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64화 (564/600)

第百三章 작위하사(爵位下賜) (4)

도성 곳곳에 공시가 붙었다.

아걸이 허도기에게 도전한다는 내용인데, 아걸은 일홀문주와 명부판관이라는 두 개의 별호를 기재했다. 도전 내용도 명부판관이 허도기를 징벌하겠다는 내용을 분명히 했다.

성검문에서 공시한 단순 결전장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성검문 공시장은 무인 대 무인의 싸움을 뜻하는 것이고 도성에 붙여진 공시장은 명부판관이 죄인을 징벌하겠다는 내용이니, 완전히 내용이 다르다.

어쨌든 어느 공시장이든 아걸과 허도기의 싸움이 내정되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이거 사달 나겠네. 둘 중 하나는 거꾸러지겠어.”

“아무래도 명부판관이 밀리지?”

“밀리지. 상대는 천하제일검이잖아.”

“아걸도 동영제일검을 꺾었다는데…….”

“에이! 동영제일검하고 천하제일검하고 상대가 되나.”

“상대가 왜 안 돼, 이 사람아! 동영제일검도 허도기에게 겨우 반 초 차이로 패했다는데. 반 초 차이라면 거의 패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래도 안 돼. 언제 허도기가 지는 거 봤어?”

“하기는…… 못 봤지.”

“아! 괜한 목숨 하나 또 떨어지겠네.”

“그러게. 황상이 종부까지 하사했는데…… 좀 편하게 있지. 뭐 벌써 나서고 그래.”

“그러게.”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아걸과 허도기의 생사결전이 공식적으로 잡혔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둘 중 한 명에게는 치명적인 날이 될 것이다.

쾅! 쾅! 쾅!

“야! 문 열어!”

“뉘쇼!”

“나 여기 중부란 놈 할배다!”

아삼이 한달음에 중부로 달려왔다.

아삼은 아걸에게 중부가 주어졌다는 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했다. 아걸은 출세 같은 것을 바라지 않아도 아삼에게는 장원급제한 것만큼이나 큰 기쁨이다.

아삼의 기쁨은 아걸이 중부라는 대저택을 가졌다는 것보다 중부라는 작위를 받아들이는 데 있다.

아걸이 작위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부는 곧 공부와 대치된다. 중부를 받아들이는 순간, 공부와 비교된다. 그러잖아도 천하제일검과 중원제일도를 비교하는 마당이다. 비교 거리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둘 간에 있었던 네 번의 결전도 재조명된다.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아걸이 일홀도를 갖지 않았다면, 칼에 대한 자신이 없다면 중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기쁨을 누린 지 딱 하루 만에 결전 공시가 붙었다.”

싸움이 있을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급하게 날짜가 잡힐 줄은 몰랐다.

공부가 아걸을 먼저 건드렸다.

아걸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몽설이 토족과 동영 인자를 물리쳤기 때문에 즉각적인 반격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아삼은 아침 댓바람에 달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결심이 선 거냐?”

아삼이 대뜸 물었다.

“무슨 결심? 아침부터 난데없이 뭔 소리야? 할배, 이 집 내 건데. 여기 방 하나 줄까?”

아걸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허도기와의 결전이 확정되었지만, 동요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걸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마치 싸움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삼은 비로소 안심했다.

“줘야지, 인마! 나는 여기 머물 자격이 있어! 여기서 가장 좋은 방으로 내놔!”

“다 가져도 돼. 하하하하!”

“그래? 그럼 서류로 작성해. 중부를 아삼에게 준다고 서류 작성하고 도장 꽝 찍어!”

“그래, 그래. 줄게. 할배, 가져. 하하!”

“키키키! 줄 마음도 없으면서 신소리는…….”

아삼은 할배와 함께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너, 허도기는 괜찮냐?”

“괜찮지 뭐.”

“저번에도 칼 맞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잖아.”

“거 정말! 왜 과거는 자꾸 끄집어내시나! 우리 앞만 보고 살자고. 앞만 보고.”

“킥킥! 인마! 사람이 어떻게 앞만 보고 사냐! 뒤도 돌아봐야지. 과거가 엄연히 있는데.”

“아! 정말 도움이 안 되네.”

