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홀도-591화 (591/600)

第百九章 유니몰아(有你沒我) (1)

[네가 있으면 내가 없다. 병존하지 못한다]

번쩍!

섬광이 터졌다. 그리고 어둠이 반으로 쫙! 갈라지면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흑!”

허도기는 묵은 숨을 거칠게 토해내며 눈을 떴다.

“흐윽! 흡!”

입에서는 절제되지 않은 호흡이 연신 쏟아져 나왔다.

파팟! 퍼억!

섬광이 또 터졌다.

눈앞에서 번뜩이는 칼날이 그려졌다. 칼이 날아온다. 태산을 일시에 반으로 쫙 갈라버릴 듯한 기세로, 집채만큼 거대한 칼이 몸을 쪼개 온다.

“하악!”

허도기는 가슴 깊이 묵혀놨던 숨을 한껏 쏟아냈다. 그리고,

“훗! 허허!”

그는 뜻밖에도 실소를 흘렸다. 일부러 웃으려던 게 아니다. 실소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베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거였나? 이게 칼에 맞는 느낌인가?

“아프군. 아파. 좋은 느낌은 아냐.”

허도기는 천장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손에 검을 잡은 이후, 처음으로 몸이 갈리는 아픔을 겪었다.

무림에 몸을 담고 살면서 이토록 처절하게 당해보기는 처음이다. 여섯 살에 검을 잡았으니 무려 오십 년 이상을 도산검림 속에서 살아왔다.

상당히 오랫동안 살인 병기를 옆에 끼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동안 단 한 번도, 단연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칼이 몸을 가른 적은 없었다. 수련 중에 몇 번 스친 적은 있지만, 그 외에는 어떤 칼도 몸에 닿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칼이 몸에 닿아? 어림도 없다. 허도기는 칼에 베이는 것은 고사하고 패배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오십 년 이상을 항상 이기면서 살아왔다.

딱 한 번, 일홀문주에게 처절하게 패한 경험이 있다.

말은 처절하다고 하지만 이것은 마음의 문제일 뿐 몸의 문제는 아니다. 일홀문주의 칼은 조명십해를 거두는 데서 그쳤다. 지금처럼 칼이 몸에 닿지는 않았다.

다만 일홀도가 조명십해를 너무도 무참하게 갈라버렸기에 처참하다고 하는 것이다.

조명십해가 일홀도보다 약한 것은 아니다. 형이 뻗어내는 조명십해는 능히 일홀도와 맞설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조명십해가 약한 것이다.

조명십해가 최강 무학이라는 확신은 있다.

그런데 자신의 집 앞에서 너무도 처참하게 몸이 갈라졌다.

“아걸…… 후후!”

허도기는 아걸을 떠올렸다.

아걸은 어느새 일홀도를 완벽하게 수련해냈다.

어떤 칼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중원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칼을 가지고 나타났다. 볼품없는 반철도가 천하를 반으로 갈라버리는 거대한 대도가 되었다.

아걸의 반철도에 비하면 자신의 검은 실낱같다고 느껴졌다.

반철도가 광풍폭우를 일으키면서 달려나간다면 자신의 검은 반철도 빌붙어서 간신히 뒤따라간 쥐새끼 같은 꼴이라고 할까? 힘으로는 상대가 안 되고, 간신히 빠름으로 버텨냈다.

아걸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허도기에게 일홀도는 하늘로 떠올라 몸뚱이로 찍어누르는 고래였다.

십 성에 이른 직격운소였다. 더는 수련할 검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데 그런 검으로도 반철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면 앞으로는 일인자 자리를 반철도에게 내줘야 하나?

이번에도 일홀문주에게 패했을 때와 같은 생각이다.

조명십해가 약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부족했던 탓이다. 조명십해는 약하지 않다.

덜컹!

문이 열리면서 사구정이 들어왔다.

사구정은 눈을 뜨고 있는 허도기를 보고 재빨리 달려와 안색을 살폈다.

“깨어나셨습니까?”

사구정이 침착하게 물었다.

“아걸은?”

허도기가 외인에게 말한 첫마디다.

“황열이 데리고 사라졌는데,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방을 막아섰으니 멀리 도주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살았군.”

“살기는 힘든 상처였습니다. 죽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위장군의 판단인가?”

허도기는 전장에서 백 전을 치른 경험 많은 장군의 안목을 물었다. 무인이 아니라 군인의 감각으로 아걸의 생사를 말하라는 뜻이다.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낀 것을.

