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六章 무념몽사(無念夢死) (4)
무인에게 포격!
무려 백오십 문을 일제히 발사!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태연스럽게 저지르는 인간들은 어떻게 생겨 먹었나?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포문을 열었단 말인가.
한 사람을 죽이겠다는 의도는 읽힌다. 적을 섬멸하겠다는 마음도 알겠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타당한 행동인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아걸은 물속 깊이 잠수했다.
심지가 타들어 갈 때 포들이 겨누고 있는 위치를 봤다. 포의 각도를 봤다.
한 배에 십오 문이 늘어서 있는데, 맨 앞에 있는 포는 소선을 겨눴다. 직격이다. 하지만 나머지 열네 문은 곡사(曲射)를 노리는 듯 허공을 향해 들려져 있었다.
곡사 거리가 아닌데 곡사를 취했다.
포 하나가 곧바로 칠 수 있다면 다른 포들도 직격이 가능하다. 그리고 곡사보다는 직사가 명중률도 높다. 가장 확실하게 타격하는 방법이다. 당연히 열다섯 문 모두 직사 형태를 띠어야 한다. 그런데 포문이 하늘을 향해 열렸다.
‘하늘!’
아걸의 뇌리에 퍼뜩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중원에 치가 떨릴 정도로 악랄한 암격이 있다. 걸려들기만 하면 천신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죽음의 암격이다.
천중화폭(天中火爆)!
하늘에서 불꽃을 터뜨린다. 응축된 폭죽을 쏘아 올려서 적의 머리 위에 아름다운 화폭을 그려놓는다.
폭죽이 터지면서 불꽃이 사방으로 쏟아진다.
우산처럼 넓게 펼쳐진 화린(火燐)이 빗방울로 변해서 떨어진다. 우산 안에 갇힌 모든 생명체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살을 녹이고, 태운다.
화액 대신에 비침을 쓰는 경우도 있다.
쇠털처럼 가느다란 우모침(牛毛針)이 온 하늘을 덮으면서 쏟아지는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저들이 포를 이용해서 암격을 가한다면 틀림없이 천중화폭과 비슷한 작용을 할 것이다.
암격의 범위는 소선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선을 깨뜨리는 데는 직사 포탄만으로도 충분하다. 십여 문이나 소선을 노리고 있어서 소선이 깨지지 않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완벽하게 깨질 것이다.
포탄 암격은 바다를 노린다.
포가 발사되면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소선 위에서 버티고 있을 자가 없다. 즉시 바다로 뛰어들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잠수한 자를 요격한다.
‘그렇다면 포탄은 위에서 아래로…….’
천중화폭처럼 우산 안에 갇힌 자를 노린다.
아걸은 찰나에 불과한 짧은 시간 동안에 저들의 공격 의도를 읽어냈다.
백사십 문이 바닷속을 노린다. 인간이 헤엄칠 모든 범위를 죽음으로 물들일 것이다.
사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폐가 일그러질 정도로 깊이 잠수해야 한다.
아걸은 순식간에 판단을 끝냈다.
상황이 분석되고 판단을 한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행동에 망설임이 있을 수 없다.
풍덩!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단지 바다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맞다. 거기에 더 보태서 처음부터 아예 바다 깊이 파고들어 갔다. 순식간에 오륙 장을 내려갈 정도로 죽을힘을 다했다.
악귀들이 쫓아오고 있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다. 촌각이라도 머뭇거리면 죽는다. 오직 바닷속만 보면서 깊이, 깊이 도주해야 한다. 숨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고.
숨이 한계에 도달했다.
숨을 쉬지 않으니 깜빡 존 것처럼 정신이 뚝 떨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지극히 짧은 순간에 아걸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잃은 상태가 되었다.
‘한계군.’
아걸은 수면 위로 올라갔다.
천중화폭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암격은 위력이 매우 강렬하지만, 지속시간은 말도 안 되게 짧다. 화린이 땅에 떨어지면 암격 자체가 소멸한다.
포탄으로 펼친 암격도 마찬가지다.
이미 포탄 파편은 바닷속을 헤집었다. 공격할 곳을 모두 공격하고, 고철이 되어서 스르륵 떨어진다.
