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六章 전심전력(全心全力) (2)
“후우!”
거친 숨이 쉬지 않고 쏟아진다. 검을 부딪치기 전인데도 숨이 가빠온다.
진개가 가하는 압박감은 말할 수 없이 강하다.
은거 무인들을, 그것도 아걸과 비무를 하면서 더할 나위 없이 강해진 무인들을 단숨에 몰아치고 있다. 양 떼 속에 뛰어든 늑대와 다를 바 없지 않나.
그렇구나. 아걸이 이런 자들을 상대해 왔구나.
아걸이 소축십검을 쓰러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 또 한 명 쓰러뜨렸구나’하고 무심히 지나쳤는데…… 이런 자들과 싸워서 쓰러뜨린 거였구나.
쒜에에엑!
나통이 제일 먼저 검을 쳐갔다.
“후후후! 버러지 새끼들!”
진개가 어림없다는 듯 비웃음을 흘리며 마주쳐왔다.
쒜에에엑! 쒜에엑!
진개가 쳐내는 검에서 살기가 물씬 풍겼다.
나통이 검권 안으로 들어서면 둘 중 한 명은 쓰러질 것이라는 예감이 퍼뜩 들었다.
그 순간, 나통이 위기를 느낀 듯 재빨리 물러섰다. 검과 검이 부딪치기 전에, 진개의 검권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재빨리 물러서서 격검을 피했다.
나통의 반대쪽에서도 움직임이 일었다.
나통이 물러설 때, 야속이라도 한 듯이 지당검 고사가 쾌속하게 덮쳐갔다.
“이것들이!”
진개가 나통을 버리고 고사에게 돌아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고사가 물러섰다. 그리고 돌아서는 순간을 이용해서 한항이 검을 쳐냈다.
무리한 접전을 피한다!
진개를 상대로 정면승부를 취하면 오히려 당할 공산이 크다. 그러니 완벽한 기회가 아니면 덮치지 않는다. 장태전이나 황열과는 달리 세 사람은 즉각 접전을 벌여야 한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순간에 생사가 갈린다.
“미치겠네.”
답답한 듯 나통이 중얼거렸다.
“흐흐흐!”
진개는 당연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다.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하게 읽힌다. 그런데도 도발적이지는 않다. 지극히 냉철하다. 장태전이나 황열과 싸울 때도 무작정 칼을 휘두른 게 아니다. 냉철하게 계산을 하고 분뢰절맥을 구사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 사람이 합공을 펼치고 있지만, 진개는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하다. 겉모습은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는데, 정작 검을 부딪치는 사람이 느끼는 것은 차디찬 얼음이다.
묘한 모습이다.
스슷! 스스슷!
고사가 기습적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진개를 한시도 조용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들어가고 나오고, 들어가고 나오고……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진다. 진개에게 숨 고를 틈을 주지 않는다.
‘최대한 강하게 압박한다!’
쒜에에엑! 쒜에엑!
비석탄이 던져졌다.
장태전이 던지는 돌멩이는 한낱 돌멩이가 아니다. 돌멩이가 날아가는 동안에 공기와 마찰해서 새까맣게 타버린다. 실제로 돌멩이가 타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한 빠름으로 달려든다고 해서 비석탄이라고 명명되었다.
던지는 모습을 보고 반응하면 늦다. 던진다는 느낌을 잡고 반응해야만 비석탄을 상대할 수 있다. 아차! 하고 탄식을 토했다면 이미 격타당했을 것이다. 한데,
타당! 타당 탕!
진개가 검으로 비석탄을 쳐냈다.
대부분 몸을 틀어서 피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진개는 비석탄을 꿰뚫어 보는 듯 정확하게 쳐냈다.
안력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다.
쒜에에엑! 쒜에엑!
장태전은 계속해서 비석탄을 던졌다. 비석탄은 진작 막혔다. 새삼스럽지 않다. 비석탄이 검을 부딪치고 있는 세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심정은 황열도 같다.
그는 승표 끝자락을 붙잡고 밀어냈다 당기기를 반복했다. 진개를 끌어당기겠다는 욕심은 없다. 승표로 타격을 가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다만 진개의 신경만 거스르면 된다.
타악! 탁!
비위만 살짝살짝 건드린다.
