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十二章 혈검만휘(血劍晩暉) (1)
몽설은 근위대장이 죽음을 전해왔을 때도 누가 급습해 오는지 알지 못했다.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동영 인자가 움직였을 것 같기는 했지만, 예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예단은 어떤 적보다도 위험할 때가 있다.
저들이 정문을 공격해왔을 때, 그때야 비로소 누가 근위대장을 죽였는지 알았다.
저들의 칼이 몹시 특이하다.
중원에서는 볼 수 없는 칼이다. 남만의 만도와 비슷하지만 어딘지 조금 다르다.
‘간 바 만 도!’
그렇다면 토족이다.
남만에 있어야 할 토족이 도성까지 들어왔다. 근위대장을 죽이고 거침없이 황궁을 들이친다.
만약 저들이 근위대장을 건드리지 않고 계속 기습만 취했다면 황궁도 뚫렸을 것이다. 그만큼 저들의 이동은 은밀했다. 어느 쪽에서도 올라온 보고가 없었으니.
근위대장을 죽인 것이 저들에게는 천추의 한이다. 근위대장에게 죽어서도 소식을 전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게 실수 중 최대 실수다.
기껏 목 앞까지 은밀히 다가와 놓고 마지막 순간에 기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 덕분에 자신은 대비했고 막아냈다.
그러다가 문득 이번 기습 역시 허도기와 연관 있지 않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허도기가 이 일을 주관했다면…… 토족 전사들이 들어올 걸 알고 있었다면…… 당장 기습에 성공했을 때와 실패했을 때에 무엇을 할지가 정해진다.
기습에 성공했을 때, 허도기는 당당히 입성한다.
기습에 실패했을 때, 계속해서 황상을 압박할 수 있는 조처를 취한다.
매우 당연한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토족이 기습을 가하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아무 생각 없이 놓아버릴 사람은 아니다.
그러면 어떤 행동을 취할까?
도성에는 동영 인자들이 들어와 있다. 유음료 도주조차도 해제할 수 없는 절대 살명을 받든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허도기의 명을 받고 있다.
‘틀림없이 그들이 올 거야.’
취운에게 부탁한 것은 그들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토족을 막아달라는 게 아니었다. 토족은 일이삼사 곡만으로도 충분하다. 칠팔구 곡이 뒤를 받치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
토족은 중문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데 역시 예상대로 취운은 동영 인자를 이끄는 자, 부주를 막아내지 못했다.
쒜에에엑!
몽설은 중원(中院)을 파고들었다.
도대체 이들이 어디로 갔나? 코끝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지? 어디로 갔지?’
몽설은 조급해졌다.
스슷! 스스슷!
몽설의 신형이 유성처럼 흘렀다.
이 순간, 몽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각도, 담장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도…… 주변 사물이 일체 사라져버리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중문 밖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일절 들리지 않았다.
몽설의 눈에는 딱 두 사람,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신만 보였다.
내원 앞을 지키고 있던 군사 두 명이 쓰러져 있다.
‘이미 내원이!’
금군이 죽었다는 사실은 저들이 이미 내원 안으로 침투했다는 말이 된다.
황상이 위험하다!
동영 인자들이 벌써 내원 안으로 파고들었다.
스슷!
몽설은 쓰러진 군사를 스쳐 지나가면서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두 명 모두 목이 베였다. 즉사다.
‘굉장한 솜씨!’
아군이 죽었는데도 적에 대해서 감탄이 나온다. 그만큼 살법이 깨끗했다. 목을 베었는데도 피가 거칠게 솟구치지 않았다. 살을 난폭하게 잘라내지 않고 정교하게 베었다는 뜻이다.
지금 같은 경우, 경계 군사를 죽이는 데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 이미 침투는 발각되었다. 그러니 한시바삐 목적을 이루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저들은 이토록 급한 가운데서도 소리를 일으키지 않았다. 은밀히, 매우 빠르게, 무척 정교한 검초를 구사했다.
살인술이 극에 달했다.
꽈앙!
몽설은 내문을 거칠게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도 역시 몽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시신이다.
내문을 지나서 채 다섯 걸음도 옮기기 전에 쓰러져 있는 금군 두 명을 찾아냈다.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동영 인자들이 도대체 어디까지 파고든 것일까?
