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75화 (575/600)

第百五章 니거사파(你去死吧) (5)

또로로록!

술잔에 술이 채워졌다.

화주(火酒) 특유의 독향이 와락 코끝을 아린다.

화주는 맑고 투명하지 않다. 약간 누리끼리하다. 꼭 맑은 물에 오물을 뿌려놓은 것 같다.

진개는 술잔을 들어서 단숨에 들이켰다.

쭈욱!

화주가 목구멍을 타고 뱃속으로 흘러들었다.

산속에 있는 주점(酒店)은 그가 자주 찾는 곳이다. 산밑에서부터 반 시진 가량을 걸어 올라와야 하지만,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을 보지 않아도 되니 자주 찾는다.

산속 주점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가는 길손이 들를 법하지만…… 산을 타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 시진만 더 가면 초도성이 나오기 때문에 일부러 걸음을 멈추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간판은 주점이지만 주로 밥을 판다. 쉬어갈 수 있도록 방도 만들어 놨지만, 곰팡내만 풀풀 풍긴다.

그야말로 어중이떠중이들이 잠시 다리를 쉬어가는 주점이다.

하지만 진개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이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선 눈이 시원하다. 또 공기도 맑다. 폐가 일시에 씻기는 느낌이다. 평상 아래로 졸졸 흘러가는 개울물도 마음에 든다.

또르르르륵!

술잔을 채웠다.

술이라는 놈은 참 묘하다. 첫 잔을 마시면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독기가 느껴진다. 뱃속에서도 불이 확 일어난다.

첫 잔의 짜릿함이다.

두 번째 잔에서는 독주의 짜릿함을 조금 느낄 수 있고, 아마도 넉 잔인가 다섯 잔째부터인가는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 그저 무엇인가를 삼켰다는 느낌만 있을 뿐 첫 잔의 짜릿함은 사라지고 없다. 더는 뱃속에서 불이 붙지 않는다.

그러면서 점점 더 깊이 취해간다.

“후후후! 네놈이나 나나…….”

진개는 술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산속 주점까지 흘러들어온 화주나 좋은 술을 놔두고 화주를 찾는 자신이나 처지가 비슷해 보인다.

“백 년을 살다 보니 환상이 보이네. 내 젊은 날이 보이네. 탱탱한 피부와 단단한 근육이 내 몸을 이루고 있네.”

진개는 노래를 불렀다.

잘 부르지 못하는 노래인데…… 노래를 즐기는 편도 아닌데, 술잔을 보다 보니 노래가 흘러나왔다.

상당히 취한 거 취한 모양이다.

“그거 시끄럽게! 여기 혼자 있나!”

“쉿! 성검문주야.”

“성검문주?”

“그래, 이 사람아. 몸뚱이 성하고 싶으면 조용히 해.”

주점 손님들이 귀청 따가운 노랫소리에 시비를 걸려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성검문주? 후후! 기껏 죽 쒀서 개 준 꼴이라니. 후후!’

진개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지금은 공부가 돌아왔으니 성검문주가 아니잖아? 그렇게 부르면 안 되지.”

“그럼 뭐라고 불러?”

“다시 소축십검이지 뭐.”

“부르는데 뭐 돈 드나? 그래도 한때는 성검문주 역할을 했으니까 문주님, 문주님 하고 불러주는 거지 뭐.”

“소축십검이 있을 때가 좋았는데. 열 명이 쫙 늘어서 있으면 상당히 든든했잖아?”

“든든했지. 어느 누구도 약한 자가 없었으니까. 검으로 만든 장벽이라고 할까? 좋을 때였지. 하지만 이제 뭐 다 죽고 없는데 뭘. 생각해봤자 죽은 자식 다리 긁기지.”

“참 아걸도 대단해. 어떻게 소축십검을 싹 쓸어버리지? 이십사 위문이 나설 때도 소축십검은 찬밥이었다며?’

“아걸만 만나면 펑펑 나가떨어지는데 믿고 일을 맡기겠어?”

“이십사 위문이 오히려 소축십검의 눈치를 봤는데,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 저 사람도 이제는 완전 찬밥이지?”

“찬밥 된 지는 오래됐지.”

진개는 사람들이 속삭이는 말을 귓가로 흘려들었다.

이런 말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세상 사람을 모두 죽이고 말 것 같았다.

이놈의 귀때기.

사람 목소리를 유난히 잘 듣는 자신의 귀를 쭉 찢어내고 싶다. 그러면 뒤에서 말하는 소리가 사라질까? 세상이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까?

무공이 강하다는 것, 그래서 오감을 극도로 발달시켜 놨다는 것이 싫을 때도 있다.

저벅! 저벅!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주점으로 들어섰다.

“후후!”

진개는 피식 웃으면서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쭈욱!

화주가 뱃속으로 흘러들며 확 불길을 일으켰다.

