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七章 투득흔원(投得很遠) (2)
푸아악!
아걸은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접전이 또 한 차례 지나갔다. 이번에도 몇 명인지 모를 만큼 많은 사람을 베었다.
배에서 싸우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탈출로가 환히 열려 있다는 점이다. 사방이 바다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바다로 뛰어내린다.
동영 수군들은 아걸을 배에 잡아두지 못한다.
보통 사람은 바다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배를 오래 탄 선원도 바다에 뛰어드는 것은 꺼려 한다. 빠지면 죽는다고 생각할 만큼 깊은 바다는 위험하다.
아걸은 그런 바다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바다로 뛰어들면 멀리 가지 않았다. 바로 옆 배로 다가갔다.
배는 물 위에 뜬 부분이 있고, 물속에 잠겨 있는 부분이 있다. 잠긴 부분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슬그머니 머리를 내민다. 그리고 잠시 쉰다.
솔직히 아걸이 하는 싸움 방식은 아걸처럼 중원제일도라든가 천하제일인 같은 절대 무명을 듣는 무인이라면 결단코 선택하지 않을 방법이다.
치고 빠진다!
상대방의 허점을 노려서 치고 들어간다.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즉시 빠진다.
화살이라거나 포격은 허용하지 않는다.
저들이 굳이 활이나 포를 쏘려면 동료의 머리 위에다가 터트려야 한다.
아걸은 항상 저들 사이에 섞여 있다.
만약 주위의 병사가 한 명밖에 없다면 그를 죽이지 않는다. 반철도로 병기를 누르면서 접전을 벌인다. 일개 병사가 싸우면서 십여 합을 교환한 적도 있다.
주위에 적군이 몰려들 때까지 기다렸다.
몇 명 정도는 즉시 베어낼 수 있지만, 그러면 화살 집중 공격을 받는다.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고!
공격할 때는 전력을 다한다. 온 힘을 기울여서 막대한 타격을 입힌다. 싸움이 끝난 후에는 ‘저놈이 과연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야 한다.
너무 허무하게 패배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아걸이 공격해 오면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육만 명이 아니라 육십만 명이 있어도 이런 식으로 싸우면 견딜 수 없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제풀에 나가떨어진다.
그래야 싸움 방식을 바꾼다.
사실 아걸도 일 년이고 이 년이고 바다에 머물면서 긴긴 싸움을 벌일 수는 없다. 정히 싸우겠다면 이런 식으로 싸우자는 것이지, 아걸도 참으로 고단한 싸움이다.
아걸은 저들이 빨리 포기해주기를 바랐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됐고…… 날이 어두워지면 위로 올라가서 잠을 청해볼까?’
아걸은 위를 쳐다봤다.
위에서도 아래를 지켜보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아걸이 배에 붙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걸은 밤이 깊으면 배 위로 올라갈 것이다.
배에는 몸 하나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정말 많다. 아주 편하게 두 발 쭉 뻗고 잠들 수 있다.
적은 아직 이런 사실을 모른다. 아걸이 어찌어찌 바닷속에서 버티고 있는 줄로 안다. 아걸이 배에 올라와서 자신들의 식량을 훔쳐먹고, 편한 보금자리에서 잠잔다는 사실을 알면 억울해서 복장이 터질 것이다.
날이 어두워졌다.
아걸은 조금 더 기다렸다가 배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동영 수군 전체가 일제히 뒤로 빠지고 있다.
‘뭐지?’
아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걸이 붙잡고 있는 배도 다른 배들과 함께 물러나는 중이다. 눈치 같은 것도 보지 않고 아예 뒤로 쭉 빠진다.
영차! 영차!
노군들의 노 젓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쭈우욱! 촤아아악!
배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 배가 한 척 있다. 다른 배들이 모두 빠진 자리에 소조선 한 척이 꿈쩍도 하지 않고 떠 있다. 아니, 다른 배들이 소조선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마치 싸움 자리를 만들어주는 듯하다.
‘아까 효시가 터지더니…… 이거였나?’
아걸은 피식 웃었다.