한 가지 의문이 치민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 취화원 살수들의 촉각에 걸려들지 않았던 것일까? 동명 인자들의 인술이 뛰어나서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취화원 살수들은 미지의 적이 침범할 것을 예상하였기 때문에 성문을 철통같이 경계했다. 경계심을 그야말로 최고조로 끌어올린 상태였다.
그런 경계망을 뚫고 들어온다? 생각하기 어렵다.
초절정 고수 한두 명은 뚫고 들어올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동영 인자 전부가 취화원 살수들의 이목을 감쪽같이 속이고 들어왔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방법은 하나, 성문을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 이들은 다른 통로로 해서 들어왔다.
‘지하 암로(暗路)!’
몽설의 머릿속에 지하 암로가 그려졌다.
지하 암로는 유사시 황제가 탈출하기 위해서 만든 통로다. 황제가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서 만든 통로인데, 저들이 역으로 침범하는 데 사용했다.
다행히도 지하 암로는 내원에서 그친다.
내원에서 황제가 기거하는 소현각(篠懸閣)까지의 통로는 폐쇄했다.
황제가 비밀리에 황궁을 떠나 도피할 일은 없다. 그런 일은 절대로 만들지 않는다.
이것은 몽설의 결단이다.
몽설이 이러한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황제는 척살 당했을 것이다. 황제를 보호해야 할 암로가 오히려 황제를 죽이는 도구로 전락했을 것이다.
암로가 끝나는 곳에 오곡주 취운이 있었다.
‘맞아. 거기서부터 저들의 살검이 터지기 시작했어.’
그러면 지하 암로를 막았으니 괜찮지 않나? 아니다. 저들이 지하 암로를 이용할 수 있다면 유사시에 황제가 어디로 은신하는지도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저들은 곧장 소현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쓰러진 금군들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 길은 황제에게 가는 길이다.
쉬잇!
몽설이 전각을 굽이 돌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붕 위에서 굴러떨어진 여인의 시신이 보였다.
“은초(銀草)? 너까지!”
은초는 황제의 신변을 경호하는 육곡 부곡주다. 육곡 곡주 화요의 진전을 모두 이어받은 최고 살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금군들처럼 허무하게 쓰러져 있다.
하기는…… 취운마저 쓰러트린 자들이지 않나. 은초가 상대될 리 없다.
은초도 이미 절명했다. 다른 금군들처럼 그녀도 목이 베었다.
‘목?’
순간, 몽설은 우뚝 걸음을 멈춰 세웠다.
휘이이잉!
전각을 휘돈 바람이 그녀를 쓸고 지나갔다.
몽설이 이상해졌다. 그녀가 급한 마음을 버리고 태연히 뒤돌아섰다. 그리고 사박사박 걸어서 이미 죽은 게 확실해 보이는 은초에게 다가갔다.
구부정하게 쓰러진 그녀의 몸을 반듯이 눕혔다.
손으로 부릅떠져 있는 눈을 쓸어내렸다. 두 손도 가지런히 모아 배 위에 올려주었다.
은초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모습이다.
“은초. 수고했어. 잘 가. 다음 세상에서는 살수 같은 거 되지 말고. 이렇게 보내서 미안.”
몽설은 은초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에게는 황제의 안위보다도 은초가 소중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현재, 몽설의 제일 임무는 황제의 신변 보호다. 토족을 막는 것도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몽설은 은초에게 작별을 고한 후, 일어섰다. 그리고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마터면 당할 뻔했네. 호호!”
몽설이 웃었다.
급하게 내원을 질주하던 모습이 아니다. 매우 편안해졌다. 실제로 그녀의 전신에서는 긴장감이 티끌만큼도 어려있지 않았다. 완전히 마음을 놓은 것이다.
몽설이 말했다.
“그런데 당신도 실수한 게 있어. 은초는 사각에 숨어 있었어. 죽더라도 사각에서 눈에 띄지 않게 죽었어야지, 왜 일부러 지붕에서 굴러떨어졌을까?”
이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금군은 인자들의 살법을 잘 알지 못한다. 평소에 접해본 살법이 아니어서 매우 당황스럽다. 그러니 불의의 기습을 당해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취화원은 조금 다르다. 취화원 살수들은 기본적으로 암영검을 수련한다. 인자들의 술법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
최소한 암격에 쉽게 당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은초는 금군들처럼 모습을 드러내놓고 경계 서지 않았다. 암중에 숨어 있었다. 숨어 있는 그녀를 찾아내서 베었다. 그것도 정확하게 기습을 걸어서.
