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49화 (549/600)

第百十章 적혈지한(赤血之恨) (4)

쿡쿡!

근위대장이 손가락을 곧추세워서 어깨에 있는 운문혈(雲門穴)과 중부혈(中府穴), 그리고 천부혈(天府穴)을 눌렀다.

상처는 깊지 않다. 칼에 베이기는 했지만 팔을 못 쓸 정도는 아니다. 검초를 전개하는 데 불편할 정도도 아니다. 매우 얕은 상태에 불과하다.

싸움이 팽팽한 가운데 티끌만 한 핏줄이 터지자, 그것이 마치 팔이 잘려 나가면서 일으키는 핏물처럼 보였다. 적어도 토족 전사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쵸 디엔의 칼도 매서웠지만, 근위대장의 반응도 민첩했다.

이런 점을 알기에 쵸 디엔이 수하들을 질책했다. 겨우 칼에 스치는 정도가 함성을 지를 일인가.

함성이 오히려 쵸 디엔을 창피하게 만든다.

‘상당히 빠르다. 도초가 터진 후에 반응하면 늦는다.’

근위대장은 쵸 디엔을 경시하지 않는다. 한순간이 둘 사이의 균형을 깰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처럼 당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이든 쵸 디엔이든.

‘막을 수 있으면 막고, 막을 힘이 없으면 당하는 거고.’

이번 싸움에서 근위대장은 칼이 터져 나오기 전에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야수검의 동물적인 감각은 위험을 즉시 간파한다. 그리고 근위대장의 몸은 본능에 맞춰서 진퇴 할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 있다. 사건이 터지면 바로 반응한다.

슷! 슷!

두 사람은 다시 병기를 겨눴다.

“이런 검을 전체라고 말했으니 자존심 상했겠군.”

쵸 디엔이 실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나도 실수한 점이 있으니까 서로 비긴 셈 치지. 너흴 남만의 특공(特功)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 남만의 왕이라고 했던가? 이런 칼이면 왕이 될 자격이 있어.”

“칭찬이군. 받지.”

“그래도 여기서 무너지는 건 마찬가지야.”

“난 아걸이 족장님과 칠백전사를 죽일 때, 현장에 있었어. 아걸과 은거무인의 무공을 똑똑히 봤지. 그 칼들 쓰러트릴 자신이 있어서 들어온 거야. 여기서 무너지지는 않아.”

“하하하!”

근위대장이 크게 웃었다.

“아걸의 칼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그 당시만 해도 유음류 두주의 검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어. 하지만 이제는 받아냈고, 꺾었어. 천하제일검에게 반 초 뒤진 검을.”

“그런 발상 자체가 문제라니까. 천하제일검에게 반 초 뒤지나 백 초 뒤지나 마찬가지야. 난 반 초도 양보할 생각이 없거든. 내가…… 천하제일도야.”

끄덕! 끄덕!

근위대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미친놈이라고 하겠지만 쵸 디엔이 하니 그럴듯해 보인다.

쵸 디엔의 칼은 천하제일을 말할 만하다. 솔직히 야수검도 누구에게 양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호황위 군주의 혈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당히 강한 칼인 것은 맞고, 황제를 베겠다는 게 단순한 오만은 아니라는 점도 인정하는데…… 그래도 넌 쓰러져. 황궁으로 다가갈수록 첩첩산중을 느끼게 될 거야.”

“호황위 군주의 혈검을 말하는 거군.”

“내 검과 네 칼은 성격이 달라. 그러니 비교를 할 수 없고…… 군주의 검과 네 칼은 서로 상극이야. 부딪치면 반드시 결착이 일어나. 물론 네가 쓰러진다는 것에 한 표.”

“그럼 우린 모두 죽겠군.”

“그래.”

“후후! 괜찮아. 말했잖아. 우린 살아 돌아갈 생각, 애초에 하지 않았다고. 이 땅에 뼈를 묻는다. 하지만 우리 토족을 건드린 대가는 반드시 받아낼 생각이야. 두 번 다시는 어떤 왕도, 어떤 황제도 남만을 건드리지 못해. 건드리면 어떻게 된다는 사실을 똑똑이 알려줘야지. 그걸 알려주려고 왔다.”

문답무용(問答無用).

서로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

쵸 디엔은 단 한 명만 남아도 황궁으로 간다. 그러니 쵸 디엔을 비롯해서 토족 전사 모두를 죽여야 한다.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쵸 디엔도 근위대장의 진심을 읽었다.

근위대장은 어설피 싸우는 척만 하는 가짜 무인이 아니다. 원래 야수검 자체가 투지의 극(極)이다. 투지 외에 다른 것들…… 공명이나 명예, 부귀들이 가미되면 결코 이룰 수 없다. 야수검의 실체가 나오지 않는다.

“충고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아쉽군.”

“칼이 말할 뿐, 충고 같은 건 들을 생각이 없었어.”

“알았다. 그럼 나도 지금부터 전력을 다하지.”

“나 역시. 십 성으로 다오 푼 라야를 써야겠어. 슬슬 해도 될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이 병기를 고쳐잡았다.

