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九章 만부부당(萬夫不當) (2)
성검문주가 성검문으로 귀향하면서 크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성검문주 곁에 무인 아닌 사람들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진공부에서부터 허도기를 모시던 자들이다.
장군 두 명, 일기장군 하원랑과 적위군장 사구정도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무인도 아니면서 성검문에 거주했다.
특히 적위군장 사구정은 마치 호법이라도 되는 양, 성검문주 곁을 지켰다.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허도기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항상 그 곁에는 사구정이 있었다.
사구정은 적위군이라는 친위대를 움직였다.
그들의 수는 많지 않다. 서른 명이다. 진공부에서 허도기를 지키던 자들인데, 성검문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허도기 곁을 지킨다.
일기장군 하원랑은 모습을 간간이 비친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모습을 자주 보이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음지로 숨은 것도 아니다.
필요할 때는 당당하게 나타난다.
하원랑 장군은 허도기에게 비밀 임무를 부여받는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군에 있을 때도 유명했다며?”
“몰라. 알려진 게 뭐 있어야지.”
“유명하건 유명하지 않건 뛰어난 건 분명해. 성검문주가 아무나 곁에 두지는 않잖아?”
“하기는. 소축십검조차 옆에 두지 않았는데, 저 두 사람이 항상 옆에 있는 걸 보면 뛰어나긴 뛰어난 모양이지?”
사람들은 두 사람을 보며 수군거렸다.
두 사람은 장군 출신인 만큼 병사를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성검문주가 두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 것도 군대를 움직이려는 방편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군대와 완전히 연을 끊었다.
군대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억지로 인연을 짜낸다면 사구정이 움직이는 적위군들이 전직 군인들이라는 건데, 그야말로 억지 짜맞추기다.
두 사람은 허도기의 눈에 들어서 발탁되었을 뿐이다.
그러면 두 사람은 허도기 곁에서 무엇을 할까? 딱히 하는 일이 없다. 사구정은 호법 역할이라도 하지만, 하원랑은 베짱이처럼 빈둥거리면서 논다.
소축십검처럼 성검문 대소사에 직접 간여하는 것도 아니다. 성검문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수수방관한다. 손도 대지 않는다.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주목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변방에서 일어나는 전운이 허도기와 연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장군들은 군대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 공부 허도기가 좋아서, 공부를 존경해서 곁에 머무는 것뿐이다.
“여기야?”
“네.”
“좋은 곳에 숨었군.”
하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가에 저택 한 채가 있다. 오래된 고택인데, 마을과 떨어져서 고적해 보인다.
고택 주변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하원랑의 눈에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목으로 보였다.
고택은 사방이 환히 트여 있어서 적이 침입하는 것을 힘들지 않게 탐지할 수 있다. 또 뒤에는 강이 있어서 유사시 도피하기도 용이하다. 실제로 강에는 고택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배가 세 척이나 묶여 있다.
“쥐들은?”
“확인했습니다. 두 마리 다 있습니다.”
“시작해.”
하원랑이 말했다.
그러자 몸이 단단해 보이는 무인이 검을 들어서 가슴에 대고 허리를 굽혔다.
군례(軍禮)!
그가 뒤돌아서 검을 쳐들었다.
스스스슷! 사사삿!
주변에 잠복해 있던 무인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몸을 땅에 바싹 붙이고, 고택을 향해서 기어간다. 일부는 활을 당겨서 엄호한다. 흠잡을 데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원랑은 부하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그의 말을 쫓아서 신속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무엇인가? 얼핏 봐도 삼백 명이 넘어 보이는데.
하원랑은 고택에서 눈을 돌려 강을 쳐다봤다. 고택을 향해서 다가서는 무인들에게서도 눈길을 거뒀다. 이미 싸움은 끝났다는 듯이, 명령이 이루어졌다는 듯이.
고택은 천험의 망루다.
사방을 감시하기 쉽고, 유사시에는 빠져나가기도 편하다. 탈출로가 적어도 다섯 군데 이상 마련되어 있다. 땅속으로 세 군데, 강으로 두 군데.
“철의군(鐵衣軍)이 이선(二線)을 넘었습니다.”
다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벌써?”
“네. 지금에서야 발견했습니다.”