대단한 자, 대단한 검인 것은 분명하다.
이 정도의 검은 되니까 아걸도 유음류를 조심하라고 했던 것이다. 동영 인자 중에 다른 검은 몰라도 유음류 부주의 검만은 유의해야 한다.
하지만 은초의 죽음은 죽음에서 끝났어야 한다. 그녀가 사각에서 벗어나 지붕 밑으로 굴러떨어진 데는 분명히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
몽설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은초가 일부러 내 눈에 띄려고 굴러떨어졌다고? 상황이 급하니 어서 빨리 황상에게 달려가라고? 은초가 아니었으면 정말 그럴 뻔했어. 너희, 오늘 목적 이루기는 틀렸다. 너희, 지리를 여기까지 밖에 모르네. 소현각이 어딘지 모르지?”
스릉!
몽설이 검을 뽑았다.
그녀의 상궁, 니환궁에서는 이미 니환일검이 곤두섰다.
검 한 자루가 우뚝 솟구친다. 핏빛 혈광을 뿌려낸다. 상궁에서 뻗어 나온 핏빛 혈광이 전신 경맥을 따라 흐르다가 손에 든 검에 집중된다. 상궁의 니환일검과 손에 들린 검이 합일됐다.
검신일체(劍身一體), 무아지경(無我之境).
스릇! 퍼엉!
몽설의 몸에서 일어난 경기가 그녀의 옷자락을 펄럭였다.
동영 인자들은 대답이 없다. 하지만 이미 움직이고 있다. 어떤 느낌이 전해져 온다.
취화원은 백살도축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유음류 오대신술을 경험했다. 실전을 통해서 직접 경험한 것이 있다. 거기에 아걸이 말해준 것까지 덧붙이자 오대신술이 거의 정확히 그려졌다.
오대신술은 신비롭지 않다.
몽설은 오대신술보다 사생락이 한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어렵지 않은 공격이야.’
츠읏!
몽설은 긴장을 풀었다. 대신 전신 감각은 매우 날카롭게 유지했다. 고요한 신색으로 주변의 움직임을 살폈다. 아니, 모든 감각을 니환일검에 모았다.
저들이 공격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무방하다. 어차피 시간은 취화원 편이다.
곧 토족 전사들이 정리된다. 저쪽 싸움이 끝나면 취화원 전력은 곧장 안쪽으로 몰려든다.
동영 인자들은 정말 시간이 없다. 공격하든 물러서든 지금 즉시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기왕 내원까지 들어온 이상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공격해 올 거야.’
몽설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스읏!
움직임이 보였다.
그녀의 두 눈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니환일검이 위기를 느끼고 깜빡거린다. 머릿속에서 피어난 혈광이 위기를 감지하고 방향을 튼다.
몽설의 몸도 니환일검을 쫓아서 스르륵 움직였다.
약간 우측으로!
그러자 움직임이 멈췄다. 니환일검도 떨림을 멈췄다. 평상심이 다시 찾아왔다.
적의 공격 의도를 꺾었다.
적도 지금 공격해서는 당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몽설은 약간 우측으로 방향을 튼 것에 불과했지만, 그 방향은 공격해 오는 자의 정면이다.
‘이쪽에 한 명.’
동영 인자들은 최소한 한 명의 시신은 놓고 가야 한다.
몽설은 니환일검이 감지한 적은 놓아주지 않을 생각이다. 눈앞에서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쪽을 예의주시하다가 티끌만 한 움직임이라도 일어나면 바로 공격한다.
주위에 동영 인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몽설은 오대신술을 읽지 못했다. 아무리 니환일검이 영검이라고 해도 움직임이 있기 전에는 파악하지 못한다.
상대방이 움직여줘야 방향을 파악한다.
스슷!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자 니환일검이 곧장 한 명을 파악했다.
이번에는 왼쪽이다!
니환일검이 즉시 방향을 틀었다. 동시에 몽설의 신형도 따라 돌았다.
검이 서쪽을 가리킨다.
그 순간,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뒤쪽…… 삼 방에서 동시에 움직임이 일어났다.
저들은 자신들이 움직이면 몽설에게 감지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셋이 동시에 움직였다. 이미 둘이 노출되었으니 나머지 하나도 노출해서 정면 공격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적들이 목형술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