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十一章 낙화혈룡(洛花血龍) (5)
“언니.”
“네. 원주님.”
오곡주 취운이 대답했다.
몽설이 무슨 말을 할 줄 안다. 자신이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도 안다.
“잘못하면 언니가 죽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언니 막아줘요.”
“원주님, 안심하고 가세요. 뚫리면 제가 목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취운이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며 대답했다.
정확하게 대답해야 할 말이다. 하지만 지키기는 무척 어려운…… 정말 뚫리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말하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대답인 것은 분명하다.
토족 전사들을 막는 일이라면 걱정거리가 없다. 정작 막아야 할 자가 누군지 모르니 탈이다.
“언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주세요. 그러면서도 뚫리지 말라고 말해야 하니 이런 모순이 또 없네요. 미안해요. 언니.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지 마세요. 안 하셔도 됩니다.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취운이 환하게 웃었다.
정말로 막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싸우러 가는 몽설의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니, 뚫릴 마음 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다. 무조건 막는다.
몽설은 취운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신형을 쏘아냈다.
몽설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내원 담장 위에 있었다. 토족이 정문을 넘어설 때부터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쵸 디엔이 중문을 넘어서자 즉시 신형을 날려 마주쳐갔다.
쵸 디엔이 중문 담장을 넘을 때, 몽설은 내원 담장을 넘었다.
쵸 디엔이 지붕을 건너뛰며 질주해 올 때 몽설도 지붕을 가로 건너서 질주했다.
두 사람은 중간에서 부딪혔다.
차앙! 창창창창창!
칼과 검이 마주쳤다.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상관없다. 서로 누군지 안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만도를 후려치고 검을 내질렀다.
까앙! 깡깡깡깡! 까아앙!
두 사람은 폭풍처럼 이십여 합을 교환했다. 전심을 다 해서 상대방을 베려고 노력했다. 그런 후에야 서로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알았다.
쉬이잇! 쉬잇!
두 사람이 비로소 갈라섰다.
그들이 내려선 곳은 전각에 막힌 작은 회랑이다.
사방에 높은 전각이 세워진 까닭에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완전히 밀폐된 곳처럼 비쳤다.
밖에서는 도검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두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명과 격전 소리가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
“취화원주?”
“토족이죠?”
“우릴 알아보는군.”
“간 바 만 도를 쓰는 부족은 딱 하나뿐이잖아요. 토족.”
“간바만도까지 알고?”
“놀랄 것 없어요. 어떤 사람에게서 들어서 아는 것일 뿐, 제가 아는 것은 없어요.”
“아걸?”
“그쪽 이름이 혹시 쵸 디엔인가요?”
“내 이름도 들었나?”
“살려서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후후후! 살려서 보냈다…… 창피한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군. 토족이 목숨이나 구걸하는 민족은 아닌데.”
“상관없어요.”
쓱!
몽설이 검을 들어 올렸다.
“상대를 성심껏 해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요. 빨리 끝낼게요. 성의가 없더라도 용서하세요.”
“시간이 없다? 그 말은 내가 할 말 아닌가?”
쵸 디엔이 만도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몽설을 베고 내원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내원에는 금군이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들까지 베어야 황제에게 다다를 수 있다. 군대를 뚫고 가야 한다.
결코, 시간이 많지 않다.
쵸 디엔은 한시바삐 몽설을 쓰러트리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몽설도 서둘고 있다. 이미 쵸 디엔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한다.
“그래요. 서로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빨리 끝내죠.”
스읏!
몽설이 팔을 들어 올렸다.
몽설은 팔에 힘을 전혀 주지 않았다. 손가락 몇 개로만 검을 잡았다. 그나마도 전혀 힘을 싣지 않았다.
손을 들어 올리는데 손등이 굽어진 채 올라온다. 검은 축 늘어져서 끌려온다. 손가락에 실린 힘만 풀면 당장 발밑으로 굴러떨어질 게 분명하다.
그렇게…… 팔을 어깨높이로 올리고, 검은 축 늘어트린 채 쵸 디엔을 쳐다봤다.
희한한 기수식이다.
반면에 쵸 디엔은 광풍을 일으켰다.
쾅쾅쾅! 쾅쾅쾅!
전신에서 진기가 폭발한다. 미친 듯이 진기가 들끓어 나온다. 전신에서 힘이 넘친다.
활활 타오르던 진기는 곧 만도에 집중되었다.