“정 자신 없으면 내가 한 팔 거들어 주랴? 이래 봬도 전임 적랑대주 아니시냐. 내가.”

“아서. 말어.”

아걸이 고개를 내둘렀다.

“이놈의 자식이 난 영 무시해. 끄응!”

아삼이 토라진 듯 돌아앉았다.

점심 무렵이 되었을 때, 은거 무인들이 찾아왔다.

“소식 한 장 안 주더니 이게 뭐야?”

한항이 섭섭한 듯 물었다.

“그러게요.”

“그러게요? 그게 말이야, 방귀야!”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하하!”

“그런데 오면서 듣자 하니 명부판관 이름으로 혈첩을 보냈다며? 그럼 허도기의 죄상을 밝혀야 하는데, 증거는 수집된 거야? 그날 일을 밝힐 수 있어?”

“아뇨.”

“뭐?”

“그날 일을 어떻게 밝힙니까? 마인도 모두 죽고 없는데. 있던 것도 전부 인멸해 버렸고. 아무것도 없어요.”

아걸이 태연하게 말했다.

은거 무인들을 기가 막혀서 서로를 쳐다봤다.

아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허도기가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밝혀놓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다면…… 싸움은 초반부터 지고 들어간다. 혹여 허도기를 이기게 되더라도 뒷말이 무성할 게다.

아니, 지금 당장 생각할 것은 생사결전이다.

이미 대련은 정해졌다. 싸울 사람은 아걸이다. 허도기의 검은 명실공히 천하제일검,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무적의 검사다. 백만 대군의 무공 사부다.

은거 무인들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것밖에 할 것이 없었다.

결전 소식을 듣고 불안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정작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막막할 줄이야.

* * *

“다루를 공격해야겠어요.”

취운이 말했다.

취운은 상반신을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기해혈을 파괴당한 상태라서 낯빛도 창백했다. 하지만 두 눈에서 토해지는 안광은 여전히 반짝거렸다.

“동영 인자들이 남아있지 않을 텐데, 왜요?”

“잔당이 남았다고 해도 다루에 머무르지는 않겠죠. 하지만 다루를 공격하면…….”

취운이 초상화 한 장을 내놨다.

성검문 적위군장 사구정의 초상화다.

“암암리에 다루를 조사했는데, 사구정이 다루에 들렸다는 정보를 얻었어요. 성검문과 동영 인자 간의 연결 고리를 밝힐 수 있는 사건이거든요. 이 사실을 파고들면 허도기도 마음이 쫓길 겁니다. 상군에게도 도움이 될 거예요.”

“좋긴 한데, 그건 허도기를 너무 자극하는 게 아닐까?”

팔곡주 소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생사결전을 벌이는 마당에 뭘 더 자극해. 서로 끝장을 보자는 거라면 우리도 할 것은 해야지. 원주님, 결단을 내려주세요. 다루가 동영 인자가 연관 있는 이상, 그들을 조사하는 건 매우 당연한 거예요. 하등 꺼릴 이유가 없어요.”

“…….”

몽설은 즉시 답하지 않았다.

몽설이 염려하는 것은 허도기가 이성을 잃고 날뛰는 것이다.

여차하면 지금 당장 황궁으로 침습해 올 수도 있다. 허도기라면 복면을 쓰고 잠입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은 황제가 변고를 당하는 것이고, 적게는 취화원 살수 중 수십 명이 쓰러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허도기는 침입자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허도기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자다.

그를 자극해서 궁지로 몰아넣을까? 아걸이 생사결전을 벌일 때까지 조금 시간을 줄까?

‘이왕이면 정신없이 흔드는 것이 낫겠지?’

“좋아요. 언니, 허도기를 흔들어요.”

몽설이 명령을 내렸다.

“모두 움직이지 마! 도주하는 자나 저항하는 자는 가차 없이 죽인다! 이유 없이 죽더라도 원망하지 마!”

월영이 다루를 들이치며 와락 고함을 질렀다.

순간, 다루는 얼음에 갇혔을 때처럼 얼어붙었다. 일하는 점소이부터 손님들까지.

“모두 포박해! 저항하는 놈은 죽여!”

