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四章 제오결투(第五決鬪) (2)
“허도기가 원주님을 노리는 듯합니다.”
“그렇겠죠. 내가 황제를 보필하고 있으니까. 호황위 군주는 허도기가 꺾어야 할 장애물일 거예요.”
“그런 의미로 노린다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칼을 겨눴다는 거예요. 원주님을 죽일 생각인 것 같아요.”
“나를?”
“원주님을 죽이면 상군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잖아요. 원주님이 당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상군께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할 거예요. 분명히 매우 거칠어지실 것 같은데.”
“허도기가? 에이, 그럴 리 없어요. 허도기는 오빠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적으로서 나를 죽인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오빠 힘을 빼려고 나를 죽인다는 것은…… 호호! 아네요. 이번에는 언니 생각이 너무 과했어요.”
“허도기가 상군을 적으로 간주했어요.”
취운은 물러서지 않았다.
“음!”
몽설은 즉시 낯빛이 변했다.
취운의 판단은 늘 정확했다. 그러니 무시하면 안 된다.
그녀는 단순히 추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말 한마디 하기 위해서 수십 가지 서류를 읽는다. 정보를 파악하고 주변이 돌아가는 형세를 읽는다.
모든 상황이 자기 생각이 모든 사실과 일치하는지 거듭 확인한 끝에 말한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말은 모두 무겁다.
“허도기가 오빠를 적으로……? 호호! 오빠, 많이 컸네. 오빠는 나보고 컸다고 했는데, 정작 성장한 건 오빠였어. 호호호! 허도기가 날 노린다면 상대해줘야죠.”
“상대하실 거예요?”
‘네. 날 죽이면 오빠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지만, 반대로 죽이는 게 실패하면 허도기가 타격을 받을 거예요. 그러면 오빠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죠.”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취운이 웃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몽설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단순히 허도기가 자신을 노린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꺼낸 것은 아닐 것이다. 허도기가 노리는 것을 알았다면 더 깊은 것도 파악했을 게 분명하다.
취운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쪽에서는 일기장군 하원랑이 나선 듯해요.”
“하원랑이?”
“네. 일기장군 하원랑은 근위대장과 비슷한 자예요. 근위대장의 야수검은 널리 알려진 거고…… 일기장군도 단기(單騎), 말 한 필 타고 전장을 누볐다고 해요. 일기장군이라는 말은 단기장군이라는 뜻이에요. 일인(一人)이 일개 부대인 셈이죠.”
일기장군에 대한 내력도 야수검만큼이나 널리 알려졌다.
장군들이 전장에서 쌓은 무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전투, 접전을 거친 끝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고착된 것이다.
일기장군 하원랑의 병기는 장창(長槍)이다.
창날이 유독 길어서 길이만 이척(二尺)이다. 일 척만 더 길면 장검 길이와 같다. 창대는 육척(六尺)에 이르렀다. 창대와 창날의 길이가 무려 팔 척이다.
창대와 창날은 가늘다.
후려치는 용도가 아니라 찌르는데 특화된 장창이다.
하원랑은 창날에 수실을 달지 않았다. 창날이나 창대에도 문양을 새겨놓지 않았다. 다만 옻칠을 초벌만 칠해서 창대가 투박하게 검었다.
전장에서는 하원랑의 창을 흑섬(黑閃)이라고 불렀다.
허공에서 검은 번개가 번쩍 터지면 어김없이 비명과 함께 붉은 혈화가 피어났다.
하원랑은 군문을 나서면서 장창을 던져버렸다.
그의 옆구리에 걸린 병기는 장검이다. 장창과 마찬가지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청강장검이다. 대장간에서 급하게 만든 듯 검집도 조악하다.
하원랑이 왜 장창을 던져버리고 장검을 택했을까? 상당한 의문이다. 하지만 그가 조명십해를 충분히 수련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무공은 역시 조명십해죠?”
“예. 제가 수집한 정보가 맞는다면, 하원랑의 조명십해는 소축십검을 능가해요.”
“그 정도나?”
“지금의 허도기와는 비교할 수 없어요. 하지만 옛날 소축에 근신할 무렵의 허도기 정도는 된다고 판단됩니다.”
“천하제일검이라는 소리네요?”
“아마도요.”
“그런데도 언니는 날 말리지 않네요? 하원랑과 싸우겠다고 말했는데도.”
“원주님의 혈검을 누가 판단할 수 있겠어요.”
“앗! 그렇게 낯 뜨거운 말을 얼굴을 보면서…….”
“호호호! 사양하실 필요 없어요. 원주님의 혈검은 동영 부주와 쵸 디엔을 꺾었잖아요. 하원랑과 가늠했을 때, 충분히 상대된다고 생각합니다.”