“이선이면 이제는 늦었다. 탈출로를 닫아야 해. 아직 탈출하지 못한 자가 몇이나 되지?”
“대략 이백 정도…….”
“병신들! 빨리 빠져나가라니까 뭐 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행동이 굼뜨니까 뒈지지. 탈출로를 닫아. 지금 닫지 않으면 먼저 빠져나간 놈들까지 위험해.”
“알겠습니다!”
수하가 대답을 하고 신속히 사라졌다.
“너도 가라.”
스읏!
수부가 녹슨 도끼를 집어 들며 말했다.
“하아!”
쥐눈, 서목은 할 말이 없는 듯 한숨만 뿜어냈다.
철의군은 무적 기마병이다. 철갑을 입고 미친 듯이 질주하면서 적진을 돌파한다. 그들이 입은 갑옷은 워낙 두꺼워서 도검이 들어가지 않는다. 또한, 하나같이 힘이 장사라서 대창과 대도를 장난감처럼 휘두른다.
하원랑이 직접 양성한 강군(强軍)이다.
그들이 비록 갑옷을 벗고, 대창과 대도를 버리고, 말을 타지 않았지만…… 역시 강자들이다.
고택을 에워싼 삼백 명은 철의군 중에서도 최강 돌격대로 알려진 홍건철의군이다. 돌격할 때, 이마에 붉은 두건을 둘러서 다른 철의군과 차별화했다.
“쳇! 철의군 삼백. 우리가 전멸하는 데까지 반 시진도 안 걸리겠네. 도대체 방주는 어쩌다가! 어휴! 말을 하면 뭐해. 야! 쥐눈, 빨리 가. 자칫하면 너도 못 빠져나가.”
수부가 거칠게 말했다.
허도기가 성검문으로 귀환한 후, 제일 먼저 흑화방부터 치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적에게서 눈을 빼앗으려는 생각이다.
흑화방은 어둠과 밝음을 이어주는 다리다. 당연히 세상 모든 곳에 눈을 박아두고 있다. 취화원이나 적랑대보다도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본다.
현재, 그들이 본 것은 아걸에게 흘러 들어간다. 몽설에게 흘러 들어가고, 바로 황제에게 알려진다.
공격하는 것이 당연하다.
역사적으로 흑화방은 흑백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았다. 항상 중립을 지켜왔다. 무림에서 흑백 간에 싸움이 벌어지면 흑화방이 나서서 중재했다.
그러던 것이 공부 허도기 때문에 무너졌다.
공부는 흑화방을 손에 쥐고자 했다. 흑화방과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명령을 내리고자 했다.
방주는 굴종이냐 멸문이냐를 놓고 고심한 끝에 아걸을 택했다.
굴종해서 흑화방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머리를 숙였겠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흑화방이 살아남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그래도 머리를 숙였어야 했다.
허도기와 척을 졌으니 공격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흑화방이 황제의 눈 노릇을 하고 있으니 제일 먼저 공격받는 것도 마땅하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다만…… 이런 점을 예상하고 아주 깊이 숨는다고 숨었는데, 그래도 발각되었다는 점이 놀랍다.
“저놈들과 부딪치면 죽어. 사력을 다해서 도주하자.”
서목이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나는 도끼질밖에 못 하니까 그런다 치고, 네놈은 방주의 머리잖아. 소위 머리라는 놈이 그따위 생각밖에 못 하니까 이 꼴을 당하지.”
쉬릭!
수부가 녹슨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날을 세워놓으면 적이 빨리 죽는다. 찍는 순간에 죽는다. 반대로 녹슨 도끼는 살을 가르지 못하고 뭉개면서 찍는다. 적을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다.
“허도기가 이렇게 들어올 줄 누가 알았나. 살인하고 도망쳤으니 당연히 다시는 오지 못할 줄 알았지. 버젓이 들어와서 떵떵거릴 줄 누가 알았냐고.”
서목이 투덜거렸다.
“방주님은 몸을 피했으려나?”
“피하셨을 거야.”
“쳇!”
수부가 혀를 찼다.
허도기가 흑화방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
며칠 전부터 누군지 모를 자들이 은밀히 움직인다는 정보가 부쩍 늘었다.
