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八章 무형영웅(無形英雄) (3)
달이 중천에 떴다.
이미 밤이 깊을 대로 깊었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자정을 넘어서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밤을 지나 새벽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스슷! 척!
앞서서 길을 인도하던 띠엥 담 레이와 꼰 카오가 걸음을 멈췄다.
뒤따르던 전사들도 일제히 멈춰 섰다.
휴식!
명령은 필요 없다. 달이 중천에 떴고, 달리던 걸음을 멈췄으니 명령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부터 세 시진 동안 휴식한다.
“아! 난 잠이나 자야겠다.”
전사가 멈춰 선 곳에 바로 털썩 주저앉는가 싶더니 이내 사지를 쭉 펴고 드러누웠다.
“담(毯: 담요)이라도 깔고 자. 한기 들리면 몸 상해.”
“곧 죽을 몸, 상하면 어때.”
“마음대로 해라.”
전사들이 마음을 풀어놓고 농을 주고받았다.
긴 여정에서, 그것도 급하게 먼 길을 달려가는 여정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잠이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두 다리가 끊어질 듯 아프지만 쏟아지는 잠과는 비교하지 못한다.
드르렁! 드르렁!
벌써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도 들렸다.
방금까지 전력으로 치달려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쉽게 잠에 빠졌다.
전사들은 어지간한 소음은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에 도착했다.
띠엥 담 레이와 꼰 카오는 긴 휴식을 취할 시간이 되면 가장 안전한 장소를 찾는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고, 사람들 눈을 피할 수 있는 은밀한 장소.
맹수는 상관하지 않는다. 어떤 맹수가 나타나도 즉시 처리할 수 있다. 척박한 장소도 상관없다. 주위에 물 한 모금 구할 수 없는 곳이라도 무방하다.
사람들과 만나지 않는 장소면 된다.
전탐조 두 명은 그런 장소를 찾은 후에야 멈추어 선다. 만약 찾지 못했다면 계속 이동했을 것이다.
“아! 여기 좋은데?”
전사 몇 명은 개울을 찾아서 퉁퉁 부은 발을 물에 담갔다.
모두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쵸 디엔은 전사들이 쉬는 것을 확인한 후, 숲 깊은 곳으로 들어섰다.
그에게는 세 시진이라는 시간은 너무 많다. 잠자는 데는 두 시진이면 족하다. 휴식을 취하는 등 개인 정비를 하는 시간은 일다경이면 충분하다.
최소한 반 시진은 남아돈다.
하지만 전사들은 쵸 디엔 같지 않다. 그들은 최소한 두 시진은 자야 한다. 반 시진은 개인 정비를 하는 데 쓰고, 나머지 반 시진 정도만 쉬면서 즐긴다.
스릉!
쵸 디엔은 검을 뽑았다. 그리고 천천히 바람을 갈랐다.
쉬이잇! 쒜엑! 쒜에엑!
천천히 시작한 검초가 빠르게 허공을 갈라냈다.
쵸 디엔은 검에 진기를 싣지 않고 검초를 펼친다. 검에 진기를 투입하면 너무 강렬해서 밤의 고요함을 깬다. 전사들의 휴식을 단숨에 깨버린다.
쵸 디엔이 펼치는 검, 다오 푼 라야는 태양의 열기를 지상에 쏟아붓는 검이다.
어떤 검초는 진기를 싣지 않으면 펼칠 수가 없다. 그런 부분은 두루뭉술하게 지나간다. 도약도 생략한다. 속도도 잊어버린다. 다만 초식의 세세한 부분만 취한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시간이 흐를수록 검이 강렬해졌다.
진기를 싣지 않았는데 주위에 있는 나무들이 태풍에 휩쓸린 듯 크게 흔들렸다.
다오 푼 라야, 적양팔식.
단 하루도, 아무리 급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다오 푼 라야는 멈추지 않는다. 단전에서 태양이 솟구치는 듯 강렬한 열기가 사지백해로 흘러나간다.
단지 초식만 전개하는데도 이렇다.
초식이 진기를 끌어낸다. 쵸 디엔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끌어내고 있다. 제대로 된 다오 푼 라야를 세상에 선보이라고 유혹한다.
스읏!
수련을 하는 쵸 디엔 앞에 전사가 내려섰다.
쵸 디엔은 나타난 전사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검초를 펼쳤다. 다오 푼 라야 팔 식을 끝까지 마무리했다.
“밀서가 남겨져 있어서 가지고 왔습니다.”
전사가 밀봉된 서신을 내밀었다.
