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71화 (571/600)

第百五章 니거사파(你去死吧) (1)

[네가 죽어라]

전쟁이 벌어졌다.

단순한 전투가 아니다. 전력을 기울인 공방, 외적을 물리치느냐 침공당하느냐 하는 전쟁이다.

양쪽의 병력을 헤아리면 무려 이백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다. 아무리 못 잡아도 십만 명에서 이십만 명은 죽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아름다운 전쟁은 없다.

전쟁을 통해서 영웅이 탄생할 수도 있지만, 저변에는 수십만 명의 죽음이 깔린다.

중부는 조용했다.

아걸과 몽설은 변방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알지 못했다. 중부에는 변방에서 터지는 함성이나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창에 꿰뚫려 죽어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몽설은 폭넓은 정보망을 가지고 있다.

취화원이 취집하는 정보는 양질 모두 무림 제일이다. 양에서는 개방을 능가하고, 질에서는 전보영을 앞선다.

몽설이 호황위 군주가 된 것이 취화원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방법들을 알 수 있었고, 당연히 그에 맞춰서 취화원의 정보망도 개선되었다.

취화원은 용연이 오르는 시점에서 전쟁을 감지했다. 하지만 원주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몽설에게 정보를 전해줄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적랑대는 취화원 못지않게 활달하다. 야천 사건을 계기로 더 똘똘 뭉쳤고, 강한 모습으로 재건되고 있다.

그들 역시 변방에서 발발한 전쟁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중부에는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전임 대주 아삼이 중부에 있는데도 나라가 뒤집힐 정도로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매일 정기적으로 정세 변화를 보고해야 하는 곳이 있다.

취화원과 적랑대는 ‘판단’이라는 요소가 개입되지만, 전보영은 판단이 배제된다. 무조건 수집한 정보는 호황위 군주에게 보고하게끔 명시되어 있다.

전보영의 보고는 의무 사항이다.

하지만 전보영도 몽설에게는 변방 전쟁을 말하지 않았다.

호황위의 활동을 중지한다는 칙명이 내려진 후에도 전보영의 보고는 꾸준하게 이루어졌다. 몽설이 중부에 머물자, 사람을 중부로 보내서 보고했다.

활동만 중지했을 뿐, 몽설은 여전히 호황위 군주다.

정보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세 곳에서 일제히 한 부분에 대한 보고만 삭제했다.

- 생사 결전이 끝날 때까지 전쟁을 말하지 말라.

세 곳에 황제의 칙명이 전달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칙명이 아니라 오히려 공감하는, 누군가가 항거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자가 절대명령을 내려주었으면 하는 명령이 칙명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

세 곳은 당장 모든 보고에서 전쟁 발발 사실을 삭제했다.

아걸은 오로지 허도기와의 싸움에만 집중해야 한다. 몽설도 하원랑이라는 강적을 만났다.

이 두 사람은 변방 싸움을 몰라야 한다.

사실,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서 특별하게 동요할 것은 없다. 아걸은 관원이 아니다. 몽설은 활동을 중단했다. 군에서 벌어지는 일에 상관할 수 없다.

그래도 영향은 미친다.

군에서 벌어지는 일은 바로 허도기와 직결되고, 틀림없이 싸움에 영향을 준다.

황제는 두 사람의 싸움은 순수한 도검의 싸움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아걸이나 몽설도 이런 싸움을 원한다. 책략이 스며 있지 않은 무인의 싸움을 원한다.

그래서 외부적인 요인을 일절 차단한 것이다.

“준비는?”

“준비할 게 뭐 있나? 일홀도는 잠잘 때도 싸우는 칼인데.”

“호호! 왜 그런 고단한 칼을 잡았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몽매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양심 없는 거 아닌가? 내게 이 칼을 쥐여준 게 누군데.”

“설마 내가 쥐어졌다는 거야?”

“아니. 몽매 아버님.”

“어머! 그건 너무했다. 왜 그 일을 나한테 뒤집어씌워? 아! 그 말을 들으니 부모님 보고 싶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왜 이런 날 그런 말을 해서…….”

몽설이 울적한 듯 고개를 숙였다.

“앗! 미안! 난 그런 뜻이 아니라…….”

