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31화 (531/600)

第百七章 투득흔원(投得很遠) (1)

- 멀리 던지다

아걸은 자신에 비하면 한없이 약한 병졸들을 상대하면서 전력을 다했다. 약한 상대라고 설렁설렁 싸우지 않았다. 강자에게나 사용하는 도신일체도 풀지 않았다.

사실 아걸은 상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력을 다한다.

고수에게는 전력을 기울이고 하수는 대충 공격하고…… 그러지를 못한다. 약자나 강자나 칼을 들고 맞서면 모두 전력을 쏟아낼 대상으로 간주한다.

아걸의 일홀도는 그렇다.

그런 모습들이 적을 질리게 했다. 너무 가공할 칼이 번뜩이니 마주쳐 갈 수가 없다. 인해전술로 바짝 달라붙으려고 해도 즉시 떼어내어 버린다.

포를 동원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 접근전을 피해야 한다!

모든 병사가 같은 생각을 했다.

활을 쏠 수 있으면 당연히 활로 싸워야 한다. 활을 쏠 수 있는데 칼을 잡고 달려드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아걸의 반철도가 닿지 않는 곳에서 싸워야 한다.

- 아걸은 배 안으로 숨는다.

이것도 모두가 떠올린 생각이다.

아걸은 지칠 것이다. 그도 사람인 이상 한껏 움직이다 보면 지치게 되어 있다. 그러면 배 안으로 들어가서 숨는다.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만 막아서도 쳐들어갈 수 없다.

병사들의 공격이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인해전술을 밀어붙였다. 물러서고 싶어도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맥없이 쓰러지기 싫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데 아걸의 잔인함이 상상 이상이다.

달려드는 족족 베어낸다. 그것도 ‘혹시 살았을 수도’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게끔 철저하게 죽인다.

반자포망 이외에 다른 공격 수단은 생각나지 않았다. 아걸이 그렇게 만들었다. 아걸의 기세라면 육만 대군을 모조리 베어버릴 것 같다. 말도 안 되는데…… 정말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전장이 평지라면 아예 생각하지도 않을 일이지만, 이곳은 해상이다. 배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싸운다.

아걸이 상대하는 병력은 배 안에 승선한 병사, 그중에서도 자신 앞에 선 몇 명뿐이다.

그들을 베고, 쉰다. 또 베고 쉰다.

계속 이런 식으로 싸운다면 승산은 아걸에게 있다.

인간의 무위가 이렇게 놀라울 수 있나.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공격하는데 칼날에 긁히지도 않나.

“눈 부릅뜨고 잘 살펴! 놈은 아직 살아있다! 절대 죽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쩌렁! 일갈이 울렸다.

“반자포망까지는 좋았는데. 쯧!”

두주는 혀를 찼다.

적면이 깔아놓은 수를 모두 봤다. 첫 번째 수는 반자포망이었고, 두 번째 수는 전면전이다.

과연 이 전면전은 누구에게 유리할까? 육만 대 일…… 이런 싸움을 벌인다면 불문곡직하고 상대를 단숨에 짓뭉개야 한다. 육만 대 일로 싸웠다는 소문조차 나면 안 된다.

싸움 대상이 누구든 간에 육만 명이 한 사람에게 달려들었다고 하면 당장 손가락질을 받는다. 아주 치욕스러운 군대가 된다. 상대가 허도기라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에게 육만 명이…… 이런 싸움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 앞으로 받을 손가락질에 비하면 차라리 지는 것이 더 낫다. 죽은 자는 창피함도 모를 테니까.

그런 짓을 동영 수군이 하고 있다.

반대로 이 싸움은 아걸의 위상을 한없이 높여준다. 모르긴 해도 오늘이 지나면 아걸은 중원의 영웅으로 급부상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무인 한 명이 군인 육만 명과 싸울 수 있나.

이 싸움에서 아걸이 죽는다고 해도 그는 영웅이 된다.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단숨에 목줄을 비틀어서 소문조차 나지 않게 할 것이라면 몰라도 지금처럼 떠들썩하게 싸우는 것은 이미 졌다는 뜻이다.

그렇다. 이미 틀려버렸다.

적면은 반자포망 이상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차라리 아걸을 자신에게 보냈어야 한다.

“첫 번째 시도까지는 좋았는데.”

두주가 다시 중얼거렸다.

몇 번을 고쳐서 생각해도 아쉬움이 남는다.

첫 번째 반자포망으로 암살 시도를 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거기서 실패하면 바로 그 시간부로 수군을 물러나게 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적면이 죽은 것을 참으로 아쉬워했을 것이다. 아까운 인재를 놓친 게 아닌가 하고.

