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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573화 (573/600)

第百五章 니거사파(你去死吧) (3)

니환궁의 성정(性情)은 차디찬 지성(知性)이다.

니환궁에 집중하면 고요함, 냉철함, 평정심이 유지된다. 주변에서 격전이 벌어져도 동요하지 않는다. 마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움직임을 보는 느낌이 든다.

니환일검을 주시하면 태풍이 휘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이 유지된다.

스스스슷!

살기가 휘몰아친다.

몽설은 하원랑이 펼쳐내는 은장재계이살의 요체를 명확하게 지켜보았다.

하원랑은 극도로 예민하다.

그는 모든 부분에서 예민하다. 자신이 들고 있는 검에만 예민한 것이 아니다. 공기의 흐름도 예민하게 지켜본다. 검이 만들어내는 기류를 감지한다. 더 깊이…… 더 예민하게…… 더 안으로 들어와서 몽설이 진기를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살펴본다.

하원랑은 그 움직임을 쫓는다.

그는 자신의 감각으로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부분으로 살기를 밀어낸다.

몽설의 약점!

몽설은 느끼지 못하는 부분까지 하원랑은 찾아낸다. 하원랑이 머리를 내리칠 때, 몽설은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머리 부분에 허점이 생겼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전까지는 머리에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원랑은 그만큼 예리하게 살핀다.

작은 개울에도 숨길 수 있는 살기란 반대로 말하면 물 밖에 있는 모든 기류를 감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원랑은 은장재계이살의 요체를 깨달았다. 적어도 은장재계이살에서만큼은 허도기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허도기와 필적할 만한 고수라는 거다.

몽설은 하원랑의 무공 경지를 단번에 파악해냈다.

그녀의 의식은 니환일검을 지켜보고 있지만, 니환일검은 하원랑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냉철하게.

스스슷!

하원랑이 밀어 올 때, 몽설은 그만큼 물러섰다.

충돌할 이유가 없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실전을 그려봤지만, 어느 것 하나 좋은 게 없었다. 그렇다면 실전으로 부딪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유 없는 격전은 피한다.

몽설이 뒷걸음질을 친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다.

하원랑은 자신이 이겼다고 선포했다.

몽설에게 주도권을 줬는데 공격해 오지 않았으니 자신이 이겼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하원랑 자신도 공격하지 못했다. 지금 몽설의 몸에 피가 흐르고 있나? 칼이 스쳐 갔나? 옷자락이 찢어졌나? 몽설이 하원랑을 공격하지 못했지만, 하원랑도 몽설을 공격하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니환일검은 이런 식으로 판단한다.

파팡!

하원랑의 기세가 격변했다.

몽설의 움직임을 지켜보기만 했던 검이 돌연 활기찬 움직임을 보였다. 검에 머물던 살기가 물결처럼 일어나며 주위를 흔들었다. 매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파파팡! 파앙! 팡팡팡!

사방에서 살기가 회오리쳤다.

몽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진기가 일으키는 통압(痛壓)이다. 하원랑이 살기로 전신을 더듬고 있다.

개울에 잠겨 있던 살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와락 달려든다.

“음!”

몽설은 침음했다.

대다수의 무인은 이런 살기를 감당하지 못한다. 쵸 디엔, 동영 부주와 싸우기 전이였다면 몽설도 기가 질려서 주춤거렸을 것이다. 누구든 몸을 부르르 떨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몽설은 편안함을 유지했다.

살기는 살기일 뿐이다. 검이 아니다. 호랑이가 어금니를 드러내며 눈앞에서 으르렁거려도 정작 어금니를 틀어박기 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당황하거나 조급할 필요는 없다.

촤아악!

니환일검이 곧게 서있다. 단지 고요히 서 있기만 한 것도 아니다. 파라랑! 검신을 떨어댄다. 하원랑의 살기가 진검으로 변해서 덮쳐 둘 때를 대비한다.

고요함 속에서 태풍을 준비한다.

‘절정의 검!’

몽설은 표정 없는 얼굴로 하원랑을 쳐다봤다.

하원랑의 검법은 최상이다.

검에 흐르는 미세한 감각은 누구도 따를 수 없다. 검법을 구사하는 능력만 논한다면 몽설조차도 능가한다.

그녀는 하원랑의 검공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게 파악했다. 분명히 그녀보다 한 수 위다. 검 대 검으로 부딪치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절정검이다. 검에 깃든 감각만으로 파악한 것이지만, 아마도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면 하원랑은 그녀의 상태를 알고 있을까? 그녀의 내면에 니환일검이 곧추 서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으며 언제든 반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틀림없이 알고 있다.

