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十章 아(哦)! 일홀도(一忽刀)! (1)
하늘이 참으로 이상했다. 아니 구름이 이상했다. 솜을 얇게 펴서 잔뜩 늘어놓은 거 같다. 구름이 한 뭉텅이씩 뭉쳐 있는 것이 아니라 온 하늘에 걸쳐서 넓게 퍼져 있다.
하늘에 형성된 구름이 전부 연결되어 있다.
‘재미있군.’
허도기는 입가의 미소를 머금었다.
오랜만에 하늘을 봤다.
공부에 머물 적에는 하늘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가하게 하늘이나 보고 있을 틈이 없었다.
‘바쁘게 산 것 같지는 않은데…… 하늘 볼 틈도 없었나?’
그래도 성검문에 들어오니 하늘을 볼 여유가 생겼다. 확실히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나? 칼을 손에 잡았으면 평생 무림에서 칼밥을 먹어야 하나.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것인데…… 성검문에 앉아 있자니 참으로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곳이 성검문이다.
하지만 허도기는 마냥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수 없었다. 사실은 지금이야말로 하늘을 볼 여유가 없었다.
상황이 무척 빠르게 돌아간다는 사실이 몸에 느껴졌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옆에서 자꾸 건드리는 느낌? 햇병아리가 호랑이 수염을 간질이는 느낌이다.
사구정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병부우시랑 우기찬에게 달려가고 있어야 할 사구정이…… 아니, 지금쯤 뭇 장군들의 마음속을 탐지하고 있어야 할 사구정이 차디찬 시신이 되어서 실려 왔다.
검을 맞고 길에 엎드려져 있었단다.
- 여자, 여자예요.
- 어휴! 검이 어찌나 빠르던지. 두 사람이 후다닥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는데, 그만 이렇게…….
- 얼굴요? 못 봤죠. 커다란 방갓을 쓰고 있어서. 하지만 이분은 아는 것 같던데. 몇 마디 말까지 주고받았거든요.
사람 발길이 빈번한 관도 한복판에서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에 지켜본 사람이 많다. 목격자가 다수다. 하지만 여인이 큰 방갓을 쓰고 있어서 얼굴을 본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여인을 짐작하지 못하겠나.
몽설.
몽설이 사구정을 베었다. 방갓 때문에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당금 무림에서 일 대 일 승부로 사구정을 벨 수 있는 여인은 몽설밖에 없다.
뭇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사구정이 어떤 식으로 쓰러졌는지 전해 들었다.
조명십해가 아니라 마검 사접비검이었던가.
‘사구정. 너마저도. 후후!’
허도기는 쓴웃음을 흘렸다.
실망, 포기, 경멸…… 이런 감정들이 묻어있는 웃음.
이러한 웃음을 흘리자, 마음이 한가로워졌다. 비로소 넓게 퍼져 있는 구름을 쳐다볼 수 있었다.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정을 쏟아부은 제자는 누가 뭐래도 소축십검이다.
성검문의 검공 조명천검은 비공(秘功)이 아니다. 무림에 널리 알려져 있다. 허도기 자신이 수만 명에게 가르쳤으니 이미 무림에 공개된 검공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조명천검을 간략하게 추려서 재정립한 정천검법을 전수했다.
성검문 무인들에게는 제대로 된 조명천검을 전수했다. 그중에서도 자질이 탁월하다 싶으면 아낌없이 조명십해를 나눠주었다. 비공이니 일인비전이니 하면서 숨긴 것이 없다.
정말로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제자라고 하면 역시 소축십검이다. 그들 열 명과는 기숙을 함께 하면서 온 힘을 다해 조명십해를 전수했다.
조명천검을 천검(天劍)으로 만들어주는 열 가지 무리.
그중에서 어떤 것을 받아들일지, 어떤 부분에서 재능을 드러낼지는 허도기도 모른다. 그것만은 각자의 몫이다. 자신 스스로 개발해내야 한다.
검을 빨리 쳐낼 수 있는 자에게 은장재계이살을, 칼 속에 변화를 숨기라고 가르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재질과 무리가 뒤엉켜서 무척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칼을 빨리 뽑을 수 있는 자는 일사검광을 가르친다. 신법이 빠른 자는 사령귀변을 배우면 좋다. 집중력이 뛰어나면 잠기일력타를 전수한다.
