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70화 (570/600)

第百四章 제오결투(第五決鬪) (5)

사해룡(史海龍) 장군은 오만 병력을 만안진(萬安鎭)에 주둔시켰다.

오대 산맥을 벗어나는 길목이다. 북동쪽에서 협곡을 타고 질주해 오면, 만안진에 이른다. 만안진을 통과하지 않고 함곡관으로 가는 길은 없다.

여진은 자신들의 본거지에서 곧바로 남하했어야 한다. 침략이 목적이라면.

여진은 일단 서쪽으로 향해서 거란과 합류했다.

단독으로 전쟁을 벌일 의도는 전혀 없다. 사실, 여진에게는 그럴 만한 군사력도 없다.

여진은 거란과 함께 이동하다가 오대산을 기점으로 해서 갈라졌다.

거란은 계속 서진하여 관중으로 들어섰고, 여진은 오대산 어딘가에 숨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때가 되면 협곡을 질주해서 관중 북동쪽을 칠 것이 뻔하다.

저들은 조위 대장군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정하고 시작한 것은 관중 싸움이다.

거란, 여진, 서역의 파사국(波斯國)과 누란(樓蘭)의 후예들이 만든 후누란(後樓蘭)까지…… 무려 세외사국이 관중에 집결해서 한판 대결을 노리고 있다.

그중 사해룡이 여진을 맡았다.

만안진만 틀어막으면 여진은 움직이지 못한다.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괴멸될 것이다.

만안진은 기마가 질주하기에 썩 좋은 곳이 아니다. 멀리서 보면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것처럼 보이지만, 근접해서 살펴보면 땅이 층층이 겹쳐져 있다.

기마나 마차가 질주하기에는 곤란하다.

“용연이…….”

사해룡 장군도 용연을 봤다.

조위 대장군이 용연을 보고 어떤 결단을 내렸을지는 익히 짐작된다. 대장군은 황상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는다. 대장군이 오늘 갈까, 내일 갈까 하고 망설일 때 황상이 ‘지금 가’하고 말해준다. 두 사람은 그런 관계다.

황상은 시기를 조율하는 데는 귀신이다.

황상이 황제의 핏줄을 이어받지 않고 범인으로 태어났다면 조위 대장군과 버금가는 지장(智將)이나 아니면 공명(孔明)처럼 뛰어난 책사가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장이 물었다.

사해룡 장군의 군막에는 부장 다섯 명이 모여있다. 사 장군에게 절대 충성을 맹세한 부장들이다. 또한, 허도기에게 조명십해를 전수받은 제자들이다.

“음!”

사해룡은 눈을 감았다.

결단의 순간이 왔다.

현재 사해룡 휘하에는 여덟 명의 장군이 있다.

그중 다섯 명이 군막에 모여있고, 나머지 세 명은 전진기지에 분산되어 있다. 군막에 있는 다섯 명은 특별히 조명십해를 전수받았고, 다른 세 명은 특별한 인연이 없다.

만약 용연을 쫓지 않는다면 세 명부터 베어야 한다.

군막에서 논의하는 것은 여진을 어떻게 공격할까 하는 전략이 아니다. 장군 세 명을 베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부 결단부터 내려야 한다.

“용연. 음!”

장군은 침음했다.

사실, 결단의 순간이 곧 올 것이라는 점은 일찍이 예감했다. 조위 장군이 다른 부대에 배치되어 있던 부장들을 자신의 휘하로 몰아줄 때부터.

이들 다섯 명 중 세 명은 대장군 휘하였다.

이번에 오만 명을 편성할 때, 대장군은 이들 세 명을 붙여주었다.

자신이 일부러 콕콕 점찍어서 부대를 만들어도 이토록 완벽한 부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장군이 아무것도 모르고 부대 배치를 한 것으로 생각하면 순진한 거다. 대장군이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장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된다.

알면서도 한데 몰아주었다.

물론 허도기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위 장군의 부대 속에도 숨죽이고 있는 자들이 많다. 다만 큰 덩어리를 떼어냈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만안진에 있는 오만 병력은 사해룡의 직속 부대다. 또 허도기의 명을 받는 부대나 다름없다.

이런 마당에 용연이 떠올랐다.

황제도 이제는 그만 눈치 보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선택하라고 한다.

본연의 임무를 행하자면 여진을 쳐야 한다.

여진을 끌어들인 허도기에 생각을 따르겠다면, 여기서 장군 세 명을 죽이고 부대를 회군시킨다. 명령과는 다르게 함곡관을 공격한다. 조위 장군은 틀림없이 관중으로 공격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바로 목덜미를 물어뜯을 수 있다.