이 잔이 몇 잔째인지 모르겠는데…… 첫 잔을 마셨을 때처럼 맑고 강한 주기(酒氣)가 일어났다.

이자들, 고수다!

진개는 주점으로 들어선 일단의 무리에게서 소름이 돋는 날카로움을 느꼈다.

그중 한 사람이 객잔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한다. 그러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일어나서 객잔 밖으로 빠져나갔다.

사람을 내보내고 있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자신을 향한 칼 저놈들은 누군가? 누구이기에 노골적으로 싸움을 걸어오나.

진개는 돌아보지 않았다.

또르르르륵!

술잔에 술을 채웠다.

길을 가다 보면 가끔 무뢰배들이 시비를 걸어 온다.

옛날에는 어림도 없는 수작이었는데, 소축십검이라는 이름이 유명무실화된 이후에는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진다. 소축십검을 이빨 빠진 종이호랑이로 알고 달려드는 것이다.

더욱이 진개는 팔 하나를 잃었다. 조명천검을 쓰던 오른팔이 날아가고 없다.

보통 사람도 주로 사용하던 팔을 잃으면 당장 생활이 불편해진다. 밥을 먹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오른손으로 식사하던 사람이 왼손을 쓰려면 젓가락질도 잘되지 않는다.

무인은 더하다. 왼손으로 칼을 쓰는 것과 오른손으로 칼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일류 고수라고 해도 한순간의 삼류 무인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무뢰배들이 달려들곤 한다.

물론 이들은 보통 무뢰배는 아니다. 진개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한 자들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어떤 무공을 지녔든 조명십해를 당할 수는 없다.

“오늘은 피 보기가 싫은데…… 굳이 죽겠다면 죽이지 않을 이유도 없고. 기분 좋게 취했는데, 술 깨게 하지 마.”

진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 주점이 정리되었다.

산속 주점에는 점소이가 따로 없다. 주인 부부가 푼돈을 벌겠다고 만든 곳이다. 물론 주인 부부는 진개를 잘 안다. 하지만 그들마저 몸을 숨겼다.

무인들 싸움에는 끼어드는 게 아니다.

저벅! 저벅!

일단의 무리가 진개에게 다가왔다.

“이미 눈치 까고 있을 텐데, 일어나. 앉아서 술 마시는 놈을 쳐 죽이기는 그렇잖아?”

말투도 쌍스럽다. 무뢰배들이란.

하지만 진개는 화주의 독향을 확 느낄 만큼 술이 깼다. 전신 감각이 단숨에 최고조로 끌어 올려졌다. 한낱 무뢰배일 뿐인데, 절정 검수를 맞이할 때처럼 긴장된다.

“누구냐?”

진개가 술잔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성검문주가 흘린 쓰레기는 당신이 모두 처리한다며? 그래서 별명도 쓰레기라고. 우리가 누구냐…… 진개, 당신의 검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

‘이놈들 고수다!’

진개는 고개를 들어 일단의 무리를 쳐다봤다.

키 작은 자가 눈에 들어온다. 낫 두 자루를 어깨에 걸쳐 매고 히죽 웃는다.

‘쌍겸? 후후! 그렇군.’

진개는 여섯 명 중 한 명만 봤을 뿐인데도 이들이 누군지 알아챘다. 아걸을 졸졸 따라다니는 조무래기들…… 소위 은거 무인들이라는 자들이다.

“네놈들이 호랑이 간을 삶아 먹었구나. 아걸을 쫓아다니다 보니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야. 내 앞에 칼을 들이밀고. 이제는 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진개가 은거무인들을 무시하는 듯 고개를 돌리며 술을 마셨다.

사실이다. 이들이 고수라는 점을 느끼고 긴장했는데, 이들의 정체가 은거무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다소 긴장감이 풀어졌다. 은거 무인 정도는 단숨에 베어낼 수 있다.

“호랑이 간, 그거 별로 맛없어. 팍팍하기만 하고. 넌 안 먹어 봤어? 먹어봐. 아! 호랑이 간을 먹지 않아서 성검문을 사구정에게 내주고 여기서 술을 마시는 건가?”

쌍겸이 유들유들 웃으면서 말했다.

“후후! 정말 죽으려고 작정했군.”

“그런 말은 검으로 해야지. 무인이 기본을 몰라. 이러니 소축십검이 무너졌지. 그게 괜히 무너진 게 아니야.”

쌍검이 히죽 웃었다.

“네 놈을 제일 먼저 베어야겠군.”

“베든 말든 검으로 말하라니까. 어떻게? 앉아 있는 놈을 베도 되나? 아니면 검 들고 일어설래?”

“하하하!”

진개는 쌍겸의 히죽거림이 크게 웃었다.

“어디 네놈들의 칼도 혓바닥만큼 당당한지 한번 보지.”

스읏!

진개가 검을 들고 일어섰다.

휘릭! 휘릭! 휘리리릭!

