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90화 (590/600)

第百八章 망거목수(網擧目隨) (5)

“허도기가 아걸에게?”

“네.”

“음!”

조위 대장군은 옅은 신음과 함께 털썩 주저앉았다.

일순, 팽팽하게 깃들었던 긴장감이 일시에 쫙 풀려나가는 듯 맑은 해방감이 찾아왔다.

허도기가 죽었다는 소식도 아니다. 단지 혼수상태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일 뿐이다. 그런데도 큰 혹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긴장감이 확 풀린다.

평생 숙적이었던 허도기가 이런 식으로 나가떨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걸이 기어이…… 후후!”

조위 장군은 아걸을 떠올리며 웃었다.

아걸과는 인연인가, 악연인가. 엄밀히 말하면 아걸과는 원수지간이다. 아걸이 자식을 죽였지 않은가. 혈무대 비무를 통해서 격살했지만, 어쨌든 죽인 것은 사실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죽인 원수와 웃으면서 지낼 수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단순한 논리가 아걸을 곁에 두게 했다. 그리고 아걸은 허도기라는 강적에게는 아주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병기였다.

결국, 그 병기가 허도기를 쓰러트렸다.

허도기가 아직 죽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상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가 절명했다면 바랄 나위가 없지만, 천하제일검이 누군가에게 가로막혔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하다.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것과 누군가가 막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천하제일검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이번 일로 생각을 크게 바꿀 것이다. 허도기에게 동조하여 군사를 몰고 온 세외칠국도 한동안은 꿈쩍하지 못할 것이다.

“저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나?”

세외칠국을 말하는 것이다. 세외칠국도 허도기가 쓰러진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모르니 소문을 퍼트려. 허도기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면전을 준비한다. 이틀 동안 소문이 충분히 돌게 한 후에 들이치자.”

조위 장군이 명령했다.

몽골, 거란만 밀어내면 여진과 서역은 저절로 물러난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된다.

이미 멸절된 동영과 함께 세외팔국 중 오 국이 패퇴한다.

그러면 남은 건 서쪽이다. 남만, 서장, 천축군이 남는데…… 그쪽은 원래 상대가 안 되었다. 또한, 그들과 대치한 장군들도 하나같이 명장이다.

출전 명령을 내린 조위 장군은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걸. 수고했어. 꼭 일어나고…….”

조위 장군은 쓰러진 아걸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원래 앞에서 찔러오는 칼보다 뒤에서 달려드는 비수가 더 무서운 법이다.

군마를 동원해서 싸우는 전투는 염려하지 않는다.

군사와 물자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지리도 저들보다 훨씬 잘 알고 있다.

내 땅에서 싸우고 있지 않나.

더군다나 조위 장군과 백만대군의 교두인 허도기가 손댄 군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병(强兵)이다.

다른 때 같으면 감히 이민족들이 침입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외팔국이 연합하는 일은 흔치 않지만, 설혹 그런 교감이 오갔다고 해도 지금처럼 군사를 일으켜서 정면으로 쳐들어온다는 것은 자살 행위다.

그렇다. 이토록 강한 군대를 누가 만들어 놨나? 두 사람이다. 조위 장군과 공부 허도기다. 조위 장군이 뼈대를 만들고 허도기가 살을 붙였다.

강한 무공과 교묘한 전술로 백만대군을 훈련시켰다.

군사들도 우두머리 두 명이 서로 싸우니 참으로 곤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민족에게 내 땅을 내주느니 차라리 어느 한쪽을 버리는 쪽을 택했다.

이민족을 끌어들인 허도기는 버림받았고, 자국의 안위를 택한 조위 장군은 선택받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임시방편이다. 외침(外侵)이 없는 상태에서는 다시 허도기와 조위 장군의 싸움으로 들어간다. 둘 중 한 명이 죽어야만 끝날 싸움이다.

이 싸움은 황상도 거들 수 없다.

황상이 허도기의 내심을 알면서도 가만히 내버려 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허도기를 믿는 마음이 너무 컸다. 두 번째로 지금 허도기를 치면 나라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이미 많은 관료가 허도기 편에 섰다.

