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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홀도-586화 (586/600)

第百八章 망거목수(網擧目隨) (1)

[그물을 들어 올리면 그물눈도 따라서 올라간다]

세상에는 무공을 증진할 수 있는 영약이 무수히 많다. 열매 한 알만 먹으면 단숨에 무공이 두 배 이상 강해지는…… 꿈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기연이 가끔 일어난다.

초고수들의 싸움은 그런 기연에 버금간다.

허도기와 아걸의 싸움을 보는 것은 승패와 상관없이 무공을 증진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싸움을 세밀히 살펴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단지 두 사람이 싸우는 장소에 같이 머물렀다는 사실만으로도 최소한 무공이 한 단계 이상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초식을 볼 수 있다면 더 좋다.

만약 운이 좋아서 두 사람의 숨결을 가늠할 수 있다면 벼락에 관통된 것 같은 전율을 느낄 것이다.

초고수들이 싸우는 장소에는 특별한 기운이 운집된다.

초식을 보지 못하고, 숨결을 느끼지 못해도 상관없다. 두 사람이 어떤 각오로 싸우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공이 단숨에 증진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만큼 초고수들의 싸움에는 늘 많은 무인이 운집한다.

천하제일검과 중원제일도의 겨룸.

이런 싸움에서는 누구에게 어떤 잘못이 있건…… 솔직히 관심 밖이다. 무인들은 누가 잘잘못을 했느냐는 과거사 문제는 건성으로 듣는다. 세밀히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한 귀로 흘려듣는다.

무인들은 어서 빨리 두 사람이 절정 기량을 선보여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천하제일검! 내 검과 얼마나 다른가. 어느 정도나 차이가 벌어지나. 정말 한 수도 받아내지 못하나?

일홀도, 정녕 무적인가? 도대체 어떤 칼이기에.

무인들의 눈은 두 사람에게 꽂혀서 떨어지지 않았다.

스스! 스슷! 슷! 슷!

허도기와 아걸은 온몸을 꿈쩍거렸다.

두 사람 모두 크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단지 어깨를 움찔움찔하는 정도만 움직였다.

매우 작은 움직임이지만, 그때마다 두 사람은 전신에 소름이 쫙쫙 돋는 긴장감을 느꼈다.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는 도검이라서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예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두 사람이 권각술로 싸웠다면 벌써 수십 차례 정도는 치고받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사용하는 권각술은 쇠뭉치나 다름없지만, 위기감을 느낀다는 면에서 도검과는 전혀 다르다. 도검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약간의 손해가 곧바로 승패로 연결될 수 있다.

두 사람은 매우 신중했다.

꿈쩍! 꿈쩍!

아걸이 움직이면 허도기가 반응했다. 허도기가 꿈쩍거리면 아걸이 즉시 반응했다.

두 사람은 정작 검권(劍圈) 안에 들어서지도 않았다. 서로를 공격하려면 검을 뽑은 후에도 두어 걸음을 치달려야 한다. 서로 뚝 떨어진 채 어깨만 움찔거리는 셈이다.

이것이 두 사람의 검의 거리, 칼의 거리이다.

병기가 지닌 실질적인 길이는 아무 의미도 없다. 현재 두 사람이 벌려놓고 있는 거리가 실질적인 싸움의 거리다. 병기를 쳐내면 그 즉시 상대방에게 닿을 수 있다.

싸움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지루한 대치로 보이겠지만, 두 사람은 피 말리는 긴장감 속에서 틈을 엿본다.

일다경이 지나고 이다경이 흘렀다.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모습을 보는 알아보는 사람은 혈무대 주위에 있는 절정고수 몇몇뿐이다. 조금만 멀리 떨어져도 두 사람의 몸에서 흐르는 땀이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망연히 서 있는 중이다.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싸울 마음이 있다면 벌써 승부가 끝났을 텐데, 싸울 생각이 없나? 왜 공격하지 않지? 하다못해 원을 그리면서 빙빙 돌기라도 해야지, 왜 꿈쩍도 하지 않고 노려보기만 하는 거지?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시간이다.

처음 얼마간은 군중도 같이 긴장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가도 순간적으로 승부를 내는 것이 고수이지 않나. 언제 격돌이 일어날지 모른다.

하지만 숨 막히는 정적도 한계가 있다. 조용히 기다리는 인내가 바닥을 드러냈다.

