과를 두 눈으로 보고 있지 않나.

적면이 실패했다.

두주 곁을 지키던 팔탈, 사괴, 염정도 돌아오지 못한다. 이미 차디찬 고혼이 되었다.

유음류는 임무를 맡으면 둘 중 하나로 결말을 낸다. 이쪽이 몰살당하거나 적을 죽이거나. 제 삼의 방법은 없다. 반드시 이쪽 아니면 저쪽이 멸살당한다.

그래서 동영에서는 유음류에 일을 맡기기가 무척 어렵지만, 일단 맡기기만 하면 목적은 이뤘다고 생각한다. 유음류의 철칙, 유음류가 마지막 일인조차 남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적을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다.

이번에는 적이 좀 강했다. 아니, 너무 강했다.

적면을 비롯해서 두주 휘하에 있던 최고수들이 모두 쓰러졌다. 그리고 그들을 쓰러트린 자가 소선을 타고 유유히 자신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척! 척! 척!

배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이백여 척 중 십여 척이 앞으로 나오는가 싶더니 소선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에워쌌다.

둥그런 포진, 학익진(鶴翼陣)이다.

적선은 삼백여 명이 승선할 수 있는 전선이고 아걸이 탄 배는 파고가 조금만 높아도 금방 뒤집힐 것 같은 소선이다. 차이가 너무 크게 벌어진다.

그래도 동영 수군은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들은 소선이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끔 반원으로 그리며 포진했다.

뱃전에는 활을 든 수군들이 빼곡히 늘어섰다. 배와 배 사이로 빠져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다. 이미 저들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척척척! 척척척척!

동영 수군들의 전선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저들이 전투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우 작은 소선 한 척이 움직였을 뿐인데, 마치 대적과 만난 듯 요란하게 전투 준비를 한다.

스읏! 척! 척! 척!

전선 옆에 뚫린 포문이 열리면서 대포가 쑥 튀어나왔다.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설마 포를 쏘겠다는 거야?’

아걸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멍하니 전선을 쳐다봤다.

이건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겨우 한 명 잡겠다고 포를 들이밀다니.

아걸은 뒤도 돌아봤다.

아군은 무엇을 하고 있나? 아군은 후퇴 중이다. 수군 도독이 이끄는 전선들은 이미 파사해협에서 빠져나가 대만도 쪽으로 쭉 빠지고 있다. 까만 점 몇 개만 보이는 것을 보면, 포격의 사정거리를 벗어난 것 같다.

아군의 지원은 전혀 받을 수 없다.

‘생각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하네.’

아걸은 노를 놓고 일어섰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유음류의 수장, 두주를 만나러 왔다!”

진기 실린 음성이 바다를 쩌렁 울렸다.

그의 음성은 이백 척 적선을 깊게 파고 들어갔다. 육만 대군으로 추측되는 적군이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아마 두주도 들었을 것이다.

적선은 즉시 반응을 보였다.

척척척! 척척척척척!

아걸을 향해서 대포를 겨눈다.

한 척만 겨누는 것이 아니다. 아걸을 반원 형태로 둘러싼 전선 십여 척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열린 포문 사이로 심지에 불을 붙이는 모습도 보였다.

한 척에 장착된 포는 십오 포에 이른다. 열 척이 모두 포문을 열었으니 백오십 포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걸 한 명 잡자고 대포 백오십 탄을 쏘려고 한다. 무기라고는 반철도 한 자루만 달랑 차고 있는데…….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것들 미친 거 아니야?’

아걸은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믿을 수 없었다.

확실히 이들은 미친 것 같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을 벌일 리 없다. 아걸이 아니라 허도기가 왔다고 해도 너무 지나친 공격이다.

백오십 포가 소선에 터지면 단숨에 콩가루가 되어버린다.

백오십 포까지 쏠 필요도 없다. 포탄 한두 개만 날려도 소선은 박살을 면치 못한다. 한 개는 빗나갔다고 쳐도 마찬가지다. 포탄 한 발만 맞아도 당장 가루가 된다.