“그렇습니다. 도저히 살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습니다.”

사구정이 자신 있게 말했다.

“오장육부 중 찢어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심한 상처였습니다. 살기 힘듭니다.”

“살았을 거야.”

“네?”

“내가 살았으니까 아걸도 살았겠지.”

허도기가 중얼거렸다.

하늘을 가르는 벼락! 그 벼락을 맞고도 살아났다. 하물며 그 벼락 뒤를 간신히 뒤쫓아간, 볼품없고 힘없는, 실낱같은 검에 당한 자가 죽었겠나.

“살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걸을 찾지 못했다고?”

허도기가 뒤늦게 사구정에 말에서 꼬투리를 잡아냈다.

“네.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적랑대가 성검문의 경계망을 뚫었군. 성검문은 어느새 적랑대에게도 잡아먹혔어.”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깔끔하게 수습하겠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사구정이 자신 있게 말했다.

성검문 안에 스며든 간자를 모조리 색출해 내겠다는 거다. 그리고 이미 그 일은 어느 정도 진행된 듯하다. 사구정이 자신감을 드러낼 때는 이미 일이 완성되었다고 봐도 된다.

적랑대가 성검문의 추격을 가볍게 따돌릴 수 있었던 것은 추격 내용을 환히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검문이 어디로 쫓아올지 알고 있었다는 거다. 성검문 내부에 간자를 심어 놓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성검문 내부만 정리하면 같은 입장이 된다. 성검문도 적랑대도 서로 누가 어디서 덤벼들지 알지 못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진짜 실력이 나타난다.

성검문이 적랑대 따위에게 뒤질 리 없다.

“내가 이 상태로 얼마나 있었지?”

허도기가 물었다.

“이십여 일쯤 지났습니다.”

“이십일? 이십 일 동안 이러고 있었다고?”

“네.”

“후후!”

허도기가 웃었다.

가벼운 상처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십 일이나 누워있을 정도로 심했나.

“쉬고 계십시오. 바로 의원을 데려오겠습니다.”

사구정이 일어섰다.

허도기는 일어서는 사구정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소축. 소축으로 가자.”

“네? 무슨 말씀을?”

“나를 소축으로 데려가. 소축에 있고 싶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소축은 엉망이라서 거주하기 힘드십니다. 바로 준비를…….”

“지금 당장. 먼지가 피어나도 좋고 곰팡이가 날려도 상관없다. 침상이 없어도 괜찮아. 수축으로 가자.”

사구정이 허도기를 쳐다봤다.

진심인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모실 준비를 하겠습니다.”

허도기는 진심이다. 지금 당장 소축으로 가고 싶어 한다. 아걸에게 무너진 충격이 작지 않은 듯하다.

허도기가 소축으로 가려는 의미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소축은 모든 일의 출발선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뜻한다. 원점(原點). 허도기는 지금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다.

사구정은 허도기의 마음을 읽었다. 그래서 묵묵히 그래서 바로 준비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저기…… 아닙니다. 곧 준비하겠습니다.”

사구정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밖으로 나갔다.

허도기는 사구정을 붙잡지 않았다.

사구정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 세외팔국에 관한 말일 것이다.

어떤 내용인지도 짐작한다. 동영을 제외한 세외칠국이 형편없이 물러나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짐작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십여 일 동안이나 누워있었다면 세외칠국은 통제력에서 벗어나 자발적인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들도 이미 허도기가 쓰러졌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는 소리는 시시각각으로 전해 들을 거다.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하루, 이틀, 사흘……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허도기는 깨어나지 않는다.

이미 중원 공략은 틀렸다. 허도기가 황상이 될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다. 황제를 암살하는 계획도 무너졌다. 유음류, 토족 전사…… 모두 무너졌다. 더욱이 조위 대장군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거침없이 치고 들어온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세외칠국은 흔들린다. 그들은 마냥 병사를 대기해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지금은 세외칠국 모두가 거병한 상태이기 때문에 안에서 치고 나오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세외칠국이 뿔뿔이 흩어지면 그때부터는 바로 징벌을 당한다.

지금이라도 군사를 물려야 하나? 중원의 눈치를 살펴야 하나?

혼수상태 이십 일.

통제권을 잃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아걸은 이겼더라면…….’

뒤늦은 후회가 치민다.

