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四章 제오결투(第五決鬪) (1)
“사람이 가장 추할 때는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하고 발악할 때야. 죽음이 확실한데도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때가 가장 추하지. 나처럼.”
황제가 웃었다.
황제는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이제는 아예 혈색이라는 것이 없다. 피부가 하얗게 들떠서 누가 봐도 오래 살지 못하겠다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받들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몽설이 급히 말했다.
“아니, 맞아. 내 말이 맞아. 언젠가는 질부도 내 말을 알아들을 텐데…… 가능하면 빨리 알아들었으면 좋겠어. 후후! 그렇다고 질부가 추하다거나 뭘 놓지 못한다는 뜻은 아냐. 그런 뜻으로 알아듣지는 않을 테니까.”
“네. 황상 말씀, 가슴에 새겨놓겠습니다.”
관부에 명령을 내리지. 그건 질부 뜻대로 해. 다 허락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몽설이 머리를 숙였다.
“내가 질부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나.”
“황송합니다.”
“알겠나?”
황제가 뜬금없이 물었다.
“네?”
“내가…… 일초단검 허도기에게 공부를 주었어. 국군을 주었지. 성검문주를 그만큼 신뢰했다는 말이야. 그 신뢰라는 거…… 거두기가 쉽지 않아. 사람들은 말해. 왜 역모가 뚜렷한데도 내치지 않느냐고. 만약 질부에게서 역모의 냄새가 난다면 질부를 쉽게 칠 수 있을까? 질부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겠지.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겠지. 뭔가 염려되는 게 있겠지.”
황제가 자조하듯 말했다.
“아니지. 알아. 나라고 모를까. 알면서도 막연히 지켜보는 거야. 그렇게 돼. 사람을 믿으면.”
“…….”
몽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황제가 하는 말은 세상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왜 황제가 허도기를 내버려 두는지 궁금해한다.
허도기는 대장군과 완전히 척을 졌다. 실제로 대장군과 허도기는 치열하게 싸웠다. 대장군 아니면 허도기, 둘 중 한 명은 쳐내야 할 상황까지 치달았다.
그런데도 황상은 중간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왜 그랬을까? 왜 허도기를 냉정하게 내치지 못하나?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게 당연하다.
도무지 황제의 속내를 모르겠다고 하는데…… 황상은 지금 그 속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
황제가 말했다.
“네.”
몽설이 대답했다.
“그런 대답 말고. 들어준다고 말해야지.”
“들어드리겠습니다.”
“무슨 부탁인지 듣지도 않고?”
“네. 말씀해 주시면 반드시 들어드리겠습니다.”
몽설은 황제가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말했다.
황제가 몽설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옅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질부는 무인이군.”
“네?”
“무인은 관직에 어울리지 않아. 관직에는 있지 마. 너무 순진해.”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아니야. 부탁. 그래, 부탁을 하지. 내가 아걸에게 부탁한 것이 있어. 아걸이 한마디로 거절했는데, 그걸 꼭 좀 들어줬으면 해서 말이야.”
스읏!
황제가 소도를 꺼내 몽설에게 내밀었다.
“아걸에게 이 칼을 줬으면 해.”
“칼을요?”
“그래. 이 칼 주인은 아걸인데, 한사코 받지를 않아. 쿨룩! 쿨룩!”
황제가 심하게 기침했다.
“알겠습니다. 아걸에게 황상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몽설은 황제가 내미는 칼을 받았다. 그 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만약 받지 않는다면 억지로 주지는 마. 그때는 흠……! 녹여버려. 화로에 넣고 활활! 쿨룩! 쿨룩!”
“괜찮으세요?”
“괜찮아. 괜찮아.”
황제가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황제가 칙명을 내렸다.
- 호황위는 활동을 전면 중지한다.
- 취화원이 연루된 사건을 명명백백 조사하라. 가벼이 조사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한 달이라는 기한을 두고 철두철미하게 조사하라. 백성의 억울함이 손톱만큼도 남지 않게 하라.
