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七章 투득흔원(投得很遠) (3)
삐걱!
선실 문이 열리며 복면인이 나왔다.
두주는 아니다. 아걸의 시중을 들었던 복면인처럼 두주의 시중을 두는 문도로 보인다.
문이 열리고 일다경쯤 지났을 때, 한 사람이 길게 기지개를 켜며 나타났다. 잠을 자고 있다가 본의 아니게 깬 모습이 역력하다. 연신 하품을 한다.
“아함!”
두주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길게 뻗었다. 그리고 허리도 몇 번 휘돌렸다.
쉰을 훨씬 넘긴 중년인이다.
얼핏 보기에는 중년인이라기보다는 초로에 접어든 노인처럼 비친다. 목덜미가 휘어져서 거북목을 하고 있고, 다리도 안짱다리라서 걸을 때마다 뒤뚱거린다.
가슴은 안으로 구부러져 있다. 어깨를 딱 편 당당한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네 아저씨 모습이다.
중년인이 정말 두주가 맞나?
중년인이 휘적휘적 걸어왔다. 싸움을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새벽 산책이라도 하는 듯하다. 무인의 강인함은 어느 구석에서도 엿보이지 않는다.
“잘 쉬었나?”
두주가 유창한 한어로 말해왔다.
“개운합니다.”
아걸이 차분히 대답했다.
“웬만하면 날이 밝은 다음에 북을 치지 그랬어. 한참 좋은 꿈을 꾸고 있던 참인데.”
“제 생각만 했군요. 아직 미숙합니다.”
“미숙한 사람에게 중원제일도라는 말을 붙여주지는 않지. 공부의 검을 네 번이나 피했다고?”
“운이 좋았습니다.”
사내가 손가락을 들어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도 운으로는 공부의 검을 네 번이나 피하지 못해. 그만한 실력이 있다는 거겠지. 내가 유음류의 대가리야. 일곱 번째. 대가리에 오른 지 한 삼십 년 됐나? 난 별것 없어. 밑에 놈들이 악바리 짓을 하니까 나까지 악명이 높아진 거지. 자네는 어때?”
“저도 별것 없습니다. 저에 대해서는 저도 모르는 부분까지 조사하셨을 텐데요.”
“성검문 허씨 핏줄. 용맥이라고?”
“용맥이 따로 있습니까? 싸움 잘하면 용맥이지. 처음부터 용맥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을 거고요, 어쩌다가 싸움질 잘하는 게 소문나다 보니까 태어날 때부터 타고났다는 식으로 용맥이니 금맥이나 갖다 붙인 거죠.”
“동감. 세상에 핏줄 운운하는 놈들이 가장 미친놈들이지. 싸움 잘하는 놈들이 오죽 많아야지.”
두주가 히죽 웃었다.
“강해 보이십니다.”
아걸이 진심으로 말했다.
두주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어떤 허점도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 당장 공격하라고 하면 할 곳이 없다. 칼을 들고 주위를 빙빙 도는 수밖에 없다. 들어가면 다친다. 어느 쪽을 공격하든 즉시 반격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느 점에서 강하게 봤을까?”
“글쎄요?”
“강하긴 한데 어떻게 강한 줄을 모르겠다? 그럼 강하다는 말은 아부군.”
“강하다는 말이 싫습니까?”
“나야 원래 강한 사람이고 그런 말을 한두 번 들어본 것도 아니고. 새삼스러울 건 없지. 자, 이 정도면 잠도 깼고…… 어때? 칼춤 한 번 추어볼까? 아니면 잡담을 좀 더?”
“검을 받아보겠습니다.”
스읏!
아걸이 반철도를 들었다.
“싸우기는 하겠는데…… 내가 공부와 붙었다가 죽을 뻔했다는 말은 들었나?”
“들었습니다.”
“그때 어떤 검을 썼는지도 알아?”
스릉!
두주가 검을 뽑았다.
칠흑처럼 검은 묵검(墨劍)이다. 검신에서는 어떠한 빛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보검인 것만은 분명히 알겠다. 빛을 뿜어내지 않는데도 예기(銳氣)가 느껴진다.
“자세한 내용은…….”
“그럼 우리 유음류에는 오대신술 외에 다른 무공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네.”
“그건 아닙니다. 적면이 사용하는 검공을 봤을 때, 오대신술 외에 특출한 무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적면은 자신의 무공을 동영의 일홀도라고 말했습니다만.”
“그럼 나도 그 동영의 일홀도를 사용할까?”
두주가 아걸에게 질문을 해왔다.
‘시험이다!’
