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88화 (588/600)

第百八章 망거목수(網擧目隨) (3)

“에이! 공부도 아걸에겐 안 되잖아. 동패(同敗)가 뭐야, 동패가. 천하제일인 줄 알았더니 아니네.”

“그러게. 이렇게 되는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혹시 오늘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거 아니야? 그러니까 소축십검이 펑펑 무너져 나가도 나서지 못했지. 열 명이나 되는 제자가 죽어 나가도록 손 놓고 있었잖아.”

“그건 정말 이해가 안 돼. 만약 내 자식이 소축십검이라고 해봐. 난 가만히 못 있지. 내 자식이 어디 가서 남한테 실컷 두들겨 맞고 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어? 몽둥이라도 들고 달려나가야지.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데도 성검문주는 가만히 있었잖아.”

“공부 일이 바쁘니까.”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제자들이 죽어 나가는 것보다 더 바쁜 일이 어디 있어?”

군중들 속에서 한탄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몇몇 사람이 주고받는 말인데, 그 소리는 너무도 뚜렷하게 많은 사람의 귀에 틀어박혔다.

“아걸과 싸우면 안 되는 뭔가가 있었던 것 아냐? 아니면 이렇게 될 줄 짐작하고 있었거나.”

“그러면 뭐 마공에 손댈 수도 있겠네. 앗! 설마! 뭐야? 정말로 마공에 손댔다는 거야?”

“명부판관이 지금까지 쓸데없는 말, 한 적 있어?”

“그건 아까 운곡 선사님이…….”

“그건 알겠는데…… 이번에도 뭐 진개를 끌고 오는데 중간에서 방해가 그렇게 많았다네? 어제 봤지? 밤하늘에 붉은 화광이 솟구친 거. 그거 성검문 무인들이 터트린 화탄이래. 진개 끌고 오지 못하게 막으려고 했던 거지.”

“그래? 그러면 정말 뭔가 있는 거 아니야?”

“뭔가 있다니까. 틀림없이 마공에 손댄 게 맞는 것 같아. 운곡 선사도 성검문주가 부탁하면 거절할 수 있겠어? 솔직히 성검문주가 운곡 선사를 만나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오 하면 도와줄 수밖에 더 있냐고.”

“설마 그랬을까.”

“우리가 뭐 화염미천공을 알아? 뭘 봤어야 알지.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뭐. 그런데 난 이런 생각도 들어. 설마 명부판관이 없는 말을 지어냈을까? 하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성검문 무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성검문 무인들은 조금 전처럼 군웅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말하는 사람의 목에 검을 들이대지는 못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막으면 오히려 더 이상해진다. 정말로 성검문이 마공을 수련한 것처럼 되지 않나.

“말조심해라! 뭐가 아쉬워서 성검문이 마공을 수련해! 혓바닥 잘못 놀리면 목이 베일 수도 있어.”

성검문 무인들이 눈꼬리를 지켜 뜨며 쏘아붙였다.

“아, 네네. 말조심합죠. 충분히 조심해얍죠.”

실컷 떠들던 사람들이 기가 죽은 듯 어깨를 움츠렸다.

그런 사람들은 한두 명이 아니다. 적어도 삼사십 명이 이곳저곳에서 떠들어 댄다. 상당히 넓은 지역에 두루 퍼져 있지만, 일시에 같은 내용을 떠들었다.

“이럴 것 없이 거 앞에 계신 분들! 앞에 계신 분들은 무림 명숙 아닙니까! 성검문에 들어가셔서 마공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면 될 거 아닙니까! 우리는 뭐가 뭔지 보고도 모르겠지만 명숙들께서는 단박에 알아볼 수 있잖아요!”

“맞아! 성검문에는 당신들 문파 사람도 공봉으로 있잖아요! 알아보려면 지금 당장에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만히 있지 말고 알아봐 주시죠?”

군중들의 음성이 커졌다.

그들은 성검문뿐만이 아니라 혈무대 주변에서 싸움을 관전하던 무림 명숙들에게까지 화살을 돌렸다. 그들에게 성검문에 들어가서 명부 판관이 말한 대로 마공을 수련한 흔적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재촉하는 거다.

분뢰절맥이라는 마공은 매우 강맹하다. 그런 마공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수련할 수는 없다. 정말로 진개가 분뢰절맥을 손댔다면 반드시 흔적을 남겨놓았을 것이다.

“아미타불!”

허도기가 선보인 무공이 화염미천공이라고 증명한 운곡 선사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의 의심은 몇몇 충동질로 해서 점점 강도를 높여갔다.

허도기가 아걸을 압도했다면 이런 말은 싹 사라졌겠지만, 불행하게도 동패다. 같이 무너졌다. 이 말을 달리하면 오히려 허도기가 아걸에게 질 수도 있었다는 뜻이 된다. 아걸이 강한 것을 알았으니 마공의 힘이라도 빌렸을 거라는 뜻이다.