백오십 포!

아걸을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릴 생각인가?

아걸은 저들이 정말 포를 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들이 공격하기 전에 두주가 나설 것이다. 무인이 무인을 찾아왔다는데, 군인이 죽이도록 내버려 두겠나.

그것은 무인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적면은 무인으로 죽었다. 여인 염정은 자객으로 죽었다. 두 사람의 죽음은 완전히 다르다.

아걸은 두주가 어떤 검을 쓸지 궁금했다. 자객으로 검을 쓰든, 무인의 검을 쓰든 두주의 검은 최고로 빛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두주는 일홀문주가 포격에 죽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칙칙칙! 치칙!

사방에서 심지가 타들어 간다.

아걸을 둘러싼 전선 열 척에서 심지 타는 냄새가 가득 피어났다.

심지는 비비 꼰 밧줄에 기름을 묻힌다. 그래서 불길을 빠르게 잡아당긴다. 당연히 심지가 타들어 갈 때마다 기름 타는 독특한 냄새가 번진다.

무려 백오십 포에서 심지가 타들어 가고 있으니 모를 수 없다.

‘설마 정말 쏘지는 않겠지?’

“일홀문주다! 두주를 만나러 왔다!”

아걸은 다시 한번 진기를 실어서 고함 질렀다.

그때, 전면을 막아선 전선에서 붉은 깃발이 쑥 올라갔다.

아걸은 붉은 깃발의 의미하는 바를 모른다. 하지만 포를 움켜잡고 있는 자들이 바싹 긴장한다는 느낌은 받았다. 저들의 눈에서 광채가 번뜩인다.

“이런!”

설마가 정말이 되었다. 저들은 정말로 포격을 가한다. 언제? 지금 바로 쏜다. 방금 올라간 붉은 깃발이 일제히 포격을 가하라는 공격 신호다. 순간.

꽝! 꽝! 꽝! 꽈아아아앙!

전선 십여 척에서 일제히 굉음이 울렸다.

아걸은 폭음이 들린 순간, 볼 것도 없다는 듯 즉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저들이 정말 포를 쏘았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백오십 포가 한 사람에게 쏟아졌다. 아걸 한 명을 죽이자고 삼천여 명이 힘을 합쳐서 공격한 셈이다.

두주에게도 실망했다.

그는 자신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들이 포를 쏘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떻게든 죽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일홀문주는 자신의 검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인가.

꽈앙! 꽈아아앙!

포탄이 소선에 작렬했다.

여기서 아걸도 착각한 점이 있다. 아걸은 백오십 포에서 발사된 것이 포탄일 것으로 생각했다. 포에 대해서 많이 아는 편이 아니라서 그 외의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포탄은 십여 개밖에 되지 않는다.

한 발만 맞아도 소선을 날리기에 충분하다. 저들도 멍청이가 아닌 이상 백오십 발까지 집중시키지는 않았다. 아걸은 높이 평가해서 십여 발을 퍼부었다.

나머지 백사십 발은 허공에서 터졌다.

꽝꽝꽝꽝꽝! 꽝꽝꽝! 꽈아아아앙!

허공에서 불꽃 잔치가 벌어졌다. 포탄이 허공에서 폭발하면서 바다를 뒤덮었다.

파파파팟! 타타타타타탁!

포탄 파편이 물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다에 멸치 떼가 지나가는 듯 수면이 거칠게 튀겨졌다.

포탄 파편은 사방 오십 장을 완전히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포탄 파편을 물 위보다도 물속에서 더 강한 위험을 드러낸다. 화살도 뚫고 들어가지 못할 깊이까지 순식간에 틀어박힌다. 물속 암기가 되어 죽음을 일으킨다.

넓이로 오십 장, 깊이로 오 장.

그 안에 있는 생물체는 모두 죽는다.