“호호호! 농담. 오빠는 꼭 본전도 못 건질 말을 하더라.”

몽설이 언제 울적했냐는 듯이 고개를 쳐들며 웃었다.

“아…… 난 진짜 마음 상한 줄 알고 식겁했잖아.”

“나 정말 마음 상했는데. 그냥 괜찮은 척하고 있는 건데. 가슴 한쪽이 아리고 있는데.”

아걸은 멍하니 몽설을 쳐다봤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호호호!”

몽설이 밝게 웃었다.

아걸은 그제야 몽설이 장난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심히 꺼낸 말에 하필 사부가 거론되었다. 그 말에 손톱만큼이라도 마음이 상했다면 속상했을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 이제는 정말 말조심해야지.”

아걸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가. 모두 기다리고 있어.”

몽설이 아걸의 옷매무시를 챙겨주며 말했다.

옷깃도 여며주고 요대도 단단히 잡아주었다. 허리에 반철도가 잘 꽂혔는지 확인까지 했다.

대청에는 아삼과 은거무인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가벼운 잔치를 벌이는 듯 그들 앞에는 작은 다과상과 술이 놓여 있는데, 아삼은 아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술병을 들어서 벌컥벌컥 들이켜는 중이었다.

아걸이 의자에 앉았다.

“조용해졌네.”

아삼이 아걸을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조용해졌다.’

은거 무인들도 아걸에게서 같은 모습을 봤다. 조용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아걸의 모습은 매우 조용했다.

성격이 침착한 사람, 차분한 사람, 어떤 일에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보인다.

아걸은 말리지 못할 정도로 활발하다. 싸움할 때는 전신에 힘이 넘쳐흐른다. 쏟아져 나오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해서 마구 발버둥 치는 것으로 보인다.

한데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무척 냉정해서 절정검 종류에 비정한 무공을 익히지 않았나 의심되기도 한다.

뒷마당을 서성거린 닷새 동안 상당히 변했다.

어디가 변했다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나타난 것 같다.

놀랍지는 않다. 아걸이 이런 변모를 보인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술 한 잔 주세요.”

아걸이 옆에 앉은 황열에게 말했다.

모두 다과상과 술병, 술잔이 놓여 있지만, 아걸 앞에는 다기(茶器)만 놓여 있었다.

너는 술을 마시지 말고 차를 마시라는 것인데…… 차를 거부하고 술을 달란다.

“싸우러 가는 사람이 술 마셔도 돼?”

황열이 쭈뼛거리면서 말했다.

“한잔 술은 몸을 덥혀 주잖아요. 괜찮습니다.”

“하아, 이거야 원.”

황열은 마지못해서 자신의 술병을 들어 술잔에 잔을 채웠다. 그리고 아걸에게 건넸다.

모두 놀란 표정으로 아걸을 쳐다보았다.

중부에서 성검문이 있는 초도성까지는 이틀 거리다. 그래서 이틀을 앞두고 출발한다.

한데 초도성으로 가는 이틀 동안이 고비다. 이 안에 마유 마인들의 집중 공격이 예상된다. 물론 아걸이 거뜬히 물리칠 것으로 생각하지만 진력 소모가 극심할 것이다. 또 기습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보장도 못 한다.

그래서 은거 무인들이 동행하려고 했는데, 아걸이 한사코 거부했다. 그리고 마련한 것이 이 자리다.

아걸은 싸움 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싸움에 전력을 집중한다고 하지 않았나. 싸움에 장애가 될 만한 일은 티끌만큼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자청해서 술잔을 받았다. 이게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모르겠다.

아걸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건배할까요?”

“건배까지? 오늘 뭐 하자는 거야? 오늘만 살고 안 살 거야!”

아삼이 눈을 흘겼다.

“할배는 벌써 한 병이나 다 비웠으면서, 술 한 잔 먹는 게 그렇게 아까워? 술 안 마셔요? 이거 공짜 술 아닌데? 여기 앉는 순간 독박 쓴 건데, 그건 몰랐죠? 하하하!”

아걸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독박? 우리에게 뭐 시킬 일이라도 있는 거야?”

한항이 정색하고 물었다.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황제의 안위다. 허도기가 가만히 있을까? 아걸과 몽설이 손을 놓고 있는데. 몽설도 염려된다. 하원랑이 노리고 있지 않은가. 또 뭐가 있더라? 무공을 쓸 곳이 워낙 많아서…….

