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36화 (536/600)

第百八章 무형영웅(無形英雄) (1)

“일홀문주가 이겼습니다.”

“호들갑 떨지 마라. 흑선(黑船)은?”

“바로 철수하고 있습니다. 동영군도 흑선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후후! 막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막지 못한 거지. 흑선은 아직도 세상을 뒤엎을 힘이 남아있어. 그런 점을 잘 아니 함부로 망동할 수 없었던 거지. 문주는?”

“화풀이를 당하고 있습니다.”

“후후! 문주라도 잡겠다는 건가? 흑선이 이탈하는 것은 막지 못하면서 문주를 잡겠다니. 하하하!”

수군도독 진일호 장군이 웃었다.

흑선은 두주가 타고 있는 배를 말한다. 다른 배와 달리 배 전체에 검은 옻칠을 해서 흑선이라고 부른다.

아걸이 두주에게 이겼다.

반신반의했는데…… 동영제일검을 꺾었다.

황제의 승부수가 통한 셈이다. 아니, 대장군의 승부수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아걸의 승리로 인해서 유음류가 빠졌다. 그러면 남은 수군은 하룻강아지다.

“출전 준비를 할까요? 저희가 서둘지 않으면 일홀문주는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부장이 말했다.

“빠져나오지 못한다. 일홀문주가? 후후후!”

진일호는 웃었다.

사람들은 매우 상식적인 사실을 착각한다.

동영군이 아걸을 잡겠다고 연일 싸우고 있는 것도 그중 하나다.

저들은 흑선이 전선에서 빠져나가는데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봤다. 흑선을 건드리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서다. 그런데 아걸을 잡겠다? 아걸은 단신으로 흑선에 뛰어들어서 두주를 베었다. 흑선 전체와 싸우겠다고 나선 사내다.

약한 자는 무서워 보이고, 정작 강한 자는 칠 수 있다는 논리이니, 이 얼마나 우스운 착각인가.

그런 착각은 아군도 한다.

아걸이 적선에 뛰어들고 두주를 벨 때까지 누가 도와준 적이 있나? 모두 수수방관했다. 혼자서 육만 대군들 사이로 들어가서 두주를 베었다.

그런 아걸이 저들에게 잡힐 것이라고 걱정한다.

정말 강한 자를 왜 다들 약자로 보는 것일까? 눈앞에서 강함을 드러냈는데도, 왜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일까?

부장이 다시 언급했다.

“일홀문주 혼자서 육만 대군과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능해.”

“네?”

“일홀문주는 이미 싸웠어. 싸운 후에 두주와 겨룬 거야. 그 사실을 왜 잊어버릴까?”

“장군님, 그래도…….”

부장이 놀란 표정으로 도독을 쳐다봤다.

“출전 준비는 해야지. 하지만 출전하는 곳은 파사 해협이 아냐. 진침(陳忱) 장군은 제일로를 이끌고 동선도(東先島)으로 가서 숨어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섬멸해라. 원무(袁無) 장군은 제이로를 이끌고 도천도(渡天島)로 가.”

명령이 하달되었다.

동영군을 상대로 어떤 전쟁을 벌일지 모의 전투를 한 적이 있다. 그중 최강수가 동선도와 도천도를 틀어막는 작전이다. 이 두 곳을 막으면 동영으로 빠져나갈 길이 막힌다.

도독은 동영군을 얌전히 돌려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싸워서 이기는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고, 철저하게 섬멸할 생각이다. 제일로가 백 척, 제이로가 백 척이다. 이백 척이 길목을 막고 요격을 하면 단숨에 백여 척이 침몰할 것이다.

“제칠방안(第七方案) 섬멸 작전입니까?”

원무 장군이 물었다.

도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삼로를 이끌고 천천히 몰이하지. 잘 몰아줄 테니까, 마음껏 두들겨.”

도독이 말했다.

삼로 백 척은 징집군이다. 수군 중 가장 약하다. 하지만 몰이를 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들은 이미 두주를 잃어서 패색이 짙다. 옆에서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당장 물러선다. 아니, 저들 마음속에는 이미 동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모두 긴장했다. 이것은 대전쟁이다. 얌전히, 죽은 듯이 있던 수군이 드디어 움직인다.

“혹여 유음류 흑선이 나타나면 막지 마라. 통과시켜. 흑선이 저들을 이끈다면 요격하지 말고 보내줘라. 흑선을 막으면 오히려 너희가 전멸한다.”

