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九章 유니몰아(有你沒我) (4)
조위 대장군이 죽었다. 오랫동안 지겹도록 으르렁거리던 숙적이 드디어 세상을 떠났다.
솔직히 아무런 느낌도 없다. 지금에 와서는 대장군이 죽었든 말든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저 알고 있던 사람 중에 또 한 명이 세상을 떴구나 하는 느낌뿐이다.
대장군은 죽으면서도 세외칠국을 밀어냈다.
그 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아걸의 칼에 맞아서 쓰러지는 순간에 자신의 모든 계획은 종말을 고했다. 쓰러지기 이전에 만들어 놓았던 모든 계획과 운명이 산산이 흩어졌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황제가?”
허도기는 눈을 번쩍 떴다.
황제가 살아있다? 황제가 살해당하고, 황권이 이미 태자에게 넘어간 줄 알았는데…… 그 일 때문에 세상이 발칵 뒤집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있어?
황제를 암살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사령!’
허도기는 퍼뜩 사령을 떠올렸다.
사령이 겁에 질려서 황상을 암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령은 흑살에게 대장군을 암살하라고 명령했다. 그즈음에 사령 자신도 황궁으로 잠입할 계획을 세웠다. 이미 목숨을 내던졌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황상이 살아있다는 것은…….
“그렇군. 후후후! 하하하하!”
허도기는 기분 좋게 웃었다.
사령은 암살 직전에 혈무대 소식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공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그래서 암살을 미뤘다. 공부가 원하는 것은 멀쩡한 상태에서 황제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판단했기에.
그러니 황제 암살은 자신의 건재함을 드러내는 순간에 다시 진행될 것이다.
사령의 발 빠른 판단 덕분에 스러졌던 계획이 원위치로 돌아왔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이지. 하하하! 적위장군!”
“넷!”
사구정이 부복하며 대답했다.
“장군들을 살펴봐.”
“네? 아! 네.”
“우리 쪽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급변이 일어날 경우 나와 함께 거사를 치를 동지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해.”
“알겠습니다.”
사구정이 대답했다.
“변심한 자들은 변심한 대로 추려놓고, 적은 적대로, 아군은 아군대로 추려. 언제까지 될까?”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넉넉잡아 십 일이면 가능합니다.”
“사령과 연락은?”
“누구하고도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하하하!”
허도기는 또 웃었다.
사령은 이미 황궁에 잠입해 있다. 자신이 말해준 암살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황제에게 닿는다. 모르긴 해도 지금쯤 황제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분명하다. 자신이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황제의 목은 떨어진다.
지금 모습을 드러낼까? 아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완벽하게 뒤집는 것이 좋다. 모든 상황을 다시 점검하고, 미비한 부분을 보충할 시간이 충분하다.
조정세력은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권을 쥔 후에 흔들어도 무방하다.
무력을 쥔 자, 군대가 문제다. 그들이 요동치면 안 된다. 그러니 일단 군부 내에 내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건재함을 드러냈을 때 반심을 유지하고 있는 장군이 절반만 되어도 승산이 있다.
황제가 죽고 태자가 즉위하기 전에 수렴체제를 완성한다. 그리고 공부의 자격으로 수렴에 들어간다.
“십 년을 기다렸는데 열흘을 못 기다릴까. 바로 파악해.”
“네!”
사구정이 대답과 동시에 즉시 물러났다.
허도기는 검을 잡았다.
슛! 팟!
십 성에 이른 직격운소가 터졌다. 아걸을 벤 바로 그 검이다.
이 검을 더욱 깊게 파고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나?
황제를 죽고 수렴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아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아걸 같은 무인 나부랭이와 맞대면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하하하하!”
허도기는 크게 웃었다.
혈장(血掌)을 찍은 장군만 이천사백 명이다.
소장(小將)을 제외한다고 해도 서른일곱 명의 장군이 충성을 맹세했다. 공부가 황궁에 입궁하면 즉시 모든 군사를 동원해서 지원하기로 했다.
그들 모두에게 의향을 물을 필요는 없다.
한 사람,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郞) 여기찬(呂技璨)에게만 연락하면 그가 네 명의 의향을 물을 것이다. 네 명 중 변심하지 않은 몇 명이 최종적으로 서른일곱 명의 장군과 접촉한다.
최후의 순간, 변절자 방지를 위해서 마련해 놓은 비밀유지 수단이다.
이것을 쓰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부가 혈무대에서 쓰러지는 순간, 반정은 물거품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수단이 다시 가동될 줄이야.
“끼럇!”