소축십검의 자질을 세밀히 파악하고 그들에게 적절한 검초를 전수했다.
그런데 소축십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 뭔가 비기 하나는 숨겨놓고 있겠지?
- 직격운소라고 들어봤어? 사부의 발검술이 왜 그렇게 빠른지 모르지? 그걸 직격운소라고 해.
- 우리에게는 언제 전수해줄까?
- 안 해줄걸? 그건 죽기 전에는 절대 물려주지 않을 거야.
소축십검은 사부가 뭔가 비기 하나는 숨겨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부가 죽는 날까지 그 비기만큼은 전수하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왜? 그들은 허씨가 아니라서. 성검문 핏줄이 아니기 때문에.
틀린 생각이다. 조명십해를 온전히 전수했다. 다만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그들이 말한 직격운소는 일사검광을 지나쳐야만 나타난다. 일사검광만 제대로 습득하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직격운소의 문고리를 잡게 된다.
직격운소를 전혀 모른다는 것은 일사검광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허도기와 소축십검 간의 이러한 생각 차이는 결국 소축십검을 버리는 계기가 된다. 소축십검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리고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죽었다.
군부를 휘젓고 다니면서 수많은 장수에게 조명천검을 전수했다. 그중 자질이 뛰어난 장수에게는 조명십해를 전수했다. 소축십검과 마찬가지다.
장수치고 무공을 모르는 자는 없다. 모두 무공에 재질이 있다. 그것도 매우 탁월하다. 하지만 조명십해에 가장 걸맞은 장수는 두 명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하원랑과 사구정이다.
그런데 그 두 명 역시 결국은 소축십검과 같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들은 조명십해가 온전하지 못하다고 봤다.
하원랑보다 사구정을 더 가까이 둔 이유가 사구정만큼은 조명십해를 온전히 수련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구정은 조명십해에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기재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조명십해를 버리고 사접비검이라는 마검을 취했던 것인가.
조명십해의 진수는 사접비검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가장 맛있는 떡을 손에 쥐여 주었는데도 다 먹지 않고 다른 떡을 훔쳐 먹었다.
조명십해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그렇게 이해가 안 되나?
“후후후!”
허도기는 하늘을 보며 웃었다.
이것이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다.
조명십해는 허씨 핏줄만, 용맥만 수련할 수 있다는 전설을 믿는 수밖에.
한 가지…… 자신의 계획이 아걸이 나타나면서부터 틀어진 것은 사실이다.
아걸이 소축십검을 베었고, 몽설이 하원랑과 사구정을 베었다.
이것도 우연인가? 무림 밥을 먹은 사람은 아걸에게 죽었고, 군대에서 데려온 자는 호황위 군주인 몽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연치고는 기막히다.
아걸과 몽설, 그들이 있는 한 편히 걸을 수 없다.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귀찮게 거치적거릴 것이다.
‘진작 지워버렸어야 할 장애물들…… 지금도 늦었어. 안타깝게 됐군. 더는 놔둘 수가 없어.’
허도기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걸과 몽설이 발버둥 치고 있지만 아직은 한 수 아래다. 자신의 발아래에 있다.
아직은 세상이 아름답다.
그르르릉!
허도기는 밀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밀실 안에는 진개가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분뢰절맥을 사용하다가 주화입마를 당해서 쓰러졌는데…… 꼭 중풍을 맞은 것과 같다. 원래 분뢰절맥의 주화입마 현상이 중풍 현상과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혼절한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래서 딱 두 번만 사용하라고 하지 않았더냐. 결국은 조명십해로 돌아와야 할 것을.’
허도기는 진개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분뢰절맥을 진신 무공으로 삼으라고 전수한 것이 아니다. 우선 당장 아쉬운 대로 쓰라고 전수했다.
우수를 잘렸으니 평소에 쓰지 않던 좌수로는 도저히 옛날 무공을 발휘할 길이 없다. 진개를 향후 십 년 이상 고련해야만 간신히 팔을 잃기 전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그동안 무림에서 버티라고 전수해준 무공이다.
