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七章 만사무휴(萬事無休) (1)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죄수들을 이용하고 하는 시도는 늘 있었다. 죄수 중에서도 살인이나 강도질을 한 흉악범은 주요 관심 대상이다.
우선, 죄인들의 목숨은 가볍다.
임무 수행 중에 죽어도 하등 죄책감이 따르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보상도 치를 필요가 없다. 개 한 마리 죽었다고 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죄수를 끌어들이는 조건도 부담이 없다.
겨우 자유를 준다는 정도면 충분하다.
조금 더 인심을 쓰면 한적한 곳에 숨어서 살 수 있게끔 약간에 전답을 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만한 조건으로 엄청난 일을 시킬 수가 있다.
둘째로 죄수들은 사람을 죽이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하는 일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다. 그 외에 다른 일은 아예 할 줄을 모른다. 호미질해서 감자를 캐는 밭일보다도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더 쉽고 재미있다는 놈들이다.
그들의 흉악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혈적대(血蹟隊).
피를 뒤집어쓴 살인귀, 살인자들로 이루어진 군대다.
혈적대에 몸을 담그려면 최소한 열 명 이상을 죽인 연쇄 살인범이어야만 한다. 살인에 미친 자가 아니라면 혈적대에 발을 딛는 순간, 살해되고 만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적장 암살이다.
평상시에는 적국에 침투해서 적장을 암살하고 돌아온다. 전시에는 적군을 뚫고 군막에 스며들어서 주요 장군이나, 책사 등 최대 위험 인사를 암살한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느닷없이 대장이 죽어 나가는 일이 생기는데,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혈적대 살인귀들이 히죽거리며 지나가곤 했다.
적장이 죽으면 전투는 단숨에 끝난다.
암살에 성공하면 사태를 수습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단숨에 몰아친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다가 무너져 버린다.
혈적대는 상당히 유용하게 쓰였다.
물론 피를 뒤집어쓰는 일은 혈적대 대원들에게도 해당한다.
열 명이 입대하면 다섯 명은 훈련 중에 죽는다. 둘 중 한 명은 죽는다. 남은 다섯 명도 오래 살지는 못한다. 대부분 임무 수행 중에 사망한다. 십회출전(十回出戰)을 완수하고 자유를 얻은 대원이 한 명도 없다면 알 수 있지 않나.
현재, 혈적대는 마흔한 명이 남았다.
그들은 일제히 군에서 탈영했다. 그리고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사구정의 군 경력에서 혈적대는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귀를 선발하는 일부터 그들을 양성하고 작전에 투입하는 모든 일을 주관했다.
혈적대 총책임자가 바로 사구정 장군이다.
군에서 탈영한 혈적대는 적위군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해서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
허도기가 공부에 머물 때만 해도 적위군을 무인으로 구성했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탓에 혈적대 살인귀들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었다.
혈적대는 암중에 숨기고, 새로운 인물들로 적위군을 구성했다.
하지만 그들도 강했다. 혈적대를 양성한 사구정이 작심하고 만든 조직이 적위군이다. 당연히 싸움에 강하고 충성심도 깊을 수밖에 없다.
사구정은 적위군이 사망할 때마다 그 자리에 혈적대를 집어넣었다.
적위군에서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적위군이 한층 더 강해지는 묘한 일이 벌어졌는데…… 그 사실에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래 사구정이 단단한 인물이었기에.
허도기가 공부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눈치 같은 것을 볼 필요가 없어졌다.
현재, 적위군은 마흔한 명이다.
무림 출신의 적위군은 성검문도로 돌렸고, 대신 혈적대가 적위군 자리를 온전히 차지했다.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적위군이 머무는 곳은 늘 실종자가 생긴다. 그것도 매우 많이 생긴다. 적위군은 살인에 미친 자들이다. 살인하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 자들이다.
사구정이 단단히 통제하고 있지만, 그들의 살인 욕구를 완전히 틀어막지는 못한다.
그들도 스스로 살인 욕구를 억누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 의지를 잃어버리고 살인할 때가 있다. 깜빡 정신을 놓았다가 다시 깨어보면 살인을 하고 난 후다.
물론 살인은 곧 수습된다. 혈적대는 시신 처리도 매우 능숙하게 한다.
타고난 흉폭성에 전문적으로 살인 기술까지 수련했다.
혈적대, 적위군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살인부대다.
타타타탁! 타타탁!
피 냄새를 맡은 맹수들이 맹렬히 달려왔다.