아걸은 두주의 말속에서 자신을 떠보려는 의도를 읽었다.
무엇을 떠보고자 하나? 유음류에 어떤 비공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확인하려고 하나?
아니다. 겨우 그 정도를 확인하려고 물어온 것이 아니다.
상대방에서 숨겨진 비기가 있건 없건 하등 상관없다. 싸움에 돌입하면 매초, 매 순간이 새롭다. 흔히 보던 단순한 동작도 때만 잘 맞추면 절공으로 변한다.
어떤 무공을 사용하든 두주의 검은 최상이다.
“성검문에 한 부분만큼은 절대적으로 빠른 자들이 있었죠. 검속으로는 단연 으뜸이라는 검속제일 일사검광 초가평, 검집 없는 검 발검제일 이도창, 몸이 살쾡이처럼 날렵하다는 쾌속제일 산묘 신도파. 모두 소축십검입니다. 공부의 직제자죠. 적면의 검은 그들에게도 통할 정도로 빨랐습니다. 이는 유음류에 오대신술 외에도 절대 무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고.”
“역시 비공이지?”
“하지만 물에서 만난 염정의 수형술은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더군요. 지금 제 몸에 새겨진 상처들이 모두 염정이 만든 겁니다. 적면의 검은 제 몸에 닿지 않았어요.”
“호오! 그런가?”
“오대신술이라고 하면 한낱 살수 잡기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고, 비공이라고 하면 오대신술을 능가하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솔직히 전 아무거라도 상관없습니다. 두주가 전개할 검은 오대신술도, 비공도 아닐 테니까.”
“그럼 뭐야? 내가 귀신이라도 되나?”
“아마도?”
“아마도? 하하하! 재미있는 친구군. 적면이 자네 반만 되어도 벌써 두주가 되었을 텐데. 솔직히 염정은 적면 아래가 아냐. 여자가 사내에게 홀리면 무공을 삼사 푼 정도 까먹는데, 염정이 그런 경우야. 넘어설 수 있는 자를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 그럼 문주가 말한 대로 아무거부터 시작할까? 하하하!”
두주가 기분 좋게 웃었다.
아걸은 반철도를 축 늘어뜨렸다.
두주는 아걸이 앞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아직은 검을 들 때가 아니라는 듯이 두 손을 밑으로 늘어뜨리고 입가에 옅은 웃음을 지으면서 여유만만하게 기다렸다.
아걸이 삼 장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파앗!
두주가 연기 꺼지듯이 사라져 버렸다.
“웃!”
아걸은 거리에 들어섰다 싶어서 막 질주, 도약하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에 두주가 사라진 것이다.
아걸은 깜짝 놀라서 멈춰 섰다.
멈춰선 자세 그대로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전신의 모든 신경이 주위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쫓는 탓이다. 티끌만 한 정신 분산도 용납하지 않는다.
두주가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걸은 걸음을 내딛지도, 팔을 내리지도 못했다. 다가서려던 모습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주위에서 일어나는 변화만 살폈다. 지극히 미약한 소리나 순간적인 번뜩임을 놓치면 바로 죽는다.
쏴아아아! 철썩! 끼륵! 끼륵!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그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움직이면서 흘리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도신일체가 된 집중력으로 살펴보는 데도 그렇다.
‘이것이 목형술인가.’
두주는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배와 한 몸이 되었다.
탕산에서 찾아낸 복면인들과 같은 목형술이라면…… 두주는 위장포를 뒤집어쓰고 주위 어딘가에 숨어 있다.
그런데 이게 말도 안 된다.
자신이 빤히 지켜보는 앞에서 모습을 숨긴다는 게 말이 되나. 검이 날아오는 것도 지켜보는 시력인데, 하물며 사람이 큼지막한 몸뚱이를 숨기는 작업을 어떻게 놓칠 수 있나.
틀림없이 어딘가에 숨어 있는데, 전혀 발각되지 않는다.
청각 대신 시각을 써봤다.
파앗!
온몸의 감각이 떨어져 나갔다. 청각, 후각, 미각, 통각…… 몸뚱이가 배를 딛고 서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신 감각이 소멸하면서 영혼처럼 붕 떠오른다는 느낌이 든다.
대신에 두 눈은 대낮처럼 밝아졌다.
오감으로 분산될 집중력이 오직 한 군데, 시각으로만 모였다. 몰안이다.
스스스슷! 스스슷!
아걸은 빠르게 배를 훑어보았다.
그래도 두주는 보이지 않는다. 동영 인자들이 펼치는 목형술과 두주가 전개하는 목형술은 전혀 다른 신술이다. 아예 차원이 달라서 신공처럼 보이기도 한다.