“호호호! 언니, 저와 있을 때는 솔직히 말해도 돼요.”
“솔직히 그래요. 그런 판단이에요.”
취운이 한 마디, 한 마디 확실하게 말했다.
“언니가 판단한 승산은 어때요?”
“반반입니다.”
“점수를 박하게 주네. 좀 후하게 줘도 되는데…….”
“후하게 드린 겁니다. 솔직히 하원랑은 일홀문주님, 상군이 상대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거든요.”
“호호호!”
몽설은 빙긋 웃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원랑의 적수가 될 것이다. 혹은 안 될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혈검은 최상의 검공이라는 것이다.
이는 믿음이요, 확신이다.
혈검은 중원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무공에도 뒤지지 않는다. 일홀도에도 뒤지지 않는다. 서리가헌이나 서리형개와 맞싸울 수 있다. 아걸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에게 꺾인다면 그것은 자신이 약한 것이 혈검이 약해서는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혈검은 능히 조명십해도 능가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그녀는 아걸에게 힘을 보태줘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취화원은 허도기의 만행을 밝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밝혀낸 것이 전혀 없다. 혈무대 혈전에 내놓을 증거가 전혀 없다.
그것이 미안하다.
‘오빠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하원랑이라도 죽여서 허도기에게 타격을 줘야 해.’
몽설은 오직 한 생각만 했다.
“하원랑이 언제쯤 공격해 올까요?”
“황궁에서 머무시면 비무첩을 보내올 거에요. 대략 사오일 정도 걸릴 거고…… 황궁을 나가시면 바로 싸우게 될 거예요. 하원랑을 봤다는 사람이…….”
취운이 말끝을 흐렸다.
“그럼 나가야겠네요.”
“원주님, 하원랑은 절대 얕보지 마세요.”
취운이 몽설의 두 손을 잡으며 간곡히 말했다.
취운은 몽설이 취화원 원주가 된 후, 항시 수하의 예를 잃지 않았다. 사석에서는 몽설을 막내로 대했지만, 그럴 때도 예의는 잃지 않았다.
지금처럼 몽설의 두 손을 맞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언니 조심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몽설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몽설은 황궁을 벗어났다.
취운의 말을 빌리면 황궁을 벗어나는 즉시 하원랑이 달려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든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싸울 수도 있다.
파아아앗!
몽설은 마음을 니환일검에 모았다.
특별하게 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음을 풀어놓지도 않는다.
그녀는 중부를 향해서 걸었다. 황궁을 벗어나면 갈 곳이란 중부밖에 없다.
중부로 가더라도 아걸은 만나지 않을 생각이다. 큰 싸움을 앞에 두고 아걸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것은 그녀 자신이 용납하지 못한다.
중부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하니, 그들을 만날 생각이다.
저벅! 저벅!
땅을 딛는 발걸음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녀는 일부러 관도를 걸었다. 마차를 탈 수도 있지만, 모습을 드러내려고 일부러 걷는 쪽을 택했다. 그때,
저벅! 저벅!
몽설은 등 뒤에서 울리는 무거운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관도에는 많은 사람이 오간다. 하지만 특정한 발걸음 소리 하나가 뚜렷하게 들린다.
‘하원랑? 이렇게 빨리?’
몽설은 천천히 뒤돌아봤다.
정말이다! 하원랑, 그가 걸어오고 있다.
황궁을 벗어나는 즉시 하원랑이 싸움을 걸어올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
‘싸움은 예상했지만, 이건 너무 빠른데? 하지만 사양하지는 않아. 하지만 길가에서 싸우면…… 장소는 옮겨야겠어.’
스읏!
몽설이 검을 잡았다.
그런데 하원랑이 손을 들어서 몽설을 제지했다.
“요즘 취화원 평판이 좋지 않던데. 길 가는 사람한테 마구 검을 쓰면 안 되지.”
하원랑이 유들유들 웃으면서 말했다.
“서로 알 건 알잖아? 우리도 듣는 귀가 있어.”
“아! 원주 목숨 취하는 거? 그게 뭐 대수라고…… 혈검이 상당히 궁금하긴 한데, 지금은 아니고. 며칠 더 목숨을 붙여줄 테니까 세상을 실컷 즐기라고.”
하원랑은 검을 뽑을 생각이 없는 듯 팔짱을 꼈다.
“내 목숨이 당신 손아귀에 있나? 꼭 그런 투로 말하네?”
