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51화 (551/600)

第百十一章 낙화혈룡(洛花血龍) (1)

휙!

앞서가던 분대장이 손을 들었다.

분대원 열아홉 명은 즉시 분대장의 등 뒤에 바싹 달라붙었다. 살과 살을 맞대는 밀착 대형이다.

스무 명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앞에 사람이 있다.”

분대장이 나직이 말했다.

“이 야심한 밤에…….”

옆에 있던 ‘란 타이’가 조금 앞으로 나가서 앞을 살폈다.

분대장 ‘주엉’이 말한 것처럼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자그마한 모닥불을 피워놓고 드러누워서 불길을 쬐고 있다. 아마도 야숙을 하는 길손인 듯하다. 실제로 모닥불 옆에는 저녁으로 먹은 듯 뼛조각들이 쌓여 있다. 꿩이나 토끼 같은 작은 동물을 잡아서 먹은 것 같다.

“처리할까?”

란 타이가 말했다.

분대장 주엉은 손을 들어서 모로 누워있는 사내의 옆을 가리켰다.

“칼이 놓여 있다.”

“칼은 나도 봤어.”

“무인이라는 소린데…….”

“저 정도면 기껏해야 무승(武乘)이 육칠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데, 치고 가도 되지 않을까?”

란 타이가 말했다.

“내 생각도 같은데, 뭔가가 께름칙해서.”

주엉도 고개를 끄덕였다.

토족은 무술의 경지를 무승이라는 단위로 따진다. 숫자가 높으면 높을수록 약한 것이다. 낮으면 낮을수록 강하다. 십을 최하위로 하지만 너무 재능이 없는 자들은 십이나 십삼이 주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무승은 위로 올라갈수록 정하기가 힘들어진다.

물론 무승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대략 치는 된다.

무승 삼사 정도로 인정받는 자는 언제든지 일이가 될 수가 있다. 또 오륙도 될 수 있다. 과대 평가되는 수도 있고, 과소 평가되는 수도 있다.

무승은 개략적인 순위를 말하는 것이다.

다만 무슨 칠팔 정도로 예상되는 자가 단숨에 일이가 되는 예는 없다.

상대를 잘못 판단하면 즉각 죽음이 닥치기 때문에 무승 판단은 매우 신중하다. 어려서부터 상대를 알아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서 특훈까지 한다.

“어떻게?”

란 타이가 재촉했다.

시간이 촉박하다. 시간을 오래 끌 수 없다. 빨리 가서 약속한 서문을 쳐야 한다.

좋아! 베고 가자!

주엉이 란 타이의 어깨를 툭 쳤다.

죽인다고 해도 지금까지처럼 시체를 처리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목적지다. 시신이 발견되어도 그때쯤이면 이미 습격이 끝난 후일 것이다.

저런 놈에게 토족 전사 스무 명이 당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첫눈에 무승 판단이 육칠로 나왔다. 자신들이 거칠게 달려왔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누워있다. 잠을 자는 중이라고 해도 이토록 귀가 막혀 있다면 죽기 딱 좋다.

어쨌든 상대방도 무인이니 공격당하면 저항할 것이다.

그때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 소리라도 지르게 하면 야습이 발각된다. 놈이 고함을 지를 틈도 없이 죽여야 한다.

쉬이이익! 쉬이이잇!

토족 전사들이 모닥불을 노리고 뛰어들었다.

한데 상대방의 무승은 육칠도 안 되는 듯하다.

토족 전사들이 발걸음을 숨긴 채 은밀히 다가섰다고는 하지만 지척에 이를 때까지 전혀 암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어처구니없게도 토족 전사들이 모닥불 앞에 서서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데도 눈을 감고 꿈나라를 헤맸다.

스읏!

란 타이가 만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머리를 향해서 거침없이 일격을 내리찍었다.

그때, 잠자는 듯 고요히 누워있던 사내가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만도를 내리찍는 란 타이를 쳐다봤다.

“엇!”

란 타이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만도의 방향을 비틀어 버렸다.

쒜에에엑!

만도가 머리를 찍지 못하고 옆으로 빗나갔다.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상대가 눈을 뜨건 말건 머리만 찍으면 되는데…… 왜 칼을 옆으로 비틀었을까? 눈빛에 겁을 먹어서? 그렇지 않다. 눈을 뜬다고 달라질 게 뭔가?

‘엇! 내가 왜?’

란 차이는 만도를 옆으로 비틀었을 때보다도, 비틀고 난 후가 더 당황스러웠다.

