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48화 (548/600)

第百十章 적혈지한(赤血之恨) (3)

두 사람은 검을 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히 상대방을 쳐다봤다.

“으!”

지켜보던 토족 전사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토족 전사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서서 공간을 넓혀주었다.

지금도 두 사람이 싸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충분히 넓은 공간을 만들어 놨다. 하지만 두 사람이 대치하고 맞서자 넓었던 공간이 갑자기 작아 보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족히 이십여 명 정도가 난투를 벌여도 충분할 정도로 공간이 넓은데…… 왜 이렇게 작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더 물러서야 하나?

파파! 파파팟!

두 사람 몸에서 진기가 튄다.

누구든 가까이 다가서기만 하면 당장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실이다. 지금은 누구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

두 사람은 이미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검초를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암중으로는 이미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리지 않은 곳이 없다. 쳐내지 않은 초식이 없다.

심상 격전, 마음으로 격전을 벌인다.

머리를 공격했을 때, 다리를 쳤을 때……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한다. 어떻게 반응해 올지 그려본다. 내가 이길지 상대방이 이길지 추측한다.

이런 생각은 깊은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퍼뜩퍼뜩 일어났다가 곧 사라진다. 온몸은 상대방을 노리고 있는 가운데 번개처럼 격전을 스쳐간다.

두 사람은 실제로 움직이지 않을 뿐, 이미 격렬하게 싸우는 중이다.

“후우.”

쵸 디엔이 탁한 숨을 토해내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근위대장도 뒤로 물러섰다. 쵸 디엔을 쫓아가지 않고 한숨 돌렸다는 듯 재빨리 물러섰다. 그리고 입으로 탁한 숨을 숨기지 않고 뿜어냈다.

“하아!”

두 사람은 다시 호흡을 골랐다.

즉시 몸을 고쳐잡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다가섰다. 방금 물러섰던 일보를 지나서 거리를 더 좁혔다.

“야수검이 이 정도인 줄 몰랐군.”

쵸 디엔이 먼저 말했다.

“적양팔식이라는 명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데, 다오 푼 라야? 남만 말은 잘 모르겠고. 네 무공, 인정한다. 좋아.”

근위대장도 쵸 디엔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인정받으려고 빼든 칼이 아니니까. 목숨을 취해야겠다. 들어간다.”

“원하는 바!”

사사사삭!

두 사람은 즉시 몸을 낮췄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의 중심을 낮게 가라앉혔다.

두 눈은 서로를 쏘아본다. 순간,

쉐에에엑!

쵸 디엔이 먼저 신형을 쏘아냈다.

한순간, 칼이 벼락처럼 터졌다. 순식간에 십여 개로 쫙 늘어나며 근위대장을 후려쳤다.

‘분도(分刀)!’

분도가 두 개만 되어도 막기가 어렵다. 칼을 나눌 수 있다면 이미 상승 고수라고 할 수 있다. 한데 쵸 디엔의 칼은 단숨에 십여 개로 늘어났다.

이것이 환도(幻刀)라고 해도 충분히 놀랄 일이다. 한데 환도도 아니다. 칼 열 개 모두 진도다.

제아무리 신법이 빨라도 분도를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한데 그 순간, 근위대장이 마치 원숭이라도 된 듯 제자리에서 탁탁 튀어 올라왔다. 아니, 몇 번 튄다 싶더니 이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쵸 디엔을 후려쳤다.

타타탕! 타타탕! 탕탕탕!

분도와 야수검이 부딪혔다.

근위대장의 신법은 종잇장처럼 가벼웠다. 하지만 그가 쳐낸 검에는 천근 무게가 실렸다. 마치 날래게 달려온 곰이 거칠게 앞발로 후려치는 거 같다.

탕탕탕! 타아앙!

막상 도검이 부딪치자 쵸 디엔이 밀리는 듯했다.

근위대장이 내리친 검에 칼이 밀렸다. 쵸 디엔의 어깨가 움찔거리면서 밑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근위대장은 결정타를 날리지 않았다. 오합(五合)을 끝으로 불쑥 물러섰다. 한두 합만 더 몰아치면 끝장을 낼 수 있을 지경까지 몰아넣었는데.

“휴우!”

쵸 디엔이 큰 숨을 토해냈다.

“오합이 한계군.”

“그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실수군. 더 수련해야 했는데, 자족(自足)했어.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진 거지. 후후!”

근위대장도 탁한 숨을 몰아쉬었다.

근위대장이 펼친 야수검은 진기 소모가 막중하다. 성난 맹수가 달려드는 만큼 매초 일격필살의 힘이 스며있다. 일격이 무휴가 되면 이격을 날릴 힘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 같은 경우, 근위대장은 한 호흡의 진기만으로 연달아 속공을 펼쳐냈다. 내리치는 검마다 천근 무게가 실리는데, 그 모든 검력을 한 호흡으로 이뤄냈다.