하지만 분뢰절맥은 엄연히 마공이다. 위력이 큰 만큼 몸에 상당한 무리를 가한다. 그래서 하루에 두 번 이상 펼치면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진개도 그런 사실을 안다. 진개 정도 되는 무인이 그만한 이치를 모른 데서야 말이 안 된다.
물론 조명십해는 꾸준히 수련해야 한다. 조명십해의 진수를 제대로 깨달으면 바로 그 순간 옛날보다 더 강한 무공을 지닐 수가 있다. 단숨에 천신이 될 수 있다.
등에서 날개가 솟고, 어금니가 곤두서고, 열 손가락이 호랑이 이빨처럼 날카로워진다.
그만큼 강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조명십해를 깨닫는 순간, 인간이 아닌 신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이것이 조명십해의 진수다.
솔직히 소축십검은 조명십해를 모두 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깨달은 것은 겉핥기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진개가 조명십해의 진수를 터득했다면 즉각 분뢰절맥 같은 마공을 버리고 검을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단숨에 최정상에 올라서 사부에게 혈첩을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을 누누이 역설했는데 믿지 않았다.
소축십검과 자신과의 무공 차이는 상당히 크다. 소축십검 열 명이 일시에 합공을 펼쳐도 자신의 검을 받아내지 못한다. 굳이 겨뤄볼 필요도 없다. 모두 느끼고 있다.
그런 차이는 무공을 얼마나 정심하게 수련했느냐로 갈라진다. 한데 소축십검은 그것을 비기의 차이로 알고 있다. 비기를 자신들에게 전수하지 않은 것만 섭섭해한다.
그래서 진개도 조명십해의 수련을 게을리했다. 분뢰절맥에만 의존했다.
그런 점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축십검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커서 ‘그래. 너희들 멋대로 살아라. 결국, 그 정도밖에 죄지 못하는 인간들’하고 방치해버렸다.
진개를 이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다.
“미안하구나.”
허도기 진심으로 진개에게 사과했다.
말은 진개에게 했지만, 그가 한 말은 소축십검 전원에게 해당한다. 몽설에게 죽은 하원랑과 사구정에게도 사과한다. 조명십해를 진실로 설득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 크다.
“혹여 어떤 방법이 있을지 몰라서 목숨을 보존시켰는데, 이제는 편히 가거라. 괜찮지?”
허도기는 진개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손가락을 곧추세워서 진개의 염천혈(廉泉穴)을 꾹 눌렀다.
“구룩!”
진개의 목구멍에서 가래 끊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허도기는 진개의 고통을 생각해서 최단 시간에 죽을 수 있는 사혈을 눌렀다.
손끝에 운집된 진기가 염천혈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목 뒤 천주혈(天柱穴)까지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무형의 칼이 일직선으로 목을 관통했다.
그 순간은 너무도 빨라서 진개는 진기가 천주혈에 닿기도 전에 목숨이 끊겼다.
“다음 세상에서는 좋은 사부를 만나. 나처럼 모자란 사부를 만나지 말고. 후후!”
허도기는 실소를 흘렸다.
왜? 왜? 모든 것을 다 줬는데!
맛있게 떠먹기만 하면 되는데 왜 아직도 안 준 것이 있다고 생각할 것인가. 왜 준 것은 다 먹지도 않고. 다 먹어야 배가 부르지. 다 먹지도 않고 한쪽으로 밀쳐 놓고는 배가 고프다며 다른 무공을 곁눈질한 것일까?
미련한 놈들!
허도기는 몸을 돌렸다.
문득 이제는 이 세상에 자신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는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소축십검이 있고, 하원랑과 사구정이 있을 때도 그들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자신 혼자밖에 없다는 듯이 오직 자신의 결단으로만 살아왔다.
그때도 혼자였다. 하지만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다. 소축십검이 죽어 나갈 때도 ‘못난 놈들이니 죽을 수밖에’하고 여겼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외로움이 밀려온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 후후!”
허도기는 웃었다.
몽설을 베는 것과 동시에 황제도 벤다. 이미 뽑은 칼, 끝까지 가본다. 아직도 승산은 많다. 아니, 황제가 쥔 패보다 자신이 들고 있는 패가 더 강하다.
앞으로 사오일…… 사오일 안에 이 세상이 바뀐다. 바뀌게 만든다. 그런 후…… 다시 하늘을 볼 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