그제야 누워있던 사내가 뭉그적거리면서 일어나 앉았다.

사내는 일어나 앉은 후에도 곧바로 싸울 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아직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손을 들어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토족 전사들을 쳐다봤다.

‘무인이면 칼부터 쥐어야지!’

사내는 칼을 집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자신이 조금 전에 죽을 뻔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다.

란 차이는 재차 칼을 쳐갔다.

놈의 목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때, 졸린 듯 눈을 반쯤 내리깔고 란 차이를 쳐다보던 사내의 눈에서 반짝 귀광이 터졌다.

“웃!”

란 차이는 사내의 눈길을 접하는 순간, 손발이 얼어붙었다. 몸이 굳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때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무승 판단이 잘못되었다! 이놈, 결코 육칠이 아니다.’

란 차이의 생각은 다른 토족들의 생각과 일치했다.

사내를 경시하고 일제히 치고 나가려던 전사들이 일제히 한두 걸음씩 물러섰다.

사내가 너무 평범했다.

사내는 어떤 기도도 풍기지 않았다. 너무 평범해서 범인이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칼이 있기는 하지만 능숙하게 다루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무승 판단이 아주 많이 잘못되었다.

“으음!”

분대장 주엉도 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눈빛 한 번 접했을 뿐인데, 당장 긴장이 일어난다. 전신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선다.

눈빛이 사나워서? 날카로워서? 아니다. 사내는 근위대장처럼 야수의 눈빛을 토해내지 않았다. 단지…… 무척 부드러웠다. 부드러움 속에서 강인함이 읽힌다.

사내는 백전을 치른 고수다.

결전 경험에서, 무공의 강함에서 우러나온 편안함이 어떤 맹수의 눈길보다도 무섭다.

란 차이가 연속해서 칼을 쳐내지 못하고 물러선 것도 그 때문이다.

사내의 눈빛은 묘하게 초식을 흐름을 끊는다. 결정적인 순간에 눈빛을 부딪쳐온다.

란 차이가 칼을 밀어내고 싶었던 게 아니다. 초식의 흐름이 끊어져서 어쩔 수 없이 밀리고 만 것이다. 칼의 방향을 틀지 않고 계속 쳐갔다면 틀림없이 반격당했다.

란 차이를 눈빛만으로 밀어낸 사내가 또다시 기함할 만한 소리를 했다.

“너희…… 알 것 같아. 토족이지.”

“뭐!”

“나무를 밟고 뛴다는 신법, 캅 키안 카이. 너희가 들고 있는 칼, 간 바 만 도, 그리고 너희 옷차림. 토족 아냐?”

“우, 우리를 어떻게!”

주엉이 눈을 부릅떴다.

낯선 산속에서 괴이한 사내를 만난 것도 기가 막히는데 사내는 토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의 중원인은 그들의 신법을 비목탄형(飛木彈形)이라고 말한다. 사내처럼 토족 말로 캅 키안 카이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칼도 만도라고 부르지 ‘간 바 만 도’라고 부르지 않는다.

간바만도는 남만인들이 사용하는 만도와는 조금 다르다. 길이와 무게, 날의 깊이가 다르다. 길이를 줄이고 대신 변화에 치중한 토족 전사들만의 칼이다.

이놈! 누구인가!

사내가 졸린 눈으로 토족을 보면서 말했다.

“토족이 야심한 밤에 칼을 들고 도성 난입이라. 좋지 않군. 정보에 밝다는 사람들도 까맣게 모르는 은밀한 잠입. 뭐야? 나라가 어수선하니 이참에 황제 목이라도 베려고 온 거야?”

“네놈! 누구냐!”

주엉이 말했다.

“그것보다도 여기서 황궁이 무척 가까운데, 너희는 급하게 가는 길이었고. 오늘 공격하나? 그러면 너희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 안 그래?”

스읏!

사내가 그제야 칼을 잡았다.

토족 전사들은 그제야 칼에 칼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칼도 칼 같지도 않다. 뭉툭한 쇠뭉치 같다. 그것도 보통 칼의 절반 길이밖에 안 된다.

“반철도!”

“아걸! 아걸이다!”

토족 전사들의 입에서 아걸 이름이 나왔다.

그들은 이제야 비로소 낯선 사내가 토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유를 알았다.

이자가 바로 전임 족장을 죽이고 칠백 전사를 전멸시켰다.

자신들은 지금 염라대왕을 만난 것이다.

“아걸? 후후! 좋아! 이 기회에 전사들의 복수를 한다! 모두 단단히 마음먹어!”