월영이 연신 일갈을 내질렀다.

우당탕! 탕!

“악! 내 손! 살살…….”

“전 아무 죄도 없는데 왜……?”

다루에서 일하던 점소이들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취화원 살수들을 쳐다봤다.

취화원이 황제의 신변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백살도축이 시작되면서 취화원 살수들은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어떤 때는 고관대작과 함께 움직였다. 그러니 취화원이 곧 호황위라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다.

지금 점소이를 포박하고 있는 사람들은 취화원 살수가 아니라 금황위 위군이다.

“죄 없으면 풀려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아이고! 금옥에 갇히면 반병신 되어서 나오잖습니까?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여기 루주가 동영 부주였어. 부주가 척살 당해서 궁성 밖에 전시되어 있고. 그런데 너희는 버젓이 장사해? 루주가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이거지?”

“아니, 저희는 루주가 동영인가 뭔가 하는 데서 온 줄도 몰랐다니까요. 잠시 어디로 볼일을 보러 가셨겠지 했죠. 저희는 궁성 밖에 있는 시신을 보지도 못했습다요.”

“조사해 보면 알지.”

취화원 살수들은 신속, 과감하게 다루를 들이쳤고, 다루에서 근무하는 모든 종업원을 포박했다.

“이름이 뭐죠?”

“동국훈.”

“어디 살아요?”

“한 번만 봐주쇼. 정말 잠시 짬을 내서 차 한잔하러 왔다니까. 아! 여기가 동영 부주가 운영하던 곳인 줄 어떻게 알았겠소.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지.”

“어디 사는지 말 안 하죠?”

“으…… 서문(西門) 동로(東路).”

한쪽에서는 손님들의 신상을 캐물었다.

동영 인자가 루주가 있던 다루에서 차를 즐기는 사람도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손님 대부분이 그런 사실을 모르고 들어왔지만, 취화원은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손님들의 신상 내력이 낱낱이 밝혀졌다.

타앙! 탕탕! 탕!

한쪽에서는 다루 정문에 명판을 붙였다.

- 이 다루는 황궁을 습격한 동영 인자의 은거지다. 다루에 출입한 모든 사람을 수사한다. 하기에 명시된 사람은 자진 출두하여 수사받기 바란다.

한 마디로 동영 인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공개 수배하는 명판이다.

명판 밑에는 사람들의 초상이 십여 장이나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틀림없이 적위군장 사구정이다. 다른 사람들의 용모는 판별하기 힘든데, 사구정의 용모파기는 어찌나 섬세한지 당장 알아볼 수 있었다.

사구정이 다루에 와서 다루 주인을 데려간 것은 맞다.

물론 취화원은 사구정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의 용모파기가 상세한 것도 아는 얼굴을 그려서다. 멀리서 슬쩍 보기만 해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인데, 용모파기인들 얼마나 정확할까.

그런데도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수배령을 내렸다.

황궁에 와서 조사를 받아라. 동영 인자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봐라.

취화원이 내건 수배령에는 곧 현상금이 붙을 것이다.

며칠간 지켜보고, 자진 출두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현상 수배를 한다.

허도기와 취화원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백척간두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누구든 한 발만 삐끗하면 당장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 * *

“너를?”

“네. 수배장이 붙었습니다.”

“하하하! 이거…… 한 방 먹었군.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선수 쳤어. 빠른데? 하하! 이봐, 자넨 쉬어. 아무래도 쉬라는 이야기 같아. 대신, 몽설은 일기장군이 치도록. 가능하지?”

허도기가 일기장군 하원랑을 쳐다봤다.

“이제는 여자와 검을 섞어야 합니까?”

“하하하! 보통 여자가 아냐. 혈검을 완성했어. 혈해검신이 재현했다고 생각하면 될걸? 쵸 디엔이 무너지고, 부주가 쓰러졌다는 것만 명심해. 하하하!”

허도기가 전혀 염려하지 않는다는 듯 크게 웃었다.

“이봐, 사구정. 자넨 받은 대로 돌려줘야지? 수배가 떨어졌다고 이대로 나가떨어지면 사구정이 아니잖아? 하하하하! 감히 취화원이 먼저 건드려? 하하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