사구정은 말을 재촉해서 초도성을 빠져나갔다.
당장 내일이면 병부우시랑 휘하의 관원 네 명의 의중이 파악된다.
그들에게는 자신들만의 복심(腹心)이 있다. 그들을 통해서 변방에 나가 있는 장군들과 접촉할 것이다.
모든 연락수단이 총동원될 테지만, 즉답을 피하는 자도 있을 터이니…… 그런 자들에게 이틀의 말미를 준다고 해도 칠일에서 팔일이면 모든 의견이 취합된다.
공부와 뜻을 함께하는 자도 있을 것이고 세외칠국과의 싸움을 통해서 마음이 돌아선 자도 있을 것이다.
누가 어떤 대답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공부가 건재하다는 사실은 숨긴다. 무림이 공부에게 이만한 예우를 갖추고 있으니, 만일 공부가 깨어난다면 너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선에서 의향을 묻는 것으로 그친다.
물론 눈치가 빠른 자는 그만한 질문에도 즉각 알아챌 테지만.
군부의 동요를 막아줄 장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들을 막지 못하면 반정에 성공하지 못한다.
‘진작 이런 방법으로 나갔어야 해.’
황제를 암살하지 않고 정권을 이양받는 방법은 없었다. 혁명치고 피를 보지 않고 끝나는 것은 없었다. 어떤 피든 반드시 흘려야만 한다.
공부는 너무 신중했다.
황상이 오음절맥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공부는 황상이 자연스럽게 죽기를 바랐지만…… 오음절맥에 기운이 차단당한 사람치고는 끈질기게 살고 있다. 또 언제 죽을지도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차선책을 끄집어낸 것이다.
외세를 빌려서 암살한다.
토족과 동영!
내부에서 암살당하는 것과 외세 세력에게 참살당하는 것은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황제가 동영 인자의 손에 암살을 당했다면 민심은 누가 왕이 되든 그에게 충성한다. 누구든 구심점을 만들어서 외세를 밀어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태가 안정된 상태에서 황제를 암살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민심은 암살자가 누군지에 주목한다. 이후에 왕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황제를 암살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힘 있는 자, 군부를 지지한다.
허도기는 이런 점을 생각했기 때문에 황제를 암살하지 않은 것이다.
한 마디로 지금 행하고자 하는 방법은 최악의 수단이다.
자칫하면 변방 장수 중에 군대를 휘몰아오는 자도 있을 수 있다. 아니, 틀림없이 그런 자가 있다.
그때, 공부 편에 선 장군들이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큰 혼란에 빠진다.
사구정은 반정에 자신 있었다.
“끼럇!”
말을 모는 손길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 있는 일을 행할 때는 이렇게 즐거운 것을.
‘응?’
사구정은 관도로 걸어오는 한 사람을 주시했다.
말이 달려가는 앞쪽에 한 사람이 보였다.
커다란 방갓을 눌러쓰고 허리에는 검을 찬 여인이다. 한데 몸에서 풍기는 기도가 예사롭지 않다. 마치 거대한 검이 걸어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두두두두!
사구정은 말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여인이 두렵지는 않지만 충돌할 생각은 없다. 시비가 걸리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여인에게서 뚝 떨어진 반대쪽 길가로 말을 몰았다. 한데,
쒜엑! 쒜에엑!
느닷없이 여인이 검을 뽑더니 말을 쳐왔다.
히히힝!
말은 여지없이 다리를 베이면서 고꾸라졌다.
사구정은 이런 일을 예상한 듯 말 안장으로 올라서더니 사뿐하게 허공으로 도약했다.
“누구…… 응?”
사구정은 땅 위에 내려선 후에야 상대가 누군지 알아챘다.
‘취화원주?’
방갓을 눌러쓴 여인은 취화원주 몽설이다.
이 여자가 왜 여기 있나? 자신을 노리고 나타난 것인가? 아니다. 자신도 오늘에서야 문주의 명을 받았다. 자신이 초도성을 나설 것이라는 점은 천신도 예상하지 못한다.
“선자불래(善者不來)라. 날 노리고 온 건가?”
스릉!
사구정이 검을 뽑으며 말했다.
“아니. 지나가는 길.”
몽설은 태연히 검을 들어 올렸다.
“정말 우연인가?”
몽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검문 사람하고 우리는 공존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만났을 때 당신 같은 사람을 베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그렇다면 내가 재수가 없는 날이군.”
스읏!
사구정이 검을 들어 올렸다.
혈검은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다오 푼 라야를 물리쳤고, 동영 유음류의 정수도 깨트렸다.