수면에 다 왔는지 빛이 보였다.
저들은 자신을 찾고 있다. 수면 위로 솟구치면 당장 저들이 또 공격해 올 것이다.
저들이 주의해서 살펴보는 곳은 반원 형태로 소선을 포위한 열 척 안쪽 바다다.
포를 쏜 곳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일단 포위망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아걸은 숨을 쉬지 않은 채 물속으로 치달려서 포위망을 벗어날 정도로 잠영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 그러니 저들이 보든 말든 우선은 머리를 내밀어야 한다.
푸욱!
아걸은 고개를 내밀었다. 순간적으로 공기를 들이마신 후, 즉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귀를 기울여서 적의 동태를 살폈다.
특별히 떠들썩한 소리는 울리지 않는다.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 시간이 지극히 짧아서 그를 발견한 사람이 없다.
머리 전체를 내민 것도 아니다. 코와 입만 빠져나갔다가 돌아왔다고 말할 정도로 지극히 일부분만 내밀었다.
‘너무 먼데?’
아걸은 숨을 들이켜는 지극히 짧은 순간에 자신이 헤쳐나갈 거리를 파악했다.
너무 멀다. 잠영으로 이 먼 거리를 헤엄쳐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들의 감시까지 따돌린 채.
‘휴우!’
아걸은 가는 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포위망 뒤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안심되지 않는다.
기껏 빠져나왔다는 곳이 포를 쏜 전선 뒤쪽이다.
열 척 뒤에는 백구십 척이 있다. 이 모든 명령을 내리는 사람도 뒤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 배에 탄 모든 동영 수군이 바다를 노려보고 있다.
스읏!
아걸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저들의 공격권에서는 벗어났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계속 물러서야 한다.
전선에서 두런거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동영 말을 모르기 때문에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다. 하지만 서로 잡담을 늘어놓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겠다.
‘됐네.’
스읏!
아걸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경계가 느슨해진 곳까지 왔다. 확실히 전선 위에 있는 군졸들은 자신을 공격한 자들처럼 눈빛이 반짝거리지 않는다. 긴장도가 훨씬 떨어진다.
자신들은 전혀 공격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후우우!”
아걸은 뱃전을 잡고 숨을 쉬었다.
얼추 삼백 장 정도를 이동한 것 같다. 오는 내내 진기로 체력을 보충했지만 그래도 몸이 천근만근 늘어진다.
“후우! 후우우우!”
맑은 공기를 들이켠 후, 진기를 일으켰다. 물속에 잠긴 상태에서 운기를 한다.
쿵쾅쿵쾅 마구 뛰는 심장을 가라앉힌다. 빠르게 흐르는 피를 안정시킨다. 들끓는 기력을 차분히 보듬는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겠지?’
아걸은 전선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전선은 매우 매끄럽다. 바다에 빠진 자들이 올라서지 못하도록 기름칠을 해놨다. 하지만 아걸은 미세한 틈에 손가락을 끼워 넣은 후, 몸을 끌어올렸다.
벽호공(壁虎功) 정도는 잠자면서도 펼칠 수 있다. 벼랑 한가운데에서 툭 튀어나온 돌부리에 손가락 하나만 걸쳐놓고 잠을 자본 적도 있다.
“어? 누구?”
아걸을 발견한 자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아걸은 반철도를 뽑았다. 그리고 거침없이 뱃전으로 뛰어오르며 칼을 쓰기 시작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칼바람이 허공을 휘젓는다.
“크아악!”
“아악!”
동영 수군이 썩은 짚단처럼 무너졌다. 저항조차 변변히 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베어져 나갔다.
배라는 좁은 공간에서는 다수의 힘이 먹혀들지 않는다. 병사는 많지만, 아걸 앞에 나선 사람은 기껏해야 칠팔 명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함께 몰려있기는 하지만 병기를 쓰지 못한다.
아걸처럼 빠른 칼을 가진 사람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
쒜엑! 쒜에엑!
어디서 쏘았는지, 화살이 날아왔다.
아걸은 반철도를 들어서 가볍게 튕겨냈다.
텅!
화살이 싱겁게 튕겨 나갔다.