황제가 어떤 사건에 대해서 세부 지침까지 하달한 예는 거의 없다. 전혀 없지는 않지만, 거의 개략적인 명령만 하달할 뿐, 관원들이 판단해야 할 사항까지 지시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그런 명령을 내렸다.
취화원이 비록 호황위 역할을 하고 있지만, 잘못이 있다면 전혀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 * *
“하하하! 하하하하!”
허도기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정말 이런 면에서는 황제를 따를 수 없다니까. 하하하! 이긴 듯이 보이지? 졌어. 진 거야. 하하하!”
허도기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대청에는 아무도 없다. 황제의 칙명을 보고한 자도 물러가고 없다. 텅 빈 공간에 대고 혼자 중얼거린다.
황제의 칙명을 보면 취화원을 완전히 내친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취화원을 내친 듯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철저하게 감싸고 있다.
먼저, 호황위 활동을 금지한다고 했다. 정상적인 명령이라면 호황위를 해산했어야 한다.
황궁 안에는 여전히 호황위가 존재한다.
그들은 여전히 황제를 호위하고 있다. 누군가가 황궁을 들이치면 제일 먼저 그들이 나선다. 황명의 칙명에 따른 ‘활동 금지’는 다루를 들이치는 것 같은 그런 외부적인 일만 하지 말라는 거다.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황제는 취화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취화원은 무림 집단이다. 취화원이 곧 호황위이지만, 황제는 이 둘을 분리했다. 황궁에 있는 호황위는 통제하지만, 무림 집단인 취화원은 통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즉, 무림에서 취화원이 활동하는 것은 막지 않겠다는 언급이나 다름없다.
황제는 취화원이 마음껏 움직일 수 있도록 자유를 주었다.
세 번째로 황제는 세부 지침을 하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것이 아니다. 한 달이라는 기간을 정해 놨다는 점이다. 이 말을 바꿔서 생각하면 한 달 안에는 보고를 올리지 말라는 뜻이 된다.
이제 칠 일 후면 생사 결전이 끝난다.
사실, 이 칙명은 한 달을 열흘로 바꿔도 무방하다. 여드레 후에 보고하라고 노골적으로 명시해도 된다. 모두 똑같은 말이다. 생사 결전 후에 보고하라는 거다.
생사 결전에서 공부가 지면 사건은 완전히 끝나버린다.
그 이후에는 공부 사람들도 숨을 죽일 것이다. 취화원과 관련된 어떤 죄도 말하지 못한다. 모함이 아니라 취화원이 실질적으로 만행을 저질렀어도 토설하지 못한다.
권력이 몽설에게 있는데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나.
생사 결전에서 아걸이 진다고 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 몽설은 황상에게 취화원의 돌파구까지 직접 말하게 만들었다.
신뢰, 황상의 신뢰를 얻었다.
옛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뢰’라는 권력을 지금은 아걸이 쥐고 있다.
아걸이 죽는다면 그때는 취화원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취화원은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취화원이 언급된 모든 관아를 뒤질 것이다. 관원들이 수집한 정보를 살필 것이며, 내용의 잘잘못을 분석한다.
취화원은 적이라고 간주한 자는 가차 없이 제거할 것이다.
취화원은 살수 집단이다. 그들이 누군지 잊어서는 안 된다.
황제는 공부가 돌아갈 자리도 차단했다.
아걸에게 중부를 준 것이 그것이다. 허도기가 공부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더는 백만 대군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국군도 아니다. 더는 알현도 허용치 않는다.
아걸에게 중부를 준 시점에서 허도기에 대한 신뢰는 모두 거둬갔다고 봐야 한다.
“사구정이 멋있는 수를 썼는데, 몽설의 대처도 빨랐어. 몽설의 생각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몽설 곁에 총명한 여자가 있는 것 같군. 오곡주 취운? 하하하!”
허도기가 공허하게 웃었다.
서둘지 않는다.
이미 아걸의 죽음은 확정되었다. 아걸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날 몽설도 죽는다. 살 수 없다. 하원랑이 검을 뽑기로 작심한 이상 몽설은 죽는다.
아걸과 몽설이 떨어지고 나면 황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허도기가 파악한 황궁 사정은 그렇다.