현재, 두 사람의 생사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혈무대에서 내려갈 때까지 두 사람 모두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은 것만은 확실하다.

“아미타불!”

운곡 선사가 결심을 굳힌 듯 불호에 진기를 실어서 외쳤다.

순간, 군중들의 웅성거림이 일시에 그쳤다.

운곡 선사가 군중을 돌아보며 차분히 말했다.

“지금은 성검문주께서 불행을 당하신 상태입니다. 생사조차 알지 못해서…… 그러니 지금은 누구도 성검문에 비례를 끼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도 문파는 단 한 톨의 의심도 해소해야 하는 것, 여러분의 의심은 성검문주가 깨어나신 후에, 빈도가 소림사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세상사에 관여하지 않는 운곡 선사가 큰 결심을 하고 말한 것이다. 한데,

“아니, 그럴 게 뭐 있어요? 성검문에 결례를 범하자는 게 아니고 진개의 방과 집무실, 그리고 연공실만 살펴봐 달라는 거잖아요? 그게 성검문주께서 쓰러진 것하고 뭔 상관이 있나요?”

“맞아! 그 정도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데 뭘 미룹니까!”

군중 속에서 당장 이의가 터져 나왔다.

“음!”

성검문 무인들의 눈초리가 싸늘해졌다.

민초를 충동질하고, 운곡 선사의 말에 즉각 반박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 그들은 각기 뚝뚝 떨어져 있지만, 약속이라고 한 듯이 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사전에 어떤 소란을 부려야 하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무인들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도 안다. 사전에 예행연습이라도 해놓은 듯하다. 아니면 각본을 짜놓았거나. 그러니 반박할 수 없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이다.

이 몇몇 사람은 분명히 민초가 아니다. 하지만 베거나 밀쳐낼 수도 없다.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은 허름하다. 무인이라는 표식을 철저하게 숨겼다.

“문주가 생사불명이라지만 성검문에는 총관이라도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러지 마시고 들어가셔서 살펴봐 주시죠? 명부판관이 괜한 누명을 씌울 사람도 아니고.”

“맞아. 여기 사람들 많을 때 보고 오는 게 낫지.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먼저 말을 한 자와 뒤에서 맞장구친 자는 서로 이십여 장이나 떨어져 있다. 한데도 앞선 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조한다. 정의감에 가득찬 음성으로.

“맞아! 그게 맞지! 그래야 일말의 의심도 없는 거지.”

“나도 동감. 솔직히 사람들 없는 데서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어떻게 알아!”

또 몇몇 사람이 맞장구쳤다.

군중 대다수는 침묵을 지킨다. 그들은 아직도 성검문을 믿는다. 솔직히 성검문주가 쓰러진 마당에 왜 명부판관이 주장하는 말을 떠드는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다.

군중들은 마공 운운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기까지 했다.

“살펴봅시다!”

“솔직히 아걸을 피했던 거 아니오. 그러면 마공인들 손대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고맙다. 이놈들아.’

아삼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떠드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적랑대 살수들이 사람들 속에 섞여서 미리 나눠준 대본을 풀어나가고 있다.

자칫하면 성검문의 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떠드는 대로 내버려 두지만, 군중이 해산하고 나면 무슨 횡액을 당할지 모른다.

그만큼 위험한 일을 해주고 있다.

허도기도 쓰러지고 아걸도 쓰러진 마당에 쓸데없는 선동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런 식으로 소란을 피워야 성검문 무인들이 아걸을 추격하지 못한다.

이곳에서 소란을 피울수록 아걸은 안전하다.

적랑대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몇몇 무림 명숙이 성검문에 들어가서 조사를 한다고 해도 마공 흔적은 찾지 못할 것이다. 허도기라면 이미 모든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그래도 계속 충동질을 한다. 소란을 피운다.

이 소란은 아걸이 일으킨 불씨다. 잠시 꺼진 듯하던 불씨를 되살려냈다.

아삼은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서 이런 방법을 짜놓았다. 하지만 이런 소란을 피우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떠들 때는 아걸은 이미 위험한 상태일 테니까.

그때, 아삼의 등 뒤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당신 애들 데리고 꺼져. 소란 피우지 말고.”

‘헉!’

아삼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놀랐다.

누군가 다가온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어떠한 기척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토록 가까이 다가와서…… 만약 비수를 찔러냈다면 여지없이 당했을 것이다.

아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온몸에 소름이 쭉 끼치고 있지만 애써서 감췄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지극히 태연하게 뒤를 돌아봤다.

‘사구정!’

예상은 했지만 역시 사구정이다. 그가 언제 다가왔는지 등 뒤에 서서 목청 높여 떠드는 적랑대원을 쏘아봤다. 정확하게 적랑대원만 골라서 쳐다봤다.

“깜짝 놀랐네. 오면 온다고 기척이나 흘리지.”

“경고했다. 꺼져.”

“그것참…… 조금 전에 허도기를 안고 들어가는걸…….”

