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四章 제오결투(第五決鬪) (3)
“진충도!”
“이 칼을 아네? 그럴 줄 알았어. 이 칼이 뭐야?”
아걸은 몽설이 내민 진충도를 받아서 묵묵히 서랍 속에 넣었다.
진충도는 황제를 위한 칼이 아니다. 태자의 칼도 아닌…… 향후 황제를 위한 칼이다. 향후 황제가 태자가 아니기에 매우 위험한 칼일 수도 있다.
황제는 왜 이 칼을 아걸에게 맡기나.
아걸이 아니면 헤쳐나가지 못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일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 칼이 뭔지 말 안 해줘?”
“별거 아냐.”
“아닌데. 뭔가 있는데.”
“없어.”
“황제가 이 칼을 주면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
아걸이 몽설을 쳐다봤다.
“부탁. 부탁한다고 했어.”
“그래?”
아걸이 웃으며 말했다.
몽설은 웃지 않았다. 정색하지도 않았다. 매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제가 이걸 오빠에게 꼭 전해달라면서 부탁하더라고. 황제가 내게. 그만큼 소중한 칼이라는 거고…… 오빠는 말 못 하네? 그러면 위험하다는 거고. 내가 오빠에게 황제가 부탁을 할 만큼 위험한 칼을 건넨 거야?”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일단 눈앞에 있는 싸움부터 해결하고.”
“응. 그래. 내가 곁을 지키고 싶은데, 옆에 있어도 되지?”
“황궁에서 지낼 줄 알았는데.”
“그러려고 했는데 허도기가 취화원을 딱 묶어버렸잖아. 황제의 칙명이 풀리기 전에는 꼼짝 못 해. 호황위만 딱 꼬집어서 활동 정지시켰잖아.”
“오곡주가 바쁘겠네.”
“괜찮아. 언니는 이런 일 잘하니까 믿을 수 있어.”
“마음이 편해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었어?”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마음이 편한가? 오빠도 믿고, 언니도 믿고, 다 믿어. 믿으니까 편해.”
아걸은 손을 들어서 몽설에 뺨을 어루만졌다.
사랑스러운 여자다. 하지만 손에 닿는 이 볼을 감촉, 살의 느낌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허도기 손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 느낌을 칠 일만 느끼다가 사라질 수는 없다.
“나는 여기서 수련할 거야.”
아걸이 뒷마당을 가리켰다.
“응. 그래. 그럼 나는 오빠 방을 쓰면 되겠다. 난 여기서 수련할게.”
“방에서?”
“니환궁을 파보려고. 좌공 수련이 많아. 밖에 나가면 신경 쓰이는 사람도 있고.”
몽설은 하원랑 일을 숨기지 않았다.
아걸은 이미 하원랑 일을 알고 있다. 취화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걸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일은 티끌만큼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걸 곁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은거 무인들은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깊은 내막을 줄줄이 꿰어온다. 더욱이 적랑대까지 있으니 숨길 수가 없다.
“쫓아다니는 사람?”
아걸이 장난투로 말했다.
“응. 나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 있거든.”
“누가 감히 취화원 원주를.”
“내 말이. 살수 문파 문주를 뭐로 보고. 알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잔데, 그걸 모르고 있어. 중원제일도 정도는 되어야 감당할 수 있는데. 그치?”
“걱정 안 해도 되지?”
“그럼.”
몽설은 환하게 웃었다.
척척척! 척척척척척!
중부 앞에 낯선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중부로 향하는 모든 길에서 모습을 보였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 단지 길목에 서 있을 뿐이다.
“뭐요? 당신들!”
소백이 나서서 말했다.
“사람이오. 백성.”
한눈에 봐도 무인인 듯한 자가 거침없이 말했다.
“내 말은 여기서 뭐하냐는 거지? 중부에 볼일이라도 있는 사람들 같잖아!”
“사실 볼일이야 있지. 여기서 취화원 요부를 감시하는 중이거든.”
“뭐요!”
“지금도 취화원 살수에게 살해당했다는 원고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잖아. 그런데 중부 서리흔이 취화원주에 남편인가 연인인가 그렇다며? 그러니 민초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볼 수밖에. 어떻게 이번 일을 묵과해.”
“그러면 지금 우리 중부를 감시한다는 말이오!”
