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65화 (565/600)

第百三章 작위하사(爵位下賜) (5)

아걸은 중부에 머물렀다.

그의 방에는 제법 넓은 뒷마당이 붙어 있다. 뒷마당에는 담장이 쳐져 있어서 밖에서는 들어올 수가 없다. 오직 방을 통해서만 나갈 수 있다.

별실과 같은 구조다.

여기에도 황제의 섬세한 마음 씀씀이가 담겨있다.

뒷마당은 무인인 아걸을 위해서 만든 공간이다.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조용히 사색하고 산책할 수 있는 그만의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이다.

뒷마당은 크기가 동서로 서른 걸음, 남북으로 스무 걸음이나 된다.

무공을 수련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대청이 딸린 너른 방이었기에 가능한 구조다.

아걸은 하루 중 대부분을 뒷마당에서 머물렀다.

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든 사람에게 주시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무인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전 중원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지켜보는 자 중에는 허도기도 있다.

천하제일검과 중원제일도의 싸움이 공개적으로 열린다. 이런 진귀한 모습은 평생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중원제일도는 명부판관으로서 허도기를 징벌하겠다고 공언했다.

도대체 허도기가 무슨 죄를 지었나?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명부판관은 항상 결전 날 상대방의 죄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러면 이번에도 그럴 것인가? 지금까지 명부판관은 상대가 꼼짝하지 못할 증거를 들이밀었는데, 이번에도 허도기에게 그런 증거를 들이밀겠다는 건가?

세상이 아걸을 주시하는 이유는 절정 고수 두 사람의 결전 이외에 허도기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결전 날이 더욱 기다려진다.

“세상에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으면서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허도기가 행한 일도 그중에 하나야. 분명히 조카들을 죽이고 성검문을 찬탈했는데, 그 말을 입에 담기가 쉽지 않아. 뭔 증거가 있어야 말이지.”

나통이 말했다.

“정작 문제는 허흔이라는 존재야.”

쌍겸이 말했다.

“허흔? 아걸이 왜?”

“아걸의 존재도 참 말하기가 곤란해. 세상은 전 성검문주의 허도강의 자식을 세 명만 알고 있어. 막내 허흔이란 존재는 모른다는 거지. 허도기의 손에서 빼내기 위해 허흔이란 존재를 감췄지만.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독이야.”

“그게 문제가 되나?”

“되지. 허흔이 허도강의 자식이라는 증거가 있어? 당시 사람 중에 허흔을 아는 사람이 없잖아.”

“자꾸 비관적으로만 말할 게 아니고, 문제가 있으면 답을 찾아줘야지. 뭐 좋은 수가 없어?”

황열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없으니까 이러고 있지. 무슨 수가 있으면 진작 움직였지.”

쌍겸이 혀를 찼다.

“아걸은 어때? 아걸에게도 정말 아무 수가 없는 거야?”

“방법이 없는 것 같아. 본인도 답답한지 뒷마당만 서성이더라고.”

“음! 그럼 취화원은 뭐 건진 게 있을까? 명부판관의 뒤는 항시 취화원이 봐줬잖아?”

황열이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아걸이 명부판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취화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취화원이 척살 대상자와 그들이 지은 죄를 알려왔다. 죄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게끔 증거도 수집해 주었다. 그것을 은거무인들에게 주었다.

취화원이 없었다면 명부판관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취화원이라고 별다를 게 있겠어? 아걸이 그날 일을 파악하겠다고 야천을 뒤집었잖아. 음산사마의 쫓아서 야천의 뿌리까지 다 뒤집어엎었는데 나온 게 뭐가 있어. 오히려 허도기의 꼼수에 말려들어서 죽을 뻔하기나 했지.”

쌍겸이 말했다.

“어른, 적랑대는 뭐 아는 게 있습니까?”

지당검 고사가 아삼에게 물었다.

“이십 년 동안 꾹꾹 숨겨놓은 일이 그렇게 쉽게 드러날까. 허허!”

아삼도 탄식만 토해냈다.

적랑대도 그날 일에 대해서는 손에 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아걸은 도대체 왜 명부판관으로 도전한 것인가? 아걸이 할배나 은거무인들에게까지 속내를 숨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인가 손에 쥔 것이 있으면 벌써 말했을 것이다.

“취화원에서 들은 말이 없어요?”

“그걸 왜 내게 물어? 취화원주가 있는데, 원주한테 물어야지.”

“거참 왜 이러시나. 어르신도 물어봤을 거 아닙니까? 물어보지 않을 리가 없는데.”

고사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없대.”

“없어요?”