소조선은 다른 배들과 구분하기 위해서인지 전투갑판 사방에 횃불을 밝혀 놨다. 사방은 캄캄해지는데, 오직 배 한 척만 빨간 횃불로 이글거린다.
한눈에 띄지 않을 리 없다.
“하! 이제 끝났군.”
아걸은 한숨을 토해냈다.
동영 수군과의 어처구니없는 싸움이 끝난 것 같다. 드디어 두주에게 가는 길이 열렸다.
두주가 오라고 한다. 횃불로 그를 초대하고 있다.
“오라면 가야지!”
츠으읏!
아걸은 잡고 있던 배에게 떨어져나와 소조선을 향해 자맥질했다.
“저기!”
“앗! 저놈이!”
여기저기서 깜짝 놀라는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당연히 놀랄 것이다. 그토록 찾고자 했던 아걸이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당장이라도 화살을 쏘아올까? 아니면 포를 쏠까?
저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두주가 자신을 초대한 이상, 수군들과의 전쟁은 끝났다. 설혹, 계속 전쟁을 이어간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없다. 하자는 대로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츄우웃! 츠읏!
아걸은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때로는 물속으로. 때로는 물 위로, 하늘을 보고 누워서 둥둥 떠내려가기도 했다. 다가가는 것도 일이지만 체력 안배도 해놓아야 한다.
척!
드디어 소조선에 닿았다.
소조선에는 그를 위한 배려인지 친절하게 밧줄 사다리까지 내려져 있었다.
아걸은 즉시 올라가지 않았다. 올라가면 바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체력을 비축한다. 싸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든 후에 움직인다.
“후우! 후우우우!”
길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때, 배 위에서 복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서 바다를 보며 말했다.
“두주님 말씀을 전합니다. 올라와서 쉬시랍니다.”
‘응?’
아걸은 놀라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적이 배 위로 올라와서 쉬라는 말은 우습다. 또 자신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점은 놀랍다. 소조선 근처에 이르러서는 잠수로 다가왔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두주는 자신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배에 닿은 것을 즉시 알았다.
“아!”
아걸은 배를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소조선에는 배 전체에 가는 그물이 덮여 있다. 항해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는다. 단지 배 옆면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면사가 덮여 있다.
접근자를 알아채려는 경계망이었다.
동영 수군이 전선에 이런 경계망을 설치했다면 배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배에 닿는 즉시 알아챘을 것이고, 미처 오르기도 전에 화살이 날아왔을 것이다.
망사처럼 생긴 경계망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유음류의 장비다.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네. 이렇게 쉽게 발각될 줄은 몰랐잖아. 너무 쉽게 보이면 곤란한데.’
아걸은 두주에게 발각되었어도 조바심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어차피 암습을 가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두주와는 정면 승부다. 싸움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일대일 싸움이 될 것이다. 그만한 칼들을 가졌으니까.
‘이왕 발각됐다면 주저하는 것도 망신이지. 후후!’
배에 늘어진 밧줄 사다리를 잡고 위로 올라갔다.
“여기로.”
복면인은 아걸을 배 한 쪽으로 안내했다.
아걸은 바닷물에 흠씬 젖어서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굵은 물이 뚝뚝 떨어졌다.
옷이 찰싹 달라붙어서 움직이기가 불편하다.
수군을 상대할 때는 이 정도 불편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두주와 싸운다면 아주 큰 장애가 된다. 어쩌면 결정적인 패인이 될지도 모른다.
복면인이 준비된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 앉으셔서 쉬십시오.”
아걸은 복면인이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주위에 늘어진 물건들을 살펴봤다.
허리 높이에 닿는 물통이 네 개가 놓여 있다. 마른 수건도 있고, 무복 한 벌도 곱게 개어져 있다. 그리도 어울리지 않게 숫돌과 한지도 놓여 있다.
복면인이 말했다.
“급하게 서두르실 필요는 없다고 하십니다. 손님맞이는 도주님께서 직접 하셔야 하지만, 도주님이 나오시면 긴장하실 거라고, 안에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충분히 쉬라는 배려, 고맙다고 전해줘.”
“네. 우선 목욕부터 하십시오. 바닷물이 그냥 마르면 소금기가 있어서 끈적거립니다. 여기는 사내들만 있어서 가림막 같은 것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목욕?”