만두가 열기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빨갛게,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뜨거운 연기가 치솟았다.
아걸은 완전한 정(靜), 아걸은 터져나갈 듯한 동(動)이다.
“다오 푼 라야.”
몽설이 중얼거렸다.
그녀가 토족 무공 다오 푼 라야를 알 리 없다. 역시 아걸에게 들은 말이다. 토족 전사들의 최후 절공이며 매우 위험한 칼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칼을 전수받고 남만으로 돌아간 지 일 년도 안 되어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이런 칼을 보인다.
‘근위대장이 죽은 칼이야. 결코, 무시할 수 없어.’
하지만 몽설은 마음과는 달리 일절 긴장감을 떠올리지 않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늘어져서 금방이라도 누워서 잠이 들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다. 몽설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혈검은 니환궁에 터전을 잡는다. 니환일검이 일어선 후에야 육신 밖에 있는 검도 곧추세워진다.
몽설은 말로는 영검이 아니라고 했지만, 혈검은 영검인 것이 맞다. 영혼이 일으키는 검, 영검이다. 영혼이 싸움을 준비하면 육신도 따라서 움직인다.
스스! 스스스슷!
니환일검이 만도를 더듬는다.
‘지금은 반응할 때가 아니야.’
몽설은 니환일검의 명을 쫓는다. 니환궁에서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꽝꽝꽝! 꽝꽝꽝꽝!
만도가 거칠게 요동쳤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쵸 디엔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것이 뇻 티엔!’
몽설은 다오 푼 라야의 최후 초식을 똑똑히 봤다.
쵸 디엔의 칼이 불을 뿜고 있다. 거대한 사자가 입을 쫙 벌리고 달려든다. 거치적거리는 것은 모두 찢어발기겠다는 듯 엄청난 힘으로 짓눌러 온다.
몽설은 그제야 왼발을 축으로 해서 빙글 돌았다.
몸이 회전하자 손끝에 걸린 검도 빙글 돌았다. 몸과 검이 돌자, 검 끝도 위로 쳐들렸다. 우산을 펴듯이, 부챗살을 펴듯이 검첨이 위로 스르륵 올라갔다.
- 수연환불급일검무성(雖然還不及一劍無聲)…….
혈검 제육식 표묘무극(飄渺無極)이다.
회오리바람이 다함 없이 뻗어 나간다. 제삼식 일검무성이 소리 없이 뒤를 잇는다.
검이 스르륵 올라간다.
“좋은 검!”
쩌렁! 울리는 일갈과 함께 만도가 내리쳐졌다.
성난 불길이 종이를 찢어버린다. 이쪽은 우산을 폈는데, 상대방은 도끼질을 한다. 불붙은 도끼로 종이우산을 와락 찢어버리려고 달려든다.
누가 이길까? 당연히 도끼가 이긴다. 누가 봐도 이긴다. 불붙은 도끼가 되어버린 만도…… 단숨에 혈검을 찢는다. 혈검이 찢어진다. 갈라진다. 그 순간,
툭!
만도가 우산을 찢어발기려는 순간, 검첨이 만도의 도배를 통하고 밀었다. 순간,
쾅! 꽈앙!
만도가 거칠게 터졌다. 아예 만도 자체가 원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불길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아름다운 폭죽처럼 산화한다.
그사이에 미묘한 불길 한 줄기가 몽설의 가슴을 향해 슈웃! 밀려들었다.
근위대장을 죽인 칼이다.
하지만 몽설은 이 순간에도 회전을 멈추지 않았다.
- 표묘(飄渺)…….
다함 없이 계속 회오리를 일으킨다.
표묘무극은 일격에 끝나지 않는다. 상대방이 소멸할 때까지 계속 회오리를 일으킨다.
탕!
이번에도 검첨이 정확하게 검 자루를 쳐냈다.
쵸 디엔이 날린 만도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제삼검…… 검첨이 쵸 디엔의 목을 뚫었다.
“큭!”
쵸 디엔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어, 어떻게……?”
“다오 푼 라야. 꽤 뛰어난 도법인데 삼류 도법으로 만들고 말았네. 당신이.”
몽설이 말했다.
“뭐, 뭐라고!”
쵸 디엔이 핏물 섞인 음성으로 간신히 말했다.
“근위대장이 이 검에 죽었을 텐데, 상당히 억울했겠네. 이런 칼에 목숨을 빼앗기려니. 결코, 이런 칼이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인데. 속임수만 가득한 칼이야.”