야천은 특정한 장소에 밀서를 남겨놓는다. 쵸 디엔이 가져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특별히 쵸 디엔에게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중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서없이 남긴다. 쵸 디엔이 알아두면 좋은 일들만.
이번에는 특정 장소가 전사들의 행로와 가까웠다. 그래서 중간에 날쌘 다람쥐, 꼰샥낙넨이 대열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용케 일행을 찾아왔다.
꼰샥낙넨은 전사들이 움직이는 것보다 두 배는 더 바쁘게 움직였다.
슷!
쵸 디엔이 밀서를 받았다.
밀서는 밀봉된 상태다. 꼰샥낙넨은 밀서 안에 어떤 내용이 적혀있는지 알지 못한다. 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읽을 생각도 하지 않지만, 설혹 안다고 해도 열어보지 않는다.
전사들은 쵸 디엔에게 철저히 복종한다.
토족 전사들은 족장의 말 한마디에 목숨을 던진다. 일체, 의문을 품지 않고 따른다.
쵸 디엔이 밀서를 뜯어서 읽었다. 그리고 그의 눈이 놀라움으로 크게 부릅떠졌다.
“유음류…… 두주가!”
“결과가 나왔습니까?”
꼰샥낙넨이 물었다.
아걸과 유음류 두주의 결전은 비밀이 아니다. 그들의 결전한다는 소식은 이미 널리 알려져서, 중원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쵸 디엔도 아걸이 남해로 떠났다는 사실은 중원에 침투한 즉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걸 대 동영제일검 유음류 두주.
“일홀문주가 이겼다. 유음류 두주가 패퇴하여 동영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생사불명이라.”
쵸 디엔이 중얼거렸다.
꼰샥낙넨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밀서에는 두주의 부상이 심각하다고 적혀있었다. 생사를 가를 정도의 상처였다고 한다.
그만한 상처를 입었는데도 뒷이야기가 흘러나오지 않는 것은 유음류의 특성 때문이다. 그들이 숨기려고 작심하면 숨기지 못할 것이 없다.
“그렇게 됐군요. 아걸이 이겼군요.”
꼰샥낙넨이 눈을 부릅뜬 채 말했다.
쵸 디엔은 꼰샥낙넨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걸과 두주가 그려냈을 수많은 움직임이 번뜩이는 중이었다. 두주의 검은 모르겠으나 아걸의 칼은 알고 있으니.
이 세상에서 자타공인 절대 강자를 꼽으라면 딱 두 명이 거론된다.
제일 첫 번째로 손꼽히는 강자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천하제일검 허도기다.
이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면 제 이인자는 누군가? 일홀문 문주인 아걸이다.
중원 모든 무인이 이런 대답을 한다. 하지만 일부 사람은 이론을 제기한다.
제일인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데, 제이인자를 말할 때는 당장 ‘아니, 그 사람보다는 이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다.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일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쵸 디엔도 일홀문주가 두 번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솔직히 말하면 유음류 두주가 두 번째다. 일홀문주보다 한 수 더 강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유음류 두주를 아는 사람들이다. 두주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면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중원 무인 대부분은 두주를 거의 모른다. 중원을 벗어나서 세계로 눈길을 돌린 사람만이 두주를 안다.
두주라면…… 중원이 몰라서 그렇지 유음류 두주라면 능히 아걸을 넘어서 허도기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
한데 두주가 아걸에게 졌다.
“일이 이렇게 됐군.”
쵸 디엔은 밀서를 와락 구겼다.
흥분하거나 당황하지는 않는다. 아걸이 새롭게 보이지도 않는다. 두주가 아걸에게 졌지만, 아직도 검으로는 두주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그 싸움에서는 일진이 따라주지 않아서 아걸이 이겼을 뿐…… 다시 싸우면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모를 것이다.
아걸과 두주는 거의 평수다.
평수끼리의 싸움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일진 좋은 자가 이긴다.
어쨌든 두주는 생사불명이다. 그러면 이제는 일홀문주가 두 번째인가? 아니다. 아직도 일홀문주와 자웅을 겨뤄볼 만한 절대자들이 존재한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쵸 디엔, 자신이다.
쵸 디엔은 전임 족장도 성취하지 못한 다오 푼 라야를 십분 성취해냈다.
전 족장은 다오 푼 라야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에게 적양팔식을 전수했지만, 그 검은 흉내만 낸 것이다. 진실한 다오 푼 라야가 아니었다.