‘맙소사! 이게 전력을 다하지 않은 거라고?’

지켜보던 토족 전사들은 입을 쩍 벌렸다.

그들이 보기에는 최선을 다한 결투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분명히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말을 이해하는 분위기다.

허세가 아니다.

이 두 사람은 허세 같은 것은 모른다. 진심이다.

쿵! 쿵! 쿵!

근위대장의 몸에서 작은 소북 소리가 울렸다.

진기가 전신을 휘둘고 있다. 경맥이 강하게 진동하면서 피부를 가죽처럼 두들긴다.

처억!

근위대장이 검을 들어 올렸다.

“하늘의 정령이시여! 땅의 귀령이시여! 내 정령을 당신들에게 의탁할지니, 이 칼에 당신들의 생명을!”

쵸 디엔이 중얼거렸다.

토족 전사들이 죽음을 앞둔 싸움에서 마지막으로 읊조리는 주문이다. 싸움에서 죽더라도 당신들 품에 안기니 하등 억울하지 않다. 그러니 당신들도 내 칼에 힘을 보태다오.

생사를 앞둔 결전에서 자신의 온 힘을 끌어내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하늘과 땅의 힘을 빌려 쓴다. 하늘의 정령과 땅의 귀령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쵸 디엔은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파랑! 파랑! 파랑!

만도가 파르르 떨렸다.

칼을 든 손은 고요한데, 칼날이 팔랑거리면서 울음을 토한다.

타아악! 타악! 타아악!

근위대장이 벼락같이 튀어왔다.

그의 움직임은 매우 묘하다. 얼핏 보면 굉장히 느려 보인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두세 걸음씩 쭉쭉 다가서고 있다. 움직이기 전과 움직인 후만 보일 뿐 움직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수령귀보(獸靈鬼步)!’

토족 무인들은 다시 한번 몸을 바르르 떨었다.

중원에 파훼할 수 없는 보법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공간이동을 하듯이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도무지 형체를 잡지 못한다고 한다.

본 적은 없다. 단지 그런 보법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세상에 그런 보법이 어디 있냐며 비웃은 기억이 있다. 칼을 든 사람이라면 수령귀보에 대해서 듣지 않은 자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믿는 자도 없다. 누가 믿겠나.

근위대장의 보법이 수령귀보처럼 보인다.

야수의 정령이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달려든다!

“카아!”

근위대장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벼락같이 검이 내리쬐었다.

군에서는 근위대장을 혈랑이라고 부른다. 딱 맞는 별호다. 피에 굶주린 늑대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강력한 이빨로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근위대장의 검이 날카로운 발톱이 되고 이빨이 되어서 쵸 디엔을 짓이긴다. 순간,

가아아악! 가가각!

쵸 디엔의 칼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렸다. 만도가 용광로에서 것 꺼낸 쇳덩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진기를 압축하고 또 압축한다. 쇳덩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서 밀집시킨다. 그러면 쇠로 된 칼에 불길이 일어난다. 진기의 충돌이 마찰을 일으키고, 마찰이 불길로 변한다.

꽈아아악! 꽈악!

한 사람을 달려들고, 한 사람은 불길을 품은 채 기다린다.

쒜에에에엑!

혈랑의 신형이 수십 개로 불어났다. 사방에서 파도처럼 쵸 디엔을 덮친다.

너무 크다. 너무 강하다. 너무 난폭하다.

“타앗!”

쵸 디엔은 거센 고함을 내질렀다. 동시에 불붙은 칼을 벼락처럼 퉁겨냈다.

칼이 괴수를 향해 날아갔다. 칼로 내지른 것이 아니다. 활로 쏜 화살처럼 파앗! 쏘아졌다.

꽈아아악!

근위대장은 불길을 피해서 쵸 디엔을 물어뜯었다.

“큭! 크윽!”

쵸 디엔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가 쳐낸 불길도 강맹했지만, 야수의 이빨은 이미 사방에 깔려있다. 칼 한 자루로 막을 수 없다.

퍼억! 퍽!

혈랑의 검이 쵸 디엔의 몸을 난타했다.

쵸 디엔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회(回)!”

쵸 디엔이 벼락같이 일갈을 토해냈다.

그러자 야수가 피해낸 불길이 빙글 휘돌아서 다시 날아왔다. 이번에는 먼저보다 더 강렬하게 파고들었다.

근위대장도 이번에는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야수의 이빨이 거센 힘으로 불길을 꽉 물었다.

꽈꽈꽝! 꽈아아앙!

야수검과 만도가 부딪치면 거센 울림을 토해냈다.

야수검과 부딪치는 순간, 만도는 산산조각이 났다. 용광로의 쇳물을 허공에 뿌린 것처럼 거센 불길이 조각조각 찢어져서 사방으로 비산했다. 한데 그 순간,

퍼억!

상당히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근위대장은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의 몸에는, 가슴 한복판에는 빨갛게 달궈진 만도가 박혀 있었다. 만도에서 피어난 불길이 심장을 태우고, 살을 태웠다. 살 타는 냄새가 자욱하게 번져 나왔다.