물론 그들은 설득과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다.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이 걱정하는 것은 혼란을 부추기는 조그만 불씨다. 혼란은 혼란을 불러온다. 그리고 곧 난세로 이어진다. 나라가 망하는 길로 들어선다.

허도기는 그런 촉매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군대를 건드리지 않고 허도기와 대장군, 단 둘만의 싸움으로 몰고 갔다.

거기에 아걸이 나타나서 무림을 휘저으니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수밖에 없지 않나.

결국, 허도기를 무너뜨린 사람은 아걸이다.

아걸은 제 몫을 충분히 했다.

지금부터는 왜적을 쫓아낼 때다. 이제는 주변에서 기웃거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겠다. 전력으로 밀고 나가서 단시간에 싸움을 끝내야 한다.

“이제 끝났군. 공부,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만 누워계시게.”

조위 장군이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백만대군이 세외팔국을 밀어낼 동안만 누워있으면 된다. 저들의 중심축이 움직이지 않으면 싸움도 쉽게 끝난다.

이번 싸움만 끝나면 바로 황궁으로 돌아간다.

성검문을 방문해야 하나? 그래도 공부가 쓰러졌다는데 병문안은 가야겠지?

“말 먹이를 단단히 줘! 너희도 밥 든든히 먹고! 이게 뭐야! 병기는 항상 손질해 놓으라고 했잖아!”

군사를 다그치는 소리가 군막 안까지 들려왔다.

군사들도 허도기가 쓰러졌다는 말에 힘을 얻고 있다. 정반대로 절망하는 장병도 있겠지만, 조위 장군 휘하에 있는 군사는 힘을 얻는 편이다.

그들 모두 이제는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출전 준비가 끝났다.

부장과 장병이 점검을 끝내고 줄지어 섰다. 한쪽은 대산관으로, 다른 한쪽은 북쪽으로 더 올라가서 소관으로 치달릴 것이다. 그리고 이번 싸움도 확실히 이길 것이다. 병략(兵略)이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하게 짜였다.

“어쩌면 이것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군.”

장군은 칼을 들고 일어섰다. 그때,

슷!

등 뒤에서 아주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정말 뭐라고 할 수 없는…… 이것이 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의심쩍은 소리가 울렸다.

‘무슨……?’

조위 장군이 의아함에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

푹!

등 뒤로 비수 한 자루가 틀어박혔다.

“크윽!”

조위 장군은 짧은 비명을 흘렸다.

비수는 정확하게 갑옷 사이를 뚫고 틀어박혔다. 갑옷을 잘 알고 있는 자가 작심하고 칼을 썼다.

장군은 충격을 받고 두 손으로 탁자를 짚었다.

꾹! 꾸우욱!

등에 틀어박힌 비수가 꿈틀거리면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누군가가 군막을 찢고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을 암살했다.

비수에는 독이 발라져 있는지 싸한 느낌이 들면서 전신이 무력해진다. 입에서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독이 벌써 핏속으로 스며들었다. 체액까지 망가트리고 있다.

장군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려 흉수를 쳐다봤다.

흉수는 흑의를 입고 있다. 얼굴에도 검은 복면을 뒤집어썼다. 복면 사이로 두 눈만 반짝거린다.

“공부가 기어이!”

“공부의 칼이 아니다. 내 칼은 마유의 칼이다.”

흑의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마유? 훗!”

조위 장군은 피식 웃었다.

마유라면 무인이지 않나. 무인의 칼…… 허도기의 수족으로 생각되는 마유 마인의 칼이다.

이자가 허도기가 보낸 자객이라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당했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하 장군들이 보낸 자객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하 장군이 역심을 품고 보낸 자라면 매우 곤란해진다. 군부 내에 아직도 허도기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자가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런 것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죽어줄 용의가 있다.

이런 자객 한 명으로는 대세를 뒤집지 못한다. 공부가 쓰러진 이상 싸움은 이미 끝났다.

“마유 마인 따위가…… 감히 일국의 대장군을 암살하려 하다니. 그 대가는 목숨이다.”

스릉!

장군이 검을 뽑았다.

흑의인은 놀라지 않았다. 도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미 군막 주위로는 변괴를 눈치챈 장병들로 에워싸인 상태다. 비수에 찔리면서 흘린 짧은 비명 한 마디가 군막 밖에 있는 병사의 귀에 들렸다.