두 번째 수단으로 인해서 적면은 오히려 산 것보다 죽는 것이 나은 인간이 되었다.

후일 유음류를 이런 식으로 이끌었다면 어쩔 뻔했나. 틀림없이 온갖 망신을 다 당한 끝에 결국은 멸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씨도 남기지 못하고.

차라리 지금 죽는 것이 훨씬 낫다.

“한심했어.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으면 수월하게 풀릴 일을…… 이렇게 비비 꼬아버리나.”

두주는 적면에게 적이 실망했다.

사실 적면에게는 아걸을 죽일 기회가 최소한 두 번은 있었다.

첫 번째는 반자포망을 터트릴 때다. 무작정 반자포망을 쏠 것이 아니라 사전에 약간의 준비를 했어야 한다.

반자포망 살상 범위 밑에 그물을 설치해 놓는 것이다.

동영 수군이 사용하는 그물은 스무 겹이나 겹쳐 있다. 그물을 엮은 실도 철사처럼 단단하다. 보검으로 내리쳐도 웬만해서는 뚫리지 않는다.

그물을 바닷속 사오 장쯤에 펼쳐놓았다면 아걸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반자포망을 펼치는 순간에 그물을 위로 끌어올려도 좋다. 그러면 더욱 확실히 아걸을 죽일 수 있다. 반자포망을 벗어난다고 해도 사로잡히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쳤다.

적면은 군인이 아니다. 살수다. 그것도 자잘한 수단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절정 고수다. 검법만 사용해도 충분히 적을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적면은 수군이 사용하는 그물을 생각하지 못했다.

적면은 그렇다 치고…… 장군들은 뭘 하고 있었나? 장군들이라도 생각해야 하지 않았나. 적면이 죽었다면 보통 암습으로는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야지.

하기는…… 어느 누구도 아걸이 반자포망에서 벗어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수단은 수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기왕 수군을 쓰기로 작심했다면, 이들이 가장 잘 싸우는 방법으로 싸우게 했어야 한다.

동영 수군에는 잠영에 특화된 별동대가 있다.

수리사귀대(水裏死鬼隊)다.

그들은 잠영으로 적선에 접근해서 폭파, 난파, 요인 암살 등등을 결행한다.

이들을 썼다면 아걸과 좋은 승부를 가렸을 것이다.

물속 싸움은 무공이 거의 개입되지 않는다. 무공이 전혀 상관없지는. 않지만 육지와는 많은 것이 다르다. 육지에서 사용하는 초식들 대다수가 무용지물이 되는 세계다.

수리사귀대는 상어를 이용하기도 한다.

파사 해협에는 상어가 있다. 그러니 핏물을 뿜어내고, 상어를 아걸에게 접근시키면 손도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다.

수리사귀대는 그런 일에 능숙하다.

수중 병기를 사용하는 데도 뛰어나다. 염정이 무너진 것을 보면 아걸의 수중 공부도 상당히 뛰어난 것 같은데…… 그래도 이런 싸움이라면 해볼 만했다.

거기서도 진다면 깨끗이 물러나야 한다.

“육만 대 일이라니. 한심한.”

두주는 혀를 쳤다.

아걸이 살았을까? 죽었을까? 살았다.

자신이 아걸의 처지였다면 무조건 산다. 저 정도로 무공 차이가 난다면 상수는 전혀 급하지 않다. 급하게 몰아쳐 오는 칼날을 걱정하지 않는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뭘 할까? 주변을 돌아본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펴볼 정도로 여유가 있다. 그러니 당연히 포가 준비되는 것도 본다. 포가 어디를 겨냥하는지는 쉽게 파악하고, 심지 타는 냄새까지 맡을 수도 있다.

아걸은 포탄이 터지는 바로 그 순간에 바다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선미가 부서지면서 많은 사람이 추락했는데, 아마도 아걸이 제일 먼저 잠수해 들어갔을 것이다.

살 수밖에 없다. 그럼 왜 즉시 나오지 않나?

즉시 튀어나올 필요가 없다. 아걸은 이 싸움을 단시간에 끝낼 생각이 없다. 매우 긴 싸움으로 생각하고 대처한다.

숙식은 걱정하지 않는다. 아걸은 물속에서도 잠을 청할 수 있다. 배에 살짝 손만 얹어놓으면 둥둥 뜰 것이다. 식량은 동영군에게 있다. 언제든 배에 올라서 뺏어 먹으면 된다.