맹수들은 개인 싸움에 능하다. 또 집단 싸움에도 익숙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싸움 방식으로도 싸울 수 있도록 훈련받았다.
맹수들은 약자를 다룰 줄 안다. 또한,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강자도 다를 줄 안다. 곰보다 힘이 약한 늑대가 오히려 곰을 사냥하는 일이 벌어진다.
무공이 강하다고 능사가 아니다. 싸움에서는 무공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일이 벌어진다.
“저기 있네.”
적위군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큰 숨을 몰아쉬었다.
폭죽이 터지자마자 단숨에 달려왔다. 넓게 펼쳐있던 포위망이 단숨에 좁혀졌다.
적위군 마흔한 명이 빠르게 질주하는 다섯 명을 주시한다.
은거 무인 중 두 명은 진개와 쌍겸을 업고 있다. 전투 능력을 상실했다. 싸울 수 있는 자는 세 명뿐인가?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은거 무인의 무공을 참작하면 등에 사람을 업었다고 무위가 약해지지는 않는다.
정확히 셈해야 한다. 싸워야 할 자는 다섯 명이다.
“갈까?”
“말하면 잔소리!”
쒜에에엑! 쒜에엑!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다섯 무인을 향해 신형을 쏘아냈다.
“승냥이들이 냄새를 맡았군.”
“계속 가. 이 정도는 내가 처리해도 돼.”
장태전이 양손에 돌멩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곧 사방으로 힘차게 흩뿌렸다.
쒜에에엑! 쒜에엑!
맹수들이 달려들기도 전에 비석탄이 터졌다.
맹수들은 즉시 몸을 숨겼다. 장태전이 비석탄을 준비할 때, 그들은 이미 몸을 숨겼다.
‘비석탄을 알고 있다!’
타타타탁! 타타탁!
비석탄이 나무와 바위를 때렸다. 그리고, 타격이 끝났다 싶은 순간에 즉시 몸을 퉁겨 뛰쳐나왔다.
타타타탁!
저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어딜!”
쒜에에엑! 쒜에엑! 타타타탁!
장태전은 맹수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다시 비석탄을 전개했다. 하지만 저들은 다시 숨었다. 처음처럼 비석탄은 나무와 바위만 두들겼다. 맹수들을 잡아채지 못했다.
“내가 해보지!”
쒜에에엑! 쒜에엑!
황열이 나서며 승표를 쏘아냈다.
타탕! 탕! 탕!
맹수 세 명이 일제히 검을 들어 승표를 막았다. 한 명이 막은 게 아니다. 세 명이 완벽하게 연수했다. 한 명은 승표의 줄을 휘감았고, 다른 한 명은 표두를 쳐냈다. 그사이에 다른 한 명은 황열을 베겠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승표는 이미 변화를 일으켰다. 맹수들이 쳐낸 검의 각도를 보고는 즉시 승표를 하늘로 쭉 튕겨 올렸다. 그리고 다시 거꾸로 쏟아져 내렸다.
촤아악!
승표 표두가 맹수를 쫓아갔다.
맹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너무도 차분하게 나무 뒤로 숨었다.
파앗!
표두가 나무를 후려치고 되돌아왔다.
“엇! 저놈들!”
황열이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이상하다. 저들은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다. 이건 분명하다. 신법, 몸의 움직임이 환히 보인다. 보통보다는 훨씬 빠른 몸놀림이지만, 자신들을 상대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비석탄과 승표로 잡지 못했다.
맹수들은 은거 무인들의 무공을 환히 꿰뚫고 있다. 어떤 공격이든 즉시 대응하는 것을 보면 집중적으로 대응책을 강구하고 수련한 것 같다.
“관도로!”
한항이 소리쳤다.
맹수들이 달려드니 소로를 버리고 관도로 들어선다. 밀행이 발각된 이상, 좁고 험한 길로 갈 필요가 없다. 넓은 길로 빠르게 달려가면서 정면으로 상대한다.
스슷! 스스슷!
은거 무인들은 일제히 관도로 내려섰다.
아무래도 좋다. 내일이면 성검문에 도착한다!
은거 무인들은 자신했다. 누가 자신들을 막을 수 있을까? 허도기가 직접 나선다면 몰라도 성검문에서 자신들을 막을 만한 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설혹 허도기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사령이나 사구정이 나와도 막지 못한다. 일 대 일의 승부라면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쪽은 다섯 명이다. 절대 막히지 않는다.
