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八章 망거목수(網擧目隨) (4)
몽설은 문지방에 등을 기대고 서서 멍하니 아걸을 쳐다봤다.
아걸이 싸우는 모습을 그녀도 지켜봤다. 아걸 대신에 그녀가 싸우는 것처럼 긴장해서 주시했다.
그녀의 무공은 두 사람의 싸움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경지다. 두 사람이 어떤 내용으로 대치하고 있는지 모를 리 없다. 그러니 저절로 손에 땀이 쥐어진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함께 쓰러졌다.
몽설은 찰나의 격돌을 똑똑히 지켜봤다. 반철도와 장검의 흐름을 봤다. 만약 자신이 저 검을, 저 칼을 상대했다면 여지없이 몸이 갈라졌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다. 니환일검이 갈라지는 것 같은 환상을 봤다. 니환궁이 터져나가는 충격을 맛봤다. 두 사람이 쓰러지기 전에 그녀가 먼저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즉시 움직였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황열의 등을 떠민 것도 그녀다.
호황위 군주가 혈무대에 오르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아걸을 빼내 와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래서 황열의 등을 떠밀었다.
은거 무인들이 적위군의 기습을 방비할 때, 그녀는 아걸 곁을 지켰다. 마음이 얼마나 급했는지 취화원 살수들에게 지시를 내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직접 검을 들고 황열의 뒤를 쫓아서 비밀 가옥으로 들어섰다.
황열이 의원에게 아걸을 넘기고, 의원들이 아걸을 목간통에 밀어 넣은 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제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비로소 정확하게 인식되었다.
아걸이 쓰러졌구나.
보통 아낙 같으면 손발이 떨려서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다. 남편이 밖에 나갔다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오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펑펑 울기만 할 것이다.
몽설도 그런 심정이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냉철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아걸의 호위다. 아걸을 성검문의 포악한 칼날에서 지켜내야 한다.
“주변을 엄밀히 경계해.”
“네.”
일곡주 월영이 대답했다.
“쥐새끼 한 마리 스며들지 못하게 단단히 경비하겠습니다. 안심하고 상군을 지키세요.”
월영의 음성에는 울분이 깃들어 있었다.
허도기를 베기만 할 것이지 왜 검을 맞나. 왜 쓰러지나.
월영은 아걸이 당한 것에 상당히 분노한다.
“성검문 보고를 한 시진 간격으로 당겨줘요.”
몽설이 문지방에 등을 기댄 채 나직이 말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몽설 곁을 따르면서 연락을 담당하고 있던 사사가 대답했다.
취화원은 성검문 내부에 간자를 심어놓았다. 취화원이 독자적으로 심어놓은 비밀요원이 있다.
몽설이 호황위 군주가 될 무렵부터 취화원의 세력은 부쩍 커졌다.
단순히 관리하는 인원으로만 따지면 문도 십만을 자랑하는 개방과도 비교할 수 있다. 현재 취화원이 관리하는 인원은 십만 명이 훨씬 넘는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불쑥 커졌다.
모두 호황위 덕분이다. 호황위를 맡은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일국의 황제를 경호한다는 것은 그만한 권력과 돈이 쥐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몽설이 사사로이 챙긴 것은 없다. 하지만 취화원 총관이나 다름없는 오곡주 취운은 호황위가 누리는 권한을 이용해서 취화원을 강하게 육성했다.
현재의 취화원은 온전히 취운이 만든 것이다.
그 덕분에 성검문에도 간자가 스며 있다. 그는 한 시진에 한 번씩 성검문 상황을 보고해 올 것이다.
“상군의 칼이 깊이 박혔습니다. 허도기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데, 아직 의식불명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보고가 들어왔다.
그때까지 몽설은 문지방에 등을 기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한 시진 동안 꿈쩍도 하지 않고 문지방을 지킨 것이다.
“혼수상태…….”
몽설이 중얼거렸다.
혼수상태에 빠진 채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또 있다.
목간통에 누워있는 아걸.
녹선마황이 지혈했고, 상처를 빠르게 메꿔주고 있지만 위중한 것은 마찬가지다. 얼굴색이 하얀 분을 칠해 놓은 듯 새하얗다.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허도기도 아걸도 모두 위중하다. 누가 살고 누가 죽을까? 누구의 칼이 더 깊이 박혔나.