“입을 조심해라. 공부님이시다. 또 한 번 공부님의 함자를 입에 담으면 여기서 네 목을 딴다.”

“거참 사람 딱딱하기는. 그려, 그려. 공부. 공부라고 하지 뭐. 조금 전에 공부를 안고 들어가는 걸 봤는데…… 공부는 좀 어때? 살 것 같아?”

“네 놈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거참 나이도 어린 사람이 늙은이한테 이놈 저놈 하기는.”

팟!

아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구정의 눈에서 살광이 번뜩였다.

‘이놈! 진심이다!’

아삼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거렸다.

사구정은 피를 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늑대다. 자신을 비롯한 소란을 피우고 있는 적랑대원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싶어 한다. 지금도 울분을 간신히 억눌러 참는 모습이 역력하다.

인내의 한계점이다.

여기서 한 번만 더 툭 건드리면 사구정의 인내가 무너진다. 검이 뽑힌다.

“가지. 가지 뭐. 마공이다 뭐다 어쩌고저쩌고하는 말들…… 알아서 하겠지. 간다고! 됐냐?”

“후후! 우린 곧 만날 거다.”

“뭐?”

“깨끗한 물로 목이나 씻어 놔.”

“뭐 이런! 그래도 이 늙은이의 목이 꽤 질기거든. 잘 안 떨어져. 요령껏 떨궈보라고.”

‘훕!’

아삼은 말을 마치면서 급히 숨을 들이켰다.

사구정의 손이 떨린다. 검을 뽑고 싶어서 미치겠는 모양이다.

‘여기서 더 건드리는 건 좋지 않아. 소란도 피울 만큼 피웠고. 얌전히 철수하지 뭐.’

아걸은 이미 비밀 가옥으로 건네졌다.

아걸을 무사히 건네받았다는 적랑대원의 신호가 있었다.

“끌! 이번에는 어떻게든 승부가 날 줄 알았는데. 공부야 살 만큼 살았으니 괜찮다고 해도 아걸 그놈은 젊은 나이에 안 됐어. 더 살아도 되는데.”

아삼이 남의 일처럼 말하며 일어섰다.

* * *

아걸은 목간통에 담겼다.

아삼에게는 천하제일의 영약이 있다. 녹선마황!

아삼은 아걸이 허도기에게 혈첩을 건넬 때부터 그가 배양하고 있던 모든 녹선마황을 끌어왔다.

그렇게 거둬들인 녹선마황이 목간통에 하나 가득 담겨 있다. 푸른 빛을 띤 거머리들이 목간통 밖으로 기어 나오려고 꾸물거린다.

아걸은 발가벗겨진 상태로 목간통에 던져졌다.

의원들은 점혈을 시도하지 않았다. 지혈산을 뿌리지도 않았다. 허도기에게 베인 그대로 녹선마황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고 녹선마황의 즙액을 몸에 뿌렸다.

촤아아악!

아걸의 몸에 녹색 즙액이 떨어졌다.

녹선마황의 즙액은 쩍 벌어진 상처 속으로 빠르게 흘러 들어갔다.

순간 붉은 핏물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하얀 거품이 게거품처럼 일어났다.

“이거 정말 용하네.”

녹즙을 쏟아붓던 의원도 예상 밖의 변화에 깜짝 놀라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손길은 늦추지 않았다. 바가지로 녹즙을 떠서 계속 아걸의 몸에 쏟아부었다.

피는 곧 멈췄다.

밖으로 나오려던 녹선마황들도 아걸이 던져지자 방향을 바꿔 아걸에게 달라붙었다.

녹색 거머리가 아걸의 몸에 난 모든 상처를 향해 파고들었다.

사각! 사각! 사각!

살을 뜯어 먹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정말 이대로 놔둬도 되나? 지혈이 금방 된 걸 보면 약효는 믿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난 꼭 이놈들이 살까지 뜯어 먹을 것 같아서 소름이 끼쳐.”

“살까지 뜯어 먹으면 뼈만 남겠지. 지켜보자고. 이것만 쓰라고 했으니까.”

비밀 가옥에 있는 의원들은 크고 작은 창상을 수없이 봐왔다. 하지만 이토록 심한 상처는 처음 봤다. 완전히 몸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한 상처가 이토록 빨리 지혈되는 것도 처음 봤다. 녹선마황이 꾸물거리면서 상처 속으로 파고드는 모습도 처음 봤다. 이것은 치료의 혁명이다.

의원들은 녹선마황의 즙액을 붓는 일 외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사실 이런 일은 아무나 해도 무방했다. 그래도 굳이 의원을 불러서 치료를 부탁한 것은 혹여나 있을지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걸이 검에 맞은 충격 때문에 죽을 수 있다. 출혈이 너무 커도 죽는다.

이런 모든 일에 대비하고자 의원을 불렀다.

“고비는 넘긴 것 같은데. 정신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의원들이 아걸의 상처를 자세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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