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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553화 (553/600)

第百十一章 낙화혈룡(洛花血龍) (3)

콰콰콰과! 콰콰콱!

성난 해일이 몰려온다.

세상은 조용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풀벌레 울음소리도 뚝 그쳤다.

무엇인가가 움직인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취화원 사수들은 성난 해일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엄청난 힘이 정면에서 몰아쳐 오고 있다.

월영은 수호신장(守護神長)처럼 정문 앞에 우뚝 버티고 섰다.

물론 정문을 지키는 분이 군사는 따로 있다. 취화원 살수들은 암중에 숨어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수하도 없이 혼자만 모습을 드러냈다.

“제일진은 저희가 막겠습니다.”

자망이 말했다.

“그래요. 곡주님께서는 안으로…….”

자괴도 말했다.

그래도 월영은 삭풍을 온전히 받아내겠다는 의지를 가득 드러낸 채 앞만 노려보았다.

“자망, 자괴.”

“네.”

“잘 봐. 우리 제일곡의 임무는 예기를 꺾는 거야. 돌풍이 불어오면 그 맨 앞에는 언제나 우리가 있어. 그러니 타격도 가장 심하게 받고…… 이기라는 게 아니야. 똑똑히 알아둬. 뜯겨나가지 말라는 거야. 악착같이 발목을 잡고 늘어져서 완전히 뜯겨나가는 것만은 막아야 해. 지독하게 물고 늘어져라.”

“네.”

자망과 자괴는 월영의 말이 마치 유언처럼 들렸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말이다. 언니처럼 자상하다가도 얼음처럼 차가워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시점에 하는 말은 모두가 서러웠다.

왜 제일곡만 선두에 서서 적의 예봉에 직타당해야 하나.

만약 근위대장을 공격한 칼이 제일곡주 월영을 공격한다면 아마도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공산은 매우 높다. 저쪽은 닥치는 대로 베어 넘기고 가자는 주의고, 이쪽은 어떻게든 발목을 붙들겠다는 주의다.

쌍방 중 한쪽은 완전히 무너진다.

“부드럽게…… 아름답게 공격해라.”

월영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제일곡 살수들은 모두 알아들었다. 그녀가 늘 입에 담고 사는 말이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할 리 없다.

구구구구!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단지 눈앞에 백여 명이 모습을 드러낸 것뿐인데, 성난 사자 백여 마리가 달려온다는 착각이 든다.

사실,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쳐들어왔다.

“누구……?”

위문 군사가 창을 들이댔지만, 일격에 썰려 나갔다.

“커억!”

“으아악!”

위문 군사 십여 명의 비명이 어둠을 뚫었다.

월영은 쓰러지는 군사들을 보고도 전혀 물러나지 않았다. 적에게서 눈을 떼지 않겠다는 듯 전면만 노려봤다.

“월영이라고 취화원 제일곡 곡주입니다.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문제 되나?”

“안 됩니다.”

“그럼 밀어.”

“넷!”

토족 전사가 힘차게 대답했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편한 점이 매우 많다. 어떤 일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상관하지 않고 베어버린다.

“전원 진입한다. 가로막는 자들은 모두 베어버려!”

꼰샥낙넨이 말했다.

취화원이 기습을 미리 알고 대비한 점은 확실히 예상 밖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취화원도 역시 장애물일 뿐, 가로막으면 베어 넘긴다.

슈슈슛! 슈슈슈슛!

토족 전사들이 일제히 정문을 통과했다.

쉐에에엑! 쒜엑!

어둠 속에서 암영검이 흐른다. 물 흐르듯 부드럽게 다가와서 퍼뜩 검을 쳐내고는 빠져나간다.

“훗! 후후! 어림없지!”

쒜에에엑! 퍼억! 까앙! 깡!

암영검이 흐른 후에는 반드시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다.

토족 전사들은 암습에 익숙하다. 사람의 기습이 아니라 맹수의 기습으로 길들여졌다.

밀림을 가다 보면 뱀이 불쑥 나타나서 물기가 일쑤다. 흑표범이 머리를 물고 가는 수도 있다. 길이가 십 장이나 되는 뱀에게 산 채로 먹이기도 한다.

밀림에는 항상 온갖 위험이 산재한다.