“목숨이 걸린 일인데 그냥 말할 수 있나요. 한 잔 드셔야지.”

아걸은 쳐든 잔을 내리지 않았다.

아삼과 은거 무인들은 긴장했다. 아걸의 표정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이건 진심이다. 대청에 모인 사람들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부탁을 하려는 거다.

여러분이 아걸이 조용히 말했다.

“여러분도 장담하지 못할 고수를 맡기려고 합니다. 진정으로 목숨을 거셔야 합니다.”

“하원랑? 하하하! 원주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하원랑 정도는 눈감고도 처리할걸?”

지당검 고사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아걸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했다. 그는 고사의 말을 귓가로 흘려들으며 말했다.

“저와 허도기의 싸움보다도 여러분의 싸움이 이번 싸움의 승패를 좌우할 겁니다. 실질적으로 판도를 뒤흔드는 싸움인데…… 어때요? 이래도 듣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술 한 잔 안 할 수 없지.”

쌍겸이 술병을 들어서 잔에 콸콸콸콸 술을 따랐다.

모두 잔을 채우고 높이 들어 올렸다.

“건배!”

아걸이 선창했다.

중부는 아걸을 위해서 마차를 준비했다. 초도성까지는 길이 머니 편히 마차를 타고 가라는 거다.

아걸과 공부의 싸움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만큼 마차를 타고 당당히 관도로 가는 것이 암습을 피하는 방책도 된다. 싸우러 가는 모습을 환히 드러낸 사람에게 암습을 가할 수는 없지 않나.

“안 탈 거지?”

몽설이 말했다.

아걸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 자.”

아걸이 등에 짊어지는 행랑을 내밀었다.

아걸은 웃으면서 행랑을 받아서 등에 짊어졌다.

땅을 느끼고 하늘을 보면서 걷는 게 좋다. 칼이 들어오면 맞서 싸운다. 일홀도는 그런 칼이다. 언제 어디서 날아오는 공격도 사양하지 않는다.

“다녀올게.”

“다녀와.”

두 사람은 길 떠나기 전에 마지막 작별을 나누려고 했다.

그때, 아걸의 고개가 돌려졌다. 그리고 골목길 모퉁이에 서 있는 한 사람을 찾아냈다.

하원랑, 그가 중부를 지켜보고 있다. 두 사람을 쳐다본다.

“음!”

아걸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원랑이 중부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몽설도 알고 아걸도 알았다.

하원랑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 아걸이 중부를 떠나기만 하면 곧바로 도전장을 보내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힌 셈이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까지 냈다.

사람 죽이며 돈 버는 것들은 죽여 없애야 한다고.

중부 안에 틀어박힌 요부를 죽이려고 하는데, 요부가 도망가서는 나오지 않는다고.

하원랑은 손에 붉은 서신을 들고 아걸을 향해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아걸이 길을 떠나는 즉시 중부에 전할 혈첩이다.

“날 쫓아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 내가 처리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

몽설이 태연히 말했다.

“괜찮지?”

“그럼. 괜찮지.”

몽설이 환하게 웃었다.

“내가 상대할까?”

“왜 남의 상대까지 가르치려고 그래! 어서 가기나 해.”

몽설이 아걸의 등을 떠밀었다.

아걸이 몽설을 쳐다봤다. 몽설도 아걸을 쳐다봤다.

“우리는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헤어질 수 있을까?”

“호호호! 그걸 말이라고 해? 아마 그런 일은 영원히 없을 것 같은데? 늘 싸우러 갈 거잖아. 그때마다 이런 마음일 거 같은데? 상대가 누구든.”

“그럴까? 내가 강해져도?”

“치잇! 상대는 뭐 약하고? 약한 사람은 오빠에게 도전장을 내지 못해. 모두 한가락은 하니까 검을 드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마셔.”

아걸이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이제는 서로 보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 그런 마음이 든다.

몽설이 하원랑에게 질 수도 있다. 아걸이 허도기에게 패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는 것이다.

“가야겠다. 다녀올게.”

아걸이 힘 있게 말했다.

몽설은 옅은 웃음으로 아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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