물살이 가라앉은 후, 많은 물고기가 배를 드러내며 둥둥 떠올랐다.

아걸은 떠오르지 않았다. 숨을 쉬러 나오지도 않는다.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아걸은?”

“행방불명입니다.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살았군.”

“장군들은 죽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시신을 보지 못해서 경계를 풀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반자포망(半字砲網)을 지시한 게 누구야? 적면이야?”

“네. 마지막 명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뿐이야? 또 다른 명령은 없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압니다. 중단시킬까요?”

“아니. 내버려 둬. 적면의 마지막 도전 아닌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둬. 적면의 암계를 뚫지 못한다면 적면이 이긴 거지. 지금, 이 싸움은 적면이 하는 거야. 계속 지켜보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복면인이 대답했다.

두주는 적면이 아걸을 공격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말리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 이미 유음류와 일홀문은 한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어느 한쪽은 무너져야 한다.

아걸을 쓰러트리는 칼이 적면이 칼이라면 나무랄 데 없다.

적면은 죽었다. 팔탈, 사귀, 염정까지 다 죽었다. 하지만 그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죽은 적면이 살아있는 아걸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두주는 적면이 배를 떠나기에 앞서서 장군들에게 밀사를 보냈다는 사실을 안다. 밀서에는 아걸이 나타나면 즉시 공격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물론 적면은 자신이 명한 내용도 담았다. 하지만 본인의 의견을 강력하게 전달했다.

지금 파사해협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동영 수군 대 아걸의 싸움이 아니다. 적면이 동영 수군의 힘을 빌려서 아걸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

‘살아와라. 살아와서 내 검을 받아.’

두주는 검가(劍架)에 얹힌 검을 봤다.

한동안 검을 쓴 적이 없는데…… 정말 저 검을 쓰게 될까? 아걸이 저 검을 당해낼 수 있을까?

“반자포망. 후후후!”

두주는 웃었다.

반자포망은 두주 자신도 피하기 어렵다. 한 호흡, 아니 반 호흡 만에 바다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최소한 육칠 장…… 물의 압력에 폐가 일그러지는 지점까지 내려가야 한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반인도 훈련을 받으면 십이 장, 십삼 장까지는 내려갈 수 있다. 그 이상으로 내려가려면 전문적으로 잠수를 배워야 한다.

파사해협은 물길이 사납다. 삼사 장만 내려가도 춥고 어둡다.

깊이 내려갈 수는 있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면서 천천히 내려가야 한다.

아걸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단숨에 육칠 장을 쑥 내려가야 한다.

바닷속에서는 삼 장마다 수중 압력이 두 배로 가중된다.

아걸이 이런저런 사정들을 모두 헤치고 잠수하는 데 성공했을까? 두주조차도 반자포망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아걸이 해냈을까?

아걸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걸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두주 자신을 비롯해서 두주를 공격한 장군들 모두가 아걸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아직 시신을 보지 못했다. 시신을 발견해내야만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

아걸이 살아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면, 그가 반격해 오는 것도 예상해야 한다.

장군들은 그 점을 고려한다. 그래서 횃불을 밝히고 배 밑을 살핀다. 아걸이 살아있다면 배를 붙잡고 올라올 것이기에. 물론 전선은 맨손으로 기어오르기 힘들다.

하지만 아걸은 불가능을 모르는 자,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수군들이 바다를 살피고 있다.

뚫어지게 바다를 쳐다보고 있다. 어디서든 고개만 내민다면 즉각 발견될 것이다.

“이 정도로 죽으면 적면만 개죽음당한 거야. 너무 억울하겠지. 그러니 살아야 해. 후후! 적면…… 네가 남긴 또 하나의 수가 무엇인지 궁금하군. 반자포망은 좋은 수였어. 이 정도의 수라면 허도기에게도 써볼 만했지. 허도기도 살기 힘들었을 텐데.”

두주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전신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는 긴장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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