하원랑처럼 감각이 예민한 고수가 몽설의 상태를 모른다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무지막지한 살기를 쏘아내면서도 정작 검은 쳐내지 않는 것이다.

추춧! 추춧! 추추춧!

공격으로 전환한 후, 하원랑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몽설은 하원랑이 다가오는 속도만큼 빠르게 물러섰다. 마치 겁에 질려서 마구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보였다.

“묘하군. 이것이 혈검인가?”

하원랑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원랑은 예기(銳氣)를 쉴 새 없이 던졌다. 즉시 몸을 치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태풍처럼 몰아치는 움직임에도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평온함을 봤다.

몽설의 검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심하게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죽은 듯이 조용하다. 아니! 죽었다. 몽설의 검은 죽은 검이다.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죽은 검인지, 잠자고 있는 검인지, 발톱을 안으로 숨긴 호랑이인지 건드려보면 알지.”

파앗!

하원랑이 땅을 박차고 솟구쳤다.

조명십해, 선풍만검(旋風滿劍)!

검이 다가오기도 전에 폭풍부터 일어난다. 검초의 변화에 돌풍이 일어났다.

그 순간 몽설의 검도 비스듬히 쳐올려졌다.

혈검 제오식 혈검무회!

혈검이 선풍을 가를 듯이 치솟았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검초가 전개되었다.

따앙! 땅! 땅!

검과 검이 부딪혔다.

몽설의 검은 죽은 것도, 잠자던 것도, 웅크린 것도 아니었다. 냉철한 검이었다.

따앙! 땅! 따따땅!

검과 검이 연속해서 수십 차례나 부딪쳤다.

하원랑의 검은 비조복개에서 십칠연검으로, 그리고 삼정동타로 이어졌다. 반면에 몽설은 오직 한 초식, 혈검무회만 펼쳤다. 너무 단순해서…… 오직 쳐올리는 검초밖에 펼칠 줄 모르는 것처럼 비쳤다.

“후후후! 혈검. 부동검(不動劍).”

하원랑이 중얼거렸다.

하원랑은 혈검의 정체를 알아냈다.

검법에서 몽설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분명히 한 수 아래다. 그런데도 그녀는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혈검이 극고의 정신검(精神劍)이기 때문이다.

하원랑이 은장재계이살을 깨달았다면, 몽설은 마음속에서 은장재계이살을 펼치고 있다. 내면이 너무 평온하다. 아니, 극도로 예민해서 평온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무수히 흔들리고 있지만, 너무 빨리 흔들려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더 흔들어 줘야지. 부동을 깨트리기 전에는 승부를 볼 수 없겠어.”

스릉! 철컥!

하원랑이 검을 휘릭 돌려서 검집에 꽂았다. 검을 집어넣은 것이 아니다. 검의 손잡이를 검집에 넣었다. 그리고 검이 움직이지 못하게 연결고리를 채웠다.

철컥!

검이 검집과 결합하였다.

그러자 삼척장검이 한순간에 육척장검으로 쭉 길어졌다. 검집 전체가 손잡이가 되었다.

‘검으로 해서 안 되면 장창을 쓴다더니 이거였군.’

몽설은 검으로 만든 장창을 맞이했다.

휘리릭! 휘릭! 휘리리릭!

하원랑이 거침없이 검을 날려왔다. 장검으로 조명천검을 펼쳤다. 비연폭강, 우중광류가 번갯불처럼 떨어졌다.

몽설은 쉴 새 없이 물러섰다.

그녀는 검을 쳐내기도 하고 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초 안으로 파고들지는 못했다.

쒜에엑! 쒜엑!

전력을 다한 검날은 검초로 보이지 않았다. 매우 뛰어난 창술로 보였다.

사방이 검영으로 가득 메워졌다. 하지만 몽설은 날아오는 검을 똑바로 똑똑히 봤다. 하원랑의 검초는 무척 빠르지만, 몽설의 눈에는 명확하게 보였다.

니환일검이 만들어낸 조화다.

평온한 마음은 머리를 차갑게 식혀준다. 목숨을 노리고 달려드는 검날을 냉엄하게 지켜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몽설도 장검을 뚫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검초를 피하거나 막는 것이 한계였다. 삼척과 육 척의 거리 차이는 무공을 한 단계 높여주는 효과를 일으킨다. 삼척은 뚫고 들어갈 수 있지만 육 척은 뚫지 못한다.

육 척 장검을 크게 휘두르면 완전한 패도가 된다. 검으로 막으면 검이 부서질 것 같다. 또한, 육척장검을 창처럼 찌르면 화살 수십 대와 마주 선 느낌이 든다.

도저히 뚫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차앙! 창창창!