“뭐, 뭐라고!”
쵸 디엔은 기가 막혀서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근위대장도 죽어가면서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하지만 그는 패배자다. 패배자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을 이유가 없었다.
“다오 푼 라야가 어떤 칼인지 알겠어. 그 칼을 전심전력으로 수련했다면 지금 내 혈검은 찢어졌을 거야. 근데 당신은 이 얇은 막조차 찢지 못했어. 진기를 양분했기 때문인데 왜 속임수를 쓴 거야? 진신 무공으로 맞받아쳐도 충분했는데. 다오 푼 라야는 난폭한 칼이잖아. 패도. 아! 당신은 패도를 모르는구나. 자신이 없었어. 그러니 속임수를 섞었지.”
“으으…….”
쵸 디엔은 침음했다.
“미안. 당신하고 오래 있어 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손님 잘 모셔라!”
몽설이 말했다. 그리고 신형을 쏘아 올렸다. 순간, 전각 좌우에서 두 사람이 뛰어내렸다.
쒜에엑! 쒜엑!
두 사람은 내려서기 무섭게 검초부터 터트렸다.
팔곡주 소명과 구곡주 사사다.
두 여인이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툭! 튀어나왔다.
파파팟!
검이 육신에 작렬했다.
절정에 이른 사생락이다.
“아!”
쵸 디엔은 두 여인의 검을 맞은 후에야 진정한 패인을 알았다.
근위대장과 싸울 때는 뇻 티엔을 쓰기 전에 여러 차례 공방을 일으켰다. 그때는 온전한 패도로 맞섰다. 그러니 뇻 티엔을 펼칠 때도 근위대장은 온전한 공격만 생각했을 것이다. 속임수가 터질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말로 뇻 티엔의 강함을 믿은 사람은 근위대장이다.
몽설은 약간 다르다. 그녀는 처음부터 뇻 티엔을 봤다. 다른 패도를 보기 전에 속임수부터 봤다. 당연히 속임수를 즉시 간파한다. 뇻 티엔이 순수하게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러니 속아 넘어갈 리 있나.
아니다. 사실 속은 사람은 쵸 디엔 자신이다. 자신은 뇻 티엔에 암수를 넣었으면서도 그것이 진정한 패도인 줄 착각했다. 뇻 티엔을 쓰면 누구든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다.
쵸 디엔은 차마 죽지 못했다. 억울해서 너무 억울해서 죽을 수가 없었다.
중원에 와서 두 명을 만났다. 한 명은 자신이 죽였고, 한 명에게는 죽임을 당한다. 한데 두 명이 다 똑같은 말을 했다. 쵸 디엔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이들은 봤다.
그것이 무엇인가? 패도! 무지막지한 패도!
짓이긴다는 것!
짓이긴다는 뜻도 모르면서 패도를 말했나? 뇻 티엔을 말했나?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쵸 디엔은 냅다 고함을 내질렀다. 고함을 지르고 또 질렀다.
파파팟! 파파파팟!
연이은 공격이 몸이 터져나갔다. 심장이 갈라지고, 폐가 꿰뚫렸다. 그대로 쵸 디엔은 계속 고함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악!”
그러는 사이 그는 절명했다.
하늘을 보고 고함을 지르면서.
몽설은 급히 내렸었다.
오곡주 취운과 헤어졌던 자리, 바로 그 자리에는 취운이 쓰러져 있었다.
“언니!”
몽설은 급히 취운을 부축해 안았다.
복부에 검상이 보인다. 배를 뚫고 들어가서 등까지 뚫은 검!
“언니!”
몽설은 급히 취운의 호흡을 살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다.
“미안…….”
취운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됐어. 그대로 있어. 그대로.”
타타타타탁!
몽설은 급히 경혈을 쳐서 경맥을 막았다.
막지 못할 줄 알았다. 상대방은 오대신술을 수련한 자다. 오대신술은 이미 기습이 뛰어나다는 게 인증되었다. 그들 중 최고수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숨어들었는데 당할 도리가 없다.
이번 일을 주관한 자가 허도기라면 동영 인자도 분명히 움직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여기! 이리 와!”
몽설은 쩌렁 일갈을 내질렀다. 그리고 급히 신형을 날려서 내원 안으로 쏘아 들어갔다.
취운의 상세가 몹시 위독하지만 머뭇거릴 틈이 없다. 잘못하면 황상이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