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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559화 (559/600)

第百十二章 혈검만휘(血劍晩暉) (4)

깡깡! 깡깡깡!

검과 검이 쉴 새 없이 부딪혔다.

두 사람은 서로 보이지 않는 속도로 검을 쳐냈다. 오는 검도 가는 검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이토록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지금 두 사람은 인간 이상의 무공을 발휘하고 있다. 팔로 쳐내는 검이든, 신법으로 전개하는 검이든…… 두 사람의 움직임은 이미 인간의 눈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까아앙!

거센 일격을 끝으로 두 사람이 쫘악! 물러섰다.

“후욱! 훅!”

몽설은 크고 거친 숨을 쏟아냈다.

적이 앞에 있지만 거친 숨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숨기고 싶어도 숨길만 한 여유가 없었다.

뱃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역한 비린내가 치솟는다. 허파가 조여들다 못해서 터져나갈 것 같다. 숨까지 틀어막고 검을 쓰다 보니 현기증까지 치민다. 눈앞이 아찔해져서 한순간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환상까지 보았다.

그래도 참고 검을 휘둘렀다.

“훅! 훅!”

부주 역시 어깨를 들썩이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쉴 틈조차 빼앗은 채 검을 휘둘렀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당장 베인다. 숨이 끊어진다. 상대도 몰아치고, 나도 몰아친다. 물러서는 쪽이 죽는다.

그런 싸움이었다.

“이렇게 되면 혈검을 인정할 수밖에 없나.”

부주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몽설의 귀에 똑똑히 들리는 말이다.

“오대신술만 있는 줄 알았더니 진정한 검도 있었네. 유음류가 동영 제일이라더니.”

몽설도 감탄했다.

쵸 디엔은 칼 속에 속임수를 숨겼다. 하지만 부주는 일절 속임수를 두지 않는다.

진신 무공으로 짓눌러 버린다.

지금도 어지간한 검사 같으면 완전히 짓눌렸다. 너무 빨라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몽설도 자신이 어떻게 부주의 검을 막아냈는지 그리고 어떻게 틈을 노리고 검초를 쏟아부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니환일검의 움직임을 충실히 쫓았을 뿐이다.

니환일검이 뭐고, 일검무적이 어떻고, 일검무성이 어떻고 할 틈이 없었다. 모든 검초가 한순간에 녹아 나왔다. 조금이라도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 즉시 베였다.

“저쪽도 어지간히 정리된 거 같고.”

부주가 바깥쪽을 쳐다봤다.

취화원과 토족들의 싸움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고함과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여전히 울리고 있지만, 상당히 잔잔해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급속히 잦아들고 있다.

취화원 대 토족 전사들의 싸움은 무인 대 무인의 싸움이 아니다. 집단 전투다. 숫자가 많은 쪽이 적은 쪽을 협공한다. 그러니 숫자가 적은 토족이 절대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토족은 늑대처럼 사납게 할퀴기만 한다.

동영 인자들처럼 암중에 숨어서 암습을 가하는 유형이지만, 토족은 구차하게 사느니 검에 맞아 죽자는 쪽이다. 그러니 상대하기가 훨씬 쉽다.

반면에 동영 인자는 부주가 격렬히 싸우는 지금도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

저들은 부주가 어려움에 부닥쳐도 상관없는 것인가? 그래서 구경만 하나? 아니다. 저들은 싸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진작 달려 나왔다.

동영 인자들 역시 무인 대 무인의 싸움을 지향하지 않는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는 것에 목적을 둔다.

저들은 부주와 몽설이 싸우는 와중에도 몽설의 신변을 호시탐탐 노렸다. 검 끝에서 피어나는 살기가 바늘처럼 느껴졌다. 티끌만큼이라도 틈이 있었다면 당장 쳐왔을 것이다.

몽설은 부주와 싸우는 와중에도 틈을 주지 않았다.

동영 인자들이 어떤 종류의 살법도 전개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상태에서 싸웠다.

처억!

부주가 검을 두 손으로 잡고 가슴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만 끝내지. 시원하게.”

스읏!

부주는 왼쪽 발을 뒤로 끌어냈다. 오른발은 서 있는 상태 그대로 살짝 굽혔다. 순간,

타앙!

부주의 두 다리가 굳건하게 땅에 박혔다.

단지 발을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뿐인데…… 반석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부주는 검을 우상향으로 비스듬히 쳐올렸다.

촥!

부주의 몸에서 강한 살기가 풍겼다. 금방이라도 목을 쳐올 듯한 기세가 뿜어졌다.