“너무 움직이지 않는데? 이러다가 승부가 나겠어? 누구라도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야지, 이거야 원.”

“서로 간발의 차이니까 움직이지 못하는 거지.”

“예상 밖이네. 공부께서 압도적으로 이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답답한 사람은 군중만이 아니다. 천하 고수의 싸움에서 무엇인가 얻어가려던 무인도 같은 심정이다. 두 사람이 꿈쩍도 하지 않으니……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생각인가.

혈무대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나야 얻는 것도 생긴다. 두 사람이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서로 대치만 하고 있는데 무엇을 얻을 수 있나.

물론 허도기와 아걸이 싸우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두 사람은 매우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아무리 무공이 낮은 무인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 싸움은 차원이 너무 높다.

두 사람의 싸움을 이해하려면 지켜보는 사람도 두 사람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두 사람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면 적어도 혈무대 주변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의 모습을 정확하게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혈무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두 사람의 무공을 따라갈 수 없는 무인은 이 싸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싸움을 지켜보는 거의 모든 무인이 지루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래서는 최고수 싸움에서 일어나는 감흥을 느낄 수 없다.

최고수의 싸움은 ‘기연의 장(場)’으로 불리는데, 기연은 고사하고 티끌만 한 도움도 받지 못한다. 이만한 싸움을 지켜보면서도 얻어가는 게 전혀 없다.

군중은 화려한 무공을 보고 싶었다. 천하제일검과 중원제일도가 싸우는 결전이라면 얼마나 빠른 검이 오고 가겠나. 얼마나 화려한 초식이 펼쳐지겠나. 도검 한 자루에 실린 진기는 얼마나 막강하겠나. 천지가 요동치지 않겠나.

사람들이 기대한 싸움은 그런 것이다.

“쉽게 결판이 안 나겠는데…….”

“그렇지?”

“하기는 쉽게 승부를 낼 수가 없겠지. 한순간만 삐끗하면 목숨이 날아가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때,

스읏!

그들의 목 위로 검이 얹혔다.

“헉!”

말을 주고받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뒤를 쳐다봤다.

성검문 무인들…… 그들이 조용히 사람들 사이를 누비면서 다니고 있다. 검을 들어서 목 위에 얹으며 속삭이듯 작은 음성으로 협박을 가한다.

“조용히 해라.”

“네? 네네.”

“공부의 싸움을 방해하지 마. 조용히 지켜보던가, 발소리를 죽이면서 사라져.”

성검문 무인들의 음성은 너무 낮아서 가까이에서 말하는데도 귀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조용히.”

사람들은 무인들의 말을 따랐다.

무인들이 혈무대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소란을 수습하는 것은 지극히 보기 힘든 광경이다. 거의 모든 비무가 경계 없는 상황에서 벌어졌는데.

이번 비무는 무척 신중하고 힘들다.

두 사람의 대치가 한 시진을 넘어섰다.

조용히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이 옆 사람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눈으로 물었다.

‘계속 볼 거야?’

‘글쎄…….’

‘난 인제 그만 가야겠어. 공부님이 이기겠지, 뭐.’

‘나도 가봐야 하는데…….’

사람들은 지극히 낮은 소리로 속삭이거나 손짓, 눈짓으로 말을 대신했다.

그들도 혈무대 결전이 한순간에 판가름 날 것을 알고 있다. 그 한순간을 보고 싶기는 하다.

정작 두 사람이 움직이면 구경꾼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너무 빠르고, 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실낱같은 긴장감을 엿보지 못한다.

정말 운이 좋아서 격검 순간을 잡아챈다고 해도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은 쓰러지고 한 사람이 이긴다.

구경꾼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다. 하지만 그것만이라도 보고자 모였다.

하나, 싸움이 벌어질 징조가 보이지 않으니.

무인이라면 끝까지 지켜볼 수 있겠지만, 무인도 아닌 사람들에게는 두 사람의 대치가 지루하기만 했다. 아무리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한 시진 동안 눈싸움만 하고 있으니.

‘나 먼저 갈게. 결과 나오면 바로 알려줘. 공부님이 이기겠지만.’

‘나도 곧 가야 할 것 같기는 한데…… 보는 데까지 보고.’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편안한 곳으로 이동했다.

“후우웁! 후웁!”