무엇을 걱정하나? 걱정할 것이 전혀 없다.

천천히, 천천히…… 전선 하나씩 없애나간다.

하루에 배 한 척만 침몰시켜도 이백 척을 부수는 데는 이백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물론 싸움이 그때까지 이어지지도 않는다.

대략 삼사십 척 정도 침몰하면 동영군은 기가 질려서 물러나게 되어 있다. 아마 그때쯤이면 모든 병사가 전의를 잃고 도주하기 급급할 것이다.

“곧 밤이 되겠구나.”

두주가 말했다.

“네.”

충직한 음성이 울렸다.

“불을 밝혀라. 환하게.”

“네. 알겠습니다.”

복면인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들은 두주에게 직언을 하지 않는다. 두주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남은 사람은 철저하게 수발만 든다. 혹여, 누군가가 두주를 암살하려고 할 때 인간 방패가 되기도 한다. 두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이런 일을 시키는지 일절 생각하지 않는다. 명령이 떨어지면 무조건 따른다.

“적시(滴矢)도 쏴라.”

“네.”

“다섯 대를 연달아서 쏴.”

“네.”

복면인들은 ‘네’라는 대답밖에 할 줄 모른다.

“바로 시행해라. 시간 끌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어. 좋지 않은 일은 바로 매듭지어야지.”

두주가 차분하게 말했다.

피융! 피유우웅!

적시가 허공 높이 솟구쳤다.

적시는 살상용 화살이 아니다. 신호용 화살이다. 화살 끝에 살촉 대신 명적(鳴鏑)을 단다. 명적에 뚫린 구멍으로 공기가 흐르면서 매우 날카로운 소리를 흘린다.

적시는 달리 초전(哨箭), 효시(嚆矢), 만궁명현(蠻弓鳴弦), 대초명적(大哨鳴鏑)이라고도 부른다.

연달아 다섯 대…… 동영 전군이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소리가 울렸다.

고삼진작(高杉晋作), 타카스기[高杉] 장군은 이를 꽉 깨물었다.

“물러나라. 후후!”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기껏해야 어둠 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 주제에 감히 명가 장군들을 쥐락펴락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까요?”

“일단 두주가 싸운다니 두주에게 맡긴다. 하지만 두주가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은 없잖아. 그러면 놈은 할 짓 다 하고 빠져나간다는 건데, 그런 꼴은 보지 못하지.”

“그러면……?”

“뒤를 막아! 소조선(小早船)을 중심으로 원형진(圓形陣)을 쳐. 싸움 구경을 하겠다는데 어쩌겠나. 후후!”

타카스기 장군이 웃었다.

소조선은 길고 좁은 각재 하나를 바닥에 깔고 그것을 뼈대로 외판을 붙여나간 배다. 날렵한 형태에 삼나무로 선체를 만들어서 속도가 무척 빠르다.

하지만 선체가 버티는 힘은 약하다.

대포도 기껏해야 한두 개 정도밖에 싣지 못한다. 배에 탈 수 있는 인원도 채 백 명을 넘기지 못한다. 빠르게 질주해서 도선 하는 데 이용된다.

두주가 타고 있는 배다. 대포 같은 중화기를 버리고 빠른 이동을 선택했다.

높이도 낮아서 장군들이 타고 있는 전선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싸움이 벌어진다면 이 층 구조로 되어 있는 전투 갑판을 이용할 텐데, 그러면 너무 빤히 보인다.

“제장에게 전해. 원형진을 펼치되 열두 겹으로 둘러친다. 사방진(四方陣)을 치고 원형진으로 보충한다.”

“네!”

부장이 힘차게 대답했다.

타카스기 장군은 두주가 타고 있는 소조선을 쳐다봤다.

두주가 이기면 지금의 무례는 용서한다. 하지만 지면 시신을 발로 차서 바다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리고 아걸 그놈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방비한다.

“두주가 쓰러지면 바로 공격 개시한다.”

장군이 말했다.

타카스기 장군도 바보는 아니다. 반자포망이 왜 실패했는지 이유를 알아냈다.

반자포망은 군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한 공격이다. 지금까지 포를 쏴도 실패한 적이 없다. 그런데 연달아 두 번이나 실패했다. 다시 펼쳐도 또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면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떨어지는 파편이 놈의 몸에 틀어박히게 하려면…… 그물! 그물로 놈이 잠수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불벼락 수천 개를 떨어트린다.

아걸은 반자포망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그러면 두주에게 물러선다는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해.”

타카스기 장군이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