부주는 그렇게 굳어 버렸다.

“음!”

몽설은 신음을 흘렸다.

부주가 촌각의 싸움을 걸어왔다.

몽설은 어떤 식으로 대응해도 상관없다. 지금처럼 쾌검을 날려도 상관없고, 멀리 떨어져서 암기를 던져도 상관없다. 몽설은 싸우고 싶은 대로 싸우면 된다.

어떤 싸움이든 부주는 즉각 반응할 것이다.

몽설의 싸움 방식에 맞춰서 공격해 온다. 암기를 날리면 쳐내든지 비껴낸 후에 몸통을 친다. 몽설이 앞으로 쳐나가면 그때는 일격 싸움이 된다.

부주의 자세로 봐서 부주는 내리긋는 검초를 전개할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단박에 내리친다. 아니, 후려친다. 그 검을 맞거나 피하지 못하면 당한다.

부주의 몸은 굳어 있고 몽설은 자유롭다.

얼핏 보면 몽설이 훨씬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부주의 검은 전후좌우 사방을 견제하고 있다. 몽설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든 그는 왼발을 조금 움직일 것이다. 오른발은 왼발의 움직임을 쫓아서 방향만 튼다.

몽설이 좌측으로 가든 우측으로 가든 항상 부주의 전면에 서 있게 된다.

철컥!

몽설은 손으로 검병을 쳐서 검신을 바로 잡았다. 검날을 단단하게 고정했다.

‘촌각의 싸움. 물러선다면 혈검이 아니지.’

상대가 촌각의 싸움을 걸어왔으니 영검으로 대처한다. 니환일검이라면 할 수 있다.

몽설을 검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목뒤에 댔다.

검등이 목에 대여 졌다. 검날은 하늘로 향하고 있다. 마치 검이 무거워서 어깨 위에 걸쳐놓은 것처럼.

아걸이 말한 자연도의 상태다.

몽설이 상체를 약간만 비틀어도 그녀의 검은 매우 빠른 속도로 후려쳐진다.

스슷! 스스슷!

몽설은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다가섰다.

부주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쒜에에엑! 쒜에엑!

싸움을 끝낸 취화원 살수들이 전각 위로 날아내렸다. 하지만 싸움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취화원 살수들은 두 사람의 싸움을 무인 대 무인의 싸움으로 봤다. 그래서 싸움에 가세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검을 늘어뜨린 채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기만 한다.

스읏!

부주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으니 몽설이 다가선다. 조금씩,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두 사람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졌다.

이제 반보! 반보만 내디디면 서로 후려칠 수가 있다.

몽설은 그 반보를 기꺼이 내디뎠다.

스읏!

순간, 두 사람은 즉시 검권에 갇혔다.

이제는 누가 먼저 검을 휘둘러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검을 쓰기만 하면 상대는 피하지 못한다. 최소한 몸을 스치기라도 한다. 거리는 매우 가깝고, 검은 날카롭게 곤두섰다.

하지만 두 사람은 굳은 듯이 멈춰 섰다.

찰나의 움직임이 승패를 좌우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속도가 비슷하다는 것을 안다. 이전 싸움으로 상대방의 검이 얼마나 빠른지 알아냈다. 그러니 함부로 검을 쳐내지 못한다.

검을 쳐내는 중에 찰나의 틈이라도 보인다면 당장 역공당한다.

스으으읏!

손가락의 움직임까지 극도의 긴장이 담겨 있다.

파팟! 팟!

몽설의 눈과 부주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몽설의 눈은 편안하다. 매우 고요하다. 니환일검의 고요함이 고스란히 흘러나온다.

부주의 눈도 마찬가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얼음처럼 차.’

스읏!

몽설이 검자루 끝을 살짝 움직였다.

부주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몽설이 유인책을 썼고, 부주는 알아챘다. 만약 부주가 검을 움직일 기미만 보였어도 그 즉시 검을 쳐내려고 했다.

파팟! 파파팟! 파팟!

두 사람은 검권 안에서 소리 없는 싸움을 벌였다.

이제는 검의 대결이 아니다. 심력(心力) 대결이다. 두 사람 중 심력이 약한 쪽이 나가떨어진다.

대체로 이런 심력 대결은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내력이 강한 쪽이 우세하다. 조금 더 우위를 따지면 내력보다는 실전 경험 쪽이 우선한다. 얼마나 많이 싸웠느냐가 미세한 틈을 찾아내는 데는 훨씬 유리하게 작동한다.

그런 면에서는 부주가 월등히 앞선다.