진실한 다오 푼 라야는 밀림 속에서 맹수와 싸우면서 터득해야 한다. 편안하게 넓은 공지에서 검을 휘둘러 깨달을 수 있는 절공이 아니다. 그래서는 알맹이가 빠진다.
다오 푼 라야는 목숨을 걸어야만 펼칠 수 있는 검법이다. 즉, 생존검이요, 실전검이다.
쵸 디엔은 족장과 아걸이 싸우는 모습을 봤다.
족장이 펼치는 다오 푼 라야의 마지막 초식 뇻 디엔을 봤다. 그리고 아걸이 뇻 디엔을 어떻게 무너트리는 지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그래서 감히 장담한다. 아걸의 칼을 정확하게 안다.
지금, 자신이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자신과 아걸이 싸우면 그를 쓰러트릴 수 있다.
물론 아걸은 그 싸움 이후에도 아주 큰 고비를 넘어왔다.
토족 칠백 전사와 싸웠을 때보다 더 강한 무인이 되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다오 푼 라야는 최강의 검이다.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다.
쵸 디엔은 자신의 검이 무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도 공부의 조명십해를 능가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 외에는 어떤 검에도 자리를 내어줄 생각이 없다.
제이인자? 다오 푼 라야다.
황상 곁을 지키는 호황위 군주 몽설의 혈검도 이인자 자리를 다툴 수 있는 최강 검법이다. 물론 혈해검신이 직접 펼친다는 전제하에서 말한다.
몽설이 펼치는 혈검은 열외다. 몽설의 혈검은 아직 어리다.
황궁에는 무시하지 못할 검이 또 하나 도사리고 있다. 이 검도 동영제일검처럼 아는 사람만 안다. 중원인들도 거의 모르는 숨어 있는 검이다.
혈랑의 야수검.
사실, 쵸 디엔도 황궁에 이런 검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공부 허도기가 알려주어서 알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야수검은 능히 제이인자를 다툴 수 있다.
공부에게는 밀리지만 그 외 어떤 검에도 밀리지 않는 최고의 검이라고 본다.
물론 다오 푼 라야에게는 한 수 뒤진다.
예전의 쵸 디엔이라면 감히 맞서볼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만, 다오 푼 라야를 십분 완성한 지금은 눈 아래로 여긴다. 장담하건대 야수검이 찢긴다.
몽설은 야수검조차도 능가하지 못한다.
능히 제이인자를 다툴 수 있는 절정 검법 두 개가 후인을 잘못 만나서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
아걸이 문제다. 유음류의 두주를 이겼다면…… 일홀도는 무시할 수 없는 칼이 되었다. 예전에도 강했지만, 다오 푼 라야의 적수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수정해야 한다.
‘다시 만나면 반드시 쓰려야 할 자…… 족장의 복수…… 후후! 우린 부딪치겠군.’
드르렁! 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심하게 들려왔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나뭇잎이 파르르 떨린다.
“수고했다. 너도 쉬어라.”
쵸 디엔이 말했다.
스읏!
쵸 디엔은 검을 들어 올렸다.
지금은 쉴 때다. 다른 때 같았으면 벌써 수련을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을 위해서 두 시진 정도는 잠을 자두어야 한다. 운기만으로 버틸 수는 없다.
하지만 아걸이 유음류 두주를 이겼다는 밀서를 받으니 도저히 쉴 수가 없다.
쓱! 쓰으읏! 쉐에엑!
진기를 담지 않은 검이 허공을 찢었다.
‘토족이 흘린 피의 대가…… 내놓아야지. 죽였으면 값을 치러야지. 그게 세상 이치.’
쒜엑! 쒜에엑! 쒜에엑!
검초가 빠르게 흘렀다.
느리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래야 진기가 실리지 않는데…… 쵸 디엔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검에 힘이 실렸다. 단전 진기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꾸르르릉! 꽈아아아앙!
숲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울렸다.
스스슷! 스스스슷!
전사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지난밤에는 편히 쉬지 못했다. 깊은 잠에 빠졌었는데, 천둥 치는 소리에 놀라서 눈을 떴다. 그리고 그때부터 무려 한 시진 동안이나 잠들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 피곤함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족장의 마음을 안다. 꼰샥낙넨에게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기 때문에 족장을 이해한다.
그들은 재빨리 행낭을 꾸리고 건량으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자신들이 머물렀던 흔적을 말끔히 치웠다.
쵸 디엔이 나타났다.
“가겠습니다.”
띠엥 담 레이가 말하고는 즉시 뒤돌아서서 뛰기 시작했다.
전사들이 바로 뒤따라 움직였다.
간다! 황궁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