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30화 (530/600)

第百六章 무념몽사(無念夢死) (5)

육만 대군이 한 사람을 공격한다. 태고 이래 이런 일은 없었다. 어느 나라 전쟁사를 뒤져봐도 한 사람을 죽이겠다고 육만 대군이 달려든 적은 없었다.

무림 절정 고수가 군인을 공격한다.

군인은 범인이나 다름없다. 일반인이 군대에 입대해서 병기를 지급받고, 집단 훈련을 받았다. 개중에는 싸움꾼도 있고, 전장 경험이 풍부한 자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병기만 놓으면 바로 일반인으로 돌아갈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초절정 비기를 사정없이 터트린다. 말도 안 된다.

이 두 가지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양쪽 모두 진심으로 달려들었다.

일시적으로 아걸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다.

수군들은 절대 무공을 접하고는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고 있다. 한눈에 봐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싸우기는 해야겠는데, 접근할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군은 곧 질서정연하게 체계를 잡아갔다.

“쏴라!”

명령이 떨어지자 화살이 거침없이 퍼부어졌다.

아걸이 승선한 배에서만 활을 쏘는 것이 아니다. 좌우로 달라붙은 배에서도 활을 쐈다. 아걸을 맞추면 좋고, 맞추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는 듯이 쏴댔다.

아걸이 칼을 마음껏 휘두르지 못하도록 만들면 된다.

양 떼 속에 뛰어든 맹수를 일단 양 떼와 분리시킨다. 그리고 화살로 위협을 가해서 밖으로 밀어낸다.

창수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이 들이민 창은 아걸이 특정한 방향으로 밀어냈다. 아걸이 칼을 휘둘러서 창대를 잘라내면, 곧 다른 창수와 교대했다. 창대를 아무리 잘라내도 여전히 긴 창이 찌를 듯이 달려든다.

아걸은 창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화살이 성급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살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성난 우박처럼 쏟아진다.

아걸은 조금씩, 조금씩 뒤로 밀렸다.

이 일은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아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 벌어졌다. 싸움의 주도권이 아걸에게서 동영 수군에게 넘어가는 중이다.

아걸이 펼쳐내는 가공할 무공도 절대적인 물량 공세 앞에서는 한 수 밀리는 듯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화살과 화살이 엇갈려 지나갔다. 그리고 멀리까지 날아가서 바다 위로 떨어졌다.

저들은 아걸을 선미(船尾)로 몰아넣는 중이다.

“후우!”

아걸은 큰 숨을 들이켰다. 순간, 진기가 화르르 일어나며 전신을 휘돌았다.

아걸은 냉정하게 전황을 주시했다.

화살이 비 오듯 날아오는 와중에도 최선의 행동을 찾아냈다.

지금은 물러설 때다. 배 위로 올라와서 너무 급하게 싸웠다. 이런 식으로 계속 싸우면 몸이 견뎌내지 못한다. 다행히 저들은 화살을 날려왔다.

화살을 피하면서 쉰다.

적이 십여 명, 혹은 백여 명 정도만 되어도 쉬지 않고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천 명도 아니고 육만 명이다. 육만 명 중 몇 명과 칼을 맞댈지 전혀 알지 못한다.

최대한 쉬면서 싸워야 한다.

타탕! 타아아앙!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화살을 칼로 쳐냈다.

화살을 피하기는 쉽다. 웬만한 화살은 모두 눈에 보인다. 비교적 쉽게 쳐낼 수 있다. 또한, 배에는 몸을 가릴 수 있는 물건들이 무척 많다. 돛대 뒤에 숨기도 하고, 궤짝에 몸을 감추기도 했다. 물통을 방패로 삼았다가 물벼락을 맞은 적도 있다.

화살은 거침없이 날아왔지만, 아걸을 맞히지는 못했다.

“휴우!”

짧은 숨 한 모금이지만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천천히 들이쉬었다.

지극히 짧은 순간, 아걸은 다시 기력을 회복했다.

수군의 장점은 병력이다. 저들은 절대적인 인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싸워야 한다.

아걸의 장점은 고강한 무공이다. 어느 경우에든 기력이 고갈되면 안 된다. 감히 맞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도록 계속해서 놀라운 신위를 보여주어야 한다.

체력 고갈을 방비하는 게 관건이다.

아걸은 중간중간에 쉬어야 하고, 수군은 아걸이 쉬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화살을 날아오는 동안 충분히 쉬었다.

타앗!

