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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558화 (558/600)

第百十二章 혈검만휘(血劍晩暉) (3)

쒜에엑!

하늘에서 검이 떨어진다.

순간,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허공을 두 쪽으로 갈라버리는 힘, 태산압정(泰山壓頂)이다. 거대한 도끼가 태산을 반으로 쩍 갈라낸다.

몽설은 막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검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는 급히 피했다.

쒜에에엑!

검은 그녀를 베지 않았다.

한순간, 눈앞까지 지쳐온 검이 싹 사라졌다. 그리고 폭풍우가 몰아치고 난 후의 고요가 찾아왔다. 세상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싸아아악!

몽설의 등이 갈라지면서 피를 쫘악 뿌려냈다.

“크윽!”

몽설은 짧은 신음을 토해내며 비틀비틀 물러섰다.

부주의 검은 패검에서 다시 쾌검으로 변했다. 순간적인 변화, 그리고 등을 훑었다.

“으!”

몽설은 침음했다.

두 번의 공격을 모두 막지 못했다. 두 번 모두 당했다.

상대가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는다. 니환일검이 미처 반응하지 못한다. 도대체 어떤 신법을 구사하기에 니환일검이 반응조차 하지 못하나.

“킥! 괜찮아?”

부주가 다시 검에 묻은 피를 할짝거리며 물었다.

몽설의 상의는 핏물이 흥건했다. 선혈이 낭자하다는 말이 몽설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한데…… 묘하게도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자 몽설은 비로소 긴장이 완전히 풀리는 듯한 느낌을 맛봤다. 뭐라고 할까? 비로소 통쾌해진 느낌이다.

- 무인에게 반 초밖에 뒤지지 않는다는 말은 나를 죽여달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무인이라면 오직 상대보다 뛰어나야만 한다. 뒤진다거나 비등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하는 건 오직 하나, 너보다 내가 낫다는 거다. 그래야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상대를 봤을 때, 나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도주해라. 그때 싸우면 진다. 무조건…… 이유 없다. 무조건 내가 강하다는 생각만 해야 한다.

이것이 아걸이 생각하는 ‘반 초’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는 개념이 아니다. 아걸에게 반 초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내가 이긴다’라는 생각밖에 없어야만 싸울 수 있다.

이런 생각은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인데…… 정작 강적을 만나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몽설이 그랬다.

몽설은 지금까지 부주만 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근위대장이 필적할 수 있을 텐데, 근위대장은 몽설을 해치지 않을 사람이다.

적으로 만난 자 중, 부주는 가장 강하다.

쵸 디엔만 해도 그냥 강하다는 느낌 정도인데, 부주는 ‘숨이 막힌다. 검을 들 수가 없다’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다시 말해서 나보다 강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이 부주를 더 크고 강하게 만들었다.

“후우!”

몽설은 탁한 숨을 뱉어냈다.

강적을 만났다는 긴장감이 무너진다. 처음보다 지금이 더 위험하지만, 긴장감은 훨씬 덜어졌다. 솔직히 이제는 전혀 긴장하지 않는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명경지수처럼 깨끗하다.

몽설은 그제야 자신의 혈검을 똑바로 봤다.

‘내가 큰 실수를 하고 있었어.’

몽설은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부주가 강하다고 생각되니, 그의 검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검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시하고 또 주시했는데…… 그러다 보니 검은 육안으로만 쫓았다.

잠깐이지만 혈검을 쓰지 않은 것과 똑같다.

니환일검이 곧추세워져 있는데 니환궁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두 눈에만 집중했다. 부주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정신이 빼앗겼다고 할까?

그러면서 니환일검이 작동하지 않는다, 반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으니.

몽설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자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빠르고 강한 검. 좋아.”

몽설은 부주를 보며 웃었다.

상처는 무시했다. 부주의 검도 보지 않았다. 오직 영검, 니환일검으로 움직임을 쫓는다.

스읏!

몽설은 두 다리를 낮게 가라앉힌 후 공격에 대비했다.

“후후! 이런…… 역시 급하게 몰아쳤어야 했나? 그런데 어쩌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변하는 건 없는데.”

부주가 혀를 찼다.

“훗! 급하게 몰아칠 수도 없었으면서 할 수 있는 척하기는. 다시 와봐. 이번에는 내가 베어줄게.”