“원주 목숨이 내 손아귀에 있는 것은 맞지. 아니면 그렇게 만들면 되고. 그래서 원주를 좀 관찰할까 해. 그러다가 기회다 싶으면 쳐야지. 원래 암습은 취화원 특기지만, 뭐 다른 사람이라고 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암습을 하겠다는 거야?”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하하하! 어쨌든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싸울 생각이 없어.”
하원랑이 웃었다.
“음!”
몽설은 침음했다. 상대가 싸울 생각이 없다는데 억지로 검을 뽑게 할 수는 없다.
“뭐 하자는 거야?”
“오늘은 맛보기. 그냥 인사. 원주, 인제 당신…… 내 눈에 들어왔어. 떨어져 나가지 못해. 하하하! 언제든…… 내가 죽이고 싶으면 죽는 거라고. 하하하!”
하원랑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하원랑이 물러섰다. 그가 검을 뽑지 않으니 싸울 방법이 없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먼저 싸우자고 달려들 수도 없다. 하원랑 말마따나 취화원 평판도 좋지 않은데.
하원랑은 뭐 하자는 것일까? 왜 자신을 보고도 검을 뽑지 않았지? 혈검이 두려워서? 그래서 암습을 하려고 빈틈을 찾는 것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
몽설은 하원랑이 떠나고도 한참 후에야 그의 의도를 알았다.
하원랑은 언제든지 취화원 원주를 벨 수 있다. 그 사실을 알려주고자 한다. 하원랑이 인사를 해왔으니 이 순간부터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 사실도 알려주고자 한다.
누구에게? 아걸! 아걸이다!
하원랑이 노리는 사람은 아걸이다. 당신 여자가 언제든지 베일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하원랑과의 싸움은 이른 시일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결전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이런 압박이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아걸과 허도기가 싸우기 직전, 자신과 하원랑의 싸움이 벌어진다.
그렇다. 이건 분명히 아걸에 대한 압박이다. 음지에서 허도기를 도우려는 수작이다.
‘정말 끝까지!’
무인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냥 싸우면 안 돼?
몽설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황제가 한 말도 알아들었다.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하고 발버둥 칠 때 추해진다는.
황제는 허도기의 이런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무인은 검으로 싸워야 한다. 싸움에 여타의 술수가 포함되면 곤란하다. 추해진다. 상대의 기운을 꺾기 위해서 혹은 약간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이 방법 저 방법을 쓰는 것이 추하다.
황제의 말은 몽설에게 던진 충고이기도 하다.
싸움에 여타의 술수를 섞지 마라. 깨끗하게 싸워라. 무인이라면 그래야 한다. 혈검이라면 그래야 한다.
황제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허도기와 아걸…… 황제는 무인 대 무인의 싸움을 원했다. 깨끗한 싸움, 여타의 술수가 전혀 가미되지 않은…… 서로가 최상의 상태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싸움.
허도기가 그런 싸움을 했기 때문에 그를 신뢰했던 것이다. 허도기가 그런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때, 추해진 모습을 보았을 때, 비로소 신뢰를 거뒀다.
허도기가 세외팔국을 움직인 시점에서 아마도 신뢰를 거둬들인 것 같다.
더는 무인의 싸움이 아니다.
만약에 허도기가 무공을 앞세워서 금군을 쳐왔다면 그때는 오히려 웃으면서 맞서 싸웠을 수도 있다. 허도기 대 대장군, 허도기 대 근위대장…… 어느 쪽 싸움도 지원하지 않고 지켜보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자신의 명운이 걸린 일임에도.
황제는 무공을 펼칠지 모르지만, 그 누구보다도 무인이다.
무인의 마음!
무인의 마음에서 황제는 어떤 무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아걸은 끝까지 무인의 길을 지킨다. 절대 추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황제는 자신보다 아걸을 더 믿는다. 더 믿기에 그를 망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어쩌면 호황위를 아걸에게 권유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긴 것도 아걸은 아걸의 길을 가라는 배려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걸이 호황위를 받아들일 리도 없지만. 아걸은 그렇다. 공부 같으면 호황위를 거절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걸은 거절한다. 일홀도 정진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몽설은 마음이 탁 놓였다.
이런 싸움이었나?
‘호호! 그래. 마음껏 압박해 봐. 다 받아줄게.’
몽설은 웃었다.
인제 마음이 편해졌다.
하원랑이 언제 공격해 올지 짐작한다. 하원랑은 압박을 풀지 않기 위해서 종종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시비를 걸어온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싸우지는 않는다. 빈틈이 워낙 많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싸울 수도 있고.
싸움을 걸어오면 그때 싸우면 된다.
몽설은 긴장감을 놓아버렸다. 니환일검에 집중되었던 마음까지 탁 풀어버렸다. 그리고 편한 마음으로 중부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