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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574화 (574/600)

第百五章 니거사파(你去死吧) (4)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다.

매우 재수가 없다는 뜻인데…… 아마도 허도기에게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아닌가 싶다.

“하원랑이!”

사령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보고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네. 하원랑이 몽설에게 패했습니다.”

“즉사?”

“네.”

“음!”

사령은 두 다리에 힘이 풀려서 다시 자리에 풀썩 앉았다.

믿을 수 없는 보고가 연이어 전해지고 있다.

제일 먼저 도착한 보고는 남만족이 무너졌다는 보고다. 국경을 넘지 않은 남만족은 무사했지만 한 걸음이라도 국경을 넘어선 자들은 두 번 다시 남만 땅을 밟지 못했다. 단 한 명도 살아 돌아가지 못했다. 강을 건너 중원으로 들어온 남만족 이만칠천육백 명이 모조리 도살되었다.

십만 명에 이르는 남만족이 강 건너에서 동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데도 그들은 강을 건너지 못했다.

강을 건너는 순간, 그들은 역습에 걸린다. 행동이 불편한 물속에서 집중 공격당한다. 그러니 두 눈에 피눈물이 쏟아져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사령은 남만족이 무너졌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건 보고해야 해! 즉시!’

그런데 곧바로 이어서 두 번째 보고가 날아들었다.

“함곡관에서 전서가 날아왔습니다.”

‘북쪽?’

사령은 ‘북쪽 전서’라는 소리에 당장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남만족이 몰살됐다는 보고를 들은 후라서일까? 북에서 왔다는 전갈도 불길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몸부터 부르르 떨린 것인지도 모른다.

“거란이 패퇴했습니다.”

‘역시! 좋지 않은 보고일 줄 알았어.’

“대장군이 기습을 걸어왔는데, 워낙 신출귀몰하게 움직인 탓에 꼼짝없이 당했답니다.”

“음!”

사령은 침음했다.

남방에 이어서 북방도 무너졌다.

북방에는 세외칠국 중 사국이 뭉쳐 있다. 거란이 무너졌다면 파사국이나 여진도 무너졌을 게 뻔하다. 아직 보고가 들어오지 않은 것일 뿐.

사방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허도기의 손발이 가차 없이 잘려 나가고 있다. 제대로 된 싸움조차 해보지 못한 채 주르륵 밀려 나가는 형국이다.

“이거야 원!”

사령은 눈살을 찌푸렸다.

변방에서 전격적으로 전쟁이 벌어졌는데,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다. 야천이 아무런 징조도 잡아내지 못했다. 야천뿐만이 아니라 마유 마인들조차 눈뜬장님이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누가 야천과 마유의 눈을 가렸을까? 취화원? 적랑대? 아니다. 그들은 중원 전역에 펼쳐져 있는 야천의 눈을 가리지 못한다.

‘전보영!’

그렇다. 전보영이 철저하게 두 눈을 가렸다.

“이건 꼼짝없이 당했는데. 그럼 전보영이 작심하고 우리 눈을 가렸다는 얘기잖아. 후후!”

사령은 실소를 흘렸다.

전보영의 이런 행동은 매우 미련한 짓이다. 지금처럼 전보영이 전 역량을 모두 기울여서 야천과 마유 마인들의 눈을 가릴 경우, 간자들이 대거 노출된다.

저들은 매우 폭넓게 움직였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누가 눈을 가렸는지 살펴보면 반드시 시발점이 찾아진다. 아마도 이번 작전에 동원된 간자 중 삼분지 일 정도는 정체가 드러날 것이다.

전보영이 그만한 위험을 무릅쓰고 이목 차단 작전을 펼쳤다.

야천과 마유 마인들의 눈을, 중원 무인들의 눈을…… 즉, 허도기 눈을 가렸다.

“황제가 먼저 선수를 치셨네. 공부께서 당하셨어. 후후! 이러면 아무리 공부라고 해도 대책이 없겠는데. 세외팔국이 모두 무너졌다면 할 게 없잖아.”

사령은 두 손으로 턱을 괴며 고민했다.

허도기의 손발이 끊어지고 있다. 관군에서는 황제가, 무림에서는 아걸이 허도기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아직 중원 무림이 허도기 손아귀에 있다고 하지만 아걸로 갈아타는 것은 한순간이다. 야천도 언제 돌아설지 모른다.

마유는 이대로 가도 좋은가? 이쯤에서 허도기와 연을 끊는 게 좋지 않을까?

‘성급하게 서둘 것 없어. 우선 보고부터 하고…….’

사령은 다시 일어섰다.

공부에게 보고할 내용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런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쳐 두 걸음도 걷기 전에 아주 색다른 보고가 들어왔다.

하원랑이 몽설에게 졌다는 거다.