“그렇지. 민초의 한 사람으로서.”
무인은 민초라는 말을 강조했다.
백성이 백성의 눈으로 중부를 지켜본다는 거다.
“가서 중부에게 전해. 취화원이 정말 억울한 사람을 죽였다면 우리 백성이 취화원 원주를 베어야겠다고. 그러니 중부가 먼저 원주를 내치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이 사람이 어디서 협박을!”
“후후후!”
무인은 웃었다.
소백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무인은 살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어떤 사단도 일으키지 않았다. 묵묵히 등을 벽돌담에 기대고 서서 오가는 사람을 지켜볼 뿐이다.
“어휴! 기분 나빠서.”
“쳐다보는 눈길이 섬뜩해. 어디서 튀어나온 귀신들이야?”
“중부에 와서 시비 걸 만한 자들이 성검문밖에 더 있어. 그런데 정말 취화원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하루가 멀다고 억울하다는 사람들이 나타나잖아.”
“모르지.”
사람들은 낯선 무인들을 꺼렸다.
“죽일 만한 놈들을 죽였다고? 세상에 죽일 만한 놈들이 어디 있어? 전부 증거 조작해서 만들어 낸…… 그런 식으로 증거를 조작하면 살인자가 안 될 사람이 어디 있어!”
“후후! 살수 집단이잖아. 뭘 기대해.”
“저것들이 정의감 때문에 사람을 죽였어? 돈 받고 죽인 거잖아. 돈 준다니까 사람 죽이고 누명 씌운 거잖아. 사람 죽이면서 돈 버는 썩을 년들!”
“더 신경질 나는 건 사람들이 저런 것들을 좋아한다는 거야. 마치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처럼.”
“영웅은 개뿔! 그래서? 성검문주가 무슨 죄를 지었는데 혈첩을 날리고 지랄이야? 꼭 뭐 큰 죄라도 진 것 같잖아?”
“후후! 또 뭐 개쓰레기 같은 증거를 제시하고 사람 몇 명 동원하겠지. 아! 성검문주를 모함하려면 천 명 정도로는 안 되겠다. 기천 명은 움직여야겠는데?”
“저것들은 그러고도 남아.”
무인들이 쑤군거렸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은 오가는 사람들의 귀에 쏙쏙 박혔다.
맞다. 취화원은 엄연히 살수 문파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 청부 집단이다.
“사람 죽이는 것들이 모함질도 잘해.”
“일홀문주라는 작자도 그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천에서 뒹굴었다며? 백성들 골 빼먹는 야천을 움켜쥐려다가 공부님께 얻어맞고 도주했다던데.”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데 이번에 혈첩을 내민 걸 보면 믿는 구석이 생긴 모양이지? 또 어떤 암수를 쓰려고……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봐. 어떤 수작을 부리는지.”
사람들은 무인들이 중부를 지켜보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모함질이나 암수를 쓰지 못하게 하려는 거다. 그 외에 다른 의미는 없다. 그리고 무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아걸과 취화원은 예전에도 이런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명부판관이 한 일들…… 그것은 과연 진실일까?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만 입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 천 명, 이천 명이 입을 맞추면 성인도 악마로 만들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성검문은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다. 묵묵히 무림을 수호해왔다. 세상에 알리지 않고 암중에서 조용히 처단한 마인이 수두룩하다.
취화원과 아걸은 뭘 했나?
이번 혈첩은 명부판관 이름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명부판관 뒤에는 취화원이 있다.
살수문파 취화원!
살수문파가 중원제일도의 이름을 빌려서 중원의 기둥인 성검문에 혈첩을 던졌다.
취화원의 사주를 받은 명부판관이 관직과 명예를 훌훌 벗어던지고 다시 무림으로 돌아온 공부를 겨냥한다. 왜? 공부가 무림을 지키면 취화원이 제멋대로 살인 행각을 벌일 수 없어서다.
소문이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흘러 다니는 소문을 믿기 시작했다.
황제가 호황위의 활동을 전면 금지한 것은 황제가 취화원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세상인심이 중부보다는 성검문 쪽으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하아!”
혈겸이 답답한 듯 한숨을 토해냈다.