허도기가 성검문에 들어서기 무섭게 바로 미지의 인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중원 각지로 흩어졌고 흑화방이 심어놓은 눈에 찰싹 달라붙었다.
- 잠시 활동 중지.
- 일시 잠적.
위기를 느낀 눈들이 감시 활동을 중지하고 속속 숨었다.
그만한 정보를 접하고도 무시했던 것은…… 눈이 워낙 많아서다. 어떤 자도 흑화방이 심어놓은 눈들을 일시에 제거할 수는 없다. 아니, 제거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몇몇 정도는 죽일 수 있겠지만, 눈은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두 시진 전, 서목과 수부는 비로소 일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중원 각지에서 잠적한다는 보고가 쏟아져 들어왔다.
“전서로 전해지는 보고라서 도착하기까지 얼마간 시간 공백이 생겼다. 그 틈에 이미 허도기는 흑화방 모든 눈에 달라붙었다. 죽일 수도 무너트릴 수도 있다.”
흑화방은 눈은 무려 이만 명에 이른다. 그들을 공격하려면 이만 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허도기는 이만 명을 동원했다. 아니, 하원랑이 동원했나?
일기장군 하원랑의 수하는 홍건철의군 삼백 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려 이만 명 가까운 군인들이 지극히 은밀하게 움직였다. 일절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
누구도 흑화방의 실체를 만질 수 없다고 확신했는데, 이번에는 그 판단이 틀렸다.
“안 가?”
수부가 서목을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갈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없으면 추포꾼이 나설 거야. 이미 도주한 놈들까지 위험해져.”
“후후! 날 뭐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해. 너 비슷한 놈은 이미 찾아놨다. 키 작고,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놈이 있거든. 그러니 안심하고 가라. 가서 방주님을 모셔. 이번과 같은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 말고.”
“제길! 너무 깊이 들어갔어. 그러게 적당한 선에서 물러서시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흑화방은 누구에게든 공격당할 수 있다.
어둠과 밝음을 왔다 갔다 하는 박쥐의 숙명이다. 이쪽과 저쪽, 모두가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그럼 나 간다.”
“오래 살아.”
“고통 없이 죽어라. 지금 해줄 말은 이거밖에 없네.”
저놈들이 손속 하나는 깨끗해. 죽이면 그만인 놈들이야. 나는 빨리 죽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럼 간다.”
서목이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제길! 이번에는 악 소리도 못 하고 된통 얻어맞았네. 도대체 방주는 처신을 어떻게 했기에 천하제일인에게 두들겨 맞는 거야! 제길!”
쉬릭!
수부는 녹슨 도끼를 빙글빙글 돌렸다.
흑화방은 밝음과 어둠 사이에 있어야 한다. 딱 중간 지점에 머물러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어느 한쪽에 가까이 달라붙으면 꼭 이런 일이 생긴다.
하원랑의 공격은 매우 정밀하다.
흑화방은 두 번 다시 재건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혹시……? 흑후는 여우굴을 열 개 이상 파놓고 사는 사람이니까 또다시 재건할지도 모르지.
“죽더라도 그냥 죽을 수는 없지. 한 놈이라도 죽이고 죽어야 나답지 않겠어?”
수부가 텅 빈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이미 승부는 결정되었다. 적은 삼백 명이고 이쪽은 이백에 불과하다. 웬만큼 싸움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쪽은 무공이 별로 높지 않다. 흑화방은 거래를 하는 집단이지 무공으로 싸우는 집단이 아니다.
“아아악!”
비명이 터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저들의 손속은 가차 없다. 단숨에 생명을 끊는다. 강하면서도 일대일 싸움을 고집하지 않는다. 다수의 이점을 충분히 누린다. 한 사람에게 두 명, 세 명 달라붙어서 칼로 내리찍는다.
흑화방도가 속수무책으로 죽어간다.
“내 목은 어떤 놈이 따려나. 잡종들에게 죽기는 싫은데. 하원랑이 직접 달려들 리는 없고. 제길!”
수부는 비명을 듣고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을 죽일 놈이 찾아온다. 저놈들은 이곳에 누가 있는지 샅샅이 파악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다 놓쳐도 자신과 서목만큼은 잡을 생각일 것이다.
덜컹!
문이 열리면서 칼깨나 써본 것 같은 장한 십여 명이 우르르 뛰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