아걸은 뱃전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수군을 향해서 탄궁도를 펼쳤다. 몸과 칼이 하나가 되어서 누군지 모를 사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꽈아아앙!

수군은 반철도에 심장이 으깨져서 즉사했다.

아걸은 그를 어깨로 밀어내면서 반철도를 뽑았다. 그리고 회선도를 펼쳤다.

파파파파팟! 파라라락!

칼이 빙글빙글 휘돈다. 주위에 늘어선 사람들을 파리나 모기처럼 베어낸다.

“크아악!”

“케엑!”

수군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물러서! 공간을 틔워!”

어디선가 일갈이 터졌다.

“놈과 부딪치지 마라! 활을 쏠 수 있게 공간을 열어! 물러서!”

일갈이 연신 터졌다.

순간, 병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우르를 물러섰다. 누구도 아걸과 맞싸우고 싶은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마당에 물러서라는 명령까지 떨어졌다.

창을 쓰고 화살이 꽂힐 공간을 만든다는 핑계로 수군들이 냅다 도주했다.

하지만 수군만 그 소리를 들은 게 아니다. 아걸도 들었다. 동영 고유의 언어라서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소리의 높낮이로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아걸은 수군이 물러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쒜에에엑! 페에엑!

물러서는 수군을 바싹 따라붙었다. 그렇다고 반철도를 거칠게 쳐낸 것은 아니다. 십여 명 속으로 파고들면서 그중 한두 명에게만 칼을 날렸다. 다른 자들은 일부러 내버려 두었다.

적군을 적절하게 쓰러뜨린다.

살아있는 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 화살이 날아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자 다시 명령이 터졌다.

“밀어붙여! 밀어내! 선미! 선미로 밀어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군들이 ‘와아아!’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아걸은 이번 명령도 알아들었다. 저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챘다.

아걸은 한 명이다. 고수든 뭐든 몸뚱이는 하나뿐이다. 그러니 몸으로 부딪친다. 누군가는 다리를 잡을 것이다. 그러면 그만큼 행동이 둔해진다.

아걸은 즉시 그자를 칼로 쳐내겠지만 숨이 끊어져도 잡은 다리를 놓지 않는다.

누군가는 손을 잡을 것이다.

두 다리와 두 손이 잡히면 속수무책이다. 그때는 천하제일 고수도 필요 없어진다.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인해전술 앞에서는 누구도 견디지 못한다.

이것이 사람의 힘이다.

“와아아아!”

수군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군인들은 이런 싸움에 능하다. 전투가 벌어지면 당장 일대일 싸움으로 돌입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일대일로 맞서는 것은 가급적 피한다.

어쩔 수 없으면 맞싸우지만, 그래서는 살지 죽을지 알지 못한다.

자신만 칼을 쥐고 있는 게 아니다. 상대도 칼을 들고 있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이런 상황에서 죽지 않고 버티는 길은 두 명, 혹은 세 명이 한 조가 되어서 한 명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한 명이 병기를 붙잡아놓는 동안 다른 자들이 몸을 친다.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드느냐가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다.

삼 대 삼의 싸움이라면 일 대 일로 세 곳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다. 다른 두 명은 헛손질하게 하고, 세 명이 한 명을 친다.

한 명만 쓰러트려도 당장 삼 대 이로 변한다. 살 기회가 확 늘어난다.

삼 대 삼의 싸움일 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양쪽 모두 동사하거나 아니면 세 명을 쓰러뜨리는 동안 두 명 정도는 죽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한 명도 안 죽거나 운이 나쁘면 한 명 정도 죽는다.

군인들은 사람의 힘이 어떤 위력을 지녔는지 잘 안다.

“와아아아!”

사방에서 함성이 일어났다.

밀어내라고 했다고 무작정 달려들지는 않는다. 아주 치밀하게 달려든다. 최대한 칼을 적게 맞고, 재빨리 손발을 붙잡을 수 있도록 몸을 던진다.

아걸은 거침없이 반철도를 휘둘렀다.

칼의 무게로만 반철도를 쳐낸다. 쇳덩이가 날아간다. 쇠가 사람의 머리를 친다. 굳이 칼의 형태를 띠지 않았어도 쇳덩이에 머리를 맞으면 수박처럼 으깨질 것이다. 하물며 반철도는 뭉툭하기는 하지만 칼날의 형태가 분명하다.

퍼억! 푹푹!

앞장서서 달려들던 수군 세 명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촤라라라락!