몽설도 상당히 많은 싸움을 했지만, 부주는 거의 싸움 속에서 살아왔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 살아온 사람이다.

씨익!

부주의 입꼬리가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갔다.

웃는 거 같다. 몽설에 대한 도발이다. 검을 쳐내라. 당장 베어줄 테니.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또르르륵!

몽설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불을 타고 흘러내린다.

부주의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부주 역시 인간이다.

시간이 흘렀다. 영원히 멈춰 선 것 같은 침묵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가각!

부주가 먼저 검을 움직였다. 동시에 몽설도 검을 쳐냈다.

팍! 팍!

두 사람은 언제 어떤 검을 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검을 휘저었다. 그리고 서로 비켜섰다.

“크윽!”

몽설이 가슴을 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헉!”

부주도 가슴을 잡고 주저앉았다.

두 사람의 모습은 똑같다. 두 사람 모두 가슴을 쥐고 있으며, 두 사람 검을 땅에 찔러서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한쪽 무릎을 굽혔다.

“큭!”

부주가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리고 풀썩 쓰러졌다.

몽설의 검은 부주의 심장을 관통했다. 하지만 부주의 검은 몽설을 찌르지 못했다. 살을 베는 데 그쳤다. 결정적인 순간에 몽설이 신형을 비틀어서 검초를 피해냈다.

부주의 약점은 역시 신법에 있었다.

불현듯…… 정말 불현듯 부주의 두 발이 보였다. 이상하게도 두 발이 어긋난다고 느껴졌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약간 어색하게 비틀린다는 느낌이다.

부주는 오른발보다 왼발이 조금 짧다.

평범한 사람 같으면 아주 미약하게나마 절룩거렸을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있고, 무심히 보면 정상적인 걸음으로 보이는 아주 미약한 장애다.

이 정도를 장애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니환일검, 몽설의 본능은 부주와 첫 검을 마주쳤을 때부터 이런 점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래서 부주의 약점은 신법에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부주는 수많은 고련을 통해서 두 발을 정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절정의 싸움에 이르렀을 때 두 발은 부주를 배신했다. 부주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쓱!

몽설이 일어섰다.

쒜에에엑! 쒜에엑! 쒜에에엑!

지붕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살수들이 즉시 뛰어내렸다.

“괜찮으세요?”

칠곡주 적화가 다가와서 상처를 물었다.

괜찮을 리가 없다. 몽설의 가슴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다. 등을 짼 상처도 가볍지 않다.

몽설은 혈인이다.

“오곡주는?”

몽설은 자신의 상처보다도 취운의 안부부터 물었다.

“목숨은 건졌어요. 하지만 기해혈(氣海穴)이 파괴되어서 무공을 쓰기에는…….”

“됐어. 목숨을 건졌으면 괜찮아. 그 정도는 견뎌낼 언니잖아? 호호호! 됐네.”

몽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했다.

“원주님. 염려는 나중에 하시고 원주님 상처부터…….”

“아니. 여기 동영 인자들이 숨어 있어. 궁을 넘어선 자들, 살려서 보내면 안 돼.”

몽설이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처리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적화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동영 인자들을 모두 처리하지 않는 한, 몽설은 상처를 치료받지 않을 것이다.

지금 몽설은 한낱 취화원 원주가 아니다. 살수 문파의 우두머리가 아니다. 몽설은 호황위 군주도 아니다. 몽설은 검을 쥐고 있는 검신이다. 혈검을 만들어 낸 혈해검신처럼 절대적인 신위가 줄줄이 풍겨 나온다.

몽설은 혈인이지만 굳건하다.

단 한 번의 싸움이 몽설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쒜에에엑! 쒜에엑!

취화원 살수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녀들은 동영 인자들의 목형술과 토형술을 안다. 아걸을 통해서 금형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들었다.

사방을 이 잡듯이 뒤진다.

까앙! 깡!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은신해 있는 동영 인자들을 찾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휘이잉!

몽설은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청석 바닥에 부주가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져 있다. 이미 절명한 상태다.

죽어있는 부주를 보자 그제야 몽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에서야 부주와 싸웠던 촌각의 싸움이 생각난 것이다. 숨 막혔던 긴장감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지금도 부주의 검이 몸통을 저며오는 느낌이다.

‘이것이 절정 검수들의 싸움. 당신 여태껏 이런 싸움을 해왔던 거야?’

몽설은 비로소 아걸이 어떤 싸움을 해왔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무인의 싸움이라고 다 똑같은 싸움이 아니다. 아걸의 싸움은 그야말로 피가 말리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의 싸움은 아직도 남아있다. 공부가 살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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