“하원랑까지…… 오늘 왜 이러나? 정말 되는 게 없는 날이네. 쯧!”

사령은 혀를 찼다.

그는 공부의 곁을 오래 지킨 만큼 하원랑이 어느 정도의 무인인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흔히 동영 두주를 보고 공부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동영제일검이라고 말한다. 겨우 반 초 차이로 패했기 때문에 다시 싸우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원랑도 그만한 무인이다.

허도기에게 무공을 사사 받았지만, 소축십검을 제치고 가장 먼저 허도기의 턱 밑까지 치고 올라간 무공 고수다.

하원랑은 은장재계이살을 가장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허도기 턱밑까지 치고 들어간 고수라면서 절기가 은장재계이살이라고? 조명십해를 배운 자라면 누구나 아는 암수? 이게 무슨 말이지?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잠기일력타나 삼륜축첩공을 잘 다룬다면 이해하겠는데…… 겨우 살기나 검초를 숨기는 은장재계이살 따위로 뭘 어떻게 하겠다고?

은장재계이살은 조명십해를 배운 적이 없는 사령도 이해하는 무리다. 그런데,

- 하원랑이 치고자 하면 누구든 칠 수 있다. 하원랑이 막고자 하면 어떤 병기도 뚫지 못한다. 이것이 은장재계이살의 진수다. 모두 하원랑에게 배워라.

공부 허도기가 직접 한 말이다.

하원랑은 그만큼 검이 예민하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었어도 은장재계이살만으로 고수가 된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하원랑은 조명십해를 모두 안다. 고루 능숙하게 다룬다. 그중에서 가장 특징 있게 다루는 것이 은장재계이살일 뿐, 다른 조명십해도 이미 몸에 붙여놓은 상태다. 그만한 무공이 있어서 공부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 호황위 군주 목은 벴고…….

공부가 일기장군 하원랑에게 몽설 척살을 명령한 후 중얼거린 말이다. 단지 하원랑에게 명령을 하달한 것만으로도 몽설을 베었다고 확신했다. 그만큼 하원랑의 검을 믿었다.

그런데 하원랑이 졌다. 패했다. 죽었다.

“암수나 방조자는 없었습니다. 일 대 일의 대결이었고…… 압도적으로 밀어붙였는데…… 공격은 장군께서 주로 하셨고 취화원주는 물러서기만 했는데…… 어쩌다가 운 좋게 흘린 칼이 장군의 목을 긋고 말았습니다.”

“운 좋게?”

“네. 정말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게…… 몽설이 이판사판으로 검을 쳐올린 것 같은데, 그 검이 묘하게 빈틈을 파고 들어가서 장군을 베었습니다.”

고수끼리의 싸움에서 ‘운 좋게’라니. 그런 말이 통하기나 하나?

“후후!”

사령은 실소를 흘렸다.

초절정 고수 간의 싸움에도 운은 통한다. 운은 어디든 존재한다. 자신도 모르게 뻗은 검이 적을 찌를 수도 있고, 평소 능숙하게 펼치던 검초가 말을 안 들을 때도 있다.

운은 언제 어느 때나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하원랑의 검초가 운 같은 것에 좌우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는 것이다.

하원랑의 검초는 수련의 결정체다. 수십 번, 수백 번 고련을 거듭한 끝에 몸에 붙인 절기다. 그런 절기는 운이 조금 나쁘거나 좋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혈검이 그 정도로 강했나?

사령은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하면 사령도 몽설을 눈 아래로 봤다. 세상 사람들은 취화원 원주를 두려워하고, 호황위 군주를 높이 쳐주지만, 사령 눈에는 한낮 어린애로만 보였다.

아걸이 나가떨어지면 몽설 정도는……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오늘 당장이라도 죽일 수 있다.

그런데 혈검이 연이어 강자들을 쓰러뜨린다. 쵸 디엔의 다오 푼 라야, 동여 두주의 폭천비류, 그리고 하원랑의 은장재계이살. 아니, 조명십해.

이 세 명을 모두 운으로 죽일 수는 없다.

몽설이 혈검은 이미 초절정 상태에 도달해 있다. 사령이 범접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올라섰다.

몽설은 일기 장군에게 계속 밀렸다고만 했다. 하원랑의 검초가 바늘 끝만한 틈도 주지 않고 밀어닥쳤을 테니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몽설이 반격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하원랑처럼 전신을 검막으로 뒤집어쓴 채 달려드는 수밖에 없다. 하원랑처럼 검이 빨라야 하고, 강해야 하고, 정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맞서 싸울 수는 있다.

물러서면 된다. 그렇다. 물러서는 방법은 누구나 할 수 쓸 수 있다. 또한, 효과적이다. 제아무리 강한 공격도 물러서는 데는 당할 도리가 없다.

몽설은 가장 단순한 방법을 취했다. 그리고 일격.