이십오대 문주의 수신도를 펼쳐냈다. 몸 주위로 삼백육십 개의 칼날이 휘돌았다.

그 칼에 아걸을 붙잡겠다고 달려들던 네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졌다. 안면, 가슴, 그리고 등이 꽈리 터지듯 붉은 피를 쏟아내며 터져 나갔다.

아걸의 반철도는 그들이 보아온 여타의 칼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이 봤던 칼은 몸을 긁고 지나갔다. 칼에 맞았다는 것은 큰 칼을 한 방 먹고 쓰러진다는 의미였다. 즉사 가능성이 크지만 잘하면 살 수도 있었다.

아걸의 칼을 맞으면 즉사한다. 혹여 산다고 해도 인간 구실을 못 할 것이다. 그만큼 처절하게 짓이겨진다.

빈철도가 만든 상처는 상당히 지독하다. 마치 한 사람에게 칼질을 열 번 이상 한 것처럼 큰 상처가 난다. 얼굴을 얻어맞으면 반 이상이 떨어져 나간다. 가슴을 베이면 늑골 대여섯 대가 휑하니 떨어져 나간다.

도저히 살 수가 없다.

그런 칼이 가차 없이 펼쳐졌다.

“으……!”

수군들이 공포에 질려서 달려들지 못했다. 마치 거세게 회전하는 톱니바퀴에 몸을 던지는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달려들었다.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힘이 무척 강하다. 뒤로 물러서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계속해서 밀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억지로 떠밀려서 공격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파파파팟! 파파팟!

또다시 살도가 터졌다.

“안 되겠습니다. 너무 강합니다.”

“음! 할 수 없지. 포를 쏴라.”

“네?”

“저 배에 포를 쏴. 다행히 지금 저놈은 선미 쪽에 있으니까, 선미를 날려버려.”

“장군! 그러면 수하들이!”

“날려버려!”

“합!”

부장이 급히 군례를 취했다.

수하들이 억울하게 다치겠지만, 지금으로써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척척! 척척척!

포가 아군의 배를 겨눴다. 선미에는 아걸과 동영 수군이 마구 뒤엉켜 있었다. 얼추 잡아도 백여 명이 배 뒤쪽에서 드잡이질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곳을 향해 포문이 열렸다.

아걸이 화살은 막아낼 수 있겠지만 포탄까지야 막아내겠나. 지금처럼 싸움이 한창일 때는 몸을 빼내는 것조차 힘들 텐데.

“직사 셋, 곡사 열둘! 타격 목표 선미! 쏴!”

쾅쾅쾅쾅쾅! 쾅쾅쾅!

대포가 터졌다.

한 번 터진 적이 있는 단자포망이다. 소선을 향해 터졌던 단자포망이 이번에는 아군의 배를 노린다. 비록 선미 부분에만 집중되겠지만, 그래도 백여 명에 이르는 병사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콰쾅! 콰가가강! 꽈아앙!

“으악!”

“크으윽!”

포탄이 터지면서 비명이 울렸다.

단자포망은 정확했다. 일단 포탄 세 개가 선미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그리고 하늘에서 우박이 되어 쏟아진 파편들이 사정없이 살과 뼈로 파고들었다.

비명이 처절하게 울렸다.

중구난방으로 내지르는 비명이 아니다. 백여 명이 거의 동시에, 한 음성으로 절규를 터뜨렸다.

선미가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일홀문주는! 일홀문주를 찾아!”

포를 쓴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아걸을 찾았다.

아걸은 수군과 뒤엉켜 있어서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죽었더라도 이미 가루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사실 뱃전에 남아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들도 죽어있지만…… 대여섯 명 정도만 죽어서 엎드려져 있었다. 나머지는 전부 부서진 선미와 함께 바닷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죽은 자들은 사람 모습이 아니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몸뚱이가 갈가리 찢겼다.

반자포망은 사정권 안에 든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켜 버린다.

아걸은? 이번에도 살았을까?

동영 병사들은 바다를 노려봤다.

아걸은 또 한 번 물속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소선 폭발에서도 살아난 놈이다. 이번이라고 확실히 죽었다는 보장이 있나. 살아있을 수도 있다. 워낙 몸이 빠른 자이니.

그가 또다시 다른 배에 올라서 혈겁을 저지를지 모른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사주 경계해! 놈이 배에 올라타면 늦어! 올라타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

전선을 이끄는 선장들이 수하를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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