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七章 투득흔원(投得很遠) (5)
“하하하! 이럴 줄 알았어. 아주 기분 좋은데? 중원제일도라는 말이 썩 잘 어울려. 하하!”
두주가 웃었다.
“유음류, 다시 봤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취화원주와 함께 오는 건데, 아쉽네요.”
“어떤 면에서? 취화원에 암영검이 있어서?”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니 무공을 볼 필요는 없을 겁니다. 다만 살수검도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서요.”
“하하하!”
두주가 통쾌한 듯 웃으며 말했다.
“내 무공은 폭천비류야. 동영제일검이라는 말은 폭천비류에서 나왔지. 방금 그걸 막아낸 거야.”
아걸은 고개만 끄덕였다.
두주가 공격해올 때 폭류를 생각했는데, 검명도 폭천비류였나?
아걸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반철도를 잡은 손도 힘이 빠져있다. 무거운 반철도를 겨우 손가락 몇 개로만 잡았다.
왼팔도 주먹을 쥐지 않았다.
아걸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오른 다리를 살짝 앞으로 내밀고, 왼 다리에 중심을 실은 채 편안하게 서 있다. 시쳇말로 짝다리를 짚고 서 있다.
이런 모습은 즉각적인 반응이 힘들다. 신법을 전개하기가 무척 어렵다. 달려 나오려면 발을 크게 내디뎌야 한다. 불필요한 동작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하지만 두주는 아걸의 모습을 보고 더 기쁜 듯했다.
“내 검과 맞설 자격이 있어. 인정하지. 중원제일도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어. 그 말도 인정하지. 중원제일도가 맞아. 공부의 손에서 네 번이나 벗어난 것도 우연이 아니야. 이만한 칼이 있으니까 벗어났겠지.”
“공부와 싸울 때는 이런 칼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때도 이런 칼이었을 거야.”
주주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나 정도의 안목을 가지지는 못한 거 같은데. 아! 무시하는 건 아냐. 이건 무공과는 달라. 경륜이니까. 나중에 세월이 지나서 무공이라는 놈을 조금 더 자세히 깊이 알게 되면 그놈이 그놈이라는 것도 알게 될 거야.”
“그렇습니까?”
“지금 문주가 가지고 있는 칼, 그 칼은 옛날부터 문주의 몸에 붙어 있었던 거야. 지금에 와서 얻은 게 아니고 옛날부터 있었던 거란 말이지. 그것이 문득문득 뛰쳐나왔을 거고.”
아걸은 두주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몰안을 얻은 이후, 몰안은 항상 모든 싸움의 저간에 깔려 있었다.
삼십육 문주의 칼을 쓸 때도, 소축십검과 싸울 때도 늘 무공을 받쳐주었다.
허도기와 싸울 때는 더 집중되었다.
몰안에 뼈가 붙고, 살이 불어났지만…… 그래도 여전히 몰안은 굳건히 존재했다.
원의 크기가 얼마만 한지는 모르겠지만, 한 바퀴 휘돌아서 다시 원점에 섰다. 도신일체를 이루는 몰안이 모든 무공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두주가 하는 말을 단번에 알아듣는다.
“한 번쯤은 요행으로 빠져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는 실력 없으면 죽었어. 자부해도 좋아. 내 말이 틀리지 않을 테니까. 중원 무림에 거성이 돌아다녔는데, 너무 늦게 알았어.”
철컥!
두주가 검을 고쳐잡았다.
“이제부터 폭천비류의 정화를 보여줄 건데. 천만 근의 힘으로 내리칠 거야. 잘 막아.”
두주는 자신이 어떤 검을 전개할지 미리 알려주었다.
알아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 검은 아마도 공부 허도기를 목표로 수련한 검공일 것이다. 허도기에게 패한 후, 아무런 발전도 없었다고 보기 어려우니까.
그렇다면 허도기의 발검술을 제압할 수 있는 빠름이 있을 것이다. 허도기의 조명천해를 압도할 수 있는 파괴력도 담아야 한다. 허도기와 오랫동안 싸우면 불리하니, 단숨에 승부를 판가름내는 쪽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아걸은 두주가 전개할 검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것은 세상을 휘말아 올리는 강풍, 태풍이었다.
스읏!
아걸은 희미한 미소로 대답했다.
두주의 검이 숨통을 저며오고 있다. 자칫하면 단단하다고 생각한 도신일체가 무너질 것 같다. 순간,
“아!”
아걸은 탄식했다.
방금! 그렇다. 방금 자신은 안정을 잃었다.
두주의 검에 질려서 불안감을 떠올렸다. 그 순간 도신일체가 깨졌다. 몰안이 무너졌다.
한순간,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졌는데도 정작 자신은 기반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물론 지금은 당연히 알아챘고, 다시 가다듬었지만.