쒜에에엑! 쒜에엑! 쒜에에엑!
나통, 고사, 한항은 계속해서 접근전을 시도했다.
누가 먼저 어지러워질까? 누가 먼저 빈틈을 보일까?
“이것들이!”
진개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표정도 대번에 일그러졌다. 붉으락푸르락……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마음이 어린애도 알 정도로 거침없이 드러났다.
나통은 단순히 공격하는 시늉만 한 게 아니다. 실제로 벨 듯이 거칠게 달려들면서 진기를 쏟아내고 있다. 공격하는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내기(內氣) 접촉을 하고 있다.
비록 바로 물러서기는 하지만, 그가 쏘아낸 진기는 진개를 긴장시킨다. 아무리 상대가 안 된다고 해도 공격은 무시하지 못한다.
세 사람이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진개도 따라서 긴장감을 높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기 접촉만으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 검이 몸을 갈라야만 죽는다. 이것은 확실하다. 세 사람은 위험 부담이 없는 내기 접촉만 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끊임없이 진개의 신경을 건드리되 실전은 벌이지 않고 있다.
분뢰절맥의 동력은 분노다. 본인 스스로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판이다. 하물며 접전을 벌이지 않고 찝쩍찝쩍 건드리기만 하면 당연히 화가 치민다.
분노가 불길처럼 일어난다.
어떻게든 검을 쳐내기만 하면 분노를 터트릴 수가 있는데 이런 식이면 해소할 방법이 전혀 없다.
더욱이 진개의 내부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울린다.
안돼! 움직이면 안 돼! 움직이지 마!
화가 나서 미치겠는데, 다른 한 놈이 목을 움켜잡고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밖에서는 하찮은 놈들이 깔짝거리고, 안에서는 밧줄로 몸을 묶고, 부화는 치밀고…….
“이이익!”
진개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스슷! 스스슷!
나통, 고사, 한항은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도 진개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지금까지 시도한 방법이 확실히 효과가 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신경을 긁는 방법은 극심한 진기 소모를 초래한다. 진개도 신경이 쓰이겠지만 공격을 가하는 다섯 사람 역시 진기 소모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장태전은 쉴 새 없이 비석탄을 던지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가 던지는 비석탄에는 진기가 실려 있다. 진개에게 통하지 않는 공격이지만, 멈출 수도 없다. 진기를 마구 허공에 흩뿌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비석탄은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려졌다.
쒜에에엑! 쒜에엑!
돌멩이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면서 날아가지만, 이제는 비석탄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날아가는 모습이 환히 눈에 보이니…… 그저 조금 빠른 돌팔매질일 뿐이다.
그만큼 진기가 바닥난 것이다.
“하악! 하아악!”
장태전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얼핏 보면 은거 무인들이 기회를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역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누구의 진기가 더 빨리 소모될까?
‘이대로 가면 누가 이길지 몰라. 여기서 한 번쯤 더 흔들어줘야 승산이 있어.’
나통이 이를 꽉 악물어다.
쒜에에엑! 쒜에엑!
나통이 빈틈을 노리고 급하게 뛰어들었다.
진개는 당연히 맞받기 위해서 검을 들었다. 공격해 오니 방어한다는 단순한 개념이다. 진실로 맞받을 생각은 없다. 나통은 틈을 잡지 못하고 곧 물러갈 것이다. 순간,
까앙! 깡!
검과 검이 부딪혔다.
“엇!”
진개가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아니, 그 순간 진개는 이미 분뢰절맥 절초를 터트려내고 있었다. 검격이 이루어질 것은 예상치 못했지만, 그래도 반응은 빨랐다.
‘분화토출(噴火吐出)!’
쒜에에엑! 쒜에엑!
검이 검을 밀어냈다. 동시에 검 끝이 나통의 미간을 노리고 빠르게 휘어졌다.
스슷! 스스슷!
진개는 허공을 찔렀다.
그의 반응은 눈부실 정도로 빨랐지만, 나통이 이미 뒤로 쭉 빠져나간 후였다.
“킥!”
진개가 실소를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그는 이번에도 나통이 단지 공격하는 시늉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검을 부딪쳐오자 깜짝 놀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건데.
그가 검에 집중했을 때, 나통은 이미 빠져나갔다.