“아무것도 없대. 그날 성검문을 공격한 놈들은 싹 다 뒤졌잖아. 흔적을 얼마나 샅샅이 지웠는지…… 그놈이 세상에 나왔다는 흔적조차 없대.”

“음! 이럴 때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라도 살아있었으면 한마디 해줄 수도 있는데.”

비석 장태전이 불쑥 말했다.

“그러게. 그놈들까지 모두 죽어서. 쯧!”

아삼이 혀를 찼다.

서리가헌과 서리형개가 살아있었다면, 그날 허도기에게 사주를 받아 사부를 암살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때의 증거도 없다. 사부는 죽었고 삼인독은 사라졌다.

일홀문주가 허도기의 검에 맞은 것은…… 두 사람 간에 있었던 정상적인 비무일 뿐이다. 독에 중독된 사람을 공격한 것이 아니다. 정식으로 싸워서 이겼다.

이 사실을 뒤집을 만한 증거가 없다.

“답답하네.”

쌍겸이 중얼거렸다.

답답한 일이 또 생겼다.

“나리, 너무 억울해서 찾아왔습니다. 부디 제 말을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

추레한 노인이 중부로 찾아왔다. 그리고 울며불며 사정 이야기를 했다.

흔히 관부에서 억울한 일을 풀지 못했을 때, 왕부로 찾아와서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관부에 말이라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왕부는 한쪽 문을 열어놓고 이들의 소리를 듣는다.

물론 이들의 억울함을 모두 풀어줄 수는 없다. 사실 여부도 확인되지 않는다. 사연을 들어보고 정말로 억울하다 싶으면 관부에 연락을 취해보는 것이 최선이다.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왕부에서 해결할 능력은 거의 없다. 관원 할 일이 따로 있고 왕부 할 일이 따로 있지 않나.

그래도 이들의 소리를 듣는 것은 오직 억울하면 왕부까지 찾아와서 하소연할까 싶어서다. 백성의 숨통을 트여주는 작은 통로를 열어주는 것도 왕족이 할 일인 것이다.

당연히 중부에도 억울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황제가 서리흔을 황족으로 인정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누군가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무슨 일인데…… 자, 자, 진정하시고. 앉아서 차분히 말씀해보세요. 뭐가 그렇게 억울하신 겁니까?”

능공은 이런 일에 익숙하다.

능공은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특별히 진왕부(秦王府)에서 차출된 사람이다. 왕부에는 억울한 사람을 세심하게 보살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능공은 제일 먼저 따뜻한 말로 위로하면서 차를 대접했다. 그리고 노인의 말을 받아적을 준비를 했다. 최대한 성의를 다해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따뜻한 차 한 잔 드시고, 뭐가 그렇게 억울한 건지요? 자 이제 말씀해보세요.”

“하!”

노인은 한숨부터 쉬었다.

“먼저 어디 사시는 뉘신 지? 신원을 정확히 알아야 사실 확인을 할 수 있어서 그럽니다.”

“알죠. 나는 오가촌(五稼村)에 사는 황구(黃九)라고 합니다. 대대로 오가촌에 살았으니까 가셔서 물어보시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전부 알 겁니다.”

“네. 그럼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내 아들놈이 취화원 살수에게 죽었습니다.”

“네?”

능공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취화원 살수 그년들이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던 내 아들놈을 죽였어요. 시시덕거리면서 지나가다가 자기들을 보는 눈이 곱지 않다면서…… 단지 나무를 하다가 지나가는 여자들을 본 것뿐인데…… 자신들을 봤다고…… 아들놈을 죽이고…… 흑흑! 며늘아기도 죽인다는 것이…… 다행히 며늘아기는 살아있지 뭡니까.”

노인이 울면서 말했다.

거짓말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흉기에 맞고도 산 사람이 있다. 흉기에 맞은 상처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당시의 정황도 소상히 말해줄 것이다.

“관부에는 안 가셨어요?”

“갔죠. 갔는데…… 이걸 아무리 호소해도…… 취화원주가 지금 황제 곁에 있는 그 요망한 년 아닙니까. 요망한 년이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데, 누가 억울한 사정을 들어줘야죠.”

“여기가 어딘지 아시죠?”

“그 말 할 줄 알았다! 어디긴 어디야! 그 요망한 년의 남편 놈이 사는 곳이잖아! 내가 뭐 어디 하소연이라도 하려고 온 사람 같아! 세상 사람들아! 내 말 좀 들어보쇼! 여기 이 집 안주인이라는 년이 내 아들놈을 죽였소!”

노인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능공은 얼어붙었다.

‘이게 뭐지?’ 하는 느낌이 와락 밀려 들어왔다.

“자, 잠깐. 말을 아직 끝맺지 못했잖습니까? 아들분을 죽인 여자들이 취화원 살수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뭐죠?”