검과 검이 연이어 부딪쳤다.

하원랑과 몽설은 누구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혈검이 중원 오대 검공 중 하나라더니, 그 말이 맞군. 혈검의 강점은 부동심이야. 검초가 매우 현묘해서 현혹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 그 자리를 흔들지 못하면 내가 지는 것인가.”

하원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난관을 만났지만, 크게 곤란하지는 않다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장창을 꺼내야겠어. 공부에게 너무 맥없이 무너져서 버린 창인데…… 혈검을 흔들기에는 더없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드네. 하하! 잘 받아봐.”

순간, 그의 장검이 변했다. 검에 깃든 힘이 달라졌다.

쒜엑! 꽈앙! 꽝꽝꽝!

장검이 마치 장창처럼 휘둘러졌다.

장검이 몸 주위로 빙글빙글 휘돈다. 그러다가 번갯불처럼 내리쳐진다. 한데, 그 힘이 가히 천 근이다. 벼랑에서 굴러떨어지는 거대한 바위를 맞이하는 느낌이다.

“크윽!”

몽설이 신음을 흘리며 비틀비틀 물러섰다.

단지 두어 차례 검을 부딪쳤을 뿐인데…… 검 든 손이 떨어져 나갈 듯이 아프다. 실제로 몽설의 장검에는 이가 푹푹 파였다. 검이 부서져서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천력(天力)! 이 무지막지한 힘은 도대체…….’

하원랑의 검력은 무척 거세다. 더욱이 숨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빠르게 몰아친다. 검이 다가오기도 전에 검에서 일어난 살기가 몸통을 저며온다.

‘엄청난 진기! 아!’

하원랑은 신형을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렸다. 아니, 그는 돌지 않았다. 두 손으로 장검을 휘돌리는데, 그 속도가 섬전처럼 빠르다. 너무 빨라서 신형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일기장군이다. 하원랑은 이런 창으로 적진을 휩쓸었을 것이다.

휘이익! 쒜엑! 휘익!

몽설은 검을 맞받지 못하고 계속 물러섰다. 물러서고, 물러서다가 어쩔 수 없이 검으로 받아야 할 상황이 되면, 할 수 없다는 듯 마지 못해서 부딪쳤다.

까앙!

어김없이 검이 부서지면서 검편이 떨어져 나갔다.

몽설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눈부실 정도로 쏟아지는 공격이지만, 몽설은 한순간도 니환일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동영 부주와의 싸움이 몽설을 크게 발전시켰다. 단순히 무공을 한 단계 높게 끌어올린 정도가 아니라 땅에서 하늘로 단숨에 잡아당긴 정도로 발전시켰다.

천양지차(天壤之差), 그 싸움을 기준으로 몽설의 혈검은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였다.

몽설은 크게 개안했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혈검의 진의를 깨달았다.

혈검의 진의는 니환궁에 있다. 검식에 있지 않다. 신법이나 검법을 무시해도 좋다. 상권과 중권을 던져버려도 무방하다. 황제가 내준 하권, 심공만 있으면 된다.

니한궁이 잔잔하게 끌어주는 평정심을 지키는 한, 어떤 공격도 지켜볼 수 있다. 막을 수 없는 공격이면 피한다. 피할 수 없으면 막는다. 모든 판단이 즉시 이루어진다.

하원랑의 공격이 폭풍처럼 일어나고 있지만, 몽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쒜에에엑!

장검이 날아온다.

‘혈검 제칠식 무극표묘(無極飄渺).’

몽설은 혈검 제칠식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사용하지 못했다.

무극표묘는 무극(無極)을 앞세우고 가물가물하게 쳐내야 한다. 검신일체를 기본으로 하면서,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쳐내야 한다.

일격필살의 검초다. 일격이 성공하지 못하면 역습을 피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순간 몽설은 무극표묘를 생각해냈다. 어쩌면…… 지금 같아서는 무극표묘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무극표묘가 아니라면 하원랑의 창술을 막아낼 수 없을 것 같다.

파앗!

몽설의 신형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녀는 무극표묘를 생각했을 뿐인데, 니환일검이 벌써 검초를 펼치기 시작했다. 두 무릎이 굽혀졌다가 용수철처럼 퉁겨졌다. 그녀의 몸과 검이 하나가 되어서 돌풍처럼 거세게 회전하는 톱니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쫘아아악!

채찍으로 가죽을 후려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여기저기 수없이 이가 빠지고 날이 깨진 검이 톱니를 쪼개며 들어갔다.

몽설은 하원랑의 얼굴을 봤다.

크게 부릅뜬 눈을 봤다.

쫘아아아악!

가느다란 채찍이 하원랑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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