근위대장은 분명히 만도를 두 동강으로 분질러 버렸다. 만도는 부서졌고, 사방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가루가 되어서 흩어진 것은 칼 부리일 뿐…… 칼 밑동과 칼자루는 여전히 남아서 근위대장을 향해 날아갔다.

모든 움직임에는 명암(明暗)이 있다.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안고 움직인다. 어둠이 더 짙으면 밝음이, 묻히고, 밝음이 더 강하면 어둠이 안으로 가라앉는다. 하지만 분명히 두 기운은 함께 움직인다.

이번에는 밝음이 너무 강했다.

환하게 드러난 불길이 집중된 시선을 단번에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 사이로 어둠이 흘렀다. 부서진 칼날 밑동이 칼자루에 실린 힘으로 쏘아졌다.

“크윽!”

근위대장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순간, 그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쫙 뿜어져 나왔다.

“큭큭큭! 큭큭!”

근위대장이 숯덩이처럼 검게 타버린 가슴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너. 진다.”

근위대장이 또박또박 말했다.

“칼은 진도(眞刀)로 써야 하는데, 다오 푼 라야에는 암도(暗刀)가 들어있어. 나는 암도에 당했다만…… 후후! 군주나 아걸은 이런 칼에 당하지 않아.”

근위대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흘렀다.

지금까지 쵸 디엔을 강적이라고 인정해주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죽어가는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경멸, 조소, 멸시였다. 다오 푼 라야를 무시하고 있다.

“애송이에게. 아직 미숙한 칼인데. 후후!”

근위대장은 자조 섞인 음성까지 토해냈다. 존중하던 쵸 디엔에게 애송이라는 말까지 썼다. 그만큼 마지막 일격에 대해서 실망했다는 거다.

지금 일어나는 죽음은 한순간의 방심이 불러온 결과다.

만도는 분명히 부서졌다. 진기와 진기의 충돌에서 야수검이 이겼다. 그 순간에 암도가 날아들었다. 오직 진도만 생각하고 있던 혈랑에게는 방비할 수 없는 암수다.

쵸 디엔은 자신의 진기를 손잡이에 실었다.

칼에 실린 진기 중 손잡이에 실린 진기가 절반 이상이다. 손잡이가 가장 무겁다. 더욱이 만도를 날릴 때 손잡이 뒷부분을 가격했다. 한층 더 가속시켰다.

칼이 부서질 것을 예상하고 던진 정교한 도법이다.

이것을 근위대장은 한낱 암수라며 비웃는다.

‘패배한 자답지 않아. 패배를 인정하면 죽음도 편할 것을.’

“이것이 다오 푼 라야 최후초식 뇻 티엔이다. 부족한 안계를 넓혀주었다니 좋군.”

쵸 디엔은 암수라고 아니라고 돌려서 말했다.

“충고한 대로 황궁에는 가지 마라. 이런 칼로는.”

쿡!

근위대장이 검으로 땅을 찍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근이 대장은 절명했다.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땅에 밝은 검에 육신을 의지한 채 굳건히 서 있었다.

쵸 디엔은 가슴에 한쪽 팔을 얹고 조의를 표했다. 아니, 조의를 표하자마자 거센 기침을 토해냈다.

“쿨럭! 쿨럭! 큭!”

그의 입에서도 붉은 피가 한 모금이나 쏟아져 나왔다.

“족장님!”

꼰샥낙넨이 다가와서 쵸 디엔을 부축하려고 했다.

쵸 디엔은 손을 들어서 꼰샥낙넨을 제지했다.

“야수검이 이런 검인 줄 몰랐던 게 천추의 한이군. 너희한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했는데, 못난 꼴만 보였어. 이래서야 어디 자신감이 생기겠나.”

쵸 디엔이 한탄했다.

쵸 디엔은 몸이 상당히 상했다. 검에 맞은 상처도 꽤 깊고, 무엇보다도 내상이 심하다. 무리하게 진기를 이끌어서 뇻 티엔을 펼친 결과다.

“족장,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꼰샥낙넨이 말했다. 그리고 토족 전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족장님께서 우리가 겁쟁이란다. 우리 눈에 공포가 어렸단다. 제길! 돌아갈 놈은 돌아가고, 진짜 죽을 놈만 따라와. 킥킥! 느닷없이 불쑥 튀어나와서 족장이 된 것도 억울해서 죽겠는데, 우리 보고 겁쟁이라니. 뭐 이런 족장이 다 있어.”

꼰샥낙넨이 쵸 디엔을 돌아보며 말했다.

“족장님, 어차피 죽을 놈들…… 공포가 있건 없건 무슨 상관입니까? 황궁으로 갑시다. 겁쟁이도 싸울 때는 싸우니까. 그리고 우리…… 족장님 생각처럼 그렇게 약하지 않거든요.”

토족 전사들은 충성심이 매우 깊다.

“훗!”

쵸 디엔이 웃었다.

“근위대장에게 예를 갖춰라. 토족 제일 무공 다오 푼 라야에 견줄만한 야수검의 전승자에게. 그리고 가자. 황궁으로.”

쵸 디엔이 소매를 들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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