“훗! 후후!”
아걸은 환히 웃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자 즉시 안정이 찾아왔다. 슬며시 일어났던 긴장감이 완전히 늘어진다.
파앙!
폭천비류가 터졌다.
이런 검초…… 일홀문에서도 사용한 사람이 있다.
서리가헌의 일탄십검이다. 서리가헌은 한 번의 도약으로 십 검을 떨쳐냈다. 상대가 검초 한 번을 떨쳐낼 시간에 무려 십여 초나 전개했다.
더욱이 일탄십검은 매초를 펼칠 때마다 강도가 증폭되었다.
폭천비류가 일탄십검과 같다는 말은 아니다. 폭천비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힘으로 몰아쳐 온다. 일탄십검처럼 증폭하지 않는다. 그래서 검초가 훨씬 단순하고 깨끗하다.
또한, 그 하나의 힘이 폭풍처럼 강하다. 그리고 빠르기는 일탄십검을 능가한다.
‘폭풍!’
아걸은 폭풍이 휘몰아쳐 오는 느낌을 받았다.
당장 머릿속에서 ‘피해야 한다!’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일어났다. 이 힘에 부딪히면 모든 게 부서진다. 반철도도 종이처럼 찢어져 나갈 것이다.
탁!
아걸은 왼발에 중심을 싣고 짝다리로 서 있다가, 오른발로 중심을 옮겼다.
몸이 출렁거리면서 중심이 옮겨갔다.
다시 왼발에 중심을 실었다. 그러자 오른발로 옮겨졌던 중심이 다시 왼발로 옮겨진다.
몸의 중심이 옮겨진다는 말은 몸에 달린 손도 같이 따라서 움직인다는 뜻이다. 아걸 자신은 손을 쓰고 있지 않지만, 오른손에 들린 반철도가 저절로 출렁거린다.
탁탁탁! 탁탁탁탁!
연속에서 중심을 옮겼다. 힘으로 중심을 옮기는 것은 무척 늦다. 폭천비류를 막을 수 없다. 중심을 한 번 옮기는 동안에 폭천비류가 수십 차례나 들이친다.
아걸의 이동은 진기로 이루어진다.
탁탁탁탁! 타타타타탁!
몸이 수없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옮겨졌다. 더불어서 반철도가 빠르게 움직였다.
아걸은 움직이는 것 같지 않다. 가만히 서 있는 느낌이다. 두주가 시야에서 확 사라졌던 것처럼, 그의 움직임도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는다.
쒜에에에엑!
폭천비류가 가슴으로 몰아쳐 왔다.
그 순간, 힘차게 오른발을 밟았다. 왼쪽으로 흘러갔던 반철도가 몸 뒤로 빠진다. 몸 뒤로 빙글 돌아서 머리 위까지 솟구쳤다. 그리고 다시 일직선으로 내리쳤다.
몰안이 선계를 돌고 돌아서 첫 자리로 돌아왔듯이 반철도가 큰 원을 그리면서 휘돌았다.
이 칼은 팔로 쳐낸 것이 아니다. 몸이 움직였고, 몸에 붙은 팔이 자연 반동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팔에 붙은 반철도가 이끌리듯 따라서 움직였다.
칼 한 자루가 하단에서 등 뒤로, 머리 위로, 다시 앞으로 쏟아져 내린다.
둥근 원을 그린다.
하지만 반철도에는 아무런 힘도 깃들어 있지 않다. 아걸이 일으킨 진기는 몸에 국한되었다. 반철도에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반철도는 몸에 붙은 곁가지나 다름없다.
반면에 폭천비류는 폭풍이다. 가로막는 장애물은 산산이 찢어발긴다. 그리고 묵검이 가리키는 곳에 아걸의 몸뚱이가 있다. 반철도를 찢어발기고, 몸도 찢어낸다.
쫘아아악!
반철도와 묵검이 부딪혔다.
그 순간! 꽈앙! 묵검이 산산조각 났다.
반철도가 폭천비류를 두 쪽으로 갈랐다. 힘없이 내리쳐진 반철도가 폭천비류를 얇게 저미며 파고들었다. 마치 거대한 폭풍의 결을 파고든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반철도는 곧 거센 폭풍으로 변해서 땅을 향해 쏟아졌다.
파앗!
두주의 가슴에서 피가 터졌다.
두주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서 옆으로 비켜섰다.
쫙!
반철도가 피를 흩뿌리며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아니, 가슴을 쳤던 탄력 때문에 다시 한 바퀴 원을 그리며 빙글 휘둘러졌다. 아걸이 쳐낸 것은 한 번이지만 그 여파로 또 한 번 원을 그렸다.
“크흠!”
두주가 가슴을 활짝 열어젖힌 채 쭉 물러섰다.