‘일격…… 하원랑을 쓰러트린 일격…… 세외칠국, 하원랑…… 이건 공부도 헤어나지 못하는 일격인데. 정말 마유를 이대로 둬도 되나? 일단 보고부터 하고…….’

사령은 휘적휘적 걸었다.

공부에게 보고를 해야 할 게 많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운 나쁜 날이다. 허도기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이 오늘 하루 사이에 모조리 무너지고 있다.

“하원랑이?”

똑같은 반문, 똑같은 놀라움.

좀처럼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공부도 하원랑이 무너졌다는 보고에는 미간을 찌푸렸다.

공부는 세외칠국이 패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당황하지도 않았다. 냉정히 말하면 전혀 상관없는 소문을 들을 때처럼 담담했다. 그런데 하원랑이 죽었다는 소리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하원랑이 몽설에게…… 음! 사구정.”

“넷!”

사구정이 대답했다.

“하원랑은 보이지 않는 철갑을 두른 검사다. 그가 검을 뽑으면 검영(劍影)이 전신을 휘감는다. 누구도 검영을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하원랑이 검영을 쳐내면 세상은 모두 검영에 뒤덮인다. 검영을 맞받을 자가 없다. 하원랑의 은장재계이살은 완벽하다. 한데도 졌다. 원인이 무엇인가?”

공부가 인상을 찡그린 채 물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부님의 빠름. 또 하나는…… 하 장군의 검과 똑같은 검이면 됩니다. 아마 똑같지는 않아도 몽설의 혈검이 하 장군의 검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구체적으로.”

“하장군의 검은 세상을 통제하는 검입니다. 세상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실체를 띈 검입니다. 몽설의 혈검은 몸 안에서 공수가 이루어지는…… 정신검입니다.”

“맞다. 됐나?”

허도기가 사령을 보며 말했다.

“네?”

사령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되물었다. 그러다가 퍼뜩 어떤 사실을 깨닫고는 머리를 숙였다.

“그렇군요. 그래서…… 후후!”

사령이 웃었다.

허도기는 하원랑의 패인을 사구정의 입을 통해서 알려주었다.

몽설의 혈검과 하원랑의 조명십해는 같은 검이다. 조명십해가 몸 밖에서 이루어진다면 혈검은 몸 안에서 이루어진다. 실체를 띈 검과 정신검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무리는 똑같다. 누구의 평정심이 더 강한가의 싸움이었다.

몽설과 하원랑은 간발의 승부를 펼쳤다. 그리고 손톱만큼이라도 강한 자가 이겼다. 그것이 몽설일 뿐.

“제가 벨까요?”

사구정이 말했다.

“내버려 둬. 어차피 늦었어. 내 싸움 전에 머리를 따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후후!”

허도기가 웃었다.

“그런데 세외칠국은……?”

사령이 물었다.

지금 공부의 표정을 보면 세외칠국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그들이 패했다는 데도.

“칠국? 왜?”

허도기가 되물었다.

“아니…… 그들이 무너져서…… 그럼 공부님의 대계에 지장이…….”

“후후! 그 말인가? 황제가 선수를 쳤다고? 후후! 그래서 달라진 게 있나? 너무 촐싹거리지 마라. 사람이 진중할 줄 알아야지.”

공부가 오히려 사령을 질책했다.

‘응?’

사령은 퍼뜩 한 생각이 떠올랐다.

황제가 대반격을 했다. 이민족, 침입자를 몰아냈다. 하지만 어디로 물러났나? 국경 밖으로 물러났다. 그렇다. 그들은 여전히 국경 밖에 있다.

남만족은 여전히 강 건너에 있다. 강을 건넌 이만 육천 명은 죽었지만, 아직 강을 건너지 않는 십만 명은 강 건너에 주둔해 있다. 거란족이 대장군에 패해 물러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북방에 진을 치고 있다.

조위 장군은 국경 밖까지 쫓아가지 못한다. 그러려면 북방 병력을 넷으로 쪼개야 한다. 당연히 그럴 만한 여력이 없다. 저들 국경 밖으로 밀어낸 데 만족하고 있다.

무림도 마찬가지다.

하원랑이 죽었다지만 허도기의 열 손가락 중 겨우 손가락 하나가 떨어져 나갔을 뿐이다. 당장 사구정이 나서서 자신이 몽설을 베겠다고 말하지 않나.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사령은 공부에게 보고하러 올 때만 해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을 안고 있었다. 세외칠국이 무너졌고 하원랑이 죽었는데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나.

그런데 보고를 마친 지금, 변한 게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도기는 여전히 중원을 장악하고 있다. 세외칠국은 중원을 노려보고 있다. 황제는 여전히 위태롭다. 아걸은 죽음을 향해서 달려오는 중이다.

정말로…… 전혀 변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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