당연히 무한정 쳐낼 수가 없다.

현재 근위대장이 쳐낼 수 있는 검초의 한계는 오 초다. 다섯 번만 검초를 막으면 반격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쵸 디엔도 반격하기는 힘들다. 다섯 번의 검초를 간신히 막았다. 무릎이 절반이나 꺾일 정도로 짓눌렸다. 손목에서 터져나가는 듯한 통증이 일어났다.

먼저 분도를 선택한 것이 쵸 디엔의 실수다.

분도는 칼의 힘이 갈라진다. 공격 범위가 넓어진 대신에 힘은 약해진다. 하지만 칼 자체가 살인 병기이기 때문에 약해진 힘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일반적이면.

힘이 열 가닥으로 갈라진 상태를 야수검이 들이쳤다. 당연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밑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이것도 쵸 디엔이니까 받아낸 것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일 검에 칼이 무너지면서 몸도 끊어졌다. 천근 무게를 다섯 번이나 받아낸 것은 기적이다.

그런 상태에서 반격까지 가한다는 건 무리다.

두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합이 한계’라는 말속에는 많은 말이 담겨 있다.

“후우!”

“하아!”

두 사람은 다시 호흡을 골랐다.

두 사람은 이번 일전에서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득을 봤는지 따지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손해도 없고 이득도 없다. 쵸 디엔이 밀린 것 같지만 밀리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멀쩡한 상태다.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았다.

만약 근위대장이 일검만 더 쳐냈다면…… 만약 쵸 디엔이 공격이 끝나자마자 바로 반격했다면…… 서로 결정타를 넣을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이 ‘만약’이라는 말은 이미 과거로 흘러갔다.

결국, 두 사람은 ‘만약’을 실행하지 못했다. 그 지점에서 방금 일어난 싸움은 완전히 종결되었다. 미련을 가져서도 안 되고, 가질 이유도 없다.

두 사람의 무공은 호각이다.

단 한 판의 겨룸이었지만, 당장 느낀다. 절대 쉽지 않은 싸움, 간발의 승부!

쓱! 쓱!

두 사람은 다시 병기를 들어 올렸다.

탁! 탁! 탁!

근위대장이 훌쩍훌쩍 뛰어올랐다.

위아래로만 뛰는 게 아니다. 슬쩍슬쩍 뛰면서 앞으로 치달릴 기회를 엿본다.

슷! 들어온다! 아니다. 들어올 듯했지만 바로 빠진다.

스슷! 이번에는! 아니다. 이번에도 바로 빠진다.

단지 기회면 엿보는 것도 아니다. 근위대장의 움직임은 상당히 불쾌한 느낌을 안겨준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짜증이 치민다.

‘규칙 파괴!’

그렇다. 근위대장의 움직임은 매우 불규칙하다. 일정한 속도로 뛰어오르는 것 같았는데…… 율동이 규칙적이지 않다. 빠르게, 느리게, 매우 빠르게, 빠르게, 매우 느리게…… 도무지 어떤 기준으로 뛰는지 모르겠다.

이런 불규칙한 움직임은 검이 전개되는 시점을 예측하지 못하게 만든다.

탁! 타탁! 타탁! 통! 타탁! 통통!

장난처럼 뛰던 근위대장이 한순간, 탁! 하고 사라졌다.

‘옆구리!’

쵸 디엔은 급히 신형을 왼쪽으로 뒤틀었다. 동시에 만도가 허공을 찢었다.

단백절도(斷魄絶刀)! 캣 닷 린 혼!

중원어로는 혼을 잘라버리는 칼이라는 뜻으로 단백절도, 남만어로는 영을 끊는다는 뜻으로 캣 닷 린 혼이라고 한다. 단숨에 절벽을 갈라버리는 엄청난 패도다.

꽈지지직!

허공을 찢는 힘으로 오른쪽 옆구리 쪽을 갈라버렸다.

눈앞에서 사라진 근위대장이 공격해 들어오는 곳이다.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느낌이 ‘위험’을 알려준다. 오른쪽 옆구리가 갈라진다고 경고한다.

까앙! 깡! 깡!

병기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근위대장은 영사처럼 옆구리를 파고들다가 거센 반격을 받고 우측으로 퉁! 튕겼다.

쵸 디엔의 몸뚱이 중 유독 옆구리가 눈에 들어왔다. 유일하게 약해 보였다. 옆구리를 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일어났다.

야수검의 실체는 감각이다.

근위대장의 감각이 옆구리를 치라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친다. 전력을 다해서 공격한다.

한데, 공격 본능처럼 위기 본능이 확! 일어났다.