아걸과 허도기는 거친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검을 쓰지 않고 눈싸움만? 아니다. 두 사람은 심도(心道)로 싸우는 중이다. 그렇기에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은 상태이지만 숨이 가빠지는 것이다. 마치 십 리 길을 쉬지 않고 단숨에 달려온 사람처럼 숨결이 거칠어졌다.

“후우웁!”

뱃속에서부터 치미는 탁기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런 식으로 숨을 토해내면 상대방이 즉시 눈치챌 것이다. 쏟아지는 탁기로 남아있는 진기를 추측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밑천이 드러난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탁기를 참으면 더 나쁜 상황으로 치닫는다.

“하아악!”

허도기도 숨을 쏟아냈다.

두 사람 모두 탁기를 토해내고 있지만, 허도기가 훨씬 정순하고 차분해 보였다. 아걸은 야생마처럼 숨을 쉬었고, 허도기는 천리마처럼 고요했다.

“후욱! 훅!”

아걸은 아예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훨씬…… 강해졌다!’

아걸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수백 초 아니 수천 초는 겨뤘다. 치고 들어가고, 빠져나오고, 다시 치고 들어갔다. 허도기가 공격해오는 걸 받아내고 역습했다.

정작 몸만 움직이지 않았을 뿐 두 사람은 수천 초를 겨뤘다.

어느 한순간이라도 빈틈이 보였다면 그 즉시 칼이 날았을 것이다. 반철도에 머릿속에 그려진 도초가 실리면서 방금 벌어진 심상(心象)을 쫓아갔을 것이다.

두 사람은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아걸은 물론이고 허도기도 움직이지 못했다. 두 사람이 병기를 뽑지 않았다는 서로 빈틈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파팟!

허도기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강해졌군.

허도기의 눈빛에서 감탄이 보였다. 입을 열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느껴졌다.

아걸이 강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이십사 위문을 격파했고, 동영 루주를 돌려세웠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허도기가 생각하는 ‘강해졌다’라는 의미는 오음산 싸움과 견주었을 때 강해졌다는 거다.

완전히 달라졌어!

아걸이 하고 싶은 말이다.

물론 아걸은 그 말을 벌써 했다. 음성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허도기처럼 눈빛으로 말했다. 어떤 의미의 눈빛도 흘리지 않았다고 자부하지만, 허도기는 이미 눈빛을 통해서 아걸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들었을 것이다.

아걸이 생각하는 달라졌다는 뜻도 허도기의 생각과 같다. 오음산에서 겪은 검이 아니다. 그때 어떤 검을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확연히 달라졌다.

이런 검이 아니었는데…… 숨조차 쉬지 못하게 만든다.

오음산에서는 칼을 떨쳐내는 데는 망설임이 없었다. 허도기를 격상시키는 문제는 다른 문제다. 일차로 공격 시도를 하는 데까지는 거리낌이 없었다는 뜻이다.

지금은 아예 칼조차 뻗어내지 못하겠다. 어떤 식으로든 칼을 움직이기만 하면 바로 반격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반격은…… 막지 못한다.

“하아!”

아걸은 숨을 크게 토해냈다.

허도기에 대한 모든 생각을 지워버린다. 성검문 문주, 공부, 천하제일검, 조명십해 등등 모든 것을 잊는다. 그리고 지금 보고 느끼는 것만 상대한다.

허도기의 움직임, 호흡, 검의 기운을 탐지한다.

그 외의 것은 모두 잊었다. 허도기가 형을 죽인 사실, 사부의 몸에 검을 틀어박던 모습, 예전에 있었던 격전들을 불로 살라버린 듯 새까맣게 태워버린다.

스읏!

숨겨진 사연들은 지워지고 허도기의 실체만 보였다.

허도기는 진작부터 자신의 실체를 보았다. 그에게 몇 번이고 나가떨어진 하수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뭉툭한 반철도다.

칼 이외에 다른 것은 일절 보지 않는다.

후우! 후우! 후우우!

두 사람이 숨을 몰아쉬었다.

몰아쉬는 숨 속에 결전의 시간이 숨겨져 있다.

먼저 지는 쪽이 틈을 보인다. 거친 숨 속에서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숨이 열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틈이 아무리 비좁아도 즉시 치고 들어갈 수 있다.

파팟! 파파팟! 파팟!

지극한 검신일체, 도신일체.

두 사람은 흘러가는 시간도 잊은 채 완벽한 철옹성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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