뚝뚝! 뚝뚝뚝!
두주의 가슴에서 흘러내린 피가 뱃전을 적셨다.
“무서운 칼이네. 정확하게 폭천비류의 결을 갈랐어. 원심력을 최대한 이용한 칼. 은거 무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연도인지 뭔지를 추구했다고 들었는데 그 칼이야?”
“그때와는 다른 칼인데, 비슷합니다.”
아걸의 중심이동은 무작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두주의 신법과 조율했다. 달려오는 속도에 맞춰서 몸의 이동이 이루어졌다. 더불어서 반철도도 두주의 속도에 맞춰졌다.
폭천비류의 결을 쪼갠 것은 아걸이 폭천비류를 알고 있어서가 아니다. 서로의 속도가 맞춰지자, 반철도가 흘러들 구멍을 찾아냈다. 아니, 어디로 쳐야 할지 구멍이 보였다.
아걸은 이번 싸움 이전에 이런 칼을 써본 적이 없다. 상대의 움직임에 속도를 맞출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몸과 칼이 하나가 된다. 도신일체다. 여기에 상대의 움직임까지 동기화시킨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망아일체(忘我一體)라고 해야 할까?
“후후! 중원제일도다워. 내 맘 같아서는 천하제일도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공부가 천하라는 말은 붙이지 못하겠고…… 두 사람, 승부 좀 가리지 그래? 천하제일도가 되고도 남을 칼인데 중원제일도로 불리기는 억울하잖아?”
“그럴 생각입니다.”
털썩!
두주가 서 있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래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배에는 유음류 인자들이 가득 타고 있는데, 누구도 나와보지 않는다.
“석하(夕霞).”
“합!”
두주가 이름을 부른 후에야 복면인이 두주 앞에 내려섰다.
“졌다. 동영으로 돌아가자.”
“합!”
두주가 아걸을 쳐다봤다.
“이 시간 이후로 유음류는 중원에 간여하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공격이 멈춘 건 아니지.”
두주는 통증이 치미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전에 내린 명령은 거두지 못해. 두주의 한 마디는 천금 같아야 하고, 태산이어야 하거든. 그래서 일단 입 밖으로 뱉은 명령은 거두지 않아. 유음류의 전통이지.”
“알겠습니다.”
“지금을 기점으로 이전의 유음류와 이후의 유음류를 분리해서 생각해. 나를 벤 자에 대한 최대한의 조언이라고 할까? 하하!”
두주가 웃었다.
지금도 황제를 노리는 인자들이 있다. 그들을 거둬들이지 못한다는 말이다. 유음류를 이끄는 두주조차도 자신의 수하에게 내린 명령을 거두지 못한다.
그들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황제를 노릴 것이다.
몽설이나 금군은 동영 인자들이 이미 와해하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아직도 틈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 저들을 이끄는 무리 중에 적면 같은 자가 있다. 아직도 상당히 위험한 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솎아내야 한다.
아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언, 감사합니다.”
“문주의 싸움, 아직 끝난 게 아냐. 빠져나가는 길은 알아서. 됐다. 이제 들어가자.”
두주가 석하라고 불린 복면인에게 말했다.
그제야 복면인이 두주의 팔을 들어서 어깨에 걸쳐 맸다.
두주의 상처는 매우 중하다. 가슴이 쩍 벌어질 정도로 크게 베였다. 그러니 당장 치료부터 해야 한다. 쏟아지는 피부터 막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두주는 목숨을 부지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전혀 치료하지 않는다. 두주나 두주를 부축한 복면인이나 상처는 일절 건드리지 않는다.
쿨럭! 쿨럭!
몸에서 피가 뭉클뭉클 터져 나왔다.
두주는 복면인에게 온몸을 맡긴 채 아걸 곁을 지나쳤다.
“재밌는 칼이었어. 폭천비류를 깨는 방법은 많은데, 문주의 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빠름은 빠름으로, 강함은 강함으로 깬다. 후후! 문주의 칼은 패도(覇刀)야.”
두주의 음성이 점점 희미해졌다.
쓱! 저벅! 저벅!
복면인이 두주를 부축하고 선실로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두주의 몸에서 쏟아진 피가 뱃전을 붉게 물들였다.
선실 문을 들어설 무렵, 두주는 걷지도 못했다. 복면인에게 팔을 맡긴 채 축 늘어서서 질질 끌려 들어갔다. 의식을 잃은 게 분명했다. 아니, 죽었을까?
죽었다고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배를 준비해놨습니다. 미안하지만 지금 하선해 주셔야겠습니다.”
다른 복면인이 다가와서 말했다.
아걸이 복면인을 보며 말했다.
“부탁이 있는데, 옷 한 벌만 줄 수 없을까? 당신들이 입는 옷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