쌍겸이 빙글빙글 휘돈다.

쌍겸은 낫 두 자루를 쇠사슬로 연결했다.

쌍겸은 장검보다도 거리가 짧은 단병이다. 하지만 쇠사슬을 연결하자 능히 삼 장 밖에서도 공격할 수 있는 장병이 되었다.

쒜에에엑! 쒜에엑!

빙글빙글 돌던 낫이 진개를 향해 찍어 왔다.

“이따위로!”

땅땅!

진개는 장난하듯이 검을 들어서 낫을 쳐냈다. 그 순간,

타타타탁! 쒜에에엑! 쒜에엑!

갑자기 눈앞에서 불쑥 삼각형의 추, 표두(標頭)가 튀어나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검은 물체가 전신을 노리고 와락 달려들었다.

황열이 승표를 던졌다. 비석 장태전이 남만 토탄사의 비석탄을 날렸다.

한쪽에서는 낫 두 자루가 아주 강한 힘으로 찍어 내려오고, 그 뒤를 따라서 승표가 은밀히 다가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석탄이 사방을 에워싸고 창으로 쿡쿡 찌르듯이 날카롭게 찔러 온다.

탕탕탕! 따당! 땅!

진기는 급히 검을 휘둘러 승표와 돌을 쳐냈다.

“제법인데? 이봐! 황열, 장태전! 너희 무공이 도통 안 먹히잖아?”

쌍검이 황열과 장태전을 보며 말했다.

“네 낫도 안 먹히는 건 마찬가진데 뭘 따져.”

장태전이 맞받았다.

진개에게 병기를 들이대는 사람은 세 명이다. 세 명 모두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병기를 던진다. 가까이 달라붙는 사람이 없다.

이들 중 검을 쓰는 사람이 세 명이다.

한항의 검은 비밀이다. 어떤 검인지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지당검 고사의 병기는 연검이다. 허리에 둘려진 허리띠가 곧 검으로 변할 것이다.

진개는 나통을 제일 경계했다. 나통은 청성파 사전절광검의 전수자다. 정통 검법을 수련한 고수로 쾌속제일로 불렸던 소축십검 산묘 신도파와 비견되던 사내다.

이들 세 명은 전혀 싸움에 가담하지 않고 멀리 늘어서 있다.

단순히 서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언제든 검을 쳐낼 수 있는 준비가 갖춰져 있다. 진개가 달려들면 즉시 반격할 수 있는 위치와 자세…… 이들은 진개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틀어막는 인벽(人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놈들 이거…… 한두 번 해본 짓이 아닌데? 설마 이걸 수련한 건가? 이들이?’

진개는 눈살을 좁혔다.

은거 무인 정도 되면 합공을 일부러 수련하지는 않는다. 어쩌다가 손발을 맞춰서 같이 싸울 수는 있지만 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서 합공을 수련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들 여섯 명의 위치나 싸우는 모습을 보면 합공을 수련한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만만치 않다.

이들의 합공은 진개 자신을 노린 것이다. 이 정도면 자신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누가 그런 생각을 했나? 아걸이다. 소축십검을 잘 아는 아걸이 그런 판단을 했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 만만치 않다.

진개는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는 긴장감을 느꼈다.

처음, 화주의 독한 주기를 맡았을 때의 느낌이 옳았다. 이들이 은거 무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때는 긴장했다. 이들이 은거무인임을 알고는 긴장감을 풀어버렸다.

두 번째 판단이 잘못된 것이다. 첫 번째가 옳았다.

‘그렇다면!’

꾸르르르릉! 꾸릉!

진개는 좌수검에 진기를 투입했다. 그러자 좌수검에서 거친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천둥 치듯이 부르르르! 검신을 떨어댄다.

“응? 이게 뭐야? 호, 혹시 분뢰절맥?”

쌍겸이 상당히 놀란 듯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후후후! 놀랐나?”

진개가 입가에 살소를 띄우며 말했다.

오른팔을 잃고 성검문으로 돌아왔을 때, 사부는 좌수검을 전수했다. 분뢰절맥을.

“이런! 소축십검이나 된다는 놈이 마공을!”

황열이 노성을 터트렸다.

“네놈들…… 모두 죽는다. 죽인다!”

진개는 황열의 노성을 듣지 않았다.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이들을 모두 죽이기로 작심했다. 다른 점은 몰라도 이들 뒤에 아걸이 있다고 생각하자 눈에 독기가 피어났다.

꾸르르르릉!

좌수검이 울음을 토해낸다.

분뢰절맥을 강하게 일으키면 진기가 혈맥을 찢을 위험이 있다. 그래서 완급 조절이 필수다. 정신을 놓으면 천하최강의 검학을 펼침과 동시에 폐인이 된다.

분뢰절맥은 정통 무공이 아니다. 마검이다.

“쿠쿠쿠! 너부터!”

진개의 검이 쌍겸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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