그다음부터는 퇴로가 완전히 끊긴다. 물러설 곳이 없다. 함곡관을 넘어서 일거에 도성까지 질주해야 한다. 움직이는 순간부터 물릴 수 없는 모반이 된다.

번쩍!

사해룡 장군이 감았던 눈을 떴다.

“여진을 중원에 들일 수는 없다!”

용연을 따를 것인지 모반을 할 것인지 결정되는 순간이다.

사해룡 장군이 부장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세외팔국을 움직이지만 않았어도 나는 공부의 뜻에 따랐다. 우리가 힘을 모아서, 힘으로 나라를 새로이 세우는 것은 찬성한다. 그것은 우리 내부 문제, 우리끼리의 싸움이다. 하지만 세외팔국이 가담하면 그때부터는 안팎의 전쟁이 된다. 이민족에게 중원을 짓밟힐 수는 없다. 이번 건은…… 공부께서 수를 잘못 두셨다고 본다.”

철그렁!

사해룡 장군이 검을 풀어서 탁자 위에 던졌다.

“너희의 뜻은 나와 다를 수 있다. 말리지 않겠다. 뜻이 다르다면 거침없이 너희의 길을 가라.”

“으음!”

“장군!”

부장들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이제는 결단의 순간이다.

대장군은 함곡관을 떠날 게 틀림없으니 목덜미를 물어뜯으면 여기서 끝장낼 수 있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럼 대장군을 끝장낼 것인가.

“참 힘들게 하네요.”

부장이 중얼거렸다.

“황제께서도 많이 봐주신 거지. 그동안 너무 티를 냈으니까. 이제 용연이 떴으니, 더는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고…… 박쥐 노릇도 그만해야지.”

부장들이 말을 주고받았다.

사해룡 장군은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들어다. 한 마디도 거들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수하들이 반대 의견을 내면 죽는다.

그 결정 또한 따른다.

군대는 계급 사회다. 상관의 명령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모반’이라는 말이 끼어든 순간, 상하 관계는 소멸한다. 모두 동등한 입장이 된다. 그래서 장군은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모반을 같이 생각한 만큼 생사의 결정도 본인들에게 맡긴다.

“결정을 내자. 난 아직도 공부의 뜻에 동조한다. 현 조정은 썩었어. 한번은 갈아엎어야 해. 하지만 장군 말씀처럼 이민족이 힘을 빌려서 갈아엎는 데는 반대다.”

“일단 이놈들을 돌려보내고…….”

“일단이라는 말을 필요 없어. 이놈들은 공부가 불러들였어. 우리가 여진을 공격하면 공부의 뜻에 반기를 든 거고…… 우리 손으로 공부의 손발을 잘라버린 거라고. 그 후에 또 뭘 논해? 집어치워. 목 내밀고 칼 떨어지기만 바라. 승리하든 패배하든 우리는 저승사자가 데려갈 거니까.”

“그건 나중에. 이후의 일은 살아남은 다음에 생각하자. 저놈들도 단단히 준비했으니까.”

부장들이 의견을 교환했다.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렸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진(陳) 장군.”

사해룡이 진위위(陳爲爲) 부장을 불렀다.

“네.”

진 부장이 무심히 대답했다.

“내가…… 장군에게 모범을 잘못 보인 것 같군. 지금까지 내 밑에서 이것밖에 배우지 못한 건가?”

“앗! 아! 죄송합니다. 방금 실언, 취소합니다.”

진 장군이 급히 말했다.

‘살아남은 다음에 생각하자’라는 말이 문제였다. 그런 말은 사해룡 휘하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어떤 수를 쓰든 상대는 죽고 아군은 무사히 생환시킨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진 부장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여진은 십만 병력이다. 그것도 중무장한 기마병이다. 철갑으로 둘러싼 철갑병도 일만이나 된다고 한다. 반면에 아군은 병력도 절반밖에 안 되는 데다가 경보병 위주다.

싸움이 붙으면 파죽지세로 무너진다.

“못난 사람 같으니. 공부를 따르겠다는 말은 받아들여도 죽겠다는 말은…… 쯧!”

“죄송합니다.”

“이곳은 저들의 땅이 아니다. 우리 땅이야. 부대가 기마병 위주로 짜였다는 것은 산악전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인데…… 여긴 아주 긴 협곡을 끼고 있는 대산이다. 저놈들을 일거에 무너트릴 수 있는 곳에서 무슨 말을 한 게야?”

진위위 부장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오대 산맥은 매우 크고 길다. 따라서 긴 협곡이 발달하여 있다. 협곡 사이로 큰 도읍이 네 개나 발달하여 있다. 황하(黃河)의 이대 지류라고 불리는 분하(汾河)도 흐른다.

