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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539화 (539/600)

第百八章 무형영웅(無形英雄) (4)

“상군께서 이기셨답니다.”

취운이 한달음에 달려와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이겼네.”

몽설은 많이 놀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겼다는 소식을 들으니 역시 기쁜 듯 배시시 웃었다.

“이기실 줄 알았어요?”

“예.”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몽설은 이겼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연했다. 아걸이 건재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다.

‘너무 위험해.’

취운은 몽설의 이런 점이 걱정스러웠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일이 무너지면 충격도 그만큼 크다. 아걸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때 몽설이 받을 충격은 그녀를 단숨에 무너트리고도 남을 것이다.

“다친 데는, 다친 데는 없고?”

“부상은 조금 있으신 것 같아요.”

“부상? 그 사람…… 다치지 않고는 싸움을 못 하네. 언니, 할아버지 좀 찾아줘.”

몽설이 말했다.

취운은 몽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챘다.

“녹선마황이요?”

“그게 있으면…….”

“전임 적랑대주님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고…… 불사요기를 쓰시는 건 어떠세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몽설은 말을 잊지 못했다.

아삼은 자유분방한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들이닥치는가 하면 또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슬쩍 사라져 버린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아삼이 사라지면 흔적을 찾을 길은 끊긴다. 금군도 취화원도 일절 흔적을 찾지 못한다.

아삼은 적랑대 추격 수법을 안다. 취화원이 어떤 식으로 추격하는지도 알고, 금군 추격술도 안다. 야천이 어떤 눈을 이용하는지도 꿰뚫고 있다.

중원에서 그를 찾을 수 있는 모든 조직의 움직임을 다 안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쉽게 피할 수 있다.

“불사요기도 좋지만, 오빠에게는 녹선마황이 제격이야. 지금 당장 그게 있어야 해.”

몽설이 중얼거렸다.

녹선마황처럼 일홀문과 극성이 맞는 요물도 없을 것이다.

아걸도 녹선마황의 약효를 안다. 그러면 왜 그토록 소중한 물건을 몸에서 떼어놓고 다니나? 녹선마황이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이 왜 정작 소지는 하지 않으려고 하나.

이럴 때는 다친 아걸도 찾지 못하는 아삼도 밉기만 하다.

녹선마황이 안 된다면 불사요기는 어떤가? 하지만 취화원은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한다.

백살도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제든 틈이 벌어지기만 하면 당장 동영 인자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정작 그들을 이끌고 온 우두머리는 동영으로 돌아갔는데, 수하들만 남아서 악착같이 달라붙는다. 두주에게 물러서라는 명령을 받지 못했으니 계속 공격한다는 식이다.

그들은 사람들 속에 숨었다.

원래 나무와 하나가 되어서 나무가 되어버리는 것이 목형술이다. 그것을 응용하면 목형술로 사람과 하나가 되어서 사람 속에 스며들 수도 있다.

동영 인자는 사람이 아닌가? 사람과 하나가 되다니.

여기서 말하는 ‘사람과 하나가 된다’라는 것은 동영 인자의 인술이 완전히 배제된 평범한 범인을 가리킨다. 전혀 무인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취화원이 추구하는 퇴빙과 같다.

살수의 최고봉, 얼음이 매우 천천히 녹아서 흔적 없이 소멸해 버릴 때처럼…… 전혀 살기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 뛰어남이나 비범함을 보이지 않는 사람, 범인보다도 못한 사람이 되어서 전혀 경계할 필요가 없는 사람.

살수가 퇴빙의 경지에 이르면 살기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완전히 보통 인간이 되어서 사람들 속에 섞여서 지낸다.

그가 옆으로 다가와도 전혀 살기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방비하지 않는다. 곁을 스쳐 지나가면서 슬쩍 단검을 찔러도 전혀 살기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 살수를 어떻게 막나?

단도에 극독이라도 묻혀놓으면 살짝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

이것이 최고의 살법이다. 그 어떤 무공보다도 강한 살법이다. 단지 살법만 놓고 볼 때는 일홀도나 혈검, 사생락보다도 뛰어난 절기 중의 절기다.

동영 인자들의 오대신술이 퇴빙과 같다.

금군이 백살도축을 막고 있다. 취화원은 황제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충실했던 시녀가 갑자기 공격해 올 수도 있다.

동영 인자는 고정 관자만 쓰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사람을 회유하고 협박한다. 동영과 전혀 관계없던 사람을 꼬드기거나 협박해서 칼을 들게 만든다.

사실, 그들이 드는 칼이 동영 인자의 급습보다도 무섭다.