이건 오직 나통만 구사할 수 있는 공격 기술이다. 한항과 고사는 검을 부딪치지 못한다. 검을 부딪칠 수는 있지만, 이어지는 반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나통처럼 빠르지 않다.
진개가 터트릴 제 이격을 피하려면 격검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진심으로 부딪친다는 의도를 숨길 수 있어야 한다. 또 격검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바로 빠져나가야 한다. 진개가 ‘어! 이놈이 정말로 부딪쳤어?’하고 느꼈을 때는 이미 몸을 빼내는 중이어야 한다.
휘리링!
진개가 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리고 잔혹한 웃음과 함께 검을 들어서 나통을 가리켰다. 쌍겸을 벨 때처럼 나통만 집중적으로 노리겠다는 의사표시다. 그때,
쉬이잇! 쉬익!
한항이 진개를 공격했다.
진개는 즉시 몸을 되돌려서 한항을 맞이했다. 나통이 진심으로 부딪쳤으니 한항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한데, 한항은 공격을 끝까지 지속하지 않고 즉시 뒤로 빠졌다. 완벽한 헛손질을 유도해냈다.
“후후! 이런 버러지들이!”
진개가 이를 부드득 갈며 노갈했다.
진개가 흔들린다. 냉철한 이성이 무너지고 있다. 실초와 허초의 구분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보통 정도만 되어도 파악할 수 있는데…… 소축십검이 분간하지 못한다.
‘역시 판단력에 문제가 있어.’
쒜에엑!
지당검 고사가 땅에 몸을 바싹 붙이며 달려들었다.
“이 새끼들이!”
진개 입에서 기어이 욕설이 튀어나왔다.
진작부터 욕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소축십검의 체면이 욕설을 자제시켰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모두 죽여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순간, 비석탄이 다시 터졌다.
쒜에에엑! 쒜에엑!
바람 소리가 거세다. 미약한 진기만 실리던 돌멩이에 거센 진기가 실렸다.
제대로 된 비석탄!
진개는 급히 검을 쳐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다가온 암기에 깜짝 놀란 듯하다.
따당! 탕! 쒜에에엑!
비석탄을 튕기는 끝자락에 날카로운 파공음이 터졌다. 뒤로 빠졌던 나통이 다시 달려들고 있다.
““이 새끼는 진검이지!”.”
진개가 다른 사람을 제쳐놓고 오직 나통만 노리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통은 진개의 움직임을 예측한 듯, 뒤로 훌쩍 물러섰다. 아예 전장에서 빠져나가겠다는 듯 연거푸 네 번이나 신형을 휘돌려서 멀찍이 물러섰다.
휘이이이익!
진개의 검은 다시 허공을 그었다.
‘확실히 이성이 무너지고 있다!’
은거 무인들은 확신했다.
진개가 방금 전개한 일 초는 완벽했다. 신법이 조금만 빨랐어도 나통을 벨 수 있었다. 쌍겸을 벨 때처럼 반격 시기와 검초의 신랄함이 완벽했다. 딱 하나, 초보자도 저지르지 않는 실수…… 검을 끝까지 던져내지 못했다.
쒜에에엑! 쒜에엑!
비석탄이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날아들었다. 오른발에 휘감긴 승표도 거칠게 당겨진다.
“이익!”
진개가 이를 갈았다.
그때…… 진개는 갑자기 주기가 오르는 것을 느꼈다.
싸우기 전에 마셨던 술이 이제야 올라오는 것 같다.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술까지 지랄하네.”
진개는 피식 웃었다. 아니, 웃으려다가…… 낯빛을 딱딱하게 굳혔다.
주기가 심상치 않다. 갑자기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빙글 세상도 휘돈다. 극심한 어지럼증이 치밀면서 피곤하다는 느낌이 확 밀려온다.
어? 이건!
진개는 깜짝 놀랐다.
분뢰절맥은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다. 언제든 주화입마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 그 순간이 찾아왔다!
‘이런! 빌어먹을! 한 수만 더…….’
진개는 공격을 맞받기 위해 검을 쳐들었다. 하지만 그의 검에서는 이미 문풍지 떨리는 소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검을 들어 올리는 손도 바들바들 떨렸다.
파파파팟! 퍽! 퍽퍽!
비석탄이 진개의 육신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