지금쯤 조위 대장군은 죽었을 것이다. 흑살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죽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목적을 달성한다. 황상도 죽는다. 사령이 직접 나섰다면 시간 차이는 있어도 죽을 수밖에 없다. 세상은 모르지만, 흑살보다 완벽한 살수가 사령이다.

황위가 비었다. 중원 안쪽에 텅 빈 공간이 만들어졌다.

세외칠국의 통제권만 잃지 않았더라면…… 백만 대군은 그들을 견제하느라 안으로 운집할 시간이 없을 것이고, 자신은 느긋이 황궁을 접수한 후에 왕좌에 앉기만 하면 된다.

잔칫상이 잘 차려졌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아걸에게 베이는 순간, 조카들을 베고 성검문을 차지하기 전의 상태, 소축에 머물던 때로 돌아갔다.

천하제일검이란 명성은 이미 금이 갔다. 자신을 따르던 군벌(軍閥)도 육 할에서 칠 할은 떨어져 나갔다. 성검문의 위명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아걸에게 베이는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소축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무림에서 사는 게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좋은 점도 있다.

무림은 무공으로 말하는 곳이다.

무공만 강하면 모든 것을 일굴 수 있다. 한낱 촌부에서 일약 성검문의 문주가 될 수 있는 곳이 무림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소년이 거상이 되기는 힘들지만, 아무것도 없는 소년이 초고수가 되어서 무림을 활보할 수는 있다.

거상이 되는 것은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된다. 운도 따라야 한다. 하지만 무공의 세계는 죽을힘을 다해서 수련만 하면 된다. 자질? 자질은 아주 조금만 도움이 된다. 절대적이지 않다.

허씨가 용맥을 타고났다고? 그것도 남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하는 말일 뿐이다.

자질은 노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허씨 가문이 강한 것은 그만큼 많은 수련을 했기 때문이다. 조명십해가 다른 무공보다 강한 것은 남들이 한 시진 수련할 때 허씨 가문은 세 시진, 네 시진을 수련해서다.

허씨 가문 아이들은 일곱 살 무렵이면 이미 손바닥 살갗이 벗겨지는 경험을 갖는다.

검을 너무 많이 휘둘러서 손바닥이 벗겨져 나간다.

물론 그 전에 손바닥 마디마디마다 굳은살이 배긴다. 굳은살이 벗겨지고 또 입혀지고…… 그런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한 끝에 손바닥 가죽이 벗겨지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일곱 살에 처음 겪는다. 대체로 여섯 살에 검을 잡아서 일곱 살이면 이미 만고(萬苦)를 겪는다. 다른 문파 무인들은 열 살이 넘어서야 겨우 손바닥에 굳은살이 맺히기 시작한다. 열서너 살은 지나야 손바닥 거죽을 갈이한다.

엄청난 차이다.

일곱 살과 열서너 살, 거의 곱절 차이다.

그 차이가 조명십해를 천하제일검으로 만든 것이다.

허도기는 조명십해에 대해서 확신이 있다.

이번에 자신은 직격운소를 완벽하게 수련했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뭔가가 부족했다. 그러니 아걸에게 밀린 것이다.

힘이 부족했나? 그러면 진기를 키워야 한다. 검이 느렸나? 초식을 다시 수련해야 한다. 진기와 거의 조화도 중요하다. 몸과 검, 어느 한쪽만 따로 놀아도 곤란하다.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최상의 검, 천하제일검이 터진다.

이번에는 조금 부족한 점이 있었다.

소축에서 조명십해를 다시 수련해야 한다.

아걸은 살아있다. 확신한다. 그리고 아마도 곧 아걸과 다시 부딪힐 것이다.

“다시…… 다시 시작하면 되지.”

허도기가 중얼거렸다.

일홀문주에게 패한 후, 소축 생활을 시작했다.

조카와 일홀문주를 베고 성검문주를 얻었다. 그리고 초라한 소축을 떠났다.

그때, 두 번 다시 이런 거지 같은 곳으로 돌아올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번데기를 깨고 나온 나방이 다시 껍질을 찾는 일이 있던가? 없다. 탈피하고 나면 옛집은 새카맣게 잊는 게 상식이다. 곁눈질조차 하지 않는다.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아걸은 쳐낸 칼, 그 칼을 부숴야 한다. 그리고 이미 머릿속에는 광풍폭우를 잠재울 검이 떠오른 상태였다. 남은 것은 수련뿐이다. 천하제일검이 하는 수련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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