몽설은 백살도축이 끝나지 않는 한, 황궁을 떠나지 못한다.

몽설이 물었다.

“오빠가 말은 탈 수 있어요?”

“마차를 타고 오시는 중이랍니다. 유람하듯이 쉬엄쉬엄 오신다고 합니다.”

‘상처가 깊다!’

상처가 별것이 아니라면 마차는 달렸을 것이다. 마차 바퀴가 돌부리에 걸려서 덜컹거리는 것조차 상처에 충격이 된다. 그래서 일부러 천천히 마차를 몬다.

“휴우!”

몽설은 긴 숨을 뿜어내며 마음을 다독였다.

“언니, 할아버지를 찾아줘요. 지금 오빠에게 필요한 사람은 할아버지예요.”

“알겠습니다.”

취운이 즉시 밖으로 달려나갔다.

아걸은 이미 최상의 치료를 받고 있다.

싸움은 끝났다. 아걸은 영웅의 자격으로 대만도 땅을 밟았다.

전란을 잠재운 영웅.

아걸은 개선장군이다.

그러니 모든 영약을 총동원해서 상처를 치료한다. 싸움 중일 때는 도와주지 못해도 지금은 모든 의원이 달라붙어서 치료한다. 그러니 아걸의 상처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까지 치료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처가 깊어도 아걸은 충분히 이겨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들은 티끌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걸이 다쳤다는 게 마음 아프지, 어떻게 치료받는지 궁금한 게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다. 불사요기가 아니라 진기를 모두 쏟아 붓을 수도 있다.

한데 니환일검이 요요히 혈광을 토해낸다.

요즘 들어서 니환궁이 계속 열리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니환일검이 모습을 드러낸다.

불길한 징조다.

주위에서 살기가 번뜩이고 있다.

몽설은 이런 현상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니환궁이 떨림은 일종의 예고다. 예견, 예언이나 다름없다. 현상 감지라고 할 수는 없고, 막연한 느낌에 가깝다고 할 수가 있다. 무시해도 좋은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궁 밖은 금군이 꽉 쥐고 있고, 궁 안은 취화원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징조는 전혀 없다.

니환궁의 떨림은 어긋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현상을 말하면 금군이나 취화원은 경계의 끈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지금도 긴장도가 한껏 당겨져 있는데 여기서 더 당겨진다.

활시위도 너무 강하게 당기면 줄이 끊어진다.

긴장도 적당한 상태로 유지할 때 제대로 작동한다. 신경이 곤두서고 두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예민하게 번뜩이면 제대로 된 감각을 유지하지 못한다.

몽설은 니환궁의 떨림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만은 니환일검이 일어서는 느낌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취화원 살수들도 아걸에게 보내지 못한다. 항상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오빠, 잘 견뎌. 오빠는 늘 견뎠으니까 이번에도 견딜 거야. 그리고 축하해. 동영제일검을 꺾었네.”

몽설이 중얼거렸다.

유음료의 수장 두주는 공부 허도기에게 반 초 차이로 패했다는 절정 검수다.

아걸이 그런 사람을 꺾었다.

몽설은 아걸이 이십사 위문의 함정에서 빠져나왔을 때보다도 더 기뻤다.

탕산 싸움에서 살아나온 것만 해도 기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번 싸움은 종류가 다르다. 그때보다 이번 싸움에서 이긴 것이 정말 기뻤다.

아걸은 공부 허도기와 필연적으로 싸워야 한다.

불구대천지수다. 부부를 죽인 원수, 사부를 죽인 원수다.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간적이다.

그런 자가 무공은 터무니없이 높다.

필연적으로 싸워야 하고, 상대가 터무니없이 강하다.

아걸이 죽을 가능성은? 거의 확실하다. 삶을 기대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아걸이 두주를 이겼다. 공부 허도기의 검을 어느 정도는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허도기와 싸워도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물론 아걸은 이전에도 허도기의 손에서 네 번이나 살아남았다.

몽설은 이 네 번의 생존을 기적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런 기적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도 안다.

무인에게 기적은 한 번만으로도 충분하다. 두 번 일어난 것은 천운이다. 아걸은 그런 기적을 네 번이나 얻었다. 더 바란다는 건 무리다. 양심이 없는 거다.

공부 허도기도 다음 싸움에서는 반드시 아걸의 생명을 취할 것이다. 반드시 목숨을 끊어버릴 절초를 펼칠 것이다. 허도기가 자랑하는 발검술로.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서 아걸이 두주를 꺾었으니, 어떻게 기뻐하지 않을 수 있나.