몽설의 심정을 이해하는 듯 의원들이 다가와서 말했다.
“고비는 넘겼습니다. 하지만 워낙 상처가 깊어서.”
자신 없다는 말투다.
“수고하셨어요.”
몽설이 차분하게 말했다.
고비는 넘겼다고 하지만…… 당장 죽을 위기만 벗어났다는 것이지 죽음에서 빠져나왔다는 말은 아니다.
아걸처럼 깊은 상처를 입으면 멀쩡하다가도 위독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멀쩡해 보여도 일다경 후에 급사할 수도 있다.
의원이 할 일은 없다.
의원도 어지간한 상처만 치료할 수가 있다. 아걸처럼 신의 손에 목숨을 맡긴 사람들에게는 해줄 수 있는 게 전혀 없다. 그저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주는 것이 고작이다.
“여긴 제가 보고 있을게요. 가서 쉬세요.”
“조금 더 있겠습니다.”
“여기 있어도 하실 게 없잖아요. 저 사람이랑 조용히 있고 싶어서 그래요.”
그 말에 의원들이 허리를 숙인 채 방을 빠져나갔다.
“훗!”
몽설은 피식 웃었다.
흔히 무림에 적을 둔 무인들을 가리켜서 도산검림(刀山劍林) 속에서 산다고 한다. 칼로 만든 산, 검으로 이루어진 숲에서 몸을 굴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말의 뜻을 온전히 깨닫는 무인이 몇 명이나 될까 의심스럽다.
아걸은 도산검림에서 산다.
이 정도면 이제 됐다 싶었다. 동영 두주를 패퇴시키고 이십사 위문 연합세력을 단신으로 물리쳤는데 세상에 무서울 게 뭐가 있나. 이제는 어떤 싸움이든 안심하고 보내도 되겠다 싶었다.
한데 상대가 허도기다.
그래도 어쩌면 이번에는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이 모양이다.
허도기가 혼수상태에 있다는 말은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는다. 아걸이 검에 베여서 쓰러졌고,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가슴 저며온다.
이것이 진실한 무인의 삶이다. 이것이 도산검림 속에서 산다는 말의 실체다.
천하제일검, 중원제일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허한 말이다.
중원제일도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것 같지만, 그에 비견할 만한 도검은 얼마든지 있다.
동영 두주만 해도 그렇다. 허도기가 동영을 끌어오기 전까지,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동영 두주라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아걸을 위협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너무 많다.
자신과 싸웠던 토족 쵸 디엔의 다오 푼 라야만 해도 그렇다. 얼마나 강한 칼이었나. 이 세상에 고수는 널려있다. 언제 어느 때든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될 수 있다.
‘이 정도면 됐다’하는 것은 없다.
“중원제일도라는 말이 이토록 허망한 줄은 몰랐잖아. 잠시 안심했는데, 이게 뭐야.”
몽설이 투덜거렸다.
그녀는 목간통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꾸물거리는 녹선마황을 손으로 집어서 아걸의 상처 부위에 얹었다.
웃기지 않은가. 낭군이 생사지경을 헤매고 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겨우 이런 것이라니.
“세외팔국 중 동영은 전멸했고, 남은 칠 국 중 거란, 여진, 서역이 패퇴했습니다.”
모두 조위 대장군과 대적한 북방세력들이다.
“남은 쪽은?”
“다른 곳도 염려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파악됩니다.”
사사가 전장 상황을 보고해왔다.
그녀는 이 소식을 취운에게 들었다. 그리고 취운은 전보영을 통해서 전장 상황을 전해듣는다.
조위 장군이 전쟁을 매듭짓고 있다. 중원에서 벌어지는 일과는 전혀 별개로 완벽한 군사작전을 통해서 변방 침입자들을 밀어내는 중이다.
몽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외칠국이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다. 조위 장군에게 패한 거란족, 여진족도 완전히 군사를 물린 것은 아니다. 단지 함곡관 싸움에서 패한 것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패퇴가 아니라 후퇴다.
모든 요건은 허도기에게 있다. 허도기가 다시 중심축이 되어 준다면 저들은 언제든지 밀고 올 수가 있다.
허도기가 이대로 무너질까 아니면 깨어날까.
허도기의 건강 상태에 따라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이상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세외칠국도 허도기의 양패동사가 상당히 난감할 것이다. 그들도 천하제일검이 이런 식으로 쓰러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을 거다.