밀림에서는 목숨을 담보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나중에는 경계심마저 시들해지고, 오직 반사적인 행동만 남게 된다. 어떤 기습에도 제대로 대응하게 된다.

토족 전사와 취화원 살수들은 궁합이 좋지 않다.

슛!

어둠 속에서 검이 튀어나왔다.

토족 전사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듯 재빨리 피했다. 그리고 칼을 거꾸로 잡고 뒤로 찔러넣었다.

슛!

토족 전사가 쳐낸 칼도 공허하게 허공을 찔렀다. 암습자는 이미 사라진 후이다.

“이것들 제법인데?”

“흩어지지만 마.”

어떻게 보면 취화원이 제대로 암습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형편없이 물러서고 있다. 토족 전사들의 발길을 조금도 잡아놓지 못한다.

저벅! 저벅! 저벅!

토족 전사들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취화원의 공격도 급변했다.

쒜에에엑! 쉐에에엑!

허공을 찢는 파공음이 연달아 들렸다. 소리가 소리를 잇고, 또 다른 소리가 뒤따른다. 수십 명이 일시에 검을 찔러온다는 느낌이 든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면서.

“귀찮군.”

꼰샥낙넨이 거칠게 말하며 만도를 들어 올렸다. 순간,

써걱! 쩌어어억!

그가 만도를 쳐낼 때마다 피가 튀었다. 어둠 속에서 핏물이 와락 뿜어져 나왔다.

“크윽!”

뒤늦게 칼 맞은 취화원 살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들은 머리가 베이고, 가슴이 썰렸다. 복부를 가로 베이기도 했다. 어느 칼을 맞았던 즉사, 칼을 쓰는 힘이 너무 강하다. 요행조차도 바랄 수 없다.

취화원 살수들은 연환검(連環劍)을 펼쳤다.

암영검을 연달아 펼치는 것인데…… 목표로 한 적이 쓰러질 때까지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계속 공격하는 방식이다. 연달아서 암영검을 쳐내면 네 수 혹은 다섯 수 정도면 쓰러진다.

그런데 꼰샥낙넨은 그런 검을 단번에 무너트렸다.

쒜에에엑! 퍼엉! 펑펑펑펑!

취화원 살수들은 목숨을 사리지 않고 공격했다. 하지만 덮쳐들 때보다 더 빠르게 튕겨 나갔다. 토족 전사들이 휘두르는 칼을 뚫지 못했다.

암영검! 암영검이 읽힌다.

토족 전사들이 암영검의 실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살수들을 정확하게 요격한다.

제일진이 무너졌다.

제이진도 퉁겨나간다. 처음 한 명이 튕겨 나가면 잇달아 서너 명이 무너진다.

제이진에 이어 제삼진이 달려든다.

열 명이 한 조를 이어서 토족 전사 백 명에게 달려든다.

백 명을 막자고 달려드는 곳이 아니다. 그들의 발걸음을 늦추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희생이 너무 큽니다.”

자망이 말했다.

월영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울리는 쇳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토족이 동시다발로 황궁을 쳐오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든 곳이 바로 제일곡이 맡은 정문이다.

다른 곳은 스무 명씩 쳐들어왔다. 그 정도면 취화원도 너끈히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정문 쪽은 백 명이나 몰려오고 있다. 더욱이 저쪽에는 절대 칼이 있다.

절대 칼은 아직 칼을 뽑지도 않았다.

“크윽!”

암영검이 깨졌다.

토족 전사들은 어둠에 몸을 숨긴 취화원 살수들을 용케 찾아냈다. 그리고 거침없이 참살했다.

일방적인 도륙이 이어진다.

취화원 살수들이 원래 이렇게 싱거웠나?

“전원 달라붙는다. 발목을 놓치지 마!”

월영이 말했다.

“곡주님! 그럼 전멸이에요!”

자괴가 새파랗게 질려서 말했다.

“전멸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공격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몸을 피하고!”

월영이 쩌렁 일갈을 내질렀다.

취화원 살수들은 암영검을 수련했다. 그리고 초반에는 제법 잘 싸웠다. 토족이 암영검의 형체를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기습이 통했다.

한데, 암영검의 요체가 읽히자 상황이 급변했다.