“그년들이 쇠도리깨를 썼다! 이놈아! 쇠도리깨로 내 아들놈 머리를 으깨버렸다고!”

“영감님, 무인 중에는 쇠도리깨를 쓰는 사람이 많아요. 쇠도리깨를 쓴다고 모두 취화원 살수라고 말하는 것은…….”

“이놈아! 여자가 쇠도리깨를 쓴다고? 그런 흉측한 곳이 취화원 말고 또 어딨어! 개수작 부리지 말아, 이놈아! 세상 사람들아! 이놈들이 내 아들놈을 죽였소!”

노인이 고래고래 악을 썼다.

중부 사람들에게 포박되는 것도, 맞아 죽는 것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악을 쓰는 모습이 정말 억울해 보였다.

“이놈들이 자식놈을 죽여놓고는 개수작질이오! 며늘아기도 사경을 헤매다가 간신히 살아났는데, 시치미를 뚝 뗍니다.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소! 우리 며늘아기가 쇠도리깨에 맞아서 어깨뼈가 아스러지고 다리뼈도 부러지고. 지금 당장 가서 보소! 아직도 멍 자국이 선명하오! 아이고! 아이고!”

능공은 노인을 빤히 쳐다봤다.

노인은 사정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 아니다. 패악질을 부리러 왔다. 오랜 경험상, 노인이 말한 것은 사실이다. 오가촌에 가면 맞아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여인이 있을 것이다.

‘돈을 노린 건 아닌 것 같고…… 뭐지?’

능공은 대처하기가 난감했다.

“사곡이?”

몽설은 눈살을 찌푸렸다.

노인 한 명뿐만이 아니다. 남편이 취화원 살수에게 살해당했다는 여자도 왔다. 그 여자는 남편이 미모의 여인에게 혼이 빨려 죽었다고 말했다.

구곡주의 색혼경을 겨냥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도 찾아왔다. 역시 취화원 살수에게 손자가 죽었다고 한다. 강에서 낚시질하고 있는데, 갑자기 독침이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손자 시신을 매장하지 않았다. 온몸에 방부제를 칠해 놓고 세상에 공개하고 있단다. 목에 틀어박힌 독침이 누구 것인지 알아봐 달라면서.

어떤 무인이 취화원 삼곡의 대롱 독침과 흡사하다고 말했단다.

그들이 변괴를 당한 시기는 각기 다르다. 독침 맞은 청년은 일 년 전에 죽었고, 쇠도리깨에 맞은 자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그들 모두 인근 무인들이 취화원 살수 짓이라고 확인해 주었다는 점이다.

“역습입니다. 허도기가 역습을 걸어왔네요. 사구정을 수배한 데 대한 역습. 이건 명부판관의 방식입니다.”

취운이 차분하게 말했다.

“모함이 확실한데 해결할 방도가 없네요. 혹시 정말 일탈이 있었던 것은 아니죠?”

몽설이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 부분도 염려해서 확인해 봤습니다. 그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그곳에 있지 않았어요. 우리 애들이 한 짓은 아닙니다.”

취운이 확실하게 답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요?”

“최대한 조사해야죠.”

“조사요?”

“저희 취화원이 움직일 수는 없어요. 취화원 일을 취화원이 조사하면 누구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조사는 관부에 맡기고, 저희는 지켜봐야 합니다.”

“음!”

몽설이 침음했다.

문제는 조사를 관부에 맡겼을 때, 취화원 살수들이 연루되었다는 증거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물론 취운이 확언한 것처럼 취화원 살수는 그날, 그 장소에 있지 않았다. 모두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 특히, 호황위를 맡은 이후에는 강호에 나갈 일이 거의 없었다. 백살도축을 막기도 바쁘지 않았나.

하지만 관원 중에는 허도기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번 일은 허도기가 파놓은 함정이다. 관부에 조사를 맡기면 틀림없이 함정에 걸려든다. 취화원은 빠져나가지 못한다.

취운이 말했다.

“조사를 하면 우리가 연루되었다는 증거가 나올 거예요. 그러니 이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해요.”

“증거를 깨라?”

“그것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일단 어떤 증거가 모이는지 보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앞으로 비무까지 팔 일 남았죠? 여드레 동안 우리는 공식적으로 활동하지 못해요. 허도기의 진짜 노림수는 이것인 것 같아요.”

“음!”

몽설은 침음을 흘렸다.

적의 수가 빤히 보이는데, 대응할 방도가 없다. 대응한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시기가 늦었을 것이다. 허도기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고 난 다음이다.

“그럼 우린 당하고만 있어야 해요?”

“그럴 수는 없죠. 원주님.”

취운이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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