오대산을 바탕으로 싸운다면 오히려 저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얼떨결에 말이 잘못 나와서…….”

진위위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하하!”

“하하하하!”

부장들이 웃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일거에 해소되었다.

관동(關東) 부대가 일제히 사라졌다. 오만이나 되는 사람이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다.

“하!”

소벽(召辟)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해룡 장군이 군대를 돌린다면 막을 길이 없다.

함곡관에 남아있는 병력으로 버틸 수는 있다. 하지만 사해룡 장군은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는다. 허점을 찾아서 파고든다. 사해룡 장군은 기습전의 명수다.

결국, 함곡관은 무너질 것이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장군이 여진과 싸우기로 했다.

부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은 유격전을 펼치겠다는 의미다. 함곡관을 치려면 기동전이 되어야 한다. 부대의 움직임이 완전히 다르다.

“이것도 황제의 복. 어쩌면 황제께서는 이런 점까지 계산에 넣으셨는지도. 하기는…… 용연이 떴으니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겠지.”

소벽은 급히 휴대용 지필묵을 꺼내서 서신을 적었다. 그리고 조롱을 열어 전서구를 꺼냈다.

“가라! 여기는 일단락된 것 같다.”

소벽이 전보영을 향해 전서구를 날려 보냈다.

“세 곳 모두 외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전보영주 허굉우가 보고했다.

“내가 뭐랬어. 그 사람들 충신들이야. 쿨룩! 쿨룩!”

황제가 거칠게 기침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바람이 찹니다.”

“아니, 바람이 차서 그런 게 아니라 이제 죽을 때가 다 돼서 그래. 뱃속까지 고름이 차고 있어.”

황제가 웃었다.

“감당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거둬주십시오.”

허굉우가 허리를 숙였다.

“그 사람들…… 공부가 무공 사부이기 때문에 그 친분으로 공부 편에 선 사람들이 아니야. 조정에 불만이 있었고, 해결할 방책으로 갈아엎는 것을 선택한 거지. 백살도축…… 하아! 얼마나 죽이고 싶었을까. 그 사람들을.”

황제가 한숨 쉬었다.

백살도축에 거명된 자는 두 부류로 갈라진다.

이 사람이 있으면 나라를 정복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다. 목숨을 잃더라도 황제를 보필하는 사람이다.

또 한쪽은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면서 복록만 챙겨 먹는 사람이 있다. 능력 없는 사람, 간신배, 권력에 힘입어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

백살도축에 거명된 사람을 자세히 훑어보면 이 두 부류 중 한 명이다. 완벽하게 뛰어나거나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큼 무능한 사람이다.

황제가 말하는 쪽은 후자다.

황제는 그런 사람들조차도 내치지 않았다. 조정의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되면 절차탁마(切磋琢磨)가 이루어진다. 일부러 내치지 않아도 저절로 물갈이된다.

황제는 이러한 자정 기능을 철저히 믿었다.

인위적으로 썩은 고름을 짜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썩은 고름을 잘라내다 보면 멀쩡한 살점까지 잘라내는 수도 있다. 썩은 고름과 멀쩡한 살점이 애매모호할 때도 있다.

물이 흐르듯이 유연하게.

황제는 그런 통치를 했다.

그래서 무능하다 여겨지는 사람도 내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뛰어난 자가 그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 어쩌면 무능했던 자가 다시 유능한 관료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변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장군들 눈에는 권력을 빙자해 행패나 부리고 자기 뱃속이나 채우는 관료들이 좋게 보일 리 없다. 그런 관료가 득실거리는 데도 방치하고 있는 황제가 몹시 무능해 보였을 것이다.

이런 나라 같으면 뒤집어엎는 게 좋지 않을까?

거기에 허도기라는 야망 덩어리가 던져졌다.

저들이 강력한 자석에 휩쓸린 쇳가루처럼 끌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점까지는 황제도 예측하지 못했다. 공부가, 성검문주가, 천하제일검이 백만 대군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기쁨에 눈을 감아버렸다.

군대에 파벌이 생길 줄은, 대장군과 허도기라는 두 파로 갈려서 실제로 목숨을 노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 제 몫을 하고 있어. 아주 바람직해. 솔직히 이 정도면 내가 없어도 아무 이상이 없잖아. 안 그런가?”

“황송합니다!”

“모두 제 몫을 하고 있는데 황제라는 사람만 제 몫을 하지 못하고 골골대고 있잖아. 후후! 빨리 갈아치워야지. 빨리 갈아치워야 해. 썩은 술은 치우고 새 술을 담가야지. 후후!”

황제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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