느닷없이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위기감을 느꼈다. 절벽 밑을 파고드는데, 갑자기 절벽이 붕괴하는 것 같은? 갑자기 황당한 힘이 전신을 덮쳐온다고 느꼈다.

그 순간, 근위대장은 한 줌 망설임도 없이 몸을 퉁겨냈다.

꽈가가가각! 꽈직!

쵸 디엔의 칼은 근위대장의 검을 튕겨낸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땅을 깊게 파버렸다.

흙먼지가 분분히 피어났다.

칼에 부딪힌 돌덩이가 사방으로 튀었다.

근위대장은 간발의 차이로 패도를 피해냈다.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몸이 두 쪽으로 갈렸을 것이다.

‘팔 성을!’

근위대장이 눈을 부릅뜬 채 쵸 디엔을 쳐다봤다.

야수검에서 말하는 팔 성은 보통 무림에서 말하는 팔 할을 뜻하지 않는다.

야수검은 감각 검이다. 야수의 본능으로 쳐내는 검이다. 그러니 진기의 강도는 중요하지 않다. 감각의 집중이 중요하다. 초식도 중요하지 않다. 느낌이 중요하다.

일반 무공이 진기의 강도로 성(成)을 구분한다면, 야수검은 집중도로 표현한다.

‘팔 성’이란 진기의 강도가 아니다. 초고밀한 집중도를 뜻한다.

그런 검을 쵸 디엔은 너무도 손쉽게 막아냈다. 아니, 쵸 디엔은 방어를 한 적이 없다. 오직 공격만 했다. 공격으로 방어를 대신했다. 그 칼이 근위대장을 두 쪽으로 갈라버릴 뻔했다.

역시 간발의 차이, 한순간이라도 집중력을 잃는 자가 죽는다.

쒜에에엑!

근위대장은 다시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신형을 하늘로 띄웠다. 새처럼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리고 벼락같이 방향을 틀어서 내리찍었다.

독수리가 쏜살같이 날아와 머리를 찍는다.

꽈자작! 쒜에엑! 꽈아악!

독수리는 한 마리가 아니다. 수십 마리다.

검이 내리찍고, 내리찍고 또 내리찍는다.

깡깡깡! 까아앙! 깡깡깡깡!

도검이 연달아 부딪쳤다. 칼과 검이 부딪치면서 빨간 불똥을 튀겨냈다.

근위대장은 도검이 부딪히는 반탄력을 이용해서 자유자재로 신형을 변화시킨다. 동시에 칼을 사정없이 내리친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는 칼이다.

몸의 중심을 한순간이라도 잃으면 바로 반격당하는 위험한 공격이지만, 쵸 디엔을 상대로 능숙하게 구사한다. 오히려 쵸 디엔이 검을 막기 급급하다.

“아! 엄청난 체공!”

지켜보던 토족 전사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보통 사람은 허공에 뜨는 즉시 낙하하기 시작된다. 땅이 끌어당기는 힘, 중력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데 근위대장은 중력을 무시해 버린다.

허공에 붕 떠서 연달아 내리친다.

순간적인 반탄력을 이용한 도법이지만,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다.

탕! 츄우우웃!

쵸 디엔이 매우 거칠게 칼을 쳐냈다. 근위대장에게 아주 강한 탄력을 전했다. 근위대장이 어떤 힘으로 체공하는지 알아버렸다. 그래서 그를 더 높이 띄워 버린다.

잠시 공백이 생겼다.

일순, 근위대장과 쵸 디엔 사이의 세상이 정지했다. 칼과 검 사이에 공간이 생겼다.

쵸 디엔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칼에 진기를 밀집시켰다. 그리고 다오 푼 라야 제육식을 전개했다.

꾸우우욱!

칼이 허공을 밀어낸다. 칼이 너무 빠르고 강하게 움직인 탓에 잠시 허공을 베지 못하고 막이 생겼다. 하지만 쵸 디엔은 곧 그 막을 단숨에 잘라버렸다.

팍! 꽈아악!

칼을 쳐 냈는데 가죽 북 찢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쉬리릭! 휘이이익!

근위대장은 몸을 네 번이나 비틀어서 옆으로 내려섰다. 제대로 착지하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물러섰다. 그의 왼쪽 어깨가 갈라지면서 핏물이 솟구쳤다. 피가 터졌다. 신형을 네 번이나 휘둘렸는데도 쵸 디엔의 칼을 피하지 못했다.

“와아아아!”

“이겼다!”

지켜보던 토족 전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조용!”

쵸 디엔이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순간, 함성을 내지르던 토족 전사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수하들의 추태, 이해해 주시길.”

“아니. 함성을 지를 만했으니까.”

근위대장이 씨익! 옅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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