몽설의 혈검은 일홀도만큼이나 강하다.
“언니, 먼저 가요.”
몽설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길가에서 작은 움직임이 일어났다. 인영 두 명이 빠르게 앞쪽으로 질주한다. 초도성 쪽이다. 확실히 자신을 만난 것은 우연인 것 같다.
“문주님을 노리나?”
사구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언질 좀 줘. 공부는 멀쩡해?”
“하나만 말해주지. 너희, 성검문에 들어가면 살아나오지 못해. 하하하!”
사구정이 웃었다.
그는 몽설이 나타난 이유를 짐작했다. 턱도 없는 짓을 저지를 생각이다. 감히 문주를 노리다니. 성검문에 들어가서 공부가 깨어난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쉽지만 놀란 표정은 여기서 봐야겠어. 내 검에 베였을 때의 표정이 보고 싶군. 후후!’
파앙!
사구정은 검에 진기를 투입했다.
사구정의 진신 검학은 사접비검(死蝶秘劍)이다.
그렇다. 마검(魔劍)이다. 고금(古今) 삼대마검(三大魔劍)으로 일컬어지는 절대 마검이다.
이 사실은 공부도 알지 못한다.
공부에게 조명십해를 남김없이 하사받았지만, 늘 무엇인가 부족했다. 마치 중요한 요결 하나 정도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조명십해를 아무리 열심히 수련해도 공부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사구정은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온 세상을 뒤진 끝에 사접비검을 찾아냈다.
츠읏!
진기를 끌어내어 검에 주입한다. 원정진기(元精眞氣)까지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순간, 검이 실낱같이 가늘어졌다.
철검 자체는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구정의 의식 속에서는 검이 아주 가느다란 철사로 변해있었다.
검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정도로 가볍다.
사구정은 눈을 감은 채 심안(心眼)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검이 보인다. 검 끝에 몽설이 있다. 검과 몽설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인다.
사구정은 크게 바람을 모아서 입김을 불어냈다.
순간 그가 들고 있던 검이 입김에 날려 훌훌 허공을 날아갔다.
싸아아앗!
검이 날아온다.
완벽한 검신일체, 검과 몸이 하나가 되어서 쏘아져 온다.
사구정의 검은 깃털처럼 가벼워 보인다. 검이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서 날아오는 것 같다. 눈으로 검을 대했다면 ‘이토록 가벼운 검이!’ 하면서 방심했을 것이다.
영혼의 검, 니환일검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한다.
사구정의 검은 마주쳐서는 안 된다. 검에 퉁겨나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검이 닿는 순간에 뱀처럼 휘감아올 것이다. 검이 아니라 질기디질긴 가죽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니환일검의 판단이다.
검으로 깃털을 가른다!
깃털이 날아오는 속도보다 두 배는 빠르게 검을 쳐낸다. 그래야만 갈라진다.
‘일검무회!’
검을 쳐낸 후, 돌아보지 않는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검만 주시한다.
쒜엑! 쒜에엑!
검이 날아갔다.
니환일검은 훌훌 날아오는 깃털을 정확히 둘로 갈라냈다.
풀썩!
사구정이 쓰러졌다.
“이게 혹시 사접비검?”
마검 사접비검, 적을 베지 못하면 자신이 갈라지는 죽음의 비검.
동영 부주와의 싸움에서 일검무회의 진수를 깨닫지 못했다면 이길 수 없는 검이었다.
사접비검이나 혈검이나 완벽한 검신일체를 이뤄냈다.
검공은 평수(平手)다.
다만 사접비검은 환법에 주를 두었고 혈검은 쾌속에 주를 두었다.
쾌가 변화에 사로잡히면 몽설이 죽었다. 빠름이 변화를 베면 지금과 같이 된다.
간단한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몽설이 이겼다.
이 상황은 언제든지 역전될 수 있다.
실같이 가느다란 차이, 그 한끝의 차이가 상황을 바꿔놓는다.
몽설은 부르르 치를 떨었다.
허도기와의 싸움이 이럴 것이다. 눈에는 드러나지 않는 실낱같은 차이로 자신이 베일 것이다. 아걸이 베인 것처럼.
아걸은 검을 맞은 후에도 칼을 들이밀었지만, 자신은 그러지도 못할 것이다. 사구정이 허무하게 쓰러졌듯이, 자신도 반격을 가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가야 해.’
몽설은 관도를 따라서 걸었다.
월영과 화요가 길을 열고 있다. 아마도 내일이면 허도기가 죽든 자신이 죽든 승부가 결정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