“저희도 싸울 수 있습니다.”

“흑선을 너무 과하게 보시는 듯 하십니다.”

부장들이 투지를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두주는 생사불명이다. 아걸에게 베인 것은 확실하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남은 것은 기함(旗艦)인 안택선(安宅船) 한 척과 소조선 한 척뿐이다.

두주가 왜 안택선을 버리고 돌격선인 소조선에 승선하는지 모르지만…… 단 두 척만 외롭게 움직인다.

부장들 눈에는 단번에 쓸어버려도 될 것처럼 보일 것이다.

동영군이 아걸을 보고 확! 쓸어버리면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잊지 말아야 할 것이…… 그 두 척 때문에 도독이 출전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두주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공격할 수 없다.

진일호 장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약 너희가 흑선을 막으면 너희도 저들 같은 꼴이 된다. 일홀문주를 잡겠다고 몇 날 며칠 전전긍긍하는……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기 싫으면 눈길도 주지 마.”

“명령을 받듭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원무 장군이 물었다.

진일호 도독은 원무 장군을 쳐다봤다. 눈으로 무엇이 궁금하냐고 물었다.

“동영 수군을 이끌고 이곳으로 온 자는 두주입니다. 두주는 현재 생사 불명. 그들을 쳐서 두 번 다시 중원 땅을 노리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동영 수군을 치려고 하는데?”

진일로 장군이 문답 형식을 빌려서 되물었다.

“수군은 군대입니다. 저들이 여기서 섬멸되더라도 다른 장수가 다른 부대를 만들면 다시 침공합니다. 반면에 유음류는 여기서 된통 당하면 침공하기를 꺼릴 겁니다. 중원의 안전 보장을 위해서는 두주를 필히 공격해야 한다는 소견입니다.”

“반대로 생각했구나.”

“네?”

“유음류는 무인 집단이다. 살수 집단이지. 이번 일로 인해서 중원 땅을 넘보지 못한다? 그렇지 않다. 언제든지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간다. 이번에 철저히 당하면 오히려 다음 세대에 피의 복수를 노릴지도 모르지.”

“음!”

원무 장군이 침음했다.

유음류에 대해서는 모두 공통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해석이 달랐다.

도독이 말을 이었다.

“반면에 동영군은 군대다. 이번에 패배하면 그 아픔이 뼛속 깊이 새겨질 것이다. 동영군 타카스기 장군의 뼈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동영이라는 나라의 뼈에 새겨진다. 우리가 군대를 보냈는데 패했다. 몇 대 얻어맞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괴멸 상태에까지 치몰렸다. 중원은 넘보기 힘든 땅이다.”

“아!”

“타카스기에게 패배를 안기는 것이 아니다. 동영군에게 패배를 안겨야 한다. 그러니 최대한 가혹하게, 살아서 돌아가는 자가 몇 명 되지 않을 정도로. 이건 제장들의 몫이야.”

“알겠습니다. 소장의 생각이 깊지 못했습니다.”

원무 장군이 오른손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그럼 일홀문주는 어떻게 할까요? 혼자 싸울 수 있다지만, 이대로 놔두면 힘들어 보입니다만.”

부장이 물었다.

“조금만 더 신세를 지자. 최대한 동영군을 붙잡아 놔야지. 그럴수록 우리에게 유리하니까.”

도독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수군에게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로군과 이로군이 동선도와 도천도로 가서 자리를 잡을 시간이 필요하다.

아걸이 안쪽에서 이목을 끌어줘야 탐지선이 활동하지 못한다.

만약 뱃길이 차단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저들은 동선도 길을 이용하지 않는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전쟁을 피해서 남쪽으로 곧장 내려간다. 빙 돌아가는 길을 택할 것이다.

동선도 길보다 두 달은 더 걸리는 먼 뱃길이지만 그쪽 길을 이용할 것이 분명하다.

“두 장군이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 그래야 일홀문주에게 폐를 덜 끼쳐.”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이동하겠습니다.”

두 장군이 즉시 일어서서 읍했다.

* * *

쒜에엑! 타다닥! 타다다닥!

화살이 방패를 두들겼다.

아걸은 적에게서 빼앗은 방패로 등을 가렸다. 좌우도 가리고 하늘도 가렸다. 아걸을 쏠 수 있는 곳은 전면뿐이다. 하지만 전면은 넓은 바다다.