황제는 고립무원이다. 황후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황제를 배척하고 있다. 황제가 죽기만 기다리고 있다. 황제의 복심이 무엇이든 간에 황제는 이제 줄이 끊어진 연일 뿐이다.
그래, 훨훨 날아가라.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 하하!
스읏!
허도기는 검을 잡았다.
허공을 노려본다. 허공에 점을 찍는다. 공간을 벤다.
공간을 볼 줄 알고, 공간에 점을 찍을 줄 안다. 그 점을 정확하게 갈라낸다.
츄릿! 촤악!
순식간에 검이 뽑혔다가 다시 꽂혔다.
허도기의 발검술은 이미 절정에 이르렀다. 검이 허공을 가르고 다시 검집으로 돌아갔지만, 전혀 잔상을 남기지 않는다. 검이 뽑혔다는 사실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촤아아악!
순간, 허공이 갈라졌다.
물론 착각일 것이다. 환상일까? 허공이 갈라질 리가 있나. 그런데 갈라졌다. 분명히 허공이 갈라지면서 검은 막 같은 것이 확! 나타났다.
“아직은 구성(九成). 그렇게 연습해도 구성인가.”
허도기는 피식 웃었다.
베는 폭, 찌르는 폭이 넓다. 길게 찢어지면 안 된다. 붓으로 점을 찍듯이 콕 찍혀야 한다.
“타격이 정확하지 못했어.”
스읏!
허도기는 다시 검을 잡았다.
그는 일어서지도 않았다. 앉은 자리에서 검을 잡고, 조용히 응시한 후에 바로 뽑아낸다. 그리고 다시 집어넣는다.
허도기의 발검술을 전신의 힘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기를 손끝에 모으고, 손가락에 운집된 힘만으로 검을 움직인다. 전력을 다해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
이전의 발검술보다 한층 더 발전했다.
사실, 허도기는 검공 수련을 게을리했다. 천하제일검이 된 후에는 더는 검을 발전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럴 만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누구도 그의 발검을 막지 못했다.
한데 아걸이 막아냈다. 딱 한 명, 아걸에게만은 발검술이 통하지 않았다.
그날…… 몇 번을 쳐냈지만, 아걸은 피하고 막아냈다.
허도기는 그 점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날부터 다시 검공 수련에 매진했다.
당시, 허도기의 직격운소(直擊雲霄)는 칠 성에 불과했다.
몇 번을 말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칠 성의 직격운소조차도 제대로 펼친 적이 없었다. 고수라는 자들 대부분은 오성이나 육성의 직격운소도 막지 못했다.
이제 직격운소를 구성까지 끌어 올렸다.
이제 남은 날짜는 칠 일, 칠일이면 충분히 십 성까지 끌어 올릴 자신이 있다. 아니, 자신의 능력 이상인 십이 성까지도 끌어올릴 수 있다.
아걸은 죽는다. 죽을 수밖에 없다.
츄릿! 촤아악!
검이 뽑히는 소리인가. 검집으로 돌아가는 소리인가. 두 소리가 하나로 합쳐졌다. 순간,
촤아악!
허공이 쫙 갈라지며 다시 검은 막이 드러났다.
허도기는 분명히 허공을 찍었다. 검첨으로 허공 일부분을 쭉 찢어 놓았다. 하지만 아직은 선이다. 허공이 길게 찢어진다. 허도기가 원하는 것은 점과는 거리가 있다.
“금방 될 것 같은데.”
허도기는 웃었다.
그는 검첨으로 허공을 툭 찍기를 바란다. 그것이 직격운소다.
이 무공은 조명십해가 아니다. 조명십해를 뛰어넘은 자신만의 무공이다. 물론 직격운소 속에는 조명십해의 암리가 모두 담겨 있다. 조명십해의 총화라고 할까?
일사검광, 삼륜축첩공, 은장재계이살, 사령귀변…… 모든 무리가 검첨 하나에 압축되어 있다.
츄릿! 파앗!
허도기는 계속해서 검을 수련했다.
형을 공격할 때처럼. 일홀문주를 두려워했을 때처럼 아걸을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이 직격운소를 최상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츄리릿! 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