모두가 아직은 관망 중이다.
변방에서 싸움이 적극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도 허도기의 상태를 지켜보는 중이기 때문이다.
“허도기는?”
“여전히 혼수상태라는 보고입니다. 쉽게 깨어나지 못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입궁해야겠네. 황상을 뵈어야겠어.”
몽설이 말했다.
호황위는 활동을 중지한 상태다. 말도 안 되는 모함에 휘말렸지만, 사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은 아니다. 취화원은 충분히 지탄을 받을 만하다.
취화원은 엄연히 살수 조직이다.
사람을 죽이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도 맞다. 없는 사실이 아니다. 사람을 죽이고 돈을 받는데 비판이 안 따를 수 없다. 그런 취화원으로 호황위를 구성했다는 것도 황제의 실수다.
“이제 물러갈 때인 것 같습니다.”
몽설이 말했다.
“질부, 그러지 않아도 돼. 설마 내가 질부를 보호하지 못할까.”
“변방 상황도 좋아졌고, 모든 일의 원흉인 허도기도 혼수상태입니다. 호황위도 제 자리를 찾아야죠. 호황위는 뿌리가 없는 존재, 사용처는 여기까지입니다.”
“아걸 때문에 그런가?”
“네. 제가 곁에 있어야겠어요.”
“아직도 그 상태?”
“네.”
“아걸 때문에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질부를 놓고 싶지 않은데. 후후!”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변방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허도기의 야욕도 꺾이는 중이다. 아직은 고관대작 중 상당수가 허도기에게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조만간 정리될 것이다.
황제를 암살하고자 하는 세력도 사라졌다고 판단한다.
이후에는 금군이 제 역할을 하면 된다. 관군에도 야수검 같은 사람은 많다. 금군을 제대로 이끌 사람을 찾아내서 제 자리를 찾게 만들어야 한다.
호황위는 임시방편이지 정통이 아니다.
“할 수 없네. 아걸 때문이라면. 질부, 수고했어.”
“아닙니다. 할 일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송구합니다.”
“보내긴 하는데 이대로 보낼 수는 없고…… 취화원에 면탈권(免脫權)을 주지. 사람을 죽여도 벌을 받지 않는.”
“폐하! 그러실 필요는…….”
몽설이 깜짝 놀라서 급히 말했다.
황제가 살수문파에게 면탈권을 주는 경우는 없다. 사람을 죽여도 벌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니, 이런 것이 세상에 나돌면 황제가 권위가 서지 않는다.
황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차피 취화원은 세상에 드러났어. 앞으로 많은 사람이 공격할 거야. 검으로 공격하는 것은 막아낼 수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막기 힘들어. 후후! 그리고 이곳에는 취화원을 좋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래도…….”
“질부, 더 말하지 마. 이 면탈권…… 양날의 칼이야. 잘못 쓰면 상당히 위험해져. 질부는 현명하니까 잘 쓰겠지. 쿨룩! 쿨룩!”
황제가 기침을 급하게 토해냈다.
“도공. 상서(尙書)를 불러. 교서를 내려야겠다. 향후 백 년간 취화원에 면탈권을 부여한다. 어떤 황제도 백 년 동안은 면탈권을 거두지 못한다. 후후! 이 정도면 됐지?”
“폐하!”
“후후! 참! 검은 전해주었고?”
소검을 말하는 거다. 호황위 군주가 될 수 있는 검.
“네.”
“아걸 반응이 궁금한데. 지금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뭘 시키려는 것은 아니야. 단지 검을 건네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상당히 궁금하더라고.”
“그냥 서랍 속에 넣었어요.”
“하하하! 하하하하! 그럴 줄 알았어.”
황제가 예상했던 답인 듯 통쾌하게 웃었다.
“그럼 저는 이만…….”
몽설이 일어섰다.
“질부, 수고했어. 가봐. 가서 아걸을 꼭 살려. 그리고 아걸이 깨어나면, 그때까지 내가 죽지 않았으면 차 한 잔 마시러 와. 그때는 친구로 차 한 잔 마시자고.”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공식적으로 호황위는 해산했다. 호황위에 부여된 모든 권한도 소멸했다. 황궁에서는 취화원 여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백살도축을 뒤쫓는 살수도 모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