주엉이 전사들을 다그쳤다.

하지만 이게 어디 마음먹는다고 될 일인가? 상대는 아걸이다. 천하제일인 허도기와 네 번이나 싸운 도객이다. 얼마 전에는 유음류 두주도 꺾었다.

아걸은 쵸 디엔이 아니면 상대하지 못한다.

아니, 막상 아걸을 만나게 되니 족장도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족장은 매우 강맹하고 난폭한 데 비해서 아걸은 상당히 정제되어 있다.

무공은 모르겠고, 경험으로는 분명히 아걸이 한 수 위다.

“란 차이. 어떻게든 빠져나가서 이 사실을 족장님께 알려.”

주엉이 속삭이듯 말했다.

란 차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열어서 말하면 아걸이 눈치채지 않겠나.

아걸이 아무리 토족을 잘 알고 있다 해도 토족 말까지 알아들을 리는 없다. 그래서 일부러 토족 말로 말한 것이다. 그것도 혼잣말처럼 속삭이면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죽을 공산이 크니, 눈치껏 알아서 빠져나가라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아걸이 개입한 것은 급습을 완전히 망가트릴 수 있는 큰 변수다. 족장도 아걸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지 않나.

어떻게 이런 일이!

스읏!

아걸이 일어섰다.

도성은 한 걸음이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아걸은 잠시 도성을 쳐다봤다.

낯선 도성인데, 몽설의 향기가 맡아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상을 찡그리고 있을 몽설이 그려진다.

몽설이 코앞에 있다.

몽설이 취화원에 있다면 밤이 너무 늦었더라도 단숨에 달려갔겠지만…… 지금은 엄연히 호황위 군주다. 도성에서도 매우 높은 위치에 있다.

무인의 무단침입은 그녀에게도 좋지 않다.

그래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날이 밝으면 정신 통문을 넣고, 만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토족 전사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어떤 미친놈이 겨우 스무 명으로 도성을 들이치겠나. 아마도 토족 중 상당수가 중원에 침입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을 이끄는 자가 누구인지도 짐작된다.

그때 살아서 빠져나간 쵸 디엔일 것이다. 살려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다오 푼 라야의 진수를 깨달았나? 어느 정도 성취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전사들을 이끌고 도성 침입을 생각한 것이겠지.

이제 막 진수를 깨달은 칼이라면 그 칼은 맹도(猛刀)이면서 맹도(盲刀)다. 겁 없이 날뛰는 무서운 칼이다. 반면에 진중하지 못하고 흉맹스러운 눈먼 칼이다.

몽설이 수련한 혈검과는 상극이다.

몽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혈검은 니환궁을 사용한다. 영검(靈劍)이다. 검초를 일으키는 순간, 몽설은 혼령과 합일된다.

지극히 냉철하고 고요한 상태다.

오히려 지금의 쵸 디엔에게는 근위대장이 더 알맞은 상대일 것이다. 야수검과 맹도가 부딪치면 더 사나운 쪽이 이긴다.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처럼.

‘일단 너희는 나와 싸울 운명이구나.’

아걸은 눈에 띈 토족 전사 스무 명을 이 자리에서 멈추게 할 생각이다.

저벅! 저벅!

아걸은 일어서서 토족 전사에게 걸어갔다.

이왕 여기서 멈추기로 생각했다면 싸움을 길게 끌 필요가 없다. 속전속결로 간다. 돌아가라고 해도 돌아갈 사람들이 아녀서 내린 결정이다.

“최선을 다하겠다.”

아걸이 말했다.

“으!”

아걸과 정면에서 마주친 토족이 미미한 신음을 흘렸다.

자신도 모르게 부지불식간 흘린 신음인데, 아걸은 똑똑히 들어버렸다.

“겁인가? 토족이? 나에게 죽은 칠백 전사는 마지막 한 명이 죽을 때까지 겁먹은 자가 없었다. 소위 복수를 하러 왔다면 죽은 사람들보다는 나아야지.”

아걸은 자신의 문도에게 말하듯 다그쳤다.

무인이 겁을 먹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겁을 먹으면 무공이 절반으로 깎인다.

자신이 지닌 무공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아무리 약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자를 만나도 더 철저히 투지를 불태워야만 그나마 있는 힘이라도 올바르게 쓴다.

“이익!”

아걸에게 질타당한 전사가 이를 악물며 만도를 고쳐잡았다.

“그래. 서로 최선 다하자. 유감없도록.”

쒜에에엑!

아걸은 전사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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