몽설이 웃으면서 말했다.

부주는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다.

비록 그가 어깨를 긋고, 등을 베었지만…… 그리고 그 상처들이 절대 얕지 않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몽설은 부주가 여유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서로 간에 실력 차이가 너무 벌어지면 일격에 죽이지 않고 상처만 내는 경우가 있다. 적에게 뭔가 알아낼 것이 있다면 반항하지 못할 정도만 벤다.

두 사람의 무공 차이가 워낙 벌어지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아니다. 부주는 치명적인 검을 쓰지 못했다. 그런 검을 쓰려면 검을 더 깊이 써야 한다. 지금보다 더 깊숙이 들어와야 한다. 한데 그러면 혈검이 일어난다.

죽음이 자각되면 무의식중에 혈검이 일어난다.

혈검은 영검이다.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가까운 검이다. 본능에 따른 검이라고 해도 좋다.

부주는 이런 점을 우려해서 가외로만 공격했다.

부주는 혈검을 이해했다. 상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영검이 어떤 무공이라는 것은 안다. 지난 두 번의 격돌에서는 몽설보다도 부주가 혈검을 더 깊이 이해했다.

몸을 긋는 선에서 그친 것…… 부주도 최선이었다.

“한두 번만 더 몰아쳤으면 혼이 쏙 빠졌을 텐데, 아쉽군. 쉽게 끝날 걸 어렵게 만들었어.”

쉬릭!

부주가 검을 휘돌렸다.

슛! 슛!

부주가 공격을 가하려고 움찔거렸다.

몽설도 즉시 움찔거렸다. 먼저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니환일검이 작동했다. 혈검이 즉시 방향을 잡고 꿈틀거린다. 몸과 검이 즉시 반응한다.

부주는 다가서지 못했다.

슛! 슛!

이번에는 몽설이 틈을 잡고 공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검을 쓰기 직전, 혈검이 즉시 저지했다. 앞으로 나가지 말고 옆으로 돌라고 말해준다.

촤아앗!

몽설은 느낌이 일어나는 대로 즉시 몸을 옆으로 돌렸다.

파앗!

몽설이 서 있던 자리에 검기가 들이쳤다.

부주가 실질적으로 공격해 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틀림없이 공격을 당했을 것이다.

“좋군. 이제야 싸울 맛이 나.”

부주가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흥을 깨서 미안한데, 승부를 빨리 봐야 할 거야. 조금 있으면 바깥 싸움이 끝나. 수하들이 손을 빌려준다면 난 거절하지 않을 거고, 당신은 잡힐 거야. 그 전에 끝내는 게 좋을걸?”

몽설이 상대를 다그쳤다.

상대가 급한 마음을 일으키면 검이 어지러워진다.

조금 전에는 부주가 몽설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몽설이 흔든다.

말 몇 마디로 몽설이나 부주 같은 고수들이 흔들릴까마는…… 아니다. 흔들린다. 의외로 아주 작은 판단, 생각, 느낌이 큰 흔들림을 가져온다.

상대가 강하다는 느낌 하나만으로 혈검이 무력화된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슛!

부주가 갑자기 돌부리처럼 확 튀어나왔다.

몽설이 움찔거렸다. 즉시 반격 태세를 갖췄다.

부주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몽설의 반응을 떠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몽설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걸이 말한 ‘내가 상대보다 강하다는 느낌’. 이런 느낌을 갖기는 상당히 어렵다.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우러나와야 한다.

아걸은 어떻게 그런 마음을 유지할까? 허도기를 앞에 두고도 내가 당신보다 강하다고 느꼈다는 것인데 어떻게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의지로는 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진짜로 무공이 강해야만 그렇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걸이 허도기보다 강했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잊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적이 강하다, 내가 강하다 하는 점을 잊는다. 그러자면 눈앞에 닥친 싸움에만 집중한다. 눈앞에 들이닥친 검만 상대한다. 그 외의 검은 쳐다볼 필요도 없다.

몽설은 아걸이 한 말을 이제야 깨달았다.