전선에서는 아군에게 가로막히는 바람에 화살도 마음대로 쏘지 못한다. 틈을 보아서 간신히 한두 대 날리는 것이 고작이다. 그 사이에 아걸은 성난 범처럼 날뛴다.
퍼억! 퍽!
“크아악!”
반철도가 허공을 그을 때마다 비명이 터졌다.
순식간에 삼사십 명이 쓰러졌다. 그래도 계속 베었다. 몇 명을 쓰러트렸는지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대로 베어낸다.
동영 수군, 군대가 공격해왔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싸움 대상은 유음류가 아니다. 동영군, 동영 수군 육만여 명이 모두 적이다.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포문 백오십 개를 열었듯이 아걸은 육만 수군을 향해서 반철도를 들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말도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동영군의 행동을 보고 미쳤다고 말할 사람들이 많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걸의 행동을 보고 미쳤다고 말할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누가 봐도 미친 짓이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하지 못할 행동이다.
쒜엑! 쒜에엑! 퍽퍽퍽!
아걸은 닥치는 대로 베어 나갔다.
“적이다!”
“일홀문주가 후미에 나타났다!”
동영군이 사방을 향해 소리 질렀다. 그러자 뿔뿔이 흩어져 있던 배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아걸은 도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말했잖은가. 일홀도의 적은 육만 수군이라고. 말도 안 되는 싸움이지만, 그런 싸움을 피하지 않는 게 일홀도라고.
“멈춰!”
갑옷 무장을 한 장군이 일갈을 내지르며 아걸 앞에 나섰다.
그래도 아걸은 칼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말을 섞기는 늦었다. 지금은 서로 죽일 때다.
스으읏! 스읏!
장군으로 보이는 적장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동시에 반철도에서 번쩍! 섬광이 터졌다.
유성비도! 하늘에서 유성 한 줄기가 떨어진다!
“컥!”
장군은 격한 단말마를 흘리며 무너졌다.
장군도 일초지적에 불과하다. 반철도는 적수가 없는 듯 전선을 휘젓는다.
척척척! 척척척척!
사방에서 모여든 배들이 뱃전을 붙이기 시작했다. 다른 배에 탔던 수군들이 재빨리 혈전장으로 도선했다. 배에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적이 건너왔다.
아걸은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듯 거침없이 반철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반철도에 겨냥된 자들은 피를 뿜어내면서 힘없이 무너졌다.
아걸의 움직임은 저들보다 서너 배는 빨랐다.
날랜 고양이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굼벵이를 치는 것처럼…… 격타당하는 모습이 매우 당연해 보였다. 상대가 군졸이건 아니면 갑옷을 입은 장군이건 모두 횡액을 피하지 못했다.
“장창!”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자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군졸이 일제히 물러서고, 그 자리에 장창을 든 자들이 나타났다.
척척척! 척척!
그들이 아걸을 향해서 창이 겨눴다.
‘후우!’
아걸은 숨을 골랐다.
이번 싸움은 단기전이 아니다. 매우 긴 장기전이다. 어쩌면 날밤을 새우면서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기력을 회복할 시간도 없다. 틈틈이 짬이 날 때마다 회복해둔다.
‘장창으로는 상대하지 못할 것. 그러면 암기나 활.’
아걸은 동영 군사들의 움직임을 읽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눈치로 짐작된다. 싸움 경험이 많으면 이럴 때 진가가 드러난다.
“쏴!”
또 일갈이 터졌다.
순간 이미 대기하고 있던 궁사들이 일제히 활을 쏘았다.
아걸이 예상했던 대로 장창이 아걸의 움직임을 막고, 뒤에서 화살 부대가 공격한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아걸은 즉시 반철도를 휘둘렀다.
순간, 그를 가로막았던 창들이 단숨에 잘려 나갔다. 어지간한 도검으로는 자를 수 없는 장대가 싹둑 잘렸다.
세기(細技)나 절묘한 타법으로 잘라낸 것이 아니다. 패도(覇刀)! 오직 강한 힘만 사용했다. 누구도 막지 못할 거대한 힘이 반철도에 깃들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하늘에서 화살 비가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