파팟! 파파파팟!
아걸은 당황하지 않고 몰안을 유지했다.
공기가 갈라질 것이다. 사람이 움직이면 반드시 공기가 소리를 지른다. 조금 더 희망 사항을 말한다면 움직임이 미세한 파동이 되어서 흘러나오기를 바란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진다.’
인내의 싸움인가? 그렇다면 두주는 상당히 편한 곳에 자리 잡았다. 자신은 매우 불편한 자세다. 그래도 자세를 바꿀 수 없다. 내가 일으키는 움직임은 두주의 움직임을 가려준다. 내 움직임에 신경 쓰여서 두주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다.
움직임은 찰나에 일어나지만, 그 정도의 시간으로도 생사를 가름하기에는 충분하다.
차분하게 참는다. 두주가 먼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린다. 두 사람의 위치나 자세로 보면 아마도 자신이 먼저 움직이고, 그 순간에 두주가 공격해 올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그래도 버텨본다. 순간,
쒝!
갑자기 옆구리 쪽에서 바람이 일어났다.
진파!
생각할 것도 없이 진파가 일어났다. 진파를 일으키고자 하지 않았다. 옆구리에서 바람이 일어난다고 느끼기 전에는 진파를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반철도가 저절로 부르르 떨었다. 본능적으로 진파가 튀어나왔다.
탕! 따앙!
동시에 도검이 부딪히면서 불똥을 일으켰다.
묵검이 반철도를 베면서 지나갔다. 칼끝에서 부딪치기 시작했다. 이어서 도신을 베고, 칼등으로 빠져나갔다. 반철도의 옆면을 정확하게 베어냈다.
팟!
두주는 또 사라졌다.
아주 잠깐, 도검이 부딪쳤다. 바로 그 순간에 번뜩이는 광망을 보았다. 그리고는 검이 사라졌다. 검초, 검법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검을 쓴 두주까지 완전히 없어졌다.
‘후우!’
아걸은 조금 편한 자세를 취했다.
이번에는 인내의 싸움을 하게 될지라도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도신일체가 되어서 두 눈에 정신을 집중했다.
모란은 두주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숨을 때도, 목형술을 풀 때도 감지하지 못했다. 목형술을 풀고 공격을 취해온 다음에야 알아챘다. 상당히 늦다.
‘지금으로써는 이게 최선…….’
아걸은 몰안을 유지했다.
방금 벌어진 일전은 누가 봐도 두주가 유리했다.
두주는 반철도를 베었다. 반면에 아걸은 반철도를 든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냥 도검이 부딪친 것이 아니다. 보통 무인들은 그렇게 볼지 몰라도 아걸과 두주는 베고 베인 것을 안다. 검이 반철도를 자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벤 것은 맞다.
몰안과 도신일체만으로는 목형술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면 다른 방책을 생각해내야 한다. 두주가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같은 방식으로 싸울 수는 없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아걸은 몰안과 도신일체를 꾸준히 유지했다.
고도의 정신 집중은 목형술을 보게 해준다. 믿는다. 자신이 보든가, 칼이 본다.
슈와악!
허공에서 어떤 기척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번쩍! 섬광이 터졌다. 검은 하늘에서 암기 수백 개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암기는 아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아걸이 서 있는 곳, 그리고 아걸이 움직일 만한 모든 곳을 공격한다.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지역을 공격한다.
사람이 펼치는 반자포망이다.
아걸은 즉시 뒤로 물러섰다.
두주는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암기 폭우가 쏟아지는 속에서 바람 소리가 일어났다. 같이 암기 폭우를 맞으면서 싸우자는 듯이 달려든다.
파라라락!
반철도가 몸 주위를 휘돌았다. 수신도가 펼쳐졌다. 밀밀한 칼 그림자가 전신을 에워쌌다.
까앙! 까아아아앙!
도검이 부딪쳤다.
그 순간, 아걸은 다시 뒤로 물러섰다. 두주 역시 옆으로 비켜나갔다.
파파파파팟!
그제야 하늘에서 떨어진 암기 폭우가 뱃전을 두들겼다.
섬광이 터지고, 암기가 떨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을 그야말로 찰나다. 지극히 짧은 순간에 두 사람은 일 초 교환을 했다. 정식으로 겨룬 것과 똑같은 겨룸을 나눴다.
‘목형술…… 암기에 실린 것은 금형술…… 목형술과 금형술의 연계. 오대신술은 끝이 없군.’
촤륵!
아걸은 반철도를 고쳐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