- 눈앞에서 일어난 싸움에만 집중하다 보면 내가 강하다느니 상대가 강하다느니 하는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런 것은 다 잊어버린다. 오직 싸움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길 것인지 질 것인지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 건 앞으로 자연스럽게 벌어질 일이다. 벌어질 일에 대해서 미리 예단할 필요는 없다.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그 최선의 결과가 승리로 이어진다면…… 좋은 거다.

스읏! 파파팟!

니환일검에 집중한다.

순간, 틈이 보였다.

‘옆구리가 빈다!’

예전 같으면 여기서 한 번 더 숙고한다. 상대방이 일부러 허점을 내보인 게 아닐까? 저곳을 공격하면 역으로 당하진 않을까? 역공이 준비되어 있다면 어떤 검초일까? 자신은 베어가는 검일 것이고, 상대가 준비한 것은? 위를 칠까, 아래를 칠까?

별의별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슈우우웃!

몽설은 눈에 보이는 틈을 노리고 쏘아갔다. 니환일검이 만류하지 않는 한, 미련 없이 공격한다.

쉬잇!

부주의 검도 변했다.

몽설을 정면에서 맞이하지 않는다. 마주쳐올 것처럼 속이고는 슬쩍 몸을 빼낸다. 그리고 옆으로 휘돈다.

‘등을 치려고!’

두 번째 공격과 흡사하다. 아니, 똑같다. 먼저는 화살처럼 다가왔다가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그리고 등에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그런 모습이 환히 보일 뿐이다.

스읏!

몽설은 빙글 몸을 돌리면서 검을 쳐냈다.

부주는 쳐오는 검을 맞받지 않고 훌쩍 물러서서 피했다. 그리고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순간, 부주의 모습은 사라지고 검만 둥실 떠올랐다.

검이 원을 그린다. 둥근 원을 그린다. 빙글빙글…… 검이 둥글게 돌아간다.

‘부지능불능작위기준(不知能不能作為基準) 일검무극(一劍無極)!’

혈검의 기준은 일검무극이다. 혈검경 제일초다.

다른 검초는 대부분 무극이 최상위에 존재하는데, 혈검에서는 제일초에서 다룬다. 그래서 부지능불능작(不知能不能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붙인다.

몽설은 두 발을 땅에 힘껏 붙였다. 그리고 땅의 힘으로 밀어 올리듯 검을 들어 올렸다.

검에 전심전력을 담는다. 무극을 이룬다.

파파팟! 파팟!

몽설이 니환일검을 검에 담을 때, 부주의 검이 날아들었다.

부주의 몸은 보이지 않고 검만 보인다는 것은 부주 역시 검신일체를 이뤘다는 뜻이다. 검에 깃든 강기가 너무 거세서 검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타타타타탁! 타타탁!

몽설은 옆으로 네 걸음이나 이동했다. 동시에 우측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무극을 이룬 검이 곧장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쒜에에엑!

부주의 검도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맞받아온다. 몽설처럼 일직선으로 뚫고 들어온다.

서로 비껴가면서 찌를 것인가. 아니면 상대의 검을 퉁겨 올리고 내쳐서 찌를 것인가.

니환일검이 즉시 반응했다.

‘피해!’

니환일검이 몽설에게 이동하라고 지시한다.

굳이 부주의 은검(隱劍)과 맞싸울 필요가 없다. 부주의 약점은 신법에 있다. 신법을 공략해야 한다.

부주의 검공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쾌검뿐인데, 왜 신법을 공략해야 한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런 느낌이 일어난다.

다다다닥! 타타타탓!

몽설은 부주를 피해서 옆으로 냅다 휘돌았다. 동시에 혈검 제 삼초식 일검무성(一劍無聲)을 펼쳐냈다.

쫙!

검이 흐른다. 소리는 흘리지 않는다. 몸은 옆으로 빙글 움직이는데, 쾌속하게 검만 흘러간다.

깡깡깡깡! 깡깡깡!

검과 검이 부딪혔다.

부주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쳤다. 쾌검에 이어서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몽설을 요격하고 지나간 검이 금방 뒤돌아서 다시 쳐온다.

굉장한 회전력이다. 손목으로 일으키는 회전인지, 원래 몸이 빠른 것인지 모르겠다.

깡깡깡! 깡깡!

니환일검도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피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피할 틈도 없었다.

까앙! 깡깡깡!

힘과 힘이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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