“오빠. 어서 돌아와. 내가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마중 못 나가서 미안하고, 상처 돌보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래도 난 항상 오빠를 믿어. 어서 와.”

몽설은 아걸을 생각하며 웃었다.

* * *

“아걸이 이겼다고?”

“네.”

“다른 말도 들었나?”

“네? 무슨 말을……? 다른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몽설은 아걸에 대한 보고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보고를 들으면 마음이 더 속상할 것 같았다. 그런데 황제가 아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듣고 싶지 않은데, 들으면 괜히 마음만 아플 것 같은데.

“이런…… 사람하고는. 아걸이 동영 수군 육만과 격전을 벌였어.”

“네? 유, 육만요?”

황제는 깜짝 놀라는 몽설에게 서신을 내밀었다.

서신은 수군도독 진일호가 보내온 것이다.

아걸이 복건에 도착할 때부터 다시 복건을 나설 때까지 동영 인자들과 어떻게 싸웠고, 동영 수군과는 며칠 동안 어떤 식으로 싸웠는지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몽설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사람이 미쳤나 봐!”

몽설이 자신도 모르게 툭 쏘아붙였다.

육만 대 일? 이게 정말 가당키나 한 일인가? 반자포망이라고? 화포 백오십 개가 쏘아낸 포탄을 혼자서 맞았다고? 무엇보다도 그런 일을 아걸 스스로 자처했다고?

도대체 이런 일을 태연히 행하는 사람의 심장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하하하!”

황제가 몽설의 성난 말을 듣고 웃었다.

“아!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몽설이 급히 얼굴을 붉히며 실언을 사과했다.

“다 읽었으면 알겠지만, 수군 도독이 대승을 거뒀지. 동영에서 온 적선 이백여 척 중 살아 돌아간 적선은 십여 척밖에 되지 않아. 백구십 척이 수장된 거야. 도독은 그 공로가 전부 아걸에게 있다고 하더군. 자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뒷수습만 했다고. 그러니 포상은 아걸에게 내려달라고 하는데…… 어떤 포상을 줄까?”

몽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포상? 아걸에게 어떤 포상이 어울릴까?

관직은 어떨까? 아걸이 관직을 얻어서 조정에 출사한다. 에이! 어울리지 않는다.

장군은 어떤가? 갑옷을 입고 전장을 누빈다. 그것은 꽤 잘할 것 같다. 하지만 왠지 처량해 보인다. 쓸쓸해 보인다. 삶의 목적이 끊어진 사람 같다.

그럼 돈은 어떤가? 많은 돈을 주는 것이다. 이 세상에 돈 싫다는 사람 있나? 가만…… 지금 아걸에게 돈이 얼마나 있지? 전혀 없다. 아걸은 모아놓은 재산도 없다. 하다못해 농민들도 밭 한 뙈기는 가지고 있는데, 아걸은 그마저도 없다.

돌아다니다가 피곤하면 쓰러져서 잔다. 그곳이 집이다.

돈이 없으면 산에 들어가서 과일을 따 먹거나 짐승을 잡아먹는다. 그러면서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 칼을 생각하다 보면 먹고 잠자는 것조차도 사치다.

어찌 보면 고달픈 길이지만 그것이 아걸에겐 행복이다.

아걸이 많은 돈을 모아놓고 희희낙락거리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겠다.

비급 같은 건 어떤가? 무공을 워낙 좋아하니. 황상이 자신에게 혈검경 상권을 줬듯이 절정 비급을 하사하는 거다. 그러면 기뻐하지 않을까?

아니다. 아걸에게는 비급도 소용이 없다.

아걸의 칼은 이미 비급을 넘어섰다. 자신 스스로 비급을 만들어가고 있다.

생각해 보니 황상이 아걸에게 줄 게 아무것도 없다.

“죄송하지만……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그냥 고맙다 한마디 하시면 되실 것 같습니다.”

몽설이 말했다.

“그렇지?”

“네.”

“나도 그래.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줄 게 하나도 없더라고. 그저 고맙다 하고 술 한 잔 주는 게 고작이겠어. 어주를 내리는 게 딱 좋겠어. 그 사람에게 황궁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분명히 꺼릴 것이고…… 질부가 다녀오지?”

“아닙니다. 저는 당분간 궁에 있겠습니다.”

“나는 괜찮을 거야.”

“제가 있겠습니다.”

“뭐가 있군.”

황상이 몽설을 쳐다봤다.

“어주는 다른 사람을 시켜 주십시오. 한 번만 더 권하시면 정말 갈지도 모릅니다. 보고 싶어서 가슴이 끓거든요. 그래도…… 궁에 있어야겠어요.”

몽설이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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