우걱! 우걱!

아걸은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역시 적에게서 빼앗은 주먹밥과 짠무로 요기를 했다.

타타탁! 쒜에엑! 타아아악!

화살이 연신 날아왔다.

방패에 가려서 뚫지 못하는데도 계속해서 쏘아댄다.

염려되는 것은 화살이 아니다. 포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영의 포는 들보에 매달아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전선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고정식 포가를 사용해서는 포의 반동을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고정식 포가 대신에 포를 쏠 때마다 뒤로 물러서는 동거(童車)를 이용하면서부터 포격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동거를 이용한 포격과 들보에 매달아서도 쏘는 방식을 모두 사용한다. 동거 포격은 원거리용, 들보 포격은 직사용으로 쓴다.

아걸은 직사 포격을 신경 썼다.

꽈앙!

포격이 터졌다.

아걸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사람처럼 우측 방패를 밀어내며 데구르르 굴렀다.

꽈아앙!

밥을 먹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아걸은 적들에게 가려진 선실 옆으로 굴러가서 바다를 보며 앉았다. 그리고 먹던 주먹밥을 마저 먹었다.

‘이제 이런 싸움은 그만할 때도 됐는데…….’

두주와 승부를 가린 후부터, 아걸의 싸움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변했다.

아걸은 전면전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을 때만 적을 살상하고, 그 외에는 주로 피하는 방식을 쓴다.

아걸은 유음류의 오대신술을 사용한다.

아걸은 소조선에서 빠져나올 때, 유음류의 무복을 얻어서 나왔다. 오대신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의복이다. 변복이 가능하고, 물속에서는 침수도 되지 않는다.

무복을 건네준다는 것은 유음류의 오대신술을 건네주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데도 무복을 건네주었다.

유음류는 전장에서 빠지지만, 동영 수군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두주는 동영 수군에게 물러서라고 했지만, 두주의 말을 들을 리 없다. 두주가 아니었으면 벌써 전쟁을 벌였을 자들이다. 하물며 두주가 무너진 이상 유음류의 말을 들을 리 없다.

저들은 틀림없이 아걸을 공격한다.

그래서 두주가 빠져나가는 길은 스스로 알아서 찾으라고 말했던 것이다.

아걸은 굳이 탈출로를 찾을 필요가 없다. 두주를 쓰러트린 칼로 저들을 베면 된다. 그러면 파사 해협은 동영군이 흘린 피로 새빨갛게 물들 것이다.

아걸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저들이 배 몇 척을 희생시키면서 포격전으로 나서면 중원제일도도 당할 수밖에 없다.

복면인은 그런 점까지 읽고 무복을 주었다.

아걸은 동영군의 피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절대 칼로 뚫고 나갈 생각이 없다. 숨어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최우선책으로 택할 생각이다.

아걸은 철저하게 좁은 곳만 골라서 이동했다. 동영군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중원 무림도 유음류처럼 은신술을 사용한다.

오대신술처럼 위장포를 이용하는 은신술도 있고, 무공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은신술을 사용하기 전에 가장 먼저 이용해야 할 것이 있다. 엄폐물이다. 엄폐물이 있다면 굳이 은신술을 펼칠 필요가 없다. 바위 뒤에 숨으면 되는데, 무엇 하러 위장포를 뒤집어쓰고 숨겠나. 모든 은신술에 앞서서 엄폐물을 찾는 게 최고로 좋다.

은폐물이 첫 번째요 은신술이 두 번째다.

사실, 뛰어난 살수일수록 엄폐물을 잘 찾고, 잘 이용한다.

아걸은 철저하게 엄폐물을 이용했다.

엄폐물이 없을 때는 무복을 이용해서 숨었다. 오대신술 중 목형술이라고 해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숨었다.

하지만 칼을 쓸 때는 잔인하게 썼다.

이왕 죽을 사람들…… 가볍게 쳐도 죽일 수는 있지만 아주 무겁게 쳤다.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도록 잔인한 도법을 사용했다.

그래야 공포감이 치민다. 겉으로는 태연해도 뱃속에서부터 공포를 느낄 것이다.

쉽게 보고 덤벼드는 자들만 없으면 된다.

이것이 불필요한 살상을 줄이는 길이다.

넓은 바다라서 쉽게 빠져나갈 수는 없지만,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충돌을 피할 생각이다. 될 수 있는 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