스슷! 스스슷!
은거 무인들은 빠르게 관도를 질주했다. 그때,
꽝꽝! 꽝! 꽝! 꽝!
그들이 달리는 앞쪽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뿌연 흙먼지가 피어나더니 와락 덮쳐왔다.
“피햇!”
은거 무인들은 경악성을 내지르며 관도 옆 도랑으로 몸을 숨겼다.
콰쾅! 쾅쾅쾅!
거센 폭음이 귀청을 터트릴 듯 크게 울렸다. 자잘한 흙과 돌이 일곱 명을 뒤덮었다.
“이것들이 정말!”
나통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서 공격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상대방의 목적은 은거 무인들을 죽이는 것이다. 수단 방법을 가릴 이유가 없다.
“한 판 싸워야겠는데.”
장태전 말했다.
“시간이 없어. 날이 밝기 전에 초도성으로 들어가야 해. 무조건 뚫고 가야지. 이렇게 하자. 비석, 앞을 뚫어. 비석탄이면 싸우지 않고도 앞을 뚫을 수 있으니까. 황열은 뒤를 맡아.”
한항이 빠르게 말했다.
“나와 고사가 한 명씩 업고…… 나통, 네가 빠르니까 앞뒤로 가까이 달라붙는 자들을 처리해. 고사. 너와 난 앞만 보고 달리자. 암기 한두 대 정도 맞을 생각 해야지.”
“후후! 좋아.”
고사가 대답했다.
지금은 오직 앞을 뚫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앞뒤로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을 배치하고, 비석탄과 승표를 뚫고 들어선 자는 나통이 제거한다.
“해보지 뭐.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바꾸면 되니까. 가자!”
장태전이 도랑에서 뛰쳐나와 관도로 치달렸다.
쒜에에엑! 쒜에엑!
어둠 속에서 암기가 쏟아져 나왔다.
저들은 접근전을 벌일 생각이 없다. 암기와 폭약만으로 다섯 명을 잡으려고 한다. 그리고 저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다. 은거 무인들은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몇 걸음 뛰다가는 다시 몸을 숨겨야 한다. 저들의 암기가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어서 뚫고 나가기가 힘들다.
저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암기를 가지고 온 것일까?
“이거야 원. 싸우자고 하는 놈이 있어야 베지.”
나통이 중얼거렸다.
무공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 자들인데, 정작 난잡한 싸움으로 유도하니 꽤 고전한다.
쒜에엑! 꽝꽝꽝!
화통(火筒)으로 발사된 화살이 날아들었다.
화약을 터트려서 날린 화살은 무척 강하다. 또 한꺼번에 무더기로 날아와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저들은 은거 무인을 부상시키거나 사로잡을 생각이 없다. 오로지 죽이는 게 목적이다. 아니, 진개를 죽이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진개만 내놓으면 공격을 멈추고 물러선다는데 열 손가락을 걸 수 있다.
스슷! 스스슷!
은거 무인들은 급히 신형을 움직여서 엄폐물 뒤로 숨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저들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서 이렇게 발목을 붙잡힐 줄 몰랐는데. 방법이 없을까?”
“싸우자고 해야 방법이 나오지. 이건 암기가 워낙 많아서…… 포위망을 뚫을 수 없어. 하아!”
저절로 한탄이 새어 나왔다.
저들은 길을 완벽하게 틀어막지 않는다. 은거 무인들에게 앞으로 뛰쳐나가라고 길을 열어준다. 하지만 앞에는 반드시 화약이 매설되어 있다. 무턱대고 달려나갔다가는 폭약과 함께 사라질 판이다. 그러니 발밑을 살피면서 질주해야 하는데…… 그러면 또 암기가 무더기로 날아온다.
상당히 어렵다. 한순간만 방심하면 고슴도치가 되고 만다.
“일단 움직여!”
쒜에에엑! 쒜에엑! 쒜에엑!
은거 무인들은 다시 신형을 튕겨냈다.
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이러면 틀림없이 공격을 받는다. 아니나 다를까!
쒜에에엑! 쒜에엑!
방금 머물렀던 자리로 화살 한 무더기가 날아들었다. 찰나만 늦었어도 어김없이 화살 비에 휘말렸을 것이다.
“제길! 이놈들!”
신음이 절로 나왔다.
시간은 꼬박꼬박 흘러가는데…… 새벽이 다가오는데…… 이들을 어떻게 뚫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