군병은 곧 군막을 에워쌌다.

부장 몇 명이 검을 뽑은 채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대장군이 손을 들어서 제지하지 않았다면 흑의인은 벌써 요절났을 것이다.

흑의인이 탈출할 길은 없다. 그런데도 이토록 태연한 것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는 뜻일 것이다.

암살자는 도주할 생각이 없다.

“역시 허도기가 보낸 자군. 적어도 이만한 배짱은 있어야 날 암살하지. 여기까지 기척 없이 스며든 걸 보니 마유에서도 대단한 위치에 있는 자인 것 같고. 뭐라고 부르나?”

“흑살이라고 한다.”

흑의인이 차분히 대답했다.

“지금 내가 펼치는 것은 대장군가의 검법이다. 잘 받아봐. 결코, 무림의 검에 뒤지지 않아.”

조장군이 뒤돌아섰다.

스릉!

흑의인도 검을 뽑았다. 그 역시 무공으로 맞서려는 거다.

이미 암살은 성공했다. 조위 장군의 얼굴은 새까만 흙빛이 되었다. 눈과 코와 귀에서는…… 얼굴에 있는 칠 공 중 육 공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독기가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조위 장군이 대장군가의 검법 대광팔법(大光八法)를 펼쳤다. 검속은 상상 이상으로 빠른데, 검선(劍線)이 간단하고 명확해서 오히려 느리게 느껴지는 이상한 검법이다.

흑인도 재빨리 허리를 낮추며 검을 휘둘렀다. 순간,

까앙!

두 검이 군막 안에서 부딪쳤다.

단 일 초, 흑의인의 검은 대광팔법에 막혔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에 흑의인의 검이 반 토막으로 뎅겅 분질러졌다. 대광팔법은 상당한 패검(覇劍)이었다. 검초보다는 용력(勇力)과 진기로 쳐내는 힘의 검법이었다.

조위 장군은 계속해서 흑살을 압박했다.

파파팍! 옆구리를 찍고, 쒜에엑! 위로 쳐들었다가 내리친 검으로 어깨를 찍고, 파라락! 빙글 휘돌면서 가로 벤 검으로 몸에서 머리를 떨궈냈다.

툭!

몸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가 군막 천정에 부딪힌 후, 바닥에 떨어졌다.

조위 장군은 용장이 아니고 지장이다. 직접 전투에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장군의 무공이 하수는 아니다. 대장군가의 검법은 매우 유명하다.

“장군!”

부장들이 급히 다가와 대장군을 부축했다.

“소란 떨지 마라.”

“장군! 상처가…….”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여한이 없다.”

“장군!”

“싸움을 끝내라. 이미 병략은 세워졌으니 그대로 진군시켜라. 싸워서 이겨.”

“알겠습니다. 싸움을 끝내겠습니다. 그리고 허도기 이놈을!”

“공부는 생각하지 마라. 잊어. 모두 잊어. 이제는 모두가 화합할 때다. 공부를 떠올리면 공부 곁에 있던 사람들과 다시 적이 된다. 그래서는 안 돼. 모두 형제다.”

“알겠습니다. 장군!”

“후후! 이제야 아들 곁으로 가겠구나. 경호, 그놈이 혈무대에서 죽었을 땐 아걸을 내 손으로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후후! 아걸의 도움을 이렇게 크게 받을 줄이야.”

툭!

조위 장군이 고개를 떨궜다.

* * *

흑살의 암살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흑살이 움직이면 어둠만 깃든다. 그래서 흑살이다.

흑살이 세상에 나온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마유가 쓸 수 있는 흑살이 많은 것도 아니다. 겨우 열 명이 한계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면 반드시 죽는다.

“조 장군을…… 성공했구나. 흑살. 후후!”

사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데 공부가 쓰러졌다. 쓰러져서는 안 될 사람이 쓰러졌다. 공부가 내린 명령을 쫓아서 대장군을 암살했는데, 정작 명령권자가 쓰러졌으니…….

흑살은 자신의 명령을 쫓아서 조 장군을 죽였다. 그러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 쓰러진 사람의 명령을 쫓아서 황제를 죽여야 하나?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사령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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