절체절명의 위기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이제 암영검이 드러났으니 뒤로 후퇴해야 하나? 적은 암영검을 환히 꿰뚫어 보면서 칼을 쳐올 텐데. 아무래도 맞싸우는 것은 무리지?

이게 당연한 생각이다.

하지만 월영 생각은 다르다. 취화원 살수들은 극한을 넘어서야 한다. 배운 것이 모두 바닥났으면 지금 당장 다른 수법을 취해서라도 위기를 넘겨야 한다.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아등바등 달려들어서 살아남아야 한다.

자칫하면 제일곡 살수들은 모두 개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 적에게 환히 드러난 암영검을 쓰다가 속절없이 죽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월영은 모험을 걸었다.

쒜에에엑!

그녀가 먼저 검을 쳐갔다.

그녀는 사생락을 수련했지만, 예하 살수들과 마찬가지로 암영검을 펼쳤다. 똑같은 수로 똑같은 공격을 해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쉐엣! 쒜에엑!

검과 만도가 교차했다.

그녀의 검은 만도를 부드럽게 따라 흐르다가 상대의 목 밑을 파고들었다.

써걱!

목이 단숨에 잘려 나갔다.

“물러서지 마!”

월영이 토족 전사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길을 틀었어.”

몽설이 눈빛을 반짝 빛냈다.

제일곡에게 적의 주력을 맡겼다. 가장 강한 힘, 가장 강한 칼을 제일곡에게만 맡겼다.

제일곡의 임무는 적을 막는 게 아니다. 적의 주력이 공격해 올 때 그들의 방향을 정문에서 좌측으로 비트는 거다. 생사박투를 벌이면서 조금씩 방향을 튼다.

취화원 살수들이 마냥 부딪쳐 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부딪히면서 방향을 비틀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녀들이 정면에서 공격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곡은 참으로 큰 피해를 봤다.

제일곡 살수 중 절반 이상이 쓰러진 것 같다. 토족 전사들의 무지막지한 칼을 생각하면, 쓰러진 살수들 대다수가 절명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손해가 더 큰 손해를 막는 길이다.

토족 전사들은 방향을 틀었다.

정문으로 오지 않고 좌측으로 약간 밀려났다. 물론 저들은 좌측이 정면인 줄 알고 있다.

힘과 힘으로 부딪치면 토족이 월등히 강하다.

원래 취화원이 이렇게까지 약하지는 않은데…… 토족이 알고 있는 기습대처 방법이 취화원 살수들의 공격 방법과 배치된다. 마치 저들은 취화원이 어떤 식으로 기습할지 예측하고 그에 맞춰서 대응 방책을 수립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대응책이 몸에 완전히 베여있다면 더 큰 문제다.

차라리 취화원이 아니라 적랑대 살수들이 궁을 막았다면 지금처럼 무력하게 뚫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몽설은 손을 들어 올렸다.

피해가 큰 제일곡을 뒤로 뺀다.

‘좋지 않아.’

쵸 디엔이 미간을 찡그렸다.

뭔가 끈끈한 아귀가 발밑에 달라붙은 느낌이다.

취화원이 공격할 줄은 알았지만, 이들의 공격이 이토록 질길 줄은 몰랐다.

공격이 무섭다거나 신랄한 것은 아니다. 솔직히 암영검은 위협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다만 지겹도록 끈질기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몰아친다.

정면 대결도 하지 않는다. 공격이 실패하면 곧바로 물러선다. 희생을 최대한으로 줄이면서 잠시도 쉬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도 상관없어 보이기는 한다.

토족 전사들이 거침없이 뚫고 들어가는 중이다.

벌써 정문을 지나쳐서 오십 장 이상을 뚫고 들어갔다.

이제 곧 중문이다.

토족 전사들은 오히려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 중문을 넘으면 황제가 있지 않은가. 목적지에 다 왔다. 이제 곧 목적을 이룬다. 토족이 중원을 친다.

하지만 쵸 디엔은 여전히 불안했다.

취화원은 왜 정면 공격만 할까? 암영검을 쓴다고 해도 검 대 검으로 부딪치는 것이니 역시 정면 공격에 해당한다. 차라리 암기나 활 등을 이용했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제지했을 텐데.

‘저 문을 넘어서면 지옥이다.’

쵸 디엔은 중문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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