아걸은 뜻밖의 말에 준비된 물통을 쳐다봤다.
이 물이…… 목욕을 하라고 준비해 놓은 것인가?
“옷도 갈아입으시고, 칼을 다듬으실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숫돌도 준비했는데……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 주십시오. 준비할 수 있으면 해드리겠습니다.”
복면인은 매우 정중했다.
“물 좀 마셨으면 좋겠는데?”
“물통에 든 물을 마시셔도 됩니다. 식수입니다. 씻으시면 저녁과 다과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 싸움은 언제 하게?”
“결전은 내일 하셔도 된다고. 오늘 하루쯤은 푹 쉬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잠을 자도 된다는 건가?”
“오늘 밤에 싸우실 생각이 아니시면.”
“유음류를 믿고?”
“암습은 없습니다.”
“그 말을 믿어도 되나?”
“제 말이라면 믿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만, 두주님이 하신 말씀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후후! 믿어. 이렇게 말하면 어떤 식으로 대답하나 알아보고 싶어서 물어봤지. 두주, 행복한 사람이군. 제자에게 이토록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사람도 드물지.”
“제자가 아니라 수하입니다.”
“유음류를 배우면 다 같은 문도 아닌가?”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 입문했다면 제자가 되겠지만, 저희는 살수가 되기 위해서 투신했고 살수 비기로 유음류를 배웠을 뿐입니다. 사제지간의 인연은 없으며, 주종관계만 존재합니다.”
“좋을 대로.”
스읏!
아걸은 반철도를 풀어서 탁자 위로 던졌다.
적선에 올라서서 병기를 손에 놓았다. 그것도 적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아걸은 복면인이 권한대로 우선 목욕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는 적이 내준 음식을 먹는다. 그래도 되나? 임무를 수행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동영 인문을 믿어도 되나?
아걸은 벌써 옷을 다 벗었다. 완벽한 알몸이 되어서 차가운 물을 쫙쫙 끼얹는 중이었다.
“푹 쉬시고…… 충분히 준비되셨으면 여기 이 소북을 쳐주십시오. 두주님께서 나오실 겁니다. 그때까지 저희는 누구도 접근하지 않겠습니다.”
복면인이 한쪽에 놓인 소북을 가리켰다.
목욕을 하고 깨끗한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바닷물에 젖은 반철도도 맑은 물로 씻어냈다.
숫돌에 갈지는 않았다. 반철도에는 도검에 부딪힌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다. 칼날이 푹푹 찍힌 곳도 여러 곳이다. 예전에 할배가 갈아준 후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날이나 갈까?’
아걸은 생각을 접었다.
두주라고 해서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보통 사람처럼 편하게 싸우면 된다.
아걸은 유음류 복면인이 저녁으로 가져온 백숙을 의심 없이 먹었다.
암살 집단에서 내준 음식이다. 독을 탔을 수도 있다. 산공독으로 진기를 갉아 먹을 수도 있다.
그렇게 했을까? 아니다. 두주는 무공으로 자신을 꺾고 싶어 한다. 배에 올라탄 순간부터 그런 점을 읽었다. 이런 사람은 음식에 장난질을 치지 않는다.
아걸은 편하게 누워서 잠도 청했다.
말도 안 되지만 목숨을 노리는 적들을 주위에 늘어세운 채 편하게 잠을 청했다.
무슨 배짱으로? 배짱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졸리다. 그러니 잔다. 이 외에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도신일체를 이루면 이런 생각 속에서 살게 된다.
누군가 그를 죽이고자 달려든다면?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급습이 일어난다면 본능이 알아서 움직일 것이다. 만약 반응하지 않는다면 죽게 되겠지.
무책임한가? 어쩔 수 없다. 이런 생각 속에서 살고 있으니.
기분 좋게 쉬었다.
잠도 자고, 배도 부르고, 몸도 깨끗하다. 최상의 상태다.
오수조에 맞은 상처가 욱신거리지만, 이 정도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걸은 북채를 잡았다.
둥! 둥! 둥!
소북이 울렸다.
시간은 축시(丑時)를 지나 인시(寅時)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달이 거의 기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