“이래서는…… 그냥 허도기가 던진 비무첩을 받은 것만 못하잖아. 괜히 혈첩을 던졌나? 아무래도 명부판관 이름으로 혈첩을 전한 게 무리수 같아.”
“아걸은 뭐래? 아직도?”
장태전이 답답한 표정으로 나통을 쳐다봤다.
나통은 말없이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다른 날처럼 오늘도 뒷마당에서 나오지 않은 듯하다.
“이거…… 천하제일인의 싸움이 이렇게 지저분한가? 왠지 난 되게 지저분해진다는 느낌이 들어.”
한항이 말했다.
“나도. 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천하제일인의 싸움은 무공 싸움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명분 싸움이 되는 것 같잖아. 물론 시작은 아걸이 먼저 했지만.”
아걸이 혈첩을 던졌고, 허도기가 소문을 조작하고 있다.
아걸이 넌 나쁜 놈이야 하고 말했더니, 허도기가 네가 정말 나쁜 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허도기가 말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허도기는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아걸은 침묵하고 있어서다.
“공부, 화끈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밀리면 끝장이라는 거지. 더는 물러설 수 없을 만큼 절박하다는 뜻도 되고. 킥킥!”
아삼이 툭 끼어들었다.
“허도기가 절박해요?”
황열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
“나도 모르겠는데, 그게 취화원 판단이란다. 그러니 그런가 보다 하고 믿을 수밖에. 킥킥킥!”
“음! 이건 뭔지…… 어찌 벌써 싸움이 시작된 것 같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 한참 진행 중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나만 이런 느낌인가?”
황열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원래 몽설은 황위병을 부릴 생각이었다. 중부는 황위병을 사병으로 둘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을 중부 주변에 내세워서 무인들이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한데, 무인들이 흘리는 소문을 듣고는 곧 포기했다.
지금 황위병을 움직이면 소문은 사실이 되어 버린다. 무인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 군사를 움직인 격이 된다.
무인들이 없는 말을 지어내고 있지만, 제지할 방도가 없다. 아니, 저들이 변고를 당하지 않도록 오히려 지켜줘야 할 판이다. 저들 중 누군가가 고질병이 도져서 쓰러져도 중부가 암살한 게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아걸은 침묵했다. 주위가 소란스럽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반철도만 만지작거렸다.
그가 있는 뒷마당은 저절로 금역(禁域)이 되었다.
누구도 뒷마당으로 들어서지 않는다. 정상적인 출입구는 아걸의 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방 안에 있는 몽설을 거치지 않고는 아걸을 만나지 못한다.
아삼은 첫날 이후, 아걸을 만나러 오지 않았다. 몽설 때문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아걸과 거리를 두었다. 아걸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고자 한다.
은거 무인들도 아걸 곁에서 물러났다.
그들은 모두 백전노장이다. 싸움이라면 질릴 정도로 경험한 사람들이다. 지금, 이 순간, 아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점을 안다.
아걸은 허도기와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다.
아걸의 싸움은 벌써 시작되었다. 천하제일검의 조명십해에 맞춰서 반철도가 번뜩인다.
반드시 반철도가 움직일 필요는 없다. 조용히 칼을 가는 모습에서도 싸움을 느낄 수 있다. 싸움은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아걸이 풍기는 도기를 느낀다.
그래서 가까이 가지 않는다. 아걸의 집중에 티끌만큼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한다.
아걸 곁에는 몽설이 있지만, 몽설 역시 아걸이 찾지 않는 한 그에게 다가서지 않는다. 아걸이나 몽설이나 집중에 들어가면 한두 시진은 훌쩍 지나간다. 바로 옆에 사람이 있어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깊은 집중이다.
하인이 식사를 가져온다.
“밥 먹어.”
비로소 입이 열리는 순간이다.
밥을 먹을 때도 아걸이 스스로 입을 열지 않는 한, 몽설은 침묵한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냐, 준비는 잘 돼 가고 있는 것이냐…… 일절 묻지 않는다.
아걸은 온종일 뒷마당만 서성인다. 가끔 반철도를 휘둘러 보기는 하는데, 무공 수련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심심풀이로 칼을 휘두르는 것 같다.
아걸은 수련이 아니라 사색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당히 궁금하기는 하다.
중부에 적막이 찾아왔다.
중